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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황제, 시대의 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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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가상의 황제, 시대의 개척자 [별을 쏘다⑨] 임요환 통해 게임이 '사유의 대상' 되다
2006년 9월, 한 프로게이머의 입대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의 유명 스타크래프트(StarCraft) 팬사이트인 '팀리퀴드넷()'에는 "현실 세계가 스타크래프트 가상 세계의 별을 데려가게 됐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으며, "프로게임 역사상 가장 슬픈 날"이라는 댓글이 이어졌다. 베트남의 한 팬은 '박서포에버닷컴()'이라는 기념사이트를 만들기도 했다.

최근 한류 스타가 넘쳐나고 가수 '비'는 월드 스타라고 불리지만, 한 프로게이머의 입대 소식에 이 정도 찬사와 안타까움이 넘쳐나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그가 바로 '테란의 황제' 임요환이다.

"그들이 물었다. '그 전설의 박서가 맞느냐'고"

그는 스타크래프트(스타)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게임의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이름은 이제 '스타'를 아는 이들에게는 '보통명사'로 통한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해외의 반응 또한 대단하다. 그의 고백을 통해 들어보자.

"나는 전 세계 모든 선수들에게 우상이자 공동의 적이었던 것이다. 나를 이기기 위해 왔다는 그 선수들은 내가 경기를 할 때면 몰려와서 주시했다. 그리고 같은 게이머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사인을 요청했다. 특히 한 게임만 같이 하자는 선수들이 많았다. (…)

그들이 내게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은 '전설'이라는 표현이었다. 그들은 "그 전설의 박서가 맞느냐"라는 얘기를 가장 많이 했다.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친구들, 월드 사이버 게임즈가 끝나는 날이면 내 앞으로 쭉 줄을 서며 사인을 받아가는 게이머들, 그들에게 들었던 '전설의 박서(boxer)'라는 말은 내가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가장 뿌듯함을 느끼게 해 줬다."(자서전 <나만큼 미쳐봐>, 228-229쪽)

국내에서는 '황제'이지만 외국 게이머들에게는 '전설'인 그는, 많은 기록과 일화를 갖고 있다. 프로게이머 첫 억대 연봉자가 됐으며, 2004년 9월 중국 방문에서는 한 아버지와 아들이 '임요환'을 보기 위해 3박4일에 걸쳐 왔다고 했다. 그는 게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시켰으며, 많은 어린이들과 청소년의 꿈을 프로게이머로 바꿔 놓았다.

한국 사회를 바꾼 '스타', 그리고 임요환

고교 시절 우연히 접한 스타크래프트는 무엇보다도 그에게 흥미와 즐거움을 제공했다. 본격적인 게임 인생이 시작된 것은 재수 시절이었다. 화려한 시작은 2001년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였다. 11승1패의 전적. 임요환은 '테란의 희망'이 됐다.

그 뒤 자신감을 얻은 임요환은 2001년 9월 8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저그 종족의 홍진호 선수에게 이김으로써 우승했다. 이때부터 그는 '테란의 황제'라 불렸다. 2001년 10월, 그는 서울에서 열린 게임의 올림픽 '월드 사이버 게임즈(WCG)'에 첫 참가해 우승컵을 차지했다.

여기서 잠시 임요환이 활동하는 스타크래프트의 힘을 생각해 보자.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대표 '스타크래프트'는 1998년 4월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올해로 10년이 된 셈이다. 흔히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스타크래프트의 등장은 한국 사회를 여러 모로 바꿔 놓았다.

스타크래프트는 PC방 문화를 만들었고, 한국 사회의 인터넷 환경을 업그레이드 시켰다. 동시에 'e-스포츠'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출했고, 청소년들이 가장 선망하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만들었다. 아울러 오늘날 게임은 문화산업의 중추가 됐으며, 그 어떤 스포츠경기보다도 많은 사람을 한 장소에 불러모았다. 2004년 7월 부산 사직구장에서는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열리고 있었다. 같은 시각, 광안리 해수욕장에서는 '스카이 프로리그 2004' 결승전이 열렸다. 사직구장 관중은 1만5000명에 불과했지만, 광안리에는 10만 관중이 모여들었다. 게임업계에서는 이를 가리켜 '광안리 사태'라고 한다. 소위 'e-스포츠'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증거였다.

"'인간'이기 때문에 테란을 선택했다"

임요환의 주종족은 '테란'이다. 그가 인기를 끈 데는 테란 종족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스타크래프트는 인간의 후예인 '테란', 정체불명의 괴물 '저그', 고차원 지능의 우주 종족 '프로토스'의 세 종족이 벌이는 전투를 기본 틀로 하고 있다. 이것은 '가위바위보'와 유사하다. 각각의 종족은 서로에 대해 물고 물리는 형식으로 상대적 우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어느 한 종족의 일방적인 우세가 없기 때문에 게임은 더욱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스타크래프트 출시 초기에는 테란 종족이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연히 게이머들은 테란보다는 프로토스와 저그를 자신의 종족으로 선택했으며, 그와 달리 테란 종족을 선택한 임요환은 프로토스와 저그에게 승리를 거둠으로써 팬들에게 희열을 가져다 줬다. 처음 스타크래프트를 배울 때 프로토스로 시작한 임요환은 테란을 선택한 이유로 세 종족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유닛 하나하나로는 약하지만 모이면 모일수록 폭발력이 커지는 테란의 특성에 더욱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 임요환ⓒ연합

"왜 영화나 독서는 취미가 되고 게임은 안 되나"

프로게이머 임요환은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잘' 한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는 게임뿐만 아니라 문화 영역과 한국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중요하면서도 의미 있는 영향을 끼쳤다. 그는 처음 참가한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뒤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국에서 게임을 즐기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기성 세대에게 게임으로 세계 최고가 된 한국 게이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 게이머가 세계 최고라고 만천하에 외치고 싶었다. 왜 영화를 보고 책을 보는 취미는 인정해주면서 취미란에 게임이라고 적으면 아직도 철없는 소년이라고 생각하는가도 묻고 싶었다."

단지 게임하는 자신을 변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은 항상 핍박과 무시를 당한다. 그는 주변부의 삶을 시작하는 새로운 것들을 위한 항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연습했다. 생각하는 것은 오직 게임뿐이었다. 게임에 대한 그의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그 열정으로 자신을 단련하고 채찍질했다.

"프로게이머에게 게임은 전부다. 취미이자 의무다. 프로게이머가 게임을 한다는 것은 노동을 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의 고백이 여기서 그친다면 그는 그저 게임을 잘하는 선수로 남았을 것이다. 그의 존재는 다음과 같은 말에서 빛을 발한다.

"프로게이머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게임이어야 하고 유일하게 재미있는 것이 게임이어야 한다. (…) 게임은 하는 사람만 즐거워서는 안 된다. 게임을 지켜보는 사람도 같이 게임 속으로 빠져들 수 있게 하는 게임을 해야 한다."

30대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진정한 '스타'

임요환에게 게임은 노동을 넘어 즐거움의 대상이다. 그는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정신을 창조했다. 기성 세대가 고수했던 노동의 의미를 그는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시켰다. 기성 세대는 일과 즐거움은 동시에 추구할 수 없었고 노동을 통해 즐거움을 구매했다. 10대 청소년들에게 "왜 프로게이머가 되려고 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재미있어서"라고 답한다. 그들은 '재미'와 '직업'을 동시에 추구하는 세대다. 이는 곧 임요환이 추구한 삶의 방식이며, 그가 달려온 삶의 모습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몸으로 직접 보여줬다.

10대 청소년들이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일은 어쩌면 현재 자신을 억누르는 현실을 돌파하거나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탈출구로 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설령 그들이 프로게이머가 된다 하더라도 문제가 있다. 프로게이머의 수명은 매우 짧다.

임요환의 진가는 여기서도 발휘된다. 그는 30대 프로게이머를 꿈꾼다고 했다. 2001년 이후 지금까지 그는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해 왔다. 물론 중간에 슬럼프도 있었지만,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이 점멸하는 동안에도 그는 피나는 훈련과 의지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는 군인의 신분으로 당대 최고로 평가받는 마재윤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임요환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그는 '기록의 영역'을 뛰어넘는다

우리는 '임요환'을 새로운 영역, 새로운 문화를 인정받기 위해 선도적인 투쟁을 한 사람으로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서전 <나만큼 미쳐봐>에서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인용한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그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함으로써 게임에 대한 편견과 싸웠다. 그에게 게임은 단지 전적이나 승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열정의 도가니였으며, 나아가 고통과 외로움을 견뎌내는 선구자로서의 삶을 경험하고 있다.

임요환에게 다양한 기록은 사실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사람들은 이제 임요환이 비록 게임에서 지더라도 그를 기억한다. 임요환은 기록과 사실로 남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는 기록의 영역을 뛰어넘는다. 이제 하나의 상징이 되어 우리에게 감동과 아우라를 선사한다. 그는 '게임의 시대'를 열어간 일종의 아이콘이 됐으며, 우리는 그를 통해 비로소 '게임'을 사유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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