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3불 논란은 '과열', 교육개혁 의제는 '외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3불 논란은 '과열', 교육개혁 의제는 '외면'" 민언련 "'개혁언론'의 교육기사도 보수언론 의제에 종속"
최근 〈조선〉, KBS 등이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보고서 내용을 보도하면서 '오보' 논란을 빚었다. 보고서 속 특정 문장만을 인용해 "국책연구기관이 정부의 3불정책(대학입시에서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를 금지한 것)을 비판했다"는 전혀 엉뚱한 결론을 끌어낸 것.
  
  이들 매체의 보도 이후, KEDI 측은 〈조선〉, KBS 등의 보도가 악의적으로 왜곡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하지만 정정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KEDI가 〈조선〉등을 상대로 낸 제소가 23일 언론중재위에 접수됐다.
  
  "왜 유독 교육 기사에 '오보'가 많을까?"…짐작으로 쓰는 기사
  
  논란의 발단이 된 보고서를 작성한 강영혜 KEDI 교육제도연구실장이 밝힌 상황은 이렇다.
  
  "4월 9일 오후, 연구실을 찾아온 KBS 기자는 내(강영혜 실장이)가 작성한 보고서가 3불 폐지를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그때까지 기자는 본인의 보고서를 접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보고서에서 3불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3불 폐지가 말이 되는 소리냐고 되물었다.
  
  오히려 3불의 내용을 하나씩 종이에 적어서 점검하자고 하면서 먼저 기여입학제가 말이 되는 소리냐고 했더니 기자 본인도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기자가 대학 자율에 관한 부분에 대해 묻기에 원론적으로 대학 자율성 보장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본고사 실시로 혼동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사교육 문제에 대해 언급하기에, 대입정책으로 사교육을 잡는 것은 불가능하며, 우리나라의 사교육 문제는 명문대 프리미엄에서 비롯되는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교육부 출입 이틀째라는 기자는 어떤 이유에서건 본인의 설명을 소화할 의지가 없었던 것 같다.
  
  KBS의 4월 9일 밤 9시 뉴스가 나간 직후, 보고서 내용이 왜곡된 것에 대해 취재기자에게 항의했다. 11시 뉴스라인에서 우리가 지적한 사항대로 수정 보도를 하고 인터넷판의 기사도 정정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하며 강 실장은 "교육에 관한 쟁점은 누구나 쉽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기자들이 좀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지레짐작으로 기사를 쓰면서 연구자료를 입맛대로 재구성하는 모양이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각종 보고서나 발언 등을 보도하며 언론이 맥락과 동떨어진 방식으로 특정 문장만을 부각시켜 원래의 뜻을 왜곡하는 게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언론이 '3불정책 폐지론'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과정에서 이런 경우가 크게 늘었다. 앞서의 KEDI보고서 논란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관련기사: 매맞는 기자, 그리고 '3불정책 오보' 논란)
  
  "규제를 없애는 것에 반대한다"가 "규제를 없애라"로
  
  언론의 이런 태도를 돌아보기 위한 토론회가 23일 오후 서울 정동 배재빌딩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렸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입시정책 관련 신문보도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마련한 이날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최근 쟁점이 된 3불정책에 관한 언론 보도를 주로 논의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성원 <시민과 언론> 편집위원은 3불정책의 폐지를 주장하는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매체들의 보도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앞서 언급한 KEDI 보고서에 관한 보도 외에도 김 위원이 소개한 보수 매체들의 왜곡 보도 사례는 다양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한국 정부에 3불정책 폐지를 제안했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보수 매체가 지난 3월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 내용은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매체가 인용한 OECD 고등교육보고서에서 한국정부의 3불정책을 언급한 대목(130쪽)의 원문은 "…However, we caution against eliminating the 'three nots' and other forms of regulation too quickly, without putting in place other mechanisms to enhance transparecy and improve the governance of higher education(그러나 우리는 고등교육의 투명성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새로운 장치가 마련되기 전에 너무 서둘러 '3불 정책 등 기타 규제들'을 없애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3불 정책을 너무 서둘러 폐지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보수 언론이 보고서 내용을 정반대로 보도한 셈이다. 김 위원이 보기에 이런 보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교육정책을 정치적 쟁점으로 활용하는 언론의 관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수언론-정부 공방에 들러리 서는 개혁언론…새로운 의제 던져야
  
  그렇다면 3불정책을 옹호한 소위 개혁언론의 보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는 게 김 위원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이날 토론회를 열게 된 핵심적인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김 위원은 "소위 개혁언론, 그리고 진보개혁 진영조차 일부 수구보수언론과 현 정권의 공방을 중심으로 형성된 3불정책 찬·반 대결 프레임(Frame) 속에 갇힌 채 교육정상화를 위한 독창적인 의제를 제시하지 못 하고 있다"며 "개혁언론은 3불정책 폐지론에 대해 사실 왜곡과 논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반박보도로만 대응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위원은 "이런 수세적 태도로 인해 3불정책 찬·반 대결 프레임을 온존시켰다는 것이 개혁언론의 보도에서 드러난 한계"라고 덧붙였다.
  
  이런 한계에 대해 김 위원은 "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논의를 주도하지 못 한 채, 3불정책 고수를 천명하는 정부 측의 입장이 나올 때마다 개혁언론은 수구보수언론이 설정한 '정부규제' 대 '규제철폐'의 대결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보도 행태를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한국 교육의 위기가 단지 3불정책을 지키는 것만으로 해소되지 않으며, 오히려 3불정책 논란이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입시경쟁과 사교육비 문제, 학벌 지상주의, 대학의 교육·연구 역량 저하 등 더 중요한 문제가 제대로 의제화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3불 논란 과열보도, <중앙>이 보기에도 '난센스 게임'
  
  그런데 3불정책 논란을 과열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보수 언론도 이런 상황이 교육정상화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인식에 공감한다.
  
  이런 사례로 김 위원은 지난 4월 6일자 <중앙일보> 권영빈 칼럼을 꼽았다. "'검사와 여선생' 환상을 깨라"는 제목의 이 칼럼에서 권영빈 <중앙일보> 논설고문은 "지금 교육 3불정책을 둘러싸고 대통령·정부와 대학총장들이 맞서고 있다. 마치 3불정책만 없애면 우리 대학이 세계 초강국 수준에 오를 것 같이 큰소리 내고 있고, 또 3불정책을 허물면 우리 교육이 왕창 무너질 듯 감싸고 있으니 이런 난센스 게임이 있을 수 없다"고 적었다. 이어진 칼럼 내용은 이렇다.
  
  "우리 교육의 문제는 바로 이 환상(대학 진학이 가난 극복이라는 환상) 때문에 풀리지 않는다. 명문대 졸업에 사시 합격을 해도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시대다. 대졸 백수들이 거리에 넘쳐나는데도 전 국민이 대학입시에 매달리기 때문에 어떤 제도로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일생일업으로 만족하며 계속교육·평생교육을 통해 자기 발전을 할 수 있는 사회 교육체계를 갖춰야 한다. 평준화 교육에 정부가 목을 매달 일이 아니다. 차별화 교육을 해야 한다. 디자인·자동차·애니메이션·영화 등 이미 다양해진 직군에 맞춘 실업·정보·산업학교와 직업 전문대 강화에 주력하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대입정책의 한 부분에 불과한 3불정책 논란을 앞장서서 부추기고 있는 매체의 논설고문 역시 "어떤 대입 제도로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며 3불 논란에 대한 지나친 의미부여에 대해 '난센스 게임'이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규제 옹호 vs 철폐' 구도 벗어나자…사회 복지 논의 뒷받침돼야
  
  보수언론조차 '난센스 게임'에 불과하다고 인정한 3불정책 논란에 개혁언론 및 진보개혁 진영이 수세적으로 끌려 다니는 상황. 이유가 뭘까?
  
  3불정책 폐지를 대중에게 긍정적으로 비치는 '규제완화' 이미지로 포장하고, 3불정책 옹호를 '현 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 혹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 방식의 규제'로 묘사한 보수언론의 보도태도를 넘어서지 못 한 게 김 위원이 지적한 첫 번째 원인이다. 교육의 형평성을 지지하는 입장이 무조건 규제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관련기사: "획일적인 교육통제 반대가 꼭 평준화 해체론은 아니다")
  
  진보적 교육학 연구자들의 모임인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부설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수는 또 다른 이유를 덧붙였다. "교육 문제는 서로 다른 사회 계층의 이해가 맞부딪히는 영역인 까닭에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보다 큰 차원에서 논의가 진행돼야 하는데, 이런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외국어 고교, 과학고 등 특수목적 고교 학생 부모의 경제적 수준이 평균을 훨씬 웃돈다는 통계, 부유층 가정의 서울대 진학률이 해마다 높아진다는 통계 등에서 드러나듯 교육 문제는 더 이상 교육 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교육학자로서의 책임을 (다른 영역 연구자들에게) 떠넘기자는 뜻이 아니다"라며 이야기를 꺼낸 김 교수는 "사회 복지, 교육 복지 강화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런 논의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보수 언론이 설정한 대립구도를 넘어서는 의제를 제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멘트만 따는' 보도로는 기존 구도 못 넘어
  
  또 다른 토론자인 김정명신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회장은 '한줄 쓰기'식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복잡한 사회적 이해관계가 반영돼 있는 교육 문제에 대해 언론이 "기자가 설정한 틀에 따라 각기 다른 이해관계자의 '멘트'를 한 줄씩 언급하는 방식"을 취하는 한, 기존의 대립구도를 넘어서는 보도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김정명신 회장은 교육 문제처럼 복잡한 사안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자신의 논지를 훼손하지 않고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의 보도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