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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대통합, 한미FTA로 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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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범여권 대통합, 한미FTA로 깨진다 [한미FTA 뜯어보기 322 : 2007 대선이야기] '원칙 없는 대통합'은 허상
경제와 이념은 둘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살림살이가 '경제'라면, '이념'은 대개 구성원 간의 경제적 갈등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갈등과 반목의 주체가 되는 집단들을 '계층'이라 하며, 어떤 계층을 먼저 고려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곧 '노선'이다. 그리고 노선에 차이에 따라 정책을 달리하는 주체가 바로 '정당'이다. 경제와 정치와 계층과 이념은 그래서 하나이다.

세계화의 대세 속에서도 서구의 정당들이 합당하지 않는 이유를 우리 정치인들에게 설득시키는 일은 참 괴롭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그리고 유럽의 우파와 좌파의 나뉨은 바로 계층을 둘러싼 사회경제 노선에 기반을 두며, 그들이 세계화의 '대세' 속에서 합당을 추진한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관료'에게 기대되는 뛰어난 아이디어의 부재보다는 대개 계층의 이해관계가 얽힌 가치의 결정에서 갈등이 발생하므로 구성원의 철학을 조정하는 '정치'의 영역은 여전히 중요하다. 또 극단주의(extremism)에 대비되는 중도주의(centralism)는 방향의 상실이 아닌, 정도를 조정하는 문제다. 그런 점에서 중도주의는 탈이념이 아니며, 몰가치가 '실용'이 될 수도 없다. '이념은 한 물 갔고 경제가 화두'라는 말은 그래서 타당하지 않을 뿐더러 보통 경제를 '성장'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은 보수주의 이념이기도 하다.
전국 유권자 1,000명 전화조사, 표집오차 95% 신뢰구간 ± 3.1%(2월 21일 기준) ⓒKSOI

이번 달 말이 협상시한인 한미 FTA를 둘러싸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자유로운 시장통합 속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찬성 입장과 '미국식 시장가치 속에서 경쟁력 없는 분야가 도태되면 이긴 자들만의 세상이 된다'는 반대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논쟁을 지켜보는 우리 국민의 여론 역시 정리되지 않았다. 그 동안 한미 FTA에 대한 찬반 여론의 추이를 보면 실제 5:5의 팽팽한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찬반 의견 어느 것도 한 쪽에 우위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곧 여론의 흐름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현 시점 한미 FTA 체결을 해도 되는지를 묻는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우리나라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될 때까지 체결해서는 안된다'라는 여론이 74.6%로 압도적으로 나타나 한미FTA에 대한 국민의 동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다.
2007년 3월 12일, 전국 성인남여 700명 전화조사, 표집오차 95% 신뢰구간 ± 3.7% ⓒKSOI

그 취지에 대해서는 찬반이 팽팽하되, 현 시점 체결에 대해서는 반대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은 근본적 취지에 대한 입장과 별개로 국민이 아직 '불안함'을 느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가적 현안인 한미FTA가 협상시한 마감이 다 될 때까지 국민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로 그 공이 국회로 넘어온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정치적으로도 합의와 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찬반 양측 국민의 입장을 대변해 '비준'에 대한 치열한 논쟁 속에서 결정을 내리고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이다.

우리 공동체가 직면한 중대한 현안을 두고 갈리고 찢어지는 지금 구 '범여권'은 대통합에 분주하다. 그 동안 정파간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을 거듭해 '누더기'가 된 지금의 모습을 극복하고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다. 곧 대통합을 위한 큰 자리도 만든다고 한다. 문제는 이들의 대통합의 원칙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굳이 따지면 대선 승리겠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목표일 뿐 국민 중 누구를 위한 대통합이고 무엇을 위한 통합인지가 빠져 있다. 대통합에는 원칙이 필요하다. 앞서 지적한대로 정치에 있어서의 원칙은 계층과 노선이며, '누구를, 어떻게' 위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국민들이 지지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

한미 FTA는 그런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지금 대통령과 정부, 각 대선주자, 정치권 내의 세력마다 입장이 갈려 모호하기 짝이 없는 가운데 대선주자들조차 정치적 득실을 계산하며 논의를 외면하고 있다. 그들 대통합의 주체들이 어떤 입장을 취하든, 어떤 결론을 내리든 대통합은 이념과 노선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한미 FTA에 대한 입장도 필요 없고,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3불 정책에 대해서도 입 다무는 '묻지마' 통합은 국민에게 외면당한다.

이기기 위한 통합은 야합이라는 비난을 피하지도 못할 뿐더러 최근 문국현 사장의 지적처럼 '원칙 없는 통합'은 조만간 깨진다. 과거의 열린우리당처럼 말이다. 리더십과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150석이 넘는 과반의석을 가지고 실패하고서도 아직도 질보다 '양'에 집착하는 모양새는 볼썽사납다. 세력이 모인다고 지도자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앞세운 지도자만이 '대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잊고 있다.

특정 정치진영이 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몸부림에 시비를 거는 것은 아니다. '대통합'의 이념과 노선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한미 FTA에 대한 확고한 지지 입장을 견지하고, 최근의 한반도 정세에 따라 신대북정책을 고민하는 한나라당의 모습은 차라리 건강한 정당의 모습이다. 반면 자신들은 통합의 원칙도 외면한 채,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안 된다며 경쟁 정당을 비난하는 열린우리당의 모습이 더 문제다. 누더기를 모아서 보자기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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