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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들도 '인권'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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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들도 '인권'을 알고 있다

[황재옥의 '북한 인권을 생각한다'] 북한에 시민적ㆍ정치적 인권을 제기하는 이유는

조만간 북한 인권 문제가 다시 한 번 국제사회의 화두가 될 것 같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지난 18일부터 한국 내에서 북한 인권실태에 대한 조사활동을 시작했고 그 결과 보고서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COI의 입국에 답변이 없어 북한이 아닌 한국에서 조사활동을 한다. COI는 △정치범수용소 관련 인권 유린 △고문과 비인간적인 처우 △임의적 구금 △성분 차별 △표현의 자유 유린 △식량에 대한 권리 위반 △생존권에 대한 위반 △이동의 자유 침해 △외국 국적자 유괴 등을 포함한 강제실종 관련 위반 등 북한 당국이 자행한 9가지 유형의 인권침해 사례를 중심으로 조사활동을 진행한다.

COI가 북한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에서 북한 인권실태 조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현장조사는 아니다. 그러나 COI가 북한에 들어가서 북한 주민들을 직접 만난다 한들 북한체제의 특성상 인권과 관련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사실 북한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 '인권'을 인식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그리고 북한 당국은 인권문제에 대해서 어떤 입장일까?

▲ 20일 오후 서울 연세대학교 새천년홀에서 열린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 북한 인권 공청회에서 정치범수용소 출신인 탈북자 신동혁(오른쪽) 씨가 14호 수용소 생활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권문제에 대한 북한당국의 입장

1960년대부터 1980년대 말 한국이 군사정권하에 있을 때, 북한은 한국의 정치상황을 역이용해 한국의 인권 문제를 공세적으로 제기함으로써, 북한의 상대적 체제 우위를 입증하려 했다. 국제인권레짐에 우리보다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마치 북한에 인권문제가 없는 것처럼 선전하기도 했다. 1970년대부터 인권을 '인민이 응당 가져야 할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및 사회적 제반 권리'라고 정의하고, 다양한 국제인권조약(1981년 자유권규약 및 사회권규약, 1990년 아동권리협약, 2001년 여성차별철폐협약, 2013년 장애인권리협약)에 가입하여, 나름대로 활동을 했다. 어떤 점에서는 이러한 북한 당국의 적극적인 대내외적 인권활동은 심각한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감추는데 편리한 방법으로 활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북한이 지구상 보기 드문 인권침해 국가라는 사실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탈북자들에 의해 북한의 인권 침해 상황이 외부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2000년대로 넘어와서는 최악의 인권 침해가 이루어지고 있는 북한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노력이 날이 갈수록 더 적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편, 북한은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제기와 권고를 정치적 공세와 압박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민감하게 반응하고 극렬하게 저항한다.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문제 제기가 북한에 대한 내정간섭이고 북한을 압살하려는 정치적 음모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심지어 북한은 '계급적 원쑤들에게는 철저한 독재를 실시하는 것이 인권'이라고 할 정도로 할 정도로 서구와는 편도된 인권관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개인은 집단의 일원으로서만 존재하고, 개인은 계급적 이익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수령님이 인민대중의 인권을 보장해 주는 사회'가 북한이라고 주장한다. 실정이 이렇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개인의 인권이 설 자리가 없다.

북한 주민들은 인권에 대해서 도통 아무 것도 모를까?

탈북자들의 증언이나 북한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북한 주민들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서 인권에 대한 이해를 폭넓게 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기준에서 극심한 인권침해를 당하는 경우, "나도 인간인데 이건 인간 대접이 아니지 않은가"라는 정도의 인식은 하는 것 같다. 즉 북한이라는 체제에서 인권침해에 대해 항의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라도,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쯤은 하고 있는 것 같다.

탈북자 대상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출간된 대한변호사협회의 <2012 북한인권백서>에 의하면, 탈북자 중 77.2%가 북한에 있을 때 "이것도 인간의 삶인가"라고 회의를 느낀 적이 있었다고 한다. 69.3%가 북한에 있을 때 "인권을 침해받았다"고 생각한 일이 있다고 답변했다. 탈북자들이 이런 답변을 했다고 해서 북한주민들이 '인권'을 개념적으로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도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라는 것이 있을 거라는 것쯤은 막연하게나마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강요하는 '우리식 인권' 논리에도 불구하고 인식의 주체로서, 북한 당국과는 구별되는, 북한 주민들이 인식하는 인권개념이 주민들 사이에도 존재하는 것 같다는 뜻이다.

북한주민들의 경제적 권리와 함께 정치적 권리 향상도 촉구해야

이번 한국에 들어와서 진행 중인 COI의 인권침해 사례 조사활동 중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것이 있다. COI는 식량권, 생존권 같은 경제적 인권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정치범수용소, 고문, 구금 등 정치적 인권에 오히려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북한주민의 정치적 인권 침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COI가 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도 청취한다니 북한정권의 반(反)인권적 행태가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밝혀질 것이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인권을 얘기할 때는 자유권 같은 시민적·정치적 인권과 식량권 등 경제적·사회적 인권으로 나누어 얘기들을 한다. 이 중에서 북한 당국이 가장 껄끄럽게 생각하는 인권은 시민적·정치적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정치범 수용소 문제나 고문 가혹행위 등과 관련된 권리가 시민적·정치적 인권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와 국제사회에는 북한 주민들에게 시급한 것은 경제적·사회적 인권인데 북한에 시민적·정치적 인권부터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굳이 정치범 수용소 문제나 구금, 고문 같은 시민적·정치적 인권 얘기부터 꺼내서 북한을 자극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북한 주민들의 경제적·사회적 인권부터 보장하라고 촉구하는 것은 일의 순서상, 그리고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북한 당국에 시민적·정치적 인권 침해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지금 당장은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지만, 정치적 박해에 대한 경고활동은 계속해야 한다.

77.2%의 탈북자들이 북한에 있을 때 "이것도 인간의 삶인가"라는 회의를 느꼈다고 할 때의 인권은 경제적 인권과 정치적 인권 두 가지를 다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69.3%의 탈북자들이 "인권을 침해받았다고 생각했었다"고 할 때 인권은 정치적 인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체제의 특성상 말을 안 하고 있었을 뿐이지 북한 주민들도 어렴풋이나마 정치적 인권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경제적 인권 향상을 촉구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정치적 인권 보장 요구도 계속해 주어야 한다. 정치적 권리에 대해서 북한에 '채찍질'을 함으로써 정치적 인권 문제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느리겠지만 앞으로 북한도 변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한편 인권침해 사례로서 식량에 대한 권리 위반과 생존권에 대한 위반이 COI의 조사항목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식량권이 생존권이나 생명권의 일부로 설명될 수도 있으나, 식량권은 정치적 인권의 성격을 띠는 생명권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의 식량 사정은 아직도 어렵다. 그 원인과 책임이 모두 북한당국에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관할 수는 없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2012년 11월 세계식량계획(WFP)과 유엔농업식량기구(FAO)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북한의 2012년 곡물 생산량은 492만 톤으로 전체 소요량 542만 톤보다 약 50만 톤 정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변호사협회의 <2012 북한인권백서>에 의하면, 북한은 1985년부터 1인당 식량 배급량을 평균 700g에서 22%나 감량했고, 1992년부터는 지방을 시작으로 식량 배급이 중단되었다. 가장 심각한 기아가 발생하기 전인 1995년 이전부터 사실상 배급체제가 무너진 것이었다. 식량 사정이 나아진 2005년 배급제를 확대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배급량도 2012년 6월 들어서는 380g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2000년 이후 식량난이 다소 해소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북한주민의 70% 이상이 식량 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인구의 35%인 840만 명이 건강을 위협받는 심각한 영양부족 상태에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국제사회는 외면하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보편적 인권 중에서도 생존권이 가장 기본적인 인권 영역에 해당한다는 판단에서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정치적 사안과 인도적 지원을 연계하지 않고, '불량국가'로 찍힌 김정은 정권이 아니라 김정은 정권에 볼모로 잡혀 있는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한의 대북 인도적 지원도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정치적 상황과 연계시키지 않고 인도적 지원을 계속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다만, 우리의 대북지원이 북한정권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같은 동포인 북한 주민의 생존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북한 당국에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유럽연합이 그랬던 것처럼 인도적 지원이라는 '당근'을 제공함으로써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의 인권논의와 대화에 나오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해도 북한 당국이 언제쯤 주민들의 인권을 개선시켜 줄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 결과를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눈앞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상황 개선이 느리겠지만 여기서부터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변화의 주체는 바로 사람, 북한주민이 될 수 있다. 단지 우리는 그들이 변화를 요구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옆에서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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