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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맞는 기자, 그리고 '3불정책 오보'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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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맞는 기자, 그리고 '3불정책 오보' 논란 [기자의 눈] "회사 입장에 따라 사실까지 달라서야"
"너희도 때리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기사를 송고하고 한숨 돌리던 참이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얼마 전 "딱 10년 만에 연애를 시작했다"며 자랑하던 친구의 전화였다.

"안 때리나보네. 그럼 다행이다. 그런데 그렇게 때리는 기자들이 얼마나 있는 거냐?"

그때야 깨달았다. 최근 일부 언론에 보도된 '수습기자 폭행 사건' 때문이다. 모 언론사 수습기자가 지난 5일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선배 기자에게 코뼈가 부러지고, 얼굴에 금이 갈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 그런데 전화한 친구가 막 사귀기 시작한 사람이 신문 기자였다. 걱정하는 게 당연하다.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수많은 언론사의 내부 분위기를 다 알 수는 없는 일이니까. "요즘은 군대에서도 안 때린다던데…. 깡패도 아니면서 다 큰 어른들이 주먹질이라니…."

"국책연구기관이 '3불정책' 비판했다"…"명백한 오보, 법적 대응할 것"

친구의 한숨소리가 전파를 타고 귀에 울렸다. 폭력배와 한통속 취급당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유독 한숨 소리를 많이 듣는 날이구나 싶었다. 이에 앞서 통화했던 이도 계속 한숨을 내쉬었다. 강영혜 한국교육개발원(KEDI) 부연구위원이었다. KEDI에서 교육제도연구실장을 맡고 있는 강 실장의 한숨 역시 언론 때문이었다.

지난 9일과 10일 KBS, <조선일보> 등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정부의 '3불 정책'(본고사,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 금지)을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강 실장이 작성한 보고서('고교-대학 연계를 위한 대입 정책 연구')를 근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보고서의 결론은 보도와 달랐다. "고교 교육과정과 대학 교육의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런 내용대로라면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가 출제될 가능성이 높은 본고사 부활을 지지하는 결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실제로 보고서 내용 가운데 "'3불 정책'은 폐지돼야 한다"거나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은 문장은 없었다. 오히려 결론 부분에서 "대학의 입학사정은 '가르친 자가 평가한다'는 평가 원칙에 따라 고교 내신 성적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며 대학별 고사는 최소화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보고서에서 '3불 정책'의 존폐에 대해 다루지 않았지만, 강 실장 역시 "3불정책은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KEDI가 발끈한 것은 당연하다. KBS, <조선일보> 등의 보도에 대해 KEDI는 '명백한 오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들 매체가 오는 13일까지 정정보도하도록 요청했다. 정정보도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KEDI는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관련기사 : "교육개발원이 '3불 정책' 반대했다고?")

왜 같은 보고서가 기자에 따라 다르게 읽힐까?…"교육정책이 만만해서"

그런데 똑같은 보고서를 놓고 다른 매체는 다르게 보도했다. 이를테면 〈한겨레〉는 "고교생과 학부모, 교사들은 논술·면접 같은 대학별 고사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고교 등급제에도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고 보도했다. '3불정책'을 뒷받침하는 내용으로 읽어낸 것이다.

왜 같은 보고서가 기자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것일까. 물론 '같은 내용을 다르게 읽기'를 꼭 이상하게 볼 필요는 없다. 어떤 글이건 읽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의 경우, 이런 '다르게 읽기'를 통해 더 깊은 의미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연구 보고서는 문학작품이 아니다. 적어도 저자의 주장과 정반대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문제는 이처럼 언론이 자의적으로 해석한 경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 김신일 교육부총리 취임 직후 불거진 '소신 논란'이 대표적이었다. 〈조선〉, 〈중앙〉 등은 교육학자 출신인 김 부총리의 취임 직후, "학자 시절 김 부총리가 고교 평준화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며 "부총리가 되면서 (평준화를 비판하다 옹호하는 쪽으로) 소신을 바꿨다"고 보도했다.

이런 보도 역시 사실과 달랐다. 적어도 김 부총리의 교수 시절 제자들은 대부분 "김 부총리는 평준화 보완론자일 뿐"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보수언론이 왜곡보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 〈중앙〉, <동아> 등이 주장하는 '평준화 폐지론'과는 다른 주장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스승인 김 부총리를 보호하기 위해 제자들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기자가 만난 제자들 중에는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경우가 많았다. 부총리가 된 스승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거짓말까지 하면서 스승을 보호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이들 매체가 "김 부총리가 고교 평준화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는 근거로 내세운 발제문 역시 읽어보니 내용이 달랐다. 기사 속에 인용된 문장이 발제문에 포함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발제문의 결론이 지향하는 바와 기사의 내용은 전혀 달랐다. 방대한 분량의 발제문에서 몇몇 문장만을 따로 떼어내 원래 글의 맥락과 다른 방식으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획일적인 교육통제 반대가 꼭 평준화 해체론은 아니다" )

이에 대해 강영혜 실장은 "기자들이 경제정책에 대해 취재할 때는 공부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왜 교육정책을 취재할 때는 공부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교육에 관한 쟁점은 누구나 쉽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기자들이 좀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지레짐작으로 기사를 쓴다. 이번에 '오보'를 낸 기자는 연구실에서 보고서 표지만 촬영했다. 당시 내용을 잘 모르는 상태였다. 그리고 잠시 후 보도가 나왔다. 보고서를 읽을 시간이 없었다. 보고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보도한 게 분명하다." 강 실장의 말이다.

사실보다 회사 입장을 우선하는 기자들

강 실장의 한숨과 기자 애인을 둔 친구의 한숨이 귀에서 엉켰다. '수습 기자 폭행 사건'과 'KEDI 보고서 오보 논란'이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때였다. 보고서나 논문을 엉뚱하게 해석한 보도가 나오는 게 단지 기자가 공부를 안 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객관적인 사실보다 언론사 혹은 데스크의 입장을 우선하는 태도, 사실을 통해 입장을 도출하기 보다 입장에 맞춰 사실을 구성하는 태도가 원인이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자들의 이런 태도는 언론사의 권위적인 문화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물론 '수습 기자 폭행 사건'은 특정 언론사의 문제였다. 실제로 한 일간지는 수습기자들에게 이 사건을 취재하게 했다. 자신들은 이런 폭력에서 자유롭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을 게다.

그러나 물리적인 폭력만 없을 뿐, 상당수 언론사가 군대를 방불케 하는 방식으로 수습기자를 교육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물론 언론 보도가 미치는 사회적 영향을 감안하면 이런 방식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기자의 보도는 강한 책임감이 따른다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또 강한 근성과 성실성을 기르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선배 기자의 권위에 복종하는 태도가 내면화되는 것은 위험하다. 선배, 그리고 그들이 속한 언론사의 권위에 눌려 객관적인 사실까지 외면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사실 관계가 분명한 사안에 대해서는 이런 위험이 적다. 하지만 다른 해석의 여지가 조금이나마 있으면 이런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결국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원래의 사실조차 왜곡하는 일이 생긴다. 'KEDI 보고서 오보 논란'이 이런 경우다. 344쪽에 달하는 방대한 보고서에서 몇 개의 문장만 뽑아 전혀 다른 맥락으로 재구성했다.

또 다른 KEDI 관계자는 이번 '오보' 논란에 대해 "입장에 따라 사실까지 왜곡하는 기자가 깡패와 다를 게 뭐냐"며 적나라한 반감을 드러냈다. 이번 '수습기자 폭행 사건'과 맞물려 '기자가 진짜 깡패 취급당하는 날'이 올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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