유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김기춘 비서실장의 면면은 화려하다. 김기춘 실장은 1992년 대선을 앞두고 한 음식점(초원복집)에서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는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김 실장은 또 2004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등을 주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일 김기춘 비서실장, 박정우 민정수석 등을 임명한 뒤 '청와대 비서실은 국정 운영의 중추'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박 대통령이 정홍원 국무총리보다 선배인 '상왕 총리'를 청와대 비서실장에 앉히고 국정 운영의 '키맨'으로 삼은 까닭은 무엇일까.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을 중심으로,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와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7일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에 출연해 김기춘 비서실장을 인선한 박근혜 대통령의 뇌 구조를 집중 해부했다.(☞ )
▲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의 '뇌구조'를 해부한 선거 광고이다. 그의 뇌구조는 '민생-미래-약속·실천'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민생'은 유신 시대부터 이어진 보수주의자들의 '명분'이며, 이를 자양분으로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겠다는 야심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정치인 박근혜를 대변하는 '약속'이 강조되어 있다. ⓒ새누리당 |
"김기춘, 민주화 무시한 과격한 인사"
이철희 소장은 "'김기춘'은 한국 현대사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의 주역"이라며 "'유신·초원복집·탄핵'으로 대변되는 굵직한 사건 모두에 그가 관여되어 있다"는 점을 상기했다. 이 소장은 이어 "민주화 세력, 좋게 말하면 민주당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기춘'을 요직에 중용한 것이 '민주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사실상 총리보다도 선배고, '상왕 총리' 같은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대통령이 '그냥 쓰겠다'고 하는 결심이 가기까지…. 도대체 민주화 세력, 좋게 말하면 민주당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 같다. 물론 두려움이 없는 것에 대한 책임이 민주당에만 있는 것은 아닌데, 저럴 정도의 대담한 인사, 과격한 인사를 할 수 있을까 싶은데, (박근혜 대통령은) 했다."
김윤철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목표하는 바가 국가 기강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유신·보수주의'를 복귀하겠다는 것"이라며 "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력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다. 종북·친북이다'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남재준 국정원장, 김기춘 비서실장 등이 포진한 것은 목표 자체가 그들과 공유하고 있는 국가관과 국정 운영관에 있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신 때부터 흘러내려 온 민주화 세력에 대한, 종북·친북 세력이라는 신념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박용진 대변인은 "김기춘 비서실장 임명은 검찰이 주도한 공안 정치의 한 축이 이번에 발탁된 것"이라며 "앞서 있던 사람들(허태열 전 비서실장의 청와대 1기)도 이미 공안검사 출신들인데, (국정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징벌적 교체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변인은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검찰 장악 의도를 표면화한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제 검찰을 제대로 손에 넣어야겠다고 하는, 그래야 공안 정치의 보수 흐름을 만들 수 있겠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대통령 말 한마디면, 의사가 확인되면, 온 나라를 휘저을 수 있는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망을 손에 쥔 것이다."
보수 대항 전략…'먹고사는 문제가 핵심이다'
그러나 '정치적 민주화'를 부정하는 국가관을 가진 세력(보수)을 비판하며, '박근혜 정부는 엉망인 정부예요'라고 이야기한들 국민에게 설득력이 있을까.
김윤철 교수는 "민주화 정부(김대중-노무현) 이후 보수 정부(이명박-박근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박근혜 정부에서 노골화된 '안보는 군부, 국정은 법조'라는 것을 소멸의 대상으로 볼 게 아니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들과 '미래로 가겠다(향후 국정 운영을 꾸려나가겠다)'는 미래 비전 문제로 제기"했는데, "자꾸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이라는 비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제인데, 왜 그 강경라인만 가지고 정치를 하려고 하느냐'라면서 대안을 줘야 한다. '옛날에 뭐했던 사람인데…'라는 말을 하는 게 국민들에게 무슨 효과가 있는가. '초원복집' 사건은 20년 전 이야기다."
이철희 소장은 유신 시대 보수주의자들은 "먹고사는 문제를 개선했다"는 명분이 있었다며,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또는 민생, 사회경제적 의제)가 최우선임을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가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리 강한 보수 세력의 뒷받침이 있어도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말이다.
"'저것은 철 지난 것 같은데, 지금 시대는 아닌 것 같은데…'라며 대중들은 느낀다. 특히 20·30대와 40대만 해도 '이상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지켜보자는 태도는 결국 '민생 문제를 풀 것이냐, 못 풀 것이냐'를 보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48%의 정부 역할을 해라" 김윤철: 민주당 칭찬을 하겠다. 잘하고 있다는 칭찬이 아니고,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중요성에 대한 것이다. 지방 광역단체장과 의원들까지 해서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게 많다. 사회경제적 의제를 갖고 박근혜 대통령과 싸움을 무기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면 안 된다. 사회경제적 의제를 갖고 국민에게 다가가는 방법은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을(乙)을 위한 정치'가 참 좋았다. NLL 등의 문제를 갖고 싸우느라 못 키우고 있다. 버릴 것은 버려라. 마운드에 올라가서 1구를 던지는데 공을 두 개를 던지려 한다. 공은 한 개만 던지는 것이다. 이철희 : 칭찬이야? 박용진 :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보면 칭찬이 아니다. 김윤철 : 성과를 내려면, 지자체와 지방 의원들을 모아서요~ 뭔가 해야 한단 말이에요. 그렇죠? 민주당이 할 수 있다는 말이죠. 할 수 있습니다. 민주당! (일동 웃음) 김윤철 : 대선에서 48%의 지지를 받았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같은 지자체장도 있으니, 국민에게 다가가면 충분히 가능하다. 단 3% 뒤졌다. 48%짜리 정부 역할을 하면 된다. 쉐도우 캐비넷도 발표하고, 대안 정부적 역할을 하면 된다. 문재인 의원이 그런 의사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처럼 정치하라. 대통령인 것처럼 (해야 한다)'. 자꾸 왜 비서실장처럼 하시는지 모르겠다. 아쉽다. 그런 정부의 관점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 국민들이 자꾸 민주당을 비판하는 것은 부잣집이 남의 것 3% 못 가져와서 난리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철희 : '민주 정부 10년이 지난 정부와 다른 게 없더라'라는 게 보통 사람의 정서이다. 그것이 실망으로 작용해서 이명박 정부로 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당 지방 광역 단체장이 등장하고 나서 '이전 새누리당 단체장과 다른가, 특히 삶의 영역에서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단지 사람만 바뀐 것이가' 하는 점을 냉정하게 짚어야 한다. 좁게 보면, 민주당이 생각하는 국정 운영의 새로움이 준비가 안 되어 있다. 크게 보면, 진보 전체가 사실 똑같다. 진보 전체가 우리가 (나라를) 맡았을 때 어떻게 하겠다는 준비가 너무 안 되어 있다. 시대 담론도 너무 없다. 그런 지적 같다.
|
* 더 자세한 내용은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 "'상왕 총리' 김기춘 임명한 박근혜 '뇌구조' 대해부"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이철희의 이쑤시개> 바로가기 클릭!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