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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규제에 침묵하는 386세대 학부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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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두발규제에 침묵하는 386세대 학부모에게 [기고] 독재에 맞서던 열정으로 학교개혁에 동참했으면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청소년 인권행동의 날' 집회가 열렸다. 200여 명이 참여한 이날 집회에서 청소년들은 주로 학교의 강제적인 두발단속에 대해 비판했다.
  
  청소년들은 정확히 1년 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요구를 내걸고 촛불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얼마 뒤 국가인권위원회는 청소년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학교에서 강제적인 두발단속을 하지 않도록 하는 권고안을 냈다. 하지만 14일 광화문에 모인 청소년들은 1년 동안 학교는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집회에는 청소년뿐 아니라 인권단체 활동가와 교사도 상당수 참여했다. 이날 집회에서 만난 한 교사가 학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이 글에서 조영선 교사는 1980년대에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이끌어낸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는 학부모들이 권위주의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는 학교를 개혁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편집자>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대부분의 학교가 오늘 휴교한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마찬가지다. 촌지 문제 때문이다. 오늘 교사들을 아예 출근하지 않게 해서 촌지를 주고받을 빌미 자체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책의 실효성보다 이런 정책의 배경에 있는 교사에 대한 불신이 기분을 씁쓸하게 한다. 요즘 교직이 인기라던데, 정작 교사에 대한 신뢰는 더 약해진 듯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내가 교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때를 돌이켜 본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소풍을 가면, 학생과 놀아주는 선생님이 드물었다. 대개 교사들끼리 모여서 고스톱을 치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시 담임 선생님은 그렇지 않았다. 학생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렸다. 또 그 선생님은 힘든 일을 겪은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와 함께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깊은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 선생님을 보며 마음 속으로 결심했다. '나도 나중에 선생님이 돼야지'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선생님은 전교조 소속이라는 게다. 조금 유별나다 싶었는데,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아마 그 때 내 진로가 정해진 듯하다. '전교조 소속의 교사'가 되는 것으로….
  
  5월 15일이 스승을 기억하는 날이라면, 5월 14일은 학생 인권을 위해 움직이는 날이다. 지난해 5월 14일, 두발 규제의 철폐를 외치는 청소년들의 시위가 열렸다. 그로부터 1년이 된 어제 또 집회가 열렸다. 청소년 단체들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는 날이 올 때까지 매년 5월 14일에 청소년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겠다고 한다. 어제 열린 '청소년 인권 행동의 날' 집회에 나도 학생들과 함께 참여했다.
  
  학부모가 된 386 세대, 자녀의 시험점수에만 관심 있어서야
  
  나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내가 만나는 학부모들은 소위 386 세대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가 벌써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가 된 것이다. 특히 지난해까지 근무하던 학교에 유독 386 세대에 속하는 학부모가 많았던 것 같다. 그 학교는 서울 목동 지역에 있었다. 아무래도 경제적 수준이 높은 곳이어서인지 학부모들의 학력도 높은 편이었다. 대부분의 학부모가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젊은 시절 독재정권에 맞서면서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이끌어 온 사람들은 자녀 교육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을까? 내가 살펴본 386세대 학부모들의 태도는 좀 이중적이다. 그들은 기존의 권위적인 학교교육에 대해 상당히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물론 사교육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사회가 '학벌'이 약한 사람에게 얼마나 가혹한 곳인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아마 대학을 졸업한 후 십수 년간 사회생활을 하며 얻은 체험의 결과일 게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학교의 부당한 결정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발하면서, 동시에 자녀의 시험점수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인다. 이를테면 자녀의 '점수'가 부당하게 나왔다고 생각되면 과거 권위적인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것처럼 학교에 강하게 항의한다. 자신은 민주화 운동을 한 세대로서 학교의 부당한 처사를 참으라고 자녀에게 설득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저항정신은 대부분 시험점수에 관한 영역에만 머문다. 학교 운영위원회 등에 참여하여 '학교'를 바꾸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대개 귀찮은 일 혹은 아이를 눈에 띄게 하여 힘들게 하는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교사 집단에 대한 불신도 한몫 한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386세대 학부모들의 저항정신은 결국 '자기 자식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을 주는 제도에 대한 저항'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학교의 비민주적인 제도나 관행 중 자녀의 대학 진학과 무관한 영역에 대해서는 다른 세대와 마찬가지로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다.
  
  어제 집회에서 청소년들이 제기했던 두발규제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실제로 학교 운영위원회에서 학부모들과 두발규정에 대한 토론을 해보면 그들은 대개 바리캉을 들이대는 폭력적인 규제에 대해 반대한다. 그 대신 '학교의 제도'에 의지하여 자식의 두발 모양을 제한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애당초 학생의 머리 모양은 학교가 어떤 식으로건 규제할 영역이 아니다. 경찰도 학생들이 머리가 길다고 단속하지 않는다. 경찰도 안 하는 일을 학교가 나서서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학생들의 머리카락 길이는 학교 본연의 역할인 교육활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자신이 어떤 머리 모양을 하고 다닐지는 철저하게 학생 개인의 권리에 속한 것이다. 제도를 통해서건, 폭력을 통해서건 학생의 머리 모양은 학교가 간섭할 영역이 아니다.
  
  설령 학부모들이 원하는 것처럼 두발을 규제할 제도적 장치를 만든다 한들 그것을 강제하는 것 역시 무리다. 일대일로 만나는 친구나 연인 관계에서도 상대방의 머리 모양에 대해 간섭할 수 없다. 하물며 일대다로 만나는 관계에서 학생들의 머리 모양을 통제하는 게 가능할 리는 없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여전히 많은 학부모들은 학교가 학생들의 머리 모양을 적당한 선에서 규제해주길 바란다.
  
  대학 진학에 불이익을 주는 제도에 대해서는 학생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던 이들이 자녀의 대학 진학과 무관한 제도에 대해서는 학생의 권리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 민주화를 이끈 열정, 학교 개혁의 동력으로 삼았으면
  
  하지만 학교는 단지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공간만은 아니다. 아이들이 배움을 얻고 성장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배움과 성장의 과정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교사로서 학교에 대해 느끼는 답답함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솔직히 현재의 학교는 모든 면에서 너무 열악하다.
  
  앞서 언급한 두발규제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은 지금도 월요일 아침에 뙤약볕 아래에서 조회를 한다. 일제 시대부터 내려 온 관행이 아직 없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행만이 문제가 아니다. 학교의 시설 역시 열악하기 그지 없다. 출퇴근 할 때 타는 버스에도 설치돼 있는 에어컨이 교실에는 없다. 곧 더위가 시작되면, 아이들은 찜통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야 한다. 20년 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이런 문제는 누구 한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서로 어깨를 겯고, 머리를 맞댈 때 풀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기존의 학교를 개혁하는 일은 외면당하고 있다. 심지어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이들도 학교는 으레 그런 곳이라고 여긴다. 자신의 자식은 유학을 보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386세대답지 않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386세대의 성격에 비추어 보면 그렇다.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쟁취한 선배들이 우리 사회에 남긴 것이 무엇인가? 소수의 특권층이 아닌 사회구성원 다수를 위한 제도의 변화, 그것을 위한 폭넓은 참여와 연대 등이다. 199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나는 이런 것들이 1980년대를 치열하게 보냈던 선배들이 남긴 성과라고 배웠다.
  
  학교가 보다 민주적인 공간이 되길 바라는 교사로서 나는 선배들이 우리 사회에 남긴 성과를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바람을 품고 있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학부모들이 학교 운영위원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보다 나은 학교를 만들 수 있는 의견을 내야 한다. 교사들과 끊임없이 토론하면서 보다 나은 교육을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학시절 학생회를 만들고 학내 자치를 이뤘던 것처럼 자신의 자녀들이 학내 자치활동을 통해 학교를 구성하는 한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19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선배들이 지금 학부모가 됐다. 그들은 이전 세대와는 조금 다른 부모가 되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학교를 바꿔가고 싶다. 중학교 2학년 때 전교조 선생님을 보고 교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한 교사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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