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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갖고 있는 건 너무 많아. 그걸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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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내가 갖고 있는 건 너무 많아. 그걸 보여주고 싶다" [핫피플] <사생결단>의 마약 중독자 역 추자현
드라마 <카이스트> 출신의 탤런트 추자현이 대형 사고를 쳤다. '보이쉬(boyish)'한 외모와 털털한 이미지로 TV 드라마에서 중성적이고 코믹한 역할을 주로 맡아 온 추자현이 <사생결단>에서 완전히 달라졌다.   황정민, 류승범 주연의 누아르 영화 <사생결단>에서 추자현은 명품 옷가게 여사장에서 마약 중독자로 전락하고 마는 비극적인 여인 지영을 연기함으로써 지금까지 고수해 온 이미지를 단번에 바꿔버린다. 이 영화에서 추자현이 맡은 지영은 지금까지의 추자현의 이미지를 다 지워야할 정도로 극단적인 변신을 보여준다. 마약에 절어 흐느적대는 모습부터 전라 노출까지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는 추자현을 다시 보게 만든다.   <사생결단>은 부산을 배경으로 마약 판매상 이상도(류승범)와 마약계 거물 장철(이도경)을 잡기 위해 광기를 부리는 도진광 경장(황정민)이 생존을 위해 서로를 물어뜯는 남자들의 광기 어린 비열한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낸 누아르 영화.
추자현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전형적인 남성 영화인 <사생결단>에서 여자 배우가 설 자리는 그다지 커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추자현은 중성적이고 코믹한 이미지를 한순간에 벗어던지고 한번 빠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는 어두운 마약 세계에 빠져들어 망가져 가는 비운의 여인을 연기하며 두 남자배우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이 영화에서 추자현의 연기는 가히 발군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탁월하다.   TV 탤런트로서는 명성을 누렸지만 영화계에서는 신인이나 마찬가지인 추자현은 이번 영화를 통해 영화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크게 키워냈다. 1996년 데뷔 후 대표작 <카이스트>를 비롯, <명랑소녀 성공기>, <오! 필승 봉순영>, <가족 연애사> 등의 TV 드라마에서 주조연을 맡으며 무난하게 연기생활을 해 오던 추자현을 이렇게 변화시킨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추자현을 만났다.   . -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이미지 변신을 하기는 쉽지 않다. 뭔가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갑자기 영화를 너무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비교적 오랫동안 연기해 왔는데, 한번도 내가 찾아가서 시켜달라고 한 적이 없을 만큼 나름대로 잘 나가는 편이었다. 그런데 <카이스트> 이후 굳어진 중성적이고 코믹하고 톡톡 튀는 내 이미지를 활용하는 작품들만 섭외가 들어왔다. 내가 갖고 있는 건 그것 말고도 더 있는데, 방송에서는 나의 다른 점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안 줬다. 그렇다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다른 점을 직접 꺼내서 보여주자고 마음먹었다. - 그래서 <사생결단>을 선택했다? <사생결단>도 원래 내게 온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워낙 시나리오가 좋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러다보니 나도 우연히 읽을 기회를 얻었다. 사실 최호 감독님은 지영 역에 추자현이라는 이름은 한번도 떠올린 적이 없을 거다. 시나리오를 읽고 내가 오디션을 보러 갔다. 지영을 탐내지는 않았다. 이 역할을 맡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오디션은 보고 싶었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중성적인 분위기의 추자현이 아닌, 머리도 길게 기르고 여성적인 느낌으로 오디션장에 갔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지영의 느낌을 오디션장에서 보여주려고 했다. 마약에 취한 모습을 연기해보라고 했을 때 신발을 벗어버리고 의자를 넘어뜨릴 만큼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마 감독님이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추자현에게 열정이 있구나, 그렇다면 시켜봐도 되겠구나 생각하신 게 아닐까? 여쭤본 적은 없다.  
추자현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명품 옷가게 여사장에서 마약 중독자로의 변신, 어떤 배우라도 쉽지 않은 역할이다. 감독님과 캐릭터에 대해 상의할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내가 가장 마지막에 캐스팅이 됐다.그리고 캐스팅되자마자 바로 촬영일정이 잡혔으니까 극중 인물인 지영이 되는 게 급선무였다. 마약 중독자 연기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했다. 마약 중독자 역을 연습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아는 마약 중독자의 이미지는 할리우드영화에서 본 이미지들일 거다. 그래서 마약 중독자가 나오는 영화는 일부러 안 봤다. 남들이 한대로 쫓아가기는 싫었다. 마약 중독자라 해도 사람마다 다 증상이 다르다. 그러니까 나는 나라는 인간이 느끼는 마약 중독의 증상을 보여주자고 마음 먹었다. 그래야 '리얼리티'가 산다고 생각했다. 감독님도 같은 생각이셨다. - 마약 중독자 역을 하기 위해 실제 마약 중독자를 만났다고 들었다. 요양소에 있는 마약 중독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20대의 마약 중독자였던 여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충격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 사람의 말을 듣고 느낌이 왔다. 그 때 느낀 느낌을 촬영 내내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숙소인 호텔에 들어가면 커튼은 무조건 닫아 걸고 불도 안 켜는 등 공포감과 우울한 느낌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 실제로 들은 경험이나 행동 가운데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활용한 게 있나? 영화를 보면 지영이 상도의 집에 머물다가 상도의 삼촌이 숨겨둔 마약 10kg을 발견하는 장면이 있다. 마약을 끊은 상태의 중독자가 마약을 발견했을 때 어떤 느낌일까를 요양소에 갔을 때 질문했었는데, 그 사람이 그러더라. "느낌은 무슨! 주사기부터 찾아야지." 그러니까 마약에 한번 손을 댄 사람은 끊었다고 해도 마약을 다시 보는 순간 이성이 마비된다는 얘기다. 영화에서 나는 그 느낌을 마약을 보는 순간 화장실에 가려는 몸짓으로 표현했다. 마약을 보자마자 치마를 걷어올리고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는 장면. 나는 그 장면에서 주사기를 찾아서 팔에 찌르지는 않았지만, 그 느낌은 전달됐다고 생각한다.   - 그 장면 하나뿐인가? 또 있다. 영화의 거의 마지막 부분, 상도를 찾아갔을 때 상도가 마약을 탄 맥주를 지영에게 주는 장면이 있다. 원래 시나리오 상에는 지영이 마시지 않는 거였다. 그런데 막상 마약 중독자를 만나보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거기서 맥주를 마시지 않는 건 우리가 마약을 끊은 마약 중독자에게 바라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그 장면에서 맥주를 마셔야 한다고 말했고, 감독님도 오케이 하셨다. 마약 중독자들은 마약을 접하게 되면 일단 주사기로 찌르거나 먹거나 한 다음에 후회를 하든 뭐든 한다. 마약을 보는 그 순간에 이성은 사라지고 없는 거다.   - 듣고 보니 무섭다. 개인적으로는 벌거벗은 채 엉덩이에 마약 주사를 놓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은 강도가 상당히 세다.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굉장히 몰입해서 찍은 신이다. 지영이라면 이랬을 거다, 라는 느낌으로 찍었다. 물론 힘들긴 했지만, 감독님이 잘 배려해줬다. 적외선 카메라로 찍는다고 했지만, 사실 찍을 때는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편집한 걸 보니까 아, 저런 느낌이구나 알겠더라. 감독님이 최고의 느낌을 잘 뽑아낸 것 같다.   - 그 장면 외에도 노출신이 꽤 있다. 노출신이 두렵지는 않았다. 지영이라면, 라고 생각하면서 촬영했기 때문에 특별히 노출신이라고 해서 다른 신보다 더 힘든 건 아니었다. 오히려 감독님이 민감한 신이라 타협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래서 감독님한테 나한테 미안해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말고 원하는 게 나올 때까지 찍으시라고 말씀드렸다.   - 부산이 배경이다. 사투리는 어렵지 않았나? 메이킹 촬영하는 분이 부산 출신이어서 그 분한테 사투리를 배웠다. 사투리 자체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영화 보니까 나쁘지 않은 것 같던데, 어떻게 생각하나?  
추자현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나쁘지 않았다.(웃음) 부산에서 100% 촬영했다. 부산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촬영이 너무 힘들어서 부산을 느껴볼 새도 없이 촬영 끝나자마자 서울로 올라와버렸다. 그리고 한번도 안 내려갔다. 촬영 내내 부산에 머물렀는데, 그래야 지영의 느낌을 지속적으로 지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산에 대한 기억은 크라운 호텔 1555호와 촬영장밖에 없다. 호텔에 박혀 있거나 촬영하거나 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촬영 중반부터 살을 빼야 했기 때문에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없었고, 내 촬영분이 다 상당히 '센' 장면들이라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촬영 당시에는 바닷가에도 한번 나가본 적이 없다.   - 영화를 보면 느껴진다. 촬영 다 끝나고 어느날 감독님이 편집본을 보러 오라고 전화를 했는데, 힘들었던 게 생각나 가기가 싫더라.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까 마음에 든다. 영화를 보니까 나만 힘들었던 게 아니었다. 추운 겨울에 바닷물 속에 빠져야했던 류승범씨도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 류승범 씨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배우들 간의 호흡은 어땠나? 물론 좋았다. 황정민 선배님이나 류승범 씨 연기력은 누구나 알아주지 않나? 황정민 선배님 대단하더라. 류승범 씨도 내가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나는 나이도 어린 친구가 워낙 연기를 잘하니까 원래 타고난 끼 덕분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같이 작업해보니 굉장히 똑똑하고 치밀한 배우더라. 많이 배웠다. 나하고는 같이 찍는 신이 많아서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 영화 찍으면서 나보다 더 많이 갖고 있으면서도 흔쾌히 남과 나눌 줄 아는 황정민, 류승범 같은 배우들과 작업한다는 게 너무 좋았다.   -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사람들이 당신을 배우로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너무 칭찬을 많이 들어서 사실은 좀 부끄럽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촬영 감독님과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그랬다. 신인처럼 열심히 하겠다고. 사실 이 말은 누구나 쉽게 하는 상투적인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진짜 그런 마음이었다. TV에서야 알려졌지만, 영화는 겨우 <이대로, 죽을 순 없다> 한 편 찍은 신인 아닌가? 촬영 다 끝나고 촬영 감독님이 그러시더라. 처음에 내가 하는 말 흘려 들었었는데, 실제로 열심히 하는 걸 보여줘서 고맙다고.   - 다음 작품은 정해졌나? 아직 정해진 건 없다.   - 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다면?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역할이 어떤 게 있을까? 어떤 감독이 내 안의 또다른 면을 발견해 나를 새롭게 만들어줄까? 그런 기대는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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