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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해결 못하면 민주주의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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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빈곤 해결 못하면 민주주의 미래도 없다" [대화] <6> 박수정 & 최영선, '우리 안의 빈곤'(상)
***박수정 이야기**

1970년 한국 노동자들의 비인간적 삶을 고발하며 분신한 고 전태일 열사의 삶을 극화한 <연극 전태일>, YH 노조 최순영, 원풍모방 박순희 등 1970년대 노동운동을 이끌어온 여성 노동운동가들의 삶을 기록한 <숨겨진 한국 여성의 역사>(아름다운사람들 펴냄), 구로동 공부방 아이들, 조선족 여성, 독거노인, 영등포 지역의 노숙자, 탈북자 등의 이야기를 담은 <내일로 희망을 나르는 사람들>(이학사 펴냄).

'글이 작가의 삶이 투영된 그릇'이라면 작가 박수정(37)씨의 '그릇'엔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들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져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7년이 넘게 '구로노동자 문학회'에서 활동한 그는 현재는 진보 생활 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 '여성 노동자 글쓰기 모임'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를 꼭 닮은 문학회에서 만난 남편은 <삶이 보이는 창> 편집인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 자신의 글의 주인공들과 이웃하며 구로구 구로3동, 일명 구주택에서 살고 있다. 같은 동네에서 약국을 하면서 어린이 건강 사업, 독거노인 방문 보건 사업 등을 하고 있는 '구로건강복지센터' 박혜경 대표가 친언니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는 가슴으로, 발로, 어쩌면 자신이 전해주지 않으면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을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쓸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짧은 시간에 '국가적 가난'에서 탈출한 한국 사회에선 가난한 개인들의 경험을 표현할 말, 또 그 말들이 소통 가능한 공간조차 가난하다는 것이 그는 늘 안타깝다.

이런 그의 진정성은 여러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내게 가장 훌륭한 예술 작품을 들라면 나는 이런 작품을 들겠다. 살아있는 인간이, 동시대에 생명을 부여받고 태어나 힘겹게 살아가는 다른 인간의 영혼에 따뜻한 돋보기를 갖다대는 것. 그들에게 작가 자신이 직접적인 해결책을 줄 수는 없다 할지라도, 이들의 삶에 조명을 비추어 많은 이들이 보게 하는 것. 그리하여 함께 살아가는 다른 이들이 서로를 돌아보고 우리네 인류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반추해보게 하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의 책을 읽은 한 독자가 남긴 말이다.

그는 자신의 이웃들에게 가장 밑바닥에서도 인간에 대한 예의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고 사는 삶의 자세를 배운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배운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구로동 사람들'을 만난 얘기들을 쓸 것이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그런 게 있기나 한가', 하면서 멀리 팽개쳐버렸던 희망이라는 낱말을 다시 손에 쥐어야 겠다"고 다짐하며.

***최영선 이야기**

위례시민연대 지역복지센터 최영선 사무국장(33)의 애칭은 순두부다. 왜 순두부가 그의 애칭이 됐는지 이유를 묻지는 못했지만 그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이나 그가 사람들에게 주는 부드럽고 달큰한 느낌과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가 일하고 있는 위례시민연대(skngo.or.kr)는 서울 강동ㆍ송파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다. 위례시민연대가 출범한 것은 2001년 3월이지만 그 시초는 지난 1992년 출범한 "사회대개혁과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강동ㆍ송파시민회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10년이 넘는 지역운동 경험이 축적된 뿌리 깊은 단체인 셈이다.

1997년에는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북한 어린이 돕기 운동'을 벌였고 외환 위기 직후인 1999년에는 실업극복지원센터를 운영하면서 가락시장에서 경매 뒤 쓸모가 없어진 채소들을 모아 '사랑의 먹을거리 나누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 지난 2001년에는 개미마을, 화훼마을 등 송파구 비닐하우스촌 5백여 가구의 주소지 찾기 운동을 폈다. 비닐하우스는 거주지로 인정되지 않아, 그곳 주민들은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못해,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각종 사회복지 및 행정서비스를 받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위례시민연대는 당시 참여연대.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 함께 송파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이겼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위례시민연대는 지난해 4월 부설기관으로 지역복지센터를 만들었다. 단체의 유일한 상근자인 그는 이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가 닮고 싶은 선배들은 다 빈민운동을 하더라고요." 지역 빈민운동에 뛰어든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다. 그의 든든한 동지인 남편도 바로 지역에서 빈민운동을 하던 선배 중 한 사람이다. 최근 남편은 민주노동당 상근자로 자리를 옮겼다.

지역복지센터가 현재 주력하고 있는 일은 '주거지킴이'와 '실버택배' 사업이다. 위례복지센터에서 정기적으로 여는 도배학교 졸업생 4명이 참여하고 있는 주거지킴이 사업은 지역의 독거노인들이나 사회복지시설에 무료로 도배를 해주는 일로, 이들에게 돌아가는 보수는 '사회적 일자리'로 인정받아 노동부에서 지원되는 월 50여만원이 전부다. 그는 "주거지킴이 중에는 본인도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많다"며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실버택배'에는 65세가 넘은 노인 8명이 참여하고 있다.

최영선 국장이 이처럼 지역복지운동을 하게 된 배경에는 빈곤 가정에서 자랐지만 스스로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밥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된다'며 끼니를 챙겨주던 동네 아주머니들, 도시락을 못 싸온 그에게 자신의 도시락을 내주시던 선생님 등. 가난을 견뎌 내게 하는 지역 공동체의 '힘'에 대해 그는 아직도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는 최근 자신의 미니홈피를 채우는 데 재미가 들렸다고 한다. 그의 미니홈피에는 이런 글이 있다. "하지만 순두부, 난 널 사랑해. 난 어느 순간 내 전공이며 꿈을 잊고 술자리 안주로만 삼고 살고 있지만 말야. 적당히 가벼운 단무지로 노랗게 퇴색한 내 스타일이며, 공동체의 경제학을 터득한 내 삶의 가치관이며, 스스로 오버하며 행복해하는 나를 사랑해. 잘 있거라 나의 꿈! 잘 가거라 나의 거품!"

***박수정-최영선 이야기**

처음 보는 두 사람은 마치 친자매처럼 금세 얘기꽃을 피웠다. 서로 사는 얘기를 하면서 두 사람은 "우리가 바로 빈곤층이네", 이렇게 입을 모았다. 그랬다. 스스로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 글을 쓰고, 활동을 하는 두 사람은 가정 형편 역시 그들의 이웃과 다르지 않았다. 같이 활동을 하고 있는 남편을 선택한 탓에 '배우자 잘 만나 형편이 좋은 여느 활동가'의 모습과도 달랐다. '우리 안의 빈곤', 그들은 바로 자기들의 얘기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먼저 "'빈곤'에 대한 사회의 시선"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며, "이웃과 공동체를 돌아볼 여유가 있는 사회, 삶의 무게에 대해 '면역력'이 있는 사회가 아쉽다"고 지적했다.

박수정 씨는 "물질적으로 가난하다고 해서, 생각도 없고 꿈도 없는 것은 아닌데, '빈곤'을 불쌍하게 그리는 게 큰 불만"이라며 "그 사람들도 하고 싶은 게 있고, 희망이 있는데 그런 부분은 다 지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눔'이 없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삶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영선 국장은 "(빈곤에 대한 이런 생각은) 물질적 가치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사회 분위기 탓"이라며 "어느새 이웃과 공동체를 돌아볼 여유가 없어지고, 삶의 무게를 혼자서 짊어지는 사회가 됐다"고 진단했다.

두 사람은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난한 사람이 스스로 삶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두 사람은 또 "이렇게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는 실천과 함께 국가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빈곤의 문제는 곧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수정 씨는 "사회가 점점 민주화됐다고 하는데도, 삶이 버거운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며 "대다수를 벼랑 끝으로 모는 사회를 결코 민주화된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빈곤의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 등을 시장에만 맡기고 있는 국가 정책의 실패"라고 지적했다.

최영선 국장도 "교육과 주거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곧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며 "이 두 가지만 해결해도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동감을 표시했다.

두 사람은 "세상이 확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둘 다 그 구체적인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예정된 시간을 훨씬 넘기며 계속 진행된 대화 속에서 어렴풋이 그 방법이 모습을 드러냈다. 얘기 속에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그들의 삶이 바로 "세상을 확" 바꾸는 구체적인 방법이었다.

이번 대담은 지난 7월29일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3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대담 전문을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가난한 사람들도 다양한 삶이 있다"**

프레시안 : '빈곤'이 갑자기 우리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곤, 가난을 자기 삶과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와 '그들'로 가난한 사람들을 분리해왔다. 최근에 구조적인 변화가 감지된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실업자나 신용불량자들이 대규모로 발생하면서 빈곤이 어느 새 우리 삶 가까이 왔다. 특히 갑자기 가난해진 사람들은, 훈련에 안 됐기 때문에 더욱더 빈곤에 적응을 못한다. 이런 정황을 감안해 '우리 안의 빈곤'이란 주제로 얘기를 해봤으면 한다.

박수정 : 요즘 빈곤에 대해서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가 되고, 여러 단체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실 빈곤은 옛날부터 있어왔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내가 주로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언론에서 빈곤을 다룰 때, 구체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얘기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그들을 보도할 때, 굉장히 아무것도 없는 사람으로 보도를 한다. 사실 물질적으로 가난하다고 해서, 생각도 없고 꿈도 없는 것은 아닌데, 그렇게 불쌍하게 그리는 보도가 큰 불만이다. 그 사람들도 하고 싶은 게 있고, 희망이 있는데 그런 부분은 다 지워지고 있다. 이것은 <조선일보>나 <한겨레>같은 언론은 물론 단체들까지도 마찬가지다. 가난에 대한 접근에서 뭔가 빠져 있다는 인상을 받아서 아쉽다.

최영선 :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이라는 게 언제부턴가 뭐든지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좌우되는 것 같다. <파리의 연인>같은 드라마를 볼 때마다 부자들을 묘사하는 방식에 화가 난다. 부모 잘 만나서 재벌2세가 돼 고스란히 회사를 물려받고, 거기다 잘 생기고, 매너도 좋고, 좋은 사람 만나고. 가난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꿈도 없고, 가정폭력의 가해자 또는 희생자고, 심지어 악한들이다. 사실 삼성의 이재용 같은 진짜 재벌2세들은 세금도 제대로 안 내는 데다, 그들의 부의 상당수는 바로 그 가난한 사람들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가난한 사람들은 단지 돈만 없을 뿐 그들도 나름의 다양한 삶이 있다. 가난하면서도 부자처럼 사는 사람들도 있고, 부자인데 가난한 사람들도 있고. 사실 나부터 이런 사회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마천동에 근육병에 걸려 혼자 계신 독거 노인을 방문하면, 나도 모르게 두 손부터 잡고 "너무 힘드시죠" 이런 말부터 나온다. 돌아서면서 '이게 정말 내 마음에서 우러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반성을 하곤 한다.

프레시안 : 오늘 어느 국회의원의 인터뷰를 읽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고생 모르고 자라 유학 다녀온 얘기나 외제차를 국회에 처음 몰고 온 얘기 등을 하는데, '반성적 성찰'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놀랐다. 과거에는 '졸부'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었던 것 같고, 물질로 환원될 수 없는 여러 가지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확실히 달라졌다.

최영선 : 요즘에는 '못 가진 사람이 죄인이다'. 강남의 학교에 가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부에 따라, 사는 곳에 따라 아이들 스스로 서로를 구획지우고 '우열'을 따진다. 사회가 굉장히 물질적으로 변했다.

특히 늘어난 '자살'이 그 단적인 증거다. 삶의 무게, 가난의 무게를 못 이기고 자살을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나는 그게 사회가 물질적으로 변하면서 '면역력'이 약해진 탓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나면, "겨우 그거 때문에 자살했나", 이렇게 안타까워 하지만 과연 그런 일이 나한테 닥쳤을 때 자살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가난한 사람은 사회에서 무시를 당하면서 좌절하거나, 저기 높은 곳으로 가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진한다. 그 과정에서 이웃과 공동체를 돌아볼 여유가 없어지고, 기쁨이든 슬픔이든 나눌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삶의 무게가 혼자만의 것으로 되고, 결국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눔'이라는 게 물질적인 것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신적인 나눔'이 더 중요하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그들이 수동적이라면 어떻게 살아 남았겠나"**

박수정 : 어떻게 그런 나눔의 확산, '면역력'을 기르는 것이 가능할까? 최영선 씨의 지역에서 활동이 갖는 가장 큰 의미가 바로 그런 데 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

최영선 : 맞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 지역에서 사회복지 서비스를 고민했다. 사실 사회복지 서비스라는 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또 사회가 그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당장 굶어죽지 않게 '입에 풀칠은 할 수 있게 하겠지만', 그 사람의 삶의 면역력을 키울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당장 '자살'을 막을 수 없다.

나는 오히려 지역에서 필요한 활동은 그들이 어떻게 나눔의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을지, 자신과 공동체의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서 그들이 스스로 조직할 수 있도록 돕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옆집 사람, 앞집 사람이 모여서 자기 사정에 대해 수다를 떨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해결 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하고, 많지는 않지만 어려울 때 스스로 각자의 주머니를 열 수 있도록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될 때 극단적인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면역력'을 키울 수 있다. 나와 위례시민연대는 주민들 스스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 역할만 하고.

물론 이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이다. 뜻있는 독지가한테 큰 돈을 기부 받아, 나눠 주는 게 훨씬 쉽다. 하지만 이런 것은 항구적이지도 않고, 주민들한테 중장기적으로는 도움도 되지 않는다. 스스로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프레시안 :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삶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얘기인가?

박수정 : 영선 씨 얘기에 공감한다. 사실 주민들 안에 더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가난한 사람은 수동적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사람들이 진짜 수동적이면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그들을 제일 먼 곳으로 일을 하러 가고, 제일 어려운 일이 자기 몫이고, 어려운 일을 하더라도 보수는 가장 낮다. 그런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 사람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스스로 모여서 조직하고 나누고...... 언론들은 그들을 누군가 도와줘야 할 사람으로만 그리는데, 진실은 그렇지 않다. 한 가지 생각나는 일이 있다. 공부방에 있을 때, 간식을 만들어주고 밥도 해주는 분이 있었다. 그 분도 초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안 해본 일이 없는 분이다. 한 가지 일을 계속 할 수도 없어, 건설 현장부터 시작해서 몇 달에 한 번씩 직업을 바꾸는 식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그래도 여전히 가난하다.

그 분을 보고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면 금방금방 놀라운 솜씨를 발휘한다. 공부방에는 부엌 시설이 따로 없어서 간이로 만들어 놓았는데 그릇 놓는 자리가 너무 불편했다. 신발장도 없어서 불편하게 살았는데, 아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이 '간식 선생님'이 보더니 어디선가 나무를 주워 와서 너무나 편리하게 불편한 점을 보완했다. 아이디어가 넘치고, 생각이 날 때 바로 실천하고, 굉장히 많이 배우고 감동을 했다.

최영선 : 과도한 감동도 안 좋은데...... (웃음) 사실 지역에서 사회복지 서비스를 하다보면 너무 수동적인 사람들이 있어서 안타까울 때가 있다. 한 어른은 정말 얄밉게 여러 가지 혜택들을 찾아다니는 분들이 있다. 그게 절대 나쁜 것은 아니다.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거니까. 다만 받는 거에 익숙해 지다보니,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나은 형편인데도 훨씬 못 한 사람들에게 차례가 돌아다니는 것을 못 견딘다. "왜 나는 못 받는 거야?",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서글프다.

***"복지는 국가의 '시혜'가 아니다"**

프레시안 : 두 분 말씀 잘 들었다. 삶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사회복지 서비스, 지역의 공동체가 주도하고 또 공동체를 복원하는 사회복지 서비스의 필요성을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크게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 가지 주체가 있다. 국가, 기업, 지역의 공동체가 그것일 텐데, 현재 한국은 국가의 사회복지 서비스는 너무나 미약하고 기업은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그에 비해 지역의 공동체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두 분처럼 깊이 있는 고민을 하고 열심히 하는 분들이 있어 희망적이지만 말이다. (웃음)

이제 얘기 방향을 좀 바꿔보자. 방금 두 분의 지적은 국가 주도의 사회복지 서비스에 대한 비판으로도 들릴 수 있는데, 그런 얘기들은 종종 '복지국가'를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논리로도 이용된다. 예를 들어 '복지병'과 같은 게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가가 공급하는 공적 사회복지 서비스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일단 사회복지 서비스 수급자의 범위가 매우 좁고, 그 절대적 양도 턱없이 적다. 또 사회복지 서비스가 시민으로서 당연히 요구해야 할 권리라는 '사회권'에 대한 인식도 모자라다. 특히 마지막이 중요할 텐데, 시민들이 사회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다 보니 정부는 사회복지 예산 확충을 항상 뒷전으로 밀어 놓고, 보수주의자들의 목소리에는 더 큰 힘이 실린다.

최영선 : 얘기 순서가 반대로 됐나? (웃음) 우리가 얘기한 것의 기본 전제가 있다. 국가가 당연히 시민들의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 정부는 우리나라 빈곤 인구가 3백만이라고 하는데, 연구에 따라서는 빈곤 인구가 1천만에 달한다는 지적도 있다. 나는 1천만이 좀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1백44만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전에 약 1백54만이 수급자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10만이 줄어든 셈이다.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더 늘어났는데, 숫자상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정부는 자기가 빈곤 인구라고 파악하고 있는 3백만이라도 제대로 지원을 해야 한다. 그 중 반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라는 얘기인가? 한국 사회에서 국가는 그 동안 고도의 경제성장을 위해 시민들을 쥐어짜기만 했지, 주택ㆍ교육 등 삶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개인이나 가족에게 일임해 왔다. OECD 국가들 중 사회복지 비용이 차지하는 비용도 형편없이 낮고, 그나마 그것도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기보다는 '시혜' 차원에서 접근하고.

박수정 : 복지병이라는 것도 한심한 발상이다. 설사 국가에 좀더 의존하는 사람이 많으면 또 어떤가? 복지를 '시혜' 차원에서 접근하다보니 그런 것 같다.

최영선 : 얼마 전 글을 읽으니까 스웨덴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면 세금을 많이 내는 데 큰 불만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실직 위기, 노후가 왔을 때 바로 자기들이 그 혜택을 보기 때문이다. 복지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약 5% 정도라고 하는데...... 1백명 중에 5명을 색출하기 위해서 복지를 줄이는 게 말이 되나? 복지병 환자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나머지가 다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말이다.

***"가난을 해결 않고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나"**

박수정 : 내가 구체적인 숫자에는 약해서... (웃음) 영선 씨 얘기를 들으면서 드는 생각은 점점 신자유주의가 되면서 갈수록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늘어나는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반대쪽으로만 가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는 빈곤 문제가 세계화나 노동의 구조가 변하는 것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고 생각한다. 인도에서는 섬유 산업이 다 빠져서 중국으로 가면서 섬유 산업 실업자가 증가했다. 우리나라도 '노동의 유연화'가 급속하게 이뤄지면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아지고, 그들은 경기에 따라 한 순간에 실업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그냥 시장에만 맡겨 두면 되겠나? 국가가 나서서 뭔가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지역에서 편부 아이들은 혼자 있을 때가 많다. 실직한 아버지들이 배낭 하나 메고 인력시장에 돌아다니다 일이 있을 때 일을 나가고, 없을 때도 가게에 배낭을 맡겨 놓고 삼삼오오 모여서 술잔을 기울인다. 만약 그들이 정규직 노동자로 채용돼 일을 할 수 있다면 그들 가족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대다수를 벼랑 끝으로 모는 사회를 민주화된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최영선 : 맞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점점 증대된다고 하는데 삶의 조건들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다. 민주화가 되면 될 수록 사람들의 살림살이도 좋아져야 되는 게 아닌가? 이것은 '껍데기 민주주의'일 뿐이다.

프레시안 : 자연스럽게 '빈곤과 민주주의'의 문제로 옮겨갔다. 보수주의자들이나 보수 언론들이 빈곤을 설명할 때, 흔히 IMF 외환 위기 이후 빈곤이 증가했고, 그 후로도 경제가 계속 어렵기 때문에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게 쉽지가 않다고 얘기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우리나라는 1998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GDP 성장률이 10%에 가깝거나 넘어 OECD 평균 성장률을 크게 앞질러 왔다. 더구나 서구의 많은 복지국가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경제력이 훨씬 낮았던 1950~1960년대 이미 사회복지 제도를 우리 이상으로 확립시켰다.

아마티아 센(A. Sen)이라는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지난 수십 년간 GNP가 5~10%씩 성장하였던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가 단지 한 해 그렇지 못했다고 해서 그토록 비참해지는 것이 놀랍다"고.

최영선 : 센의 얘기대로 우리 사회 빈곤의 문제는 바로 '민주주의'의 문제이고 국가 정책의 실패의 문제이다.

박수정 : 글을 쓰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사회가 바뀌지 않고는 해결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한 혼자 사는 할머니의 경우도 젊어서 서울로 올라와서 여든이 넘을 때까지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 한 칸을 위한 투쟁'을 계속 해왔다. 또 다른 노숙인은 취재한 다음에 지하철에서 구걸할 때 만났다.

방법은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듣고 목격할 때마다 내가 글만 쓰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 단체라도 들어가서 사회를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노력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식의 생각 말이다.

최영선 : 딱 두 가지다. 교육과 주거 문제. 현재 생계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삶의 무게 중 가장 큰 게 이 두 가지 아니겠나. 이 두 가지만 해결해도 좀더 살 만한 세상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학교급식 조례가 시민의 힘으로 제정될 것 같아서 뿌듯하다. 다른 문제도 조금씩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면 좋을 텐데.

***"지역에서부터 정치가 변해야"**

프레시안 : 한 사회를 바꾸는 방법 중 하나가 정치적 진출이다. 지난 총선에는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빈곤층이 오히려 자기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정치에 참여를 안 하는 현상이 목격된다. 빈곤층이 정치에 관심을 안 가질수록 중간 이상의 정치적 의사만이 선거를 통해 반영되고, 정치인들은 바로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빈곤층을 더 벼랑 끝으로 내몰 가능성이 크다.

박수정 : 맞다. 한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확산되더라도, 대다수 사람들이 그 민주주의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그 민주주의는 지켜지기 힘들다.

최영선 : 맞다.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고 생활은 빈곤한데, 의식은 중산층 이상이다. 오히려 더 보수적이다. 현실의 나를 이 지경으로 몰아붙인 이들의 얘기를 그대로 자기 것으로 삼곤 한다. 상당수의 책임은 언론에게 있다. 제대로 된 정보를 그 분들이 받지 못하니까.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아마 사람들이 성공의 경험을 통해 정치적 행복을 맛보지 못한 탓이 클 것 같다. 지역에서 총선시민연대 활동을 해서 국회의원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낙선 운동을 할 때 '사랑의 먹을거리 나누기' 수혜자 분들이 총선시민연대에 결합했다. 아까 얘기했던 공동체를 회복하는 운동과 연결시키기 위해 우리는 그냥 먹을거리를 나눠주는 게 아니라, 먹을거리를 나눠주는 집을 열 집 당 한 집씩 정해놓고 한 곳에 모여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자연스럽게 그 곳이 낙선운동의 중심지가 됐다. 소식지도 두고, 소식지를 읽으면서 가볍게 토론도 하고. 그러다보니 낙선운동에 큰 영향을 주게 됐다.

이렇게 국회의원을 바꿨는데도 정작 그 운동에 열심히 참여했던 사람들에게는 별로 돌아오는 게 없다. 그래서 상시적으로 참여하고 대면할 수 있는 구의회 의원을 당선시키거나, 조례를 제정하거나 개정하는 운동이 좀더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직접적으로 내 생활을 변화시킬 테니, 자연스럽게 정치의식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프레시안 : 최영선 국장은 구의회 선거 등에 나갈 생각이 없나?

최영선 : 나는 없다. 재주가 안 되는데...... (웃음) 사실 구의원에 출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싫다고 강하게 부정했는데, 내가 싫다고 하는데 누가 나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 사실 활동가가 바로 정치를 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활동가가 정치를 하게 되면 단체가 무너지니까.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후보를 발굴해보고, 그게 안 되면 단체를 꾸릴 사람을 찾아 놓은 다음에 나가야지.

프레시안 : 구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가능한가?

최영선 :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다. 예를 들어 정신보건센터나 보건지소 등은 구청장이 마음만 먹으면 구 예산을 들여 만들 수 있다.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러지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많은데 관리가 잘 안된다. 구청장 재량으로 정신보건센터를 만들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현재 25개 구 중에서 6개 구에 정신보건센터가 만들어져 있다. 공공의료에 대한 구청장의 의지가 있는 구다. 주민들이 이런 것을 인식하고 선거 때 적극적으로 요구를 해야 한다. 정신보건센터, 보건지소, 보육센터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질의서를 보내면 회신도 안 오고, 아직 지역 주민의 힘이 약하다.

프레시안 : 선거 때마다 지역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짚는 게 필요할 것 같다. <프레시안>도 그런 역할을 좀더 적극적으로 해보겠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 주민들이 참여해서 기쁨을 맛보고, 그게 정치의식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최영선 : 구로에서는 구의회 의원 2명이 당선됐다. 변화가 있나?

박수정 : 구로에서는 구로시민센터가 중심이 돼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일단 지역 공동체 활동일 텐데, 구로는 구로만의 특색이 있다. 일단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1990년대 후반부터 시민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이 이제 주민이 되고 그렇게 섞이면서 활기가 생겼다. 어떤 사회를 변화시키는 게 삶의 현장에서 무엇인가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구로의 모습은 고무적이다.

프레시안 : 자연스럽게 두 가지 결론이 얻어진 것 같다. 국가가 사회복지 제도를 확충하고, 지역 공동체와 지역의 단체들이 더욱더 활발한 활동을 벌여야 한다는 것. 그 두 가지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냐에 따라서 한국 사회복지의 미래와 빈곤 문제 해결의 방식이 결정될 것 같다.

그런데 지역 공동체나 위례시민연대와 같은 지역의 조직들은 여전히 그 힘이 미약하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필요할 것 같은데, 현장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가 뭔가? 공간의 문제인가? 예산의 문제인가? 프로그램의 문제인가?

최영선 : 그 얘기를 하기 전에 한 가지 먼저 짚을 필요가 있다. 현재 위례시민연대의 경우에는 크게 위례시민연대와 지역복지센터로 나뉘어 있는데, 두 조직의 성격이 약간 다르다. 위례시민연대가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훨씬 더 잘 쓸 수 있지만, 아직은 그 부작용이 많다. 강동ㆍ송파 지역의 한 단체가 송파구청에서 3백만원을 지원 받은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송파구의회 의원들의 외유성 관광을 지역 단체들이 비판하니까, 당장 "시민단체가 받아먹을 것은 다 받아먹으면서 할 말 있느냐", 이런 얘기가 나오더라. 한심한 일이지만 아직 이런 분위기다.

거기다 점점 지원금의 규모가 커지면, 나중에는 구정을 감시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위례시민연대가 아직 지원을 받는 것이 꺼려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복지센터는 좀 적극적으로 지원을 했으면 좋겠다.

공간이나 재정 지원은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업을 진행할 때 홍보를 구청이 적극 나서서 해준다거나, 지역복지센터에서 사업을 할 때 일거리를 준다거나, 행정력을 이용해 지역복지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급자들에 대한 정보를 준다면 훨씬 더 일을 하기가 편할 것 같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아쉽다.

***"나를 계속 활동하게 만드는 힘은..."**

박수정 : 나는 영선 씨 얘기 쭉 들으면서, 이런 게 듣고 싶다. 지역복지센터에서 주민들과 여러 가지 일을 같이 하면서 그분들과 어떤 교류가 있나?

최영선 : 사실 그 분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나도 많은 것을 배운다. 내가 그 분들보다 더 많이 배웠지만, 결국 그 분들의 인생 경험에는 크게 못 미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의지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 분들도 나를 친한 동네 동생으로 생각하면서, 얘는 이런 부분은 우리보다 낫지만 부족한 것도 많구나, 이렇게 느끼는 것 같다. 활동가가 잘난 척하지 않기, 나서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프레시안 : 그러기가 쉽지가 않을 텐데......

최영선 : 훈련을 따로 해야 한다. 사실 그러기 쉽지가 않다. 회의만 해도 그렇다. 사실 회의를 해보면 결론은 뻔하지 않나? 금방 끝날 얘기들인데, 길게 될 때가 있다. 그래도 꾹 참는다. 결론을 미리 얘기하면 재미도 없고, 그 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는 것이 되니까. 그렇게 끊임없이 교류하고, 인간적인 대화도 많이 나누고......(웃음) 그러다보니 나를 많이 무시한다. 예를 들어 가정 문제에 있어서는 그 분들이 나보다 훨씬 더 선배니까. 그리고 나도 굉장히 없이 사는 걸 알고 날 불쌍하게 여기고. 나중에는 부식도 사오고. 언젠가는 "나도 와인도 마시면서 고상하게 살고 싶다"고 얘기를 했는데, 오늘은 집에서 직접 담근 포도주를 가져왔더라. 힘들지만 이런 관계들이 나를 계속 활동하게 만든다.

프레시안 : 이제 좀더 구체적인 얘기를 해보자. 빈곤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여성, 아동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의 문제에 대해서도 좀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고.

우선 생활고, 실직, 양육의 문제 등 온갖 것들을 다 짊어지고 가야하는 저소득 여성들의 얘기부터 해보자.

(박수정 씨와 최영선 씨의 <대화>는 '우리 안의 빈곤'을 주제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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