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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과 '응징' 없는 한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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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과 '응징' 없는 한국신문 <김창룡의 미디어비평> 뉴욕타임스와 르몽드의 '힘'
한국언론이 전하는 세계 엘리트 신문의 ‘기사작문과 취재원 조작’ 사건은 역설적으로 언론선진국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단순한 기사작문과 남의 기사 베끼기, 취재원 조작 같은 언론계에 드물지 않은 사건이 언론선진국에서는 얼마나 주요하고 큰 사건이 되는가를 눈여겨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에 반해 언론인이 수백, 수천만원 뇌물을 받고도 ‘검찰의 너그러운 공소시효 특혜’ 덕분에 조용하게 넘어갈 수 있는 사회가 얼마나 언론후진국인가를 확인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권위지를 자랑하는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프랑스의 르몽드 신문이 최근 조작기사와 지면사유화로 위기를 맞고 있다. 대표적 엘리트 신문으로 손꼽히는 이들 신문사들의 언론계 비리는 한국사회에도 낯설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그 문제제기나 해결방식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뉴욕 타임스는 기사 조작과 아울러 남의 기사를 베낀 짓을 한 혐의로 제이슨 블레어 기자를 파면 처분했다고 한다. 뉴욕 타임스는 5월11일자 1면에 블레어 기자 사건과 관련해 독자들에게 사과를 드린다는 내용의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외신 보도에 의하면, 사과내용의 요지는 “미디어 전문기자가 포함된 5명의 조사팀이 1주일 동안에 걸쳐 조사한 결과, 제이슨 블레어 기자가 2002년 10월 이후 쓴 73건의 기사 가운데 남의 기사를 적당히 베끼거나, 기사 발신지를 거짓으로 적거나, 만나지도 않은 취재원의 발언을 마치 직접 들은 양 조작하는 등 모두 36건의 기사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블레어 기자 사건에서 1백52년 역사를 자랑하는 ‘엘리트신문’ 뉴욕타임스의 기자들도 특종과 상업주의에 눈 먼 한건주의의 유혹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게 된다. 이같은 종류의 사건은 미국의 유력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 신문에서도 있었다. 1998년 6월 퓰리처상 논평부문 최종후보까지 올랐던 유명 칼럼니스트 패트리샤 스미스의 논평에 인용된 인물과 인용문구 등이 모두 조작된 것으로 판명난 것이다. 자체 조사결과 취재원 조작이 확인됐으며 퓰리처상 후보 철회는 물론이고 패트리샤는 해고됐다.

이 보다 더 큰 사건은 1981년 워싱턴 포스트의 ‘지미의 세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타임스와 쌍벽을 이루는 워싱턴 포스트는 당시 자네트 쿠크라는 흑인 여기자가 ‘여덟살난 지미가 마약중독에 빠져있다’는 르포형 기사를 실감나게 보도했다는 이유로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지미를 구하자’며 지미를 찾아내라는 요구가 있자 워싱턴 포스트는 자네트 기자를 다그치기 시작했고 결국 지미는 가상의 인물이며 이 기사는 기자의 작문이었음이 밝혀졌다. 자네트 기자 역시 해고됐다.

사회적 반향이 큰 기사를 쓰고 싶은 것은 어느 나라 신문의 기자나 똑같다. 때로는 취재원을 속이고 때로는 ‘사기성’ 기사를 작성하는 것도 비슷하다. 언론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점은 한쪽은 그 사기성 보도의 진실이 자체조사에 의해 밝혀지고 다른 한쪽은 언론사들이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거나 침묵으로 일관하여 진실자체가 덮여버린다는 것이다. 언론선진국은 조작된 기사의 진실이 밝혀지면 기자의 해고로까지 이어지지만 언론후진국은 기사조작은 고사하고 대형비리에 연루된 언론인조차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해고는 커녕 경고조차 받지 않는다.

어느 사회나 영향력이 막대한 언론사는 그 힘을 행사하기 마련이다. 다만 그 영향력을 국민을 위해 공적으로 활용할 때는 공공성과 공익성 차원에서 환영을 받게 되지만 사주의 ‘사유화’나 소수의 사적 이익을 위해 악용될 때 언론은 일그러진 모습으로 나타나는 법이다.

프랑스의 대표적 신문 르몽드의 경우, 해직기자와 탐사전문기자가 합작으로 ‘르몽드 이면’이라는 책자를 최근 발간해서 이 신문이 얼마나 ‘지면 사유화’가 심하며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는가를 폭로했다. 59년 전통의 르몽드가 지면을 통해 특정 정치인을 은밀히 지원하거나 상업적으로 기업인들을 협박했다는 내용을 공개해 이 신문의 신뢰성과 권위는 급추락하고 있다.

한국에도 선거철만 되면 특정 정치인에 대한 편파, 불공정보도로 논란이 되지만 어느 언론인도 이에 대한 절절한 진실을 공개하지 못한다. 공개할만한 기자들은 청와대로 국회로 줄타기했는지 보이지 않고 공개 안 해도 알 사람은 이미 다 아는지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언론계에 유사한 비리가 있다고 해서 같은 수준의 언론으로 평가절하해서는 안된다. 분명한 차이점은 그런 비리의 내용이며 그 내용을 풀어나가는 주체와 방식이다. 미국의 유력 언론사의 경우 스스로 조사를 통해 ‘취재원 조작과 기사도용’ 사실을 밝혀냈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문제의 언론인에 대해 ‘해고’라는 응징을 한다는 점이다.

언론의 자유만큼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스템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언론도 논란이 있을 경우 스스로 진실을 밝히고 이에 합당한 조치를 내리고 1면에 사과할 줄 아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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