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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현 한국사회의 위기는 콘텐츠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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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원순 "현 한국사회의 위기는 콘텐츠 부족" 〈인터뷰〉 민간 씽크탱크 '희망제작소'설립에 나선 이유
"정치할 계획이 진짜로 없으신지 물어봐주세요."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러 간다고 하니 한 동료 기자가 보인 반응이다. 본인은 극구 아니라고 하는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가 언제 화려하게 정치권에 입성할까 궁금해 한다.

정작 9일 밤 만난 그가 정의한 본인이 하고 있는 일, 또 하고 싶은 일은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다. '슈퍼 재벌' 삼성을 상대로 자본주의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참여연대〉, '1% 나눔 운동'을 통해 기부 문화를 우리 사회에도 조금씩 정착시키고 있는 〈아름다운 재단〉, 자선과 공익을 위한 '재사용 운동'을 벌이고 있는 〈아름다운 가게〉까지 지난 십수년간 그가 해온 일을 보면 이해가 간다.

그런 박 변호사가 동업자를 모집한다.

***"청계고가 만든 사람이 청계천 복원하는 한국 사회"**

이번에 그가 손을 댄 일은 "모든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디자인할 수 있는 씽크 탱크(Think Tank)", 〈희망제작소〉(www.makehope.org)다. 국책연구소와 기업의 민간연구소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정부, 기업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독립적인 민간 씽크탱크를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다.

"현 우리사회의 위기는 콘텐츠 부족에서 비롯된다"는 게 그가 이 사업을 시작하게된 문제의식이다.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변호사 등 현 정권의 핵심 인사들과 친하게 지냈고,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권을 잡았다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정책적 한계와 공백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콘텐츠 부족'은 비단 노무현 정권만이 아니라 역대 정권도 그랬고, 불행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예측한다. 열린우리당의 열린정책연구소, 한나라당의 여의도연구소 등 정당의 연구소는 정책보다는 선거전략을 연구하는데 주력한다. 그렇게 당선된 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두달 고민한 결과로 집권 5년간 로드맵을 짜다 보니 그 로드맵은 '부실공사 설계도'에 그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력 집단의 비전과 대책 없음은 지방자치단체로 내려가면 더 심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에 정책적 리더십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박 변호사의 분석이다.

그는 콘텐츠 부족에 기인한 한국 사회의 단견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이명박 서울시장과 청계천을 들었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이명박 시장의 야심작인 청계천 복원으로 온통 칭찬이 떠들썩하지만 결과적으론 청계천을 막아 청계고가 건설을 참여한 이 시장이 다시 요란스럽게 엄청난 비용을 들여 복원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런 주먹구구식 국가 운영은 우리 세대에 대한 배반이자 다음 세대에게 부담을 고스란히 전가시키는 무책임한 일이다.

***"'개혁 피로감'도 '콘텐츠 부족'의 산물"**

박 변호사는 또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실망감으로 나타나는 국민들의 '개혁 피로 현상', 내지는 보수화 경향도 콘텐츠 부족이 낳은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기득권 세력의 반발, 즉 '힘'의 부족을 현 '개혁 실종'의 가장 큰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 박 변호사는 "명확한 비전과 이 비전에 이르는 경로를 잘 설명해주면 국민들의 왜 따라오지 않겠냐"며 역시 '콘텐츠의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정책이 있으면 그 정책에 이르는 길을 설계하는 것도 정책"이라고 말했다.

〈희망제작소〉는 현재의 부족 상태를 채워나갈 콘텐츠를 구체적인 시민들의 삶에서 찾을 계획이다. 처음에는 온라인 시민 아이디어 뱅크 운영(Interactive social ideas bank) 등 '창안 사업'과 지방자치단체 평가사업 등 '뿌리 사업'에 집중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대안적 사회복지 연구 및 유휴인력의 사회적 재활용 연구 등 '대안 사업', 대안예산연구 및 생애사 연구 등 '미래전략 사업', 지식 네트워킹 사업인 '지혜창고 사업' 등도 계획하고 있다.

이런 연구의 중요성과 관련해 박 변호사는 독일의 리트 함머 교수를 예로 들었다. 함머 교수는 독일 통일 3년 전에 동베를린에 가서 주민 100명을 심층 인터뷰해 동독의 운명을 정확히 예측했다고 한다.

그는 〈희망제작소〉가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나 헤리티지 재단(The Heritage Foundation)과 같은 규모와 역량, 사회적 영향력을 갖춘 연구기관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이들 연구소 뿐 아니라 국내의 삼성연구소, 시정개발연구원 등도 약 100명의 연구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희망제작소〉도 이 정도 규모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 연구기관이기 때문에 지원자격으로 석사 이상의 전문성을 요하지만, 학력제한을 두지는 않았다. 오는 26일까지 상근연구인력을 모집하고 있는 〈희망제작소〉는 내년 3월께 정식으로 문을 열 계획이다.

그는 "퇴직한 공무원 등 사회 각계에서 소중한 경험을 쌓은 시니어들이 객원 연구원으로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고, 실제로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일전의 한 인터뷰에서 그를 '결혼생활 외에는 10년 이상 한 가지 일을 지속해 본 적이 없는 보헤미안'이자 '지독한 몽상가'라고 규정했던 기자가 "〈희망제작소〉 이후엔 또 무슨 일을 벌일 계획이냐"고 묻자 "내 나이가 쉰둘인데 이게 마지막이 되야죠. 머리가 더 빠져서 걱정"이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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