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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권력'의 음모, 그 시작과 끝을 알고 싶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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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권력'의 음모, 그 시작과 끝을 알고 싶습니까? [특집] <콘스탄트 가드너>로 본 르 카레의 작품세계
<콘스탄트 가드너>는 존 르 카레가 2000년 발표한 그의 18번째 소설이다. 케냐를 무대로 하는 이 작품은 정원을 가꾸는 것이 취미인 순진한 영국인 외교관 저스틴과 그의 젊고 용감한 아내 테사의 이야기다. 케냐에 부임한 남편을 따라 간 테사는 거대 제약회사가 빈민가에 살고 있는 흑인들을 속인 채 투약 실험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저지하려는 사회운동에 동참하다 죽임을 당한다. 테사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음모와 계략, 배신과 복수의 이야기가 <콘스탄트 가드너>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은 애초 <007 골든아이>의 시나리오를 썼던 제프리 케인이 각색해 영국의 마이크 뉴웰 감독에게 연출 제안이 들어갔다. 그러나 제작진은 케냐라는 특수한 배경과 슬럼가의 빈민에 밀착한 삶의 리얼리티를 좀더 그럴듯하게 포착할 연출가로 <시티 오브 갓>으로 일약 주목을 받은 브라질 출신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에게 메가폰을 맡겼다. 영화화된 <콘스탄트 가드너>는 특유의 영상미로 시선을 사로잡는 메이렐레스 감독의 연출력과,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레이첼 와이즈의 빼어난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를 보다 보면 그 정교한 플롯과 기업과 국가가 결탁한 거대 권력에 대한 비판 정신에 더 주목하게 된다.
콘스탄트 가드너 ⓒ프레시안무비
물론 그것은 존 르 카레가 써낸 원작 소설의 힘에 빚지고 있다. 이 소설이 발표되었을 때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이렇게 평했다. "세상이 냉전 시대라는 비교적 명백한 취사 선택의 틀에서 벗어나 탐욕과 냉소주의가 제1의 동력으로 자리잡은 도덕적 곤궁 속으로 옮겨감에 따라서, 르 카레의 작품은 점차 급진적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콘스탄트 가드너>는 지금까지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열렬히 분노에 가득 찬 소설이라 할 만하다." . 체험을 바탕으로 스파이 소설을 쓴 존 르 카레
존 르 카레 ⓒ프레시안무비

올해로 일흔다섯 살이 된 존 르 카레는 여전히 왕성한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는 작가다. 본명이 데이비드 존 무어 콘웰인 그는 1959년 서독 주재 영국 대사관에 근무하면서, 독일 정치인들과 친분을 쌓았다. 그는 스파이로 직접 활동하기보다는 "책상 뒤에서 관리했을 뿐"이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냉전 시대 가장 유명한 이중 스파이였던 킴 필비는 한때 르 카레의 이름을 러시아 수뇌부에 누설하기도 했다. 르 카레는 바로 이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스파이 소설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데뷔작은 <사자의 소환>(1961). 외무부 직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존 르 카레'라는 필명을 써야 했던 그는, 세 번째 소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1963)가 크게 성공하면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냉전시대 베를린을 배경으로 영국 정보부 요원 알렉 리머스가 국가의 명령으로 임무를 수행하다 곤경에 처하면서 벌어지는 첩보전을 다뤘다. 당시 <제3의 사나이>의 원작자 그레이엄 그린은 이 작품을 두고 '지금까지 쓰여진 가장 뛰어난 스파이 소설'이라 호평했다. 존 르 카레의 스파이 소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주인공은 조지 스마일리라는 은퇴한 영국 정보부 첩보원이다. 르 카레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1974)와 <오너러블 스쿨 보이>(1977), <스마일리의 사람들>(1980) 등 세 편에 걸쳐서 조지 스마일리와 소련 정보부 수뇌 카를라의 대결을 그렸다. '카를라를 찾아서 삼부작'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연작은 존 르 카레의 스파이 소설 가운데서도 가장 개성이 넘치는 작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비롯한 존 르 카레의 첩보 소설들은 분명한 지향점이 있다. 당시 영국 문단에서는 이언 플레밍이 쓴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비롯해 첩보물이 하나의 장르를 이루며 대중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존 르 카레의 소설은 이언 플레밍의 작품과는 매우 달랐다. 존 르 카레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언 플레밍이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당시 스파이는 여자들과 관계를 맺고, 날렵한 자동차를 몰며, 탈출하기 위해 온갖 도구들을 사용하는 캐릭터였다."
콘스탄트 가드너 ⓒ프레시안무비

하지만 존 르 카레의 소설에 나오는 스파이들은 달랐다. 그의 주인공들은 제임스 본드 스타일의 선정주의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선과 악이 분명한 플레밍의 소설과는 달리, 르 카레의 주인공들은 늘 도덕적인 상대주의자로 묘사되었으며, 서구의 첩보 조직은 소비에트 연방에 비춰 취약한 것으로 그려졌고, 숨막히는 첩보전의 현장 속에서 '올바른' 쪽을 가려내기란 애매한 경우가 더욱 많았다. 르 카레는 동서 이데올로기의 옮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첩보 활동 자체에 내재된 불명확성을 파헤치는 데 더욱 관심이 있다고 말해 왔다. '카를라를 찾아서 삼부작' 이후에도 존 르 카레는 꾸준히 첩보 소설을 써냈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자전적인 소설 <완벽한 스파이>(1986)와 영국의 출판업자와 소비에트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러시아 하우스>(1989) 등이 그 작품. 하지만 그 뒤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베를린 장벽 붕괴는 첩보 소설 장르를 표류하게 만들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스파이 활동이나 동서 진영의 대립 구도가 약화되면서,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첩보물은 더 이상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르 카레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예전처럼 단순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주제로 내세우지는 않지만, 르 카레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권력과 음모의 이중주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마약 밀수를 소재로 한 <나이트 매니저>(1993), 그리고 전직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냉전 시대의 종말에 대해 성찰한 <우리의 게임>(1995) 등이 그 작품이었다. 물론 1990년대 이후 존 르 카레의 최고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작품은 <파나마의 재단사>(1996)다. 파나마 운하의 본국 반환 시기를 배경으로 영국에서 파견된 첩보원이 모종의 과거를 가진 재단사에게 접촉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냉전 이후에도 여전히 패권 다툼을 계속하고 있는 서방 국가의 전략을 파헤쳐 크게 호평을 받았다. . 첩보 활동의 불명확성을 파헤치는 작가
파나마의 재단사 ⓒ프레시안무비

존 르 카레의 소설은 이미 여러 차례 영화화된 적이 있다. 영국의 거장 마틴 리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1965)는 주인공 알렉 리머스 역을 맡은 리드 버튼을 1966년 아카데미 최우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렸다. 르 카레의 데뷔작 <사자의 소환>을 각색한 영화 <데들리 어페어>(1966)는 시드니 루멧 감독 연출로 스크린에 옮겨졌다. 또한 프랭크 피어슨 감독의 <거울 전쟁>(1969)와 조지 로이 힐 감독의 <북치는 작은 소녀 >(1984) 역시 준수한 첩보 스릴러 물로 각광을 받았다. 미셸 파이퍼와 숀 코너리가 주연을 맡은 <러시아 하우스>, 그리고 피어스 브로스넌과 제프리 러쉬의 열연이 돋보인 <파나마의 재단사>는 르 카레 원작 영화 가운데 가장 지명도가 높은 작품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스마일리의 사람들><퍼펙트 스파이> 등 TV 시리즈로 만들어진 작품들까지 포함하면, 꽤 많은 르 카레의 소설들이 영화화된 셈이다. 지금도 존 르 카레는 현대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벼리고 있다. 르 카레는 지난 2003년 1월 15일자 영국의 신문 '더 타임스'에 "미국은 미쳤다(The United States of America Has Gone Mad)"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기고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강력히 비난한 이 에세이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미국은 역사적 광기의 시대로 들어섰다. 이번에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 가운데 최악이다. 맥카시즘보다, 피그스만 침공보다 더 심각한 사태이며, 장기적으로는 월남전보다 더욱 잠재적으로 파멸적일 것이다. (…) 부시와 그의 도당들이 빈 라덴에 대한 미국의 분노를 사담 후세인으로 비켜가게 만든 과정은 역사의 속임수로 마술을 부린 최고의 홍보 활동일 것이다." 당시 존 르 카레의 거침없는 발언에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은 경악했다. 하지만 누구도 용감히 진실을 말하지 못한 정치적 난제에 카운터 펀치를 날린 것으로 갈채를 받기도 했다. 그의 이 통렬한 직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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