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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천재형 악동(樂童)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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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천재형 악동(樂童)을 원한다" [별을 쏘다⑭] 한국 스포츠스타의 판타지모델, 슛돌이 최성우
초등학교, 당시엔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한 달에 한 번씩 집으로 배달되어 오던 <소년중앙>을 오매불망 기다리다 배달되어 온 잡지를 하루 만에 읽고선 또 한 달을 다음 호 잡지를 기다리며 보내던 때가 있었다. 하루 만에 읽어버린 잡지의 두께와 만화의 양이 너무 아쉬워 아버지께 <보물섬>으로 잡지를 바꿔 달라고 조르기도 몇 차례, 결국에는 만화가게로 달려가 <보물섬> 및 장편만화를 탐독하던 그 시절… 나의 우상은 테리우스, 안소니가 아닌 까치, 독고 탁, 구영탄, 성일 같은 스포츠만화의 주인공이었다.

까치나 독고탁, 구영탄 같은 주인공들이 절대 비슷한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천부적 재능은 있으나 기술적으로는 미완성이고 근성을 가졌으며, 기존 선수들의 성장과정과는 사뭇 다른 과정을 밟는 아웃사이더적인 캐릭터였다. 게다가 독고 탁, 구영탄 같은 캐릭터는 엉뚱하기까지 해서 스포츠경기와 같은 진지하고 거칠며 냉철한 승부의 세계와는 어울려 보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매 경기마다 뛰어난 실력으로 천재성을 보이고 만화의 회를 거듭할수록 일취월장하는 실력들을 뽐낸다. 만화에서 그 주인공들의 성장과 승부를 지켜보는 것이 어찌나 스릴 있고 흥미진진했던지, 그때는 나도 그런 스포츠선수가 되리라 생각했었다. 대학시절, <슬램덩크>의 강백호를 마지막으로 나는 그러한 캐릭터들을 더 이상 만나지 못했고 현실의 스포츠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러다 드디어 만났다.

2005년 슛돌이 성우를 만나다
▲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한 최성우 ⓒKBS2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탄생한 많은 축구스타들 가운데서 난 김남일에게 잠깐 한눈을 팔았다. 경기 중에 보았던 거칠 플레이와 외모, 그리고 엉뚱한 인터뷰 내용들이 만화속의 주인공들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러나 월드컵의 열기가 식어갈 즈음 김남일에 대한 내 관심도 식어갔고, 독일 월드컵을 기다리던 2005년 10월 어느 일요일 저녁, 그렇고 그런 오락프로그램들을 리모컨으로 돌려보다 난 그 아이를 보았다. <날아라 슛돌이>의 최성우.

2006년 월드컵을 반년 여 앞두고 유소년 축구 활성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KBS에서 기획된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엔 김종국, 김종민 같은 연예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축구경기를 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이라는 것에 전공자로서 '어떻게 하나 보자'라는 호기심으로 프로그램을 시청했고, 그 다음엔 차범근 축구교실과의 첫 경기에서 21대 0이라는 스코어로 지는 것을 보고 '어디까지 가는가 보자'라는 맘이었다. 그러다 슛돌이들이 9전 9패까지 갔을 때는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그렇다. <공포의 외인구단>을 보는 것 같기도 했고, 프로야구 원년의 삼미 슈퍼스타즈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좋아했던 스포츠 만화 속 그 팀들의 초반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 나의 눈에 쏙 들어온 것은 잘 생긴 골키퍼 승준이도, 슛을 잘 하는 태훈이도, 듬직한 민호도 아닌 경기가 끝날 때마다 울면서 벤치로 들어오는 성우였다. 대부분의 슛돌이들 보다 한 살 어린 6세, 가장 단신인 성우는 경기가 끝날 때 마다 이기고 싶다며 울었다. 그렇게 우는 모습을 보고 '조그만 게 승부욕이 제법이군'하고 생각하다 코칭스태프의 달램에 어느새 함박웃음을 웃는 것을 보곤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 단신꼬마가 자신의 승부욕을 경기내용에 담기 시작했다. 그 짧은 다리로 자신보다 머리하나는 큰 상대선수들을 악착같이 수비하더니 온 몸을 던진 거친 태클을 보이는 것이다. 경기장 밖에서는 코칭스태프나 심판에게 거침없이 똥침을 날리고는 두 눈을 반달을 만들며 웃고, 또래 아이들도 알아듣지 못해 외계어라 불릴 만큼 미숙한 언어구사력을 가진 이 아이가 경기 중에 보여주는 플레이와 볼에 대한 집중력은 정말 놀라웠다. 그때까지 성우는 내게 그저 승부욕 강한 귀여운 아이일 뿐이었다.

근성, 그리고 악동(惡童) 이미지

독일 월드컵이 점점 다가오는 만큼 슛돌이의 경기력도 날로 향상되어 갔다. 21골이란 엄청난 실점을 기록했던 차범근 축구교실과의 경기에서 3대 2라는 근소한 패배를 보일 정도로 성장한 슛돌이들처럼 성우도 조금씩 성장해 성우의 거친 수비는 국가대표 김남일을 연상시킬 정도로 숙련(?)되었다.

성우의 거친 플레이 스타일은 모든 슛돌이 경기의 심판을 전담하고 있는 김미옥 심판의 <풋볼 위클리> 인터뷰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번은 퇴장성이 나왔어요. 1기 때 (최)성우가 공하고 상관없이 사람을 보고 들어가는 태클이 많았어요. 성우한테 '공을 차는 건 괜찮은데 사람을 차면 안 된다. 다치면 성우 마음도 아프잖니'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성우가 웃으면서 '안 할게요'라고 말하고선 그 말 끝나자마자 바로 또 백태클을 한 거예요. 그런데 그게 심해서 퇴장을 줄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퇴장은 가혹한 것 같아 그 부분은 방송에 안 나왔어요. 그 때 성우가 처음으로 퇴장 받고 많이 울었죠."

사실 선수의 볼에 대한 집중력, 근성이 거친 플레이로 나타날 수는 있지만 모든 거친 플레이들을 집중력과 근성의 표현이라고 볼 순 없다. 더욱이 이러한 플레이는 심판에게 제재를 받는 반칙이며, 대부분의 성인경기에서 이런 플레이는 경고 혹은 퇴장감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스포츠에서 거친 플레이들은 보는 사람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스포츠 선수가 갖출 수 있는 훌륭한 자질 중의 하나로 인정되기도 한다. 특히 우수한 선수나 어린 선수들의 이러한 플레이는 대담함과 대견함으로 표현된다.

마찬가지로 성우의 승부욕과 거친 플레이는 6세의 어린이에게서는 좀처럼 발견되기 어려운 훌륭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성우의 대담함은 경기 중의 거친 플레이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 아드보카트 전 감독과 최성우 군 ⓒKBS2

슛돌이와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네덜란드 어린이 팀과의 경기가 방송되던 날, 나는 정말 대담한 성우를 볼 수 있었다. 이날 경기를 참관하러 온 딕 아드보카트 국가대표 전 감독과의 만남에서 점잖고 정중한 모습을 보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성우는 대담하고 천진난만하게도 아드보카트 감독의 양볼을 꼬집어 버린 것이다. 그때 당황함을 웃음으로 얼버무리던 아드보카트 감독의 표정이란… 나도 모르게 내뱉어지는 한 마디, '저, 저, 저 악동같으니라구~.' 그리고 나는 성우의 매력에 더욱 흠뻑 빠져들었다.

<스포츠2.0> 장지현 기자는 "악동들이 줄고 있다. 점차 완고해지고 있는 주·부심의 판정과 강화되는 골 세리모니 규제, 그리고 각종 벌금 등으로 선수들은 얌전한 고양이로 변하고 있다. 존 맥켄로 시절의 테니스를 그리워하거나 데니스 로드맨 시절의 NBA를 추억하는 팬들에겐 요즘 스포츠에 양념이 빠져 있다는 한탄이 나온다"(스포츠2.0, 35호, 2007)며 스포츠에서 악동 이미지 선수의 영향력을 강조했다. 특히, 마라도나의 '신의 손' 논란과 마약복용, 개스코인의 과음과 아내 폭력과 같은 행위들은 '천재형 습성'인 것 같다는 김정남 감독의 인터뷰와 함께 그들을 천재형 악동으로 분류했다.

이 기사에서 장지현 기자는 한국축구에는 이들과 같은 천재형 악동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개탄하면서 그나마 존재하는 비슷한 선수로 FC 슛돌이의 최성우를 꼽았다. 단 그의 부모가 언제까지 축구를 시킬지 모른다는 변수를 언급하면서 말이다. 물론 성우를 마라도나나 개스코인과 같은 류의 악동으로 꼽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성우 또래의 나이에 그들과 같은 악행을 저지를 일이 만무하니 말이다. 성우는 축구를 좋아하는 그야말로 장난꾸러기 어린이일 뿐이다.

천재이되, 악동(惡童)이 아닌 악동(樂童)이기를

2006 독일 월드컵이 끝나고 슛돌이 1기가 해체되면서 1기 멤버 중 유일한 동갑내기 승권이와 함께 2기 멤버로 잔류, 축구를 계속한 성우는 그야말로 1기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지는 경기를 할 때면 승부욕을 주체 못해 눈물을 흘리거나 경기 중 주로 백태클만 보여주던 녀석이 무서운 기세로 성장해 그야말로 "축구소년 슛돌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성우의 킥은 황선홍 코치와 허정무 감독의 감탄과 칭찬을 자아낼 만큼 그 실력을 인정받을 정도였고, 어느 경기에서는 무려 7골을 넣기도 했다. 가끔은 성우의 일취월장한 축구실력 때문에 성우의 장난기와 귀여움을 잠시 잊을 정도였다. 그러나 성우가 성장한 것은 축구실력만이 아니었다.

슛돌이 2기의 어느 경기에서 페널티 킥을 성우가 차게 됐다. 허정무 감독이 칭찬한 성우의 킥 실력이라면, 당연히 득점이 될 상황. 그러나 성우는 실축을 하고 페널티 킥을 넣지 못했다. 그런데, 성우가 웃는다. 부끄러운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이전의 성우의 승부욕과 근성을 생각하면 울어도 대성통곡을 했을 법한데 말이다. 문득 이 아이가 성인이 되어 축구선수가 됐을 때, 같은 상황이라면 지금처럼 웃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슛돌이 1기의 마지막 방송에서 성우 어머니의 인터뷰 내용이 떠올랐다. "성우가 축구는 성질만 가지고서는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렇다. 성질만 가지고, 승부욕만 가지고 되는 것은 없다. 어쩌면 성우는 그때부터 진정으로 축구를 좋아하고 즐기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만화 속에서 독고 탁의 더스트 볼이나 강백호의 슬램덩크가 가능했던 것은 주인공들의 천재성과 피나는 노력이었겠지만, 그 노력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그 행위를 좋아하고 즐겼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들의 엉뚱함과 괴퍅함, 근성 등은 마약복용, 폭행과 같은 현실의 스포츠 천재들의 습성이라는 악동 이미지와는 다른, 그들의 천재성과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성우의 장난기와 미소, 그리고 승부욕은 성우의 천재적인 성장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돌아보면 스포츠 만화 속의 주인공들은 현실의 스포츠선수처럼 천재형 악동(惡童)이 아닌 스포츠를 즐기며 사랑하는 천재형 악동(樂童)들이다. 난 성우도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단, 많은 팬들이 바라는 것처럼 성우가 계속 축구를 한다면 말이다(슛돌이 팬카페를 통해 팬들이 성우에게 남긴 메시지들의 대부분은 '국가대표 되어 다시 만나자'다).

이제 성우는 슛돌이 1기들이 그랬던 것처럼,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슛돌이를 떠났고 아울러 TV에서도 사라졌다. 미디어에서 사라진 성우가 조용히 축구를 계속하다 만화에서처럼 어느날 갑자기 축구계의 혜성으로 등장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만화 속 주인공처럼 활약해주기를 꿈꾸며, 오늘도 난 천재형 악동(樂童)을 찾는다. 슛돌이 3기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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