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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살아 있는 음악 이야기 <허슬 앤 플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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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살아 있는 음악 이야기 <허슬 앤 플로우> [특집] 2006 아카데미 주제가상 수상작, DVD로 직행
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사상 처음으로 랩 음악으로 주제가상을 받은 <허슬 앤 플로우>가 DVD로 출시된다. 극장에 개봉되지 않고 DVD로 직행했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수작이다. 제작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싣는다. – 편집자
<허슬 앤 플로우>는 미국 테네시 주 멤피스 출신의 감독 크레이그 브루어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삼십대 중반의 이 백인 감독은 2000년 <가난하고 굶주린 자 The Poor and Hungry>라는 흑백 디지털 장편영화로 데뷔했다. 멤피스를 배경으로 자동차 강도가 희생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을 담은 이 영화는 내쉬빌 독립영화제 등에서 관객상을 받으며 브루어의 재능을 알렸다. 크레이그 브루어에게 멤피스라는 도시는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였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향이자 블루스와 록큰롤을 태동시킨 멤피스는, 브루어의 표현에 따르면 "현대 음악의 메소포타미아"와도 같은 곳이다. 하지만 그곳은 이제 과거의 영광은 아랑곳없이 기억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흑인들의 도시에 불과했다. 현대 대중음악의 탄생지라는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과는 지극히 대조적인, 저개발의 흔적만 남은 쇠락한 도시인 것이다.
허슬 앤 플로우 ⓒ프레시안무비
물론 그곳에는 여전히 음악을 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멤피스는 LA나 뉴욕 같은 대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뮤지션 지망생들은 주류 대중음악계와 접촉할 기회조차 자주 갖지 못한다. 대신 그들은 집이나 창고에 어설픈 악기와 녹음 장비를 갖추고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만든 뒤 데모 CD를 트럭에 싣고 다니며 판매한다. 혹시 운 좋게 주류 음악계와 끈이 닿아 능력 있는 프로듀서를 만나면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멤피스의 대다수 뮤지션 지망생들은 자신의 음악이 지역 라디오 방송이라도 한 번 타기만을 갈망하고 있다. <허슬 앤 플로우>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 삶의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음악 영화 영화가 시작하면 마치 <대부> 1편의 첫 장면처럼 한 사내가 중얼거리는 것을 보게 된다. "남자는 개와 달라. 지금 말하는 남자는 고추 달린 남자가 아니라 인간다운 남자를 말하는 거야. 고추 달린 남자는 완전히 개야. 여기저기 쉬나 하고 다니고 틈만 나면 쉬를 하고 다니지. 하지만 인간다운 남자는 죽음을 알아. 역사 의식이 있지. 종교도 있어." 자동차 남자의 인간다움을 설파하는 이 사내는 멤피스 주의 삼류 클럽을 거점으로 일하는 포주 '디제이'(테렌스 하워드)다. 그는 지금 자동차 옆자리에 젊은 매춘부 놀라(태린 매닝)를 태우고 다니며 '영업'을 하는 중이다. 포주가 역사와 종교와 인간다움을 설파하다니, 언뜻 어처구니 없어 보이지만 디제이에게 그것은 비루한 삶을 지탱시켜주는 에너지다.
허슬 앤 플로우 ⓒ프레시안무비
비록 매춘부들에게 빌 붙어 살면서 대마초나 파는 인생이지만, 중년에 접어들어 인생의 위기를 느낀 디제이는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꿈에 도전하려 한다. 바로 음악을 만들어 지역 방송국에 데뷔하는 것이다. 유년 시절 친구이자 랩퍼로 크게 성공한 스키니 블랙(루더크리스)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동창 키(앤소니 앤더슨)를 만나면서 자신의 꿈에 조금씩 다가간다. 그를 도와줄 사람이라고는 매춘부 셔그(타라지 P. 헨슨)와 교회 성가대에서 일하는 백인 청년 셸비(D.J. 퀄스) 등 막장 인생들뿐이다. 이들이 모여 집 한구석에서 만든 노래 제목은 영화 주제곡이기도 한 '포주로 살기에는 너무 험악해(It's Hard Out Here for a Pimp)'. 디제이는 자신의 삶을 담은 이 노래를 스키니 블랙에게 들려주고 음악인으로 살아갈 기회를 잡으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 <허슬 앤 플로우>의 주인공 디제이는 기존의 흑인 마피아 영화에 등장하던 포주들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크레이그 브루어의 말대로 "매끈한 양복을 입고 보석을 주렁주렁 단 채 황금 술잔을 손에 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추레한 옷차림에 에어컨도 없는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단돈 20-40달러에 매춘부를 파는 서글픈 인생인 것이다. 브루어 감독은 멤피스에서 실제로 자신이 만나본 포주들의 모습을 사실대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싸구려 스트립 클럽과 몸을 파는 것 외에는 달리 할 게 없는, 현실에서 탈출하길 원하지만 딱히 뭘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 하는 매춘부들의 이야기도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노래는 바로 그 도저한 리얼리티 덕분에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 <허슬 앤 플로우>의 제작비는 고작 800만 달러. 할리우드 주류 영화 평균 제작비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만든 저예산 영화지만, 이 작품은 음악과 촬영, 각본과 연기 등 모든 요소들이 탁월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웰메이드 저예산 영화, 인기를 얻다 <허슬 앤 플로우>는 완성까지 4년이 걸린 영화다.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의 그 누구도 이 작품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크레이그 브루어에게 손을 내민 두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존 싱글턴 감독과 그의 파트너인 프로듀서 스테파니 알레인이었다. <보이즈 앤 후드>를 성공시키면서 명성을 얻은 이들은 <허슬 앤 플로우>의 성공 가능성을 점쳤지만, 멤피스라는 낙후된 지역을 무대로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테파니 알레인은 DVD 인터뷰에서 "50군데도 넘는 제작사에 수차례 연락했지만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다"며 고개를 저었다.
허슬 앤 플로우 ⓒ프레시안무비
하는 수 없이 존 싱글턴 감독이 직접 나섰다. <샤프트> 리메이크와 <분노의 질주 2> 등을 만들며 할리우드 주류 영화계에 진입한 그지만, 독립영화 제작자로서의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존 싱글턴은 사재를 털어서 <허슬 앤 플로우>의 제작비를 댔다. 만년 조연으로 출연했던 테렌스 하워드는 다시는 포주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제작진의 지극한 부탁에 디제이 역을 받아들이고 직접 랩을 배웠다. 4년을 준비했으나 촬영 기간은 고작 4주뿐이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DVD 스페셜 피처는 이들이 영화 제작을 성사시키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크레이그 브루어 감독은 당시의 경험을 빗대 이렇게 토로했다. "오손 웰즈 감독은 자기 인생의 10%를 예술가로 살았지만 90%를 포주로 살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허슬 앤 플로우>를 만드는 것은 바로 그런 경험이었다. 다행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만든 이 영화는 평단의 절대적인 호평 속에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2005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었으며, 관객상과 촬영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파라마운트 클래식스의 배급라인을 타게 된 이 영화는 지난해 7월 24일 미국 1천여 개 극장에서 개봉하면서 개봉 첫 주 8백만 달러의 제작비를 모두 뽑았고, 4개월 동안 롱런하면서 미국 내에서만 2천 2백만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거두었다. 연말에는 각종 시상식 후보에 오르면서 지난해 미국에서 만들어진 가장 탁월한 독립영화 중 한 편으로 꼽히기도 했다. <허슬 앤 플로우>가 거둔 성공의 절정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이었다. <크래쉬>에서 TV 프로듀서로 출연하기도 했던 테렌스 하워드는 이 작품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멤피스 출신의 랩 그룹 '쓰리 식스 마피아(Three 6 Mafia)'가 작곡한 주제곡 역시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아니, 이 진심이 담긴 절절한 랩 음악은 결국 오스카를 거머쥐었다. . 미국 대중음악계 실력자들 한자리에 <허슬 앤 플로우>의 DVD에는 영화음악을 만드는 과정 또한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이 작품의 사운드트랙에는 멤피스에 아직 남아 활동하고 있는 미국 대중음악계의 실력자들이 참여했다. 멤피스에 기반을 둔 스택스(Stax) 레코드는 한때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비롯해 블루스나 소울 등 미국 흑인음악의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프로덕션 집단이다. 스택스에 소속돼 <샤프트> 등의 앨범에 참여했던 윌리 홀, 마블 토마스, 스킵 피츠 등의 뮤지션들은 <허슬 앤 플로우>의 사운드트랙에서도 빛을 발한다. DVD에는 극중 스트립 클럽 종업원 역을 맡은 전설적인 소울 뮤지션 아이작 헤이스(그는 한때 스택스 레코드의 대표적인 뮤지션이기도 했다)가 녹음실에 들러 음악 작업을 둘러보는 모습도 담겨 있다.
허슬 앤 플로우 ⓒ프레시안무비
또한 크레이그 브루어 감독은 멤피스 지역 뮤지션들의 랩을 직접 사운드트랙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극중 디제이가 부르는 중요한 노래인 'Whoop That Trick' 'It Ain't Over' 등의 랩은 멤피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명의 뮤지션 알 카포네가 작곡한 곡이다. 물론 이 사운드트랙의 백미는 주제가상을 받은 'It's Hard Out Here for a Pimp'다. 이 노래는 아카데미 시상식 70년 역사에 새로운 물꼬를 텄다. 쓰리 식스 마피아는 극중 매춘부 역으로 출연한 타라지 P. 헨슨과 함께 무대에 올라 이 노래를 불렀다. 휘황한 드레스와 정장으로 몸을 감싼 백인들의 잔치인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힙합 바지와 티셔츠와 야구모자를 쓴 랩 그룹이 오른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이 노래의 가사는 속어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잡년(bitches)'이라는 속어가 쓰인 노래가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등장한 것은 처음이었다. 또한 생중계를 맡은 ABC로서도 일요일 황금시간대에 이 속어가 포함된 공연을 방영한 것도 처음이었다. <허슬 앤 플로우>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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