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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기업' 이랜드가 '문제기업'이 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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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기업' 이랜드가 '문제기업'이 된 이유는? <독자기고> 한 기독시민운동가가 보는 이랜드 사태의 본질
다음은 <프레시안> 독자인 이진오 씨가 이랜드 사태에 대해 기고해 온 글이다. 기독교시민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사무처장을 역임하는 등 기독시민운동가로서 10여년 활동해 왔고, 지난 2000년 이후 이랜드를 지켜봐 왔다는 이진오 씨는 이 글을 통해 한때 모범적인 기업으로 칭송을 받던 이랜드가 문제기업이 된 데 대한 나름대로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이번 이랜드 사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이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오늘(20일) 이랜드(뉴코아, 홈에버) 매장에 공권력이 투입되어 농성 중이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강제 연행해 가는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언론기사 아래에는 어김없이 기독교, 교회, 하나님에 대한 욕설과 실망, 분노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이랜드 사태의 원인을 최근 시행된 비정규직법의 불의함에서 찾는다. 물론 그런 면이 있다. 고용안정과 차별시정을 위해 제정된 법안이 외주화, 용역화를 통해 고용도, 차별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이랜드보다 더 크고 영향력 있는 기업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이랜드가 가장 대표적인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것을 새로 시행된 비정규직법의 문제점에서만 찾는 것은 부족하다. 노조 설립의 역사도 짧은 이랜드가 노조 문제의 핵심으로 부각된 것은 최고경영자인 박성수 회장의 신앙관과 노조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이랜드 역사와 기업문화 속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랜드, 90년대 초반까진 모범적 기독교 기업이었는데...
  
  이랜드는 알다시피 80년대 박성수 회장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선교기업을 모토로 창립했다. 창립 이후 특유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젋고 창의적인 기업문화와 가족공동체 정신을 중심으로 급성장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으로 미래가 있고, 누구라도 아이디어와 성실성만 있으면 새로운 브랜드를 제안해 운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과 사람을 성장시키는 독특한 교육문화가 장점으로 부각되면서 한 때 중소기업으로는 유일하게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 수위에 오를 정도의 신화가 되었다. 기독교계에서도 이랜드는 세금을 정직하게 납부하거나, 경영인들이 검소한 생활을 하고, 사회사업과 선교에 적극 지원하는 등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기업으로 큰 자부심으로 소개되었다.
  
  이런 내용은 93년에 <이랜드사람들>(남동희, 다름원)이란 책으로 엮여 출판되면서 더욱 큰 감동을 주었다. 필자도 이 책을 읽으면서 책 내용과 박성수 회장이 기독교 기업이 추구해야할 신앙과 기업정신 18개 항목으로 제시한 "이랜드 스피릿"을 보면서 많은 도전의식과 희망을 가졌다.
  
  이랜드에 노조가 처음 결성된 것은 93년이다. 이후 97년 57일 간의 첫 파업이 있었고, 98년 대대적 정리해고에 이어, 2000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265일 간의 극렬한 파업이 있었고, 박성수 회장은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체포영장까지 발부 받았다. 그리고 2000년대는 거의 매해 노사 간의 크고 작은 갈등과 대립이 이어지다가 결국 올해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극단적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랜드는 일이 많고 월급이 적다는 단점이 지적되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회사가 성장하면 많은 보상이 있겠지 하며 참았고, 또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던 초창기 회사원들은 함께 기독교기업을 이루어간다는 동질감에 헌신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사업이 확장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비기독교인들의 수가 60% 이상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들에게는 더 이상 신앙적 이유로 고통을 분담하거나 선교적 이유로 헌신을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도 이랜드는 신앙적 내용으로 가득한 '이랜드 스피릿'을 교육하고, 진급시험 문제에 출제해 암기해서 기록하도록 했고, 각종 종교모임을 시행했다. 이런 시험과 종교모임의 참여는 성실성과 연결돼 인사고과에 반영됐기에 반강제성을 띠게 되었다. 최초 기업을 함께 해온 기독교인들에게 종교적 행사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비기독교인에게는 강요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종교를 이용한 착취가 된 것이다. 박성수 회장과 경영진은 이점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97년 신도림에 있던 이랜드 물류창고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근무조건도 나쁘지 않고 아르바이트비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어느 날 관리팀장이 전 직원은 1시간 일찍 나와 QT(경건의시간-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를 해야 한다고 했다. 집단적 단합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아르바이트생들도 예외가 없었다. 관리자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이었지만 아르바이트생들은 대부분 비기독교인이었다. 더 큰 문제는 1시간 일찍 나오는데 이 시간은 아르바이트 비용이 지급되지 않는 것이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어쩔 수 없이 QT모임에 참여했지만 일이 시작되면 삼삼오오 모여 불평을 했고, 그런 불평은 고스란히 기독교와 교회, 하나님에 대한 비아냥거림이 되었다. 내가 나서서 관리자를 설득해 QT시간을 30분 줄이고 원하는 사람만 하는 것으로 조정이 되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스스로 그만두거나, 단합해서 부당함을 시정하기 위해 싸우는 길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박성수 회장, 노조를 비성경적ㆍ공산주의적이라고 인식
  
  2000년 이랜드 사태가 났을 때 필자는 <새벽이슬>이라는 신문사 기자로 중계동 아울렛 파업 현장을 방문했다. 당시 파업현장은 사측에서 고용한 용역원들이 현장을 봉쇄하고 있었고, 노조를 지원 나온 대학생들의 집회로 극한 대치상황이었다. 파업 현장에서 만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영업 이익을 위해 월 60만 원 정도 밖에 주지 않는 비정규직 판매원들을 외주용역화해서 더 어렵게 하고 있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리고 한결같이 회사는 틈만 나면 가족적공동체를 주장하면서 한 가족이라고 이야기 하고, 각종 종교행사를 함께 해왔는데 어떻게 가족을 구조조정할 수 있냐고 하소연했다. 그리고 그 모든 원망은 기독교와 교회, 하나님에게 돌렸다.
  
  당시 사측을 대표해 교섭에 나섰던 분은 나와는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였다. 군에서 제대한 이후 그분이 다니는 교회에서 함께 대학생들을 전도하고 가르치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노조가 억울해 하는 면을 전했더니 그분도 노조의 불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박성수 회장의 노조에 대한 인식이라고 했다. 박성수 회장이 노동조합을 비성경적이고 반기업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공산주의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를 통한 주장은 어떤 것도 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노동자들은 노조를 구성해 집단적으로 불편함과 요구사항을 말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행하는 것은 효율성도 없고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이 정한 노동 3권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인식은 큰 문제이다. 그룹 회장의 이런 인식은 결국 교섭기피, 부당노동행위, 구사대 폭력, 단체협약 불이행, 노조 탈퇴공작, 블랙리스트 작성 등 노동탄압과 이로 인한 극단적인 노사 대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이 개입하게 되어 더욱 사태는 확대되고 악화되고 있다.
  
  '이랜드 성공신화'를 얘기하던 교회들은 다 어디로 갔나
  
  또 다른 문제는 이랜드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있다. 이랜드는 설립 초기부터 다양한 직종의 브랜드를 개발해 공격적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의류나 신발, 액세서리 같은 중저가 시장에서는 이런 방식이 통했지만, 덩치가 큰 호텔, 프랜차이즈, 유통판매 사업에 뛰어 들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재정 수요가 많은 사업에 뛰어 드니 자연히 무리하게 자금을 운영하게 되고, 경영 합리화를 이유로 노동자 임금을 희생시키는 구조로 운영하게 된 것이다.
  
  이랜드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 경영상에 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기업 운영 역량을 넘어서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성경의 공동체정신에 입각해 기업을 운영하면서 정규직, 비정규직을 나누고, 더구나 경영을 이유로 가족 중 일부를 다른 회사에 넘겨 공동체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애초에 이랜드가 추구하는 기업 정신이 아니다. 당연히 경영진은 이런 점을 고려해 감당할 수 있는 역량 안에서 사업을 확장시켰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실수나 비성경적 인식의 책임을 힘없는 비정규직에게 전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노조에 대한 이런 협소한 인식에는 박성수 회장과 이랜드 경영진이 가지고 있는 신학의 협소함도 자리 잡고 있다. 소위 개인구원적인 보수적 신앙은 개인구원, 사회봉사에 대한 헌신은 크지만, 정치사회적인 정의로운 제도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생각한다. 일례로 필자가 대학생 때 소속됐던 선교단체에서 필리핀 마닐라 선교대회를 준비한 적이 있다. 이때 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이랜드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당시 파격적인 조건으로 물류창고를 열어 각종 옷을 줘 이를 팔아 큰돈을 마련했었다. 그런데 99년 통일을 염원하며 대학생들과 함께 국토대장정을 하는 행사를 하면서 이에 후원을 요청하니 정치적 주제로 갖는 모임에는 후원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내부적으로 단순한 전도/선교나 사회복지적 일에는 지원하지만 정치, 사회적인 문제에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조에 대한 인식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위해 죽으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또 정치구조, 경제정책, 통일방식 등은 사람의 인권과 평화를 위한 중요한 신학적 주제이고 관심사이다. 이런 것들을 놓치고 개인구원적인 관점에서만 성경을 이해하고 실천한다면 지금과 같은 문제는 그 이유와 원인도 모른 채 끝없이 반복될 것이 자명하다.
  
  이런 문제는 이랜드만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많은 기독인들은 일개 기업의 문제에 대해 기독교, 교회, 하나님을 거론하고 비방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일개 기업의 성공을 두고 우리 기독교가 얼마나 자랑스러워하고, 선교적 목적에 이용해 왔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잘하면 내 탓이고 못하면 네 탓이라고 할 일이 아니다. 잘하는 것은 네 탓, 못하는 것은 내 탓이라고 하는 것이 성경의 정신이다.
  
  많은 한국 교회와 목회자들은 이랜드를 통해 후원을 받고 이랜드의 성장 신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좋아했지만 내부의 기업 문화와 노사 관계 등에는 무관심했다. 실제 박성수 회장은 장로로서 많은 기독교 단체나 모임에 주요 임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런데도 지금 이와 같은 문제가 불거짐에도 누구 하나 나서서 권면하거나 이야기 하려 하지 않은 한국교회의 이중성은 분명 잘못이다. 교회를 대표한다는 한국기독교총연합은 대형교회 비리나 부패에 대한 언론과 사회의 정당한 지적에는 발끈하며 나서서 옹호하지만, 정작 우리 스스로의 자정 노력에는 등한시 한다. 지금이라도 교회를 대표하는 단체와 지도자들이 나서서 잘못된 점을 시정토록 권고하는 것이 책임있는 태도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이번 이랜드 사태는 일개 회사의 경영 문제이기 때문에 모든 노사문제가 그랬던 것처럼 결국 타협하게 될 것이다. 경영자 측도 일정 정도 양보할 것이고, 노조도 일정 정도 타협안을 제시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랜드는 또 영업에 나설 것이고 노동자들은 주어진 일을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태 가운데 불거진 기독교와 교회,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은 수많은 기독인들에게 상처를 남기고, 더 많은 비기독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사 측도 노 측도 패배하지 않고 타협하겠지만 하나님의 이름은 망령되이 일컬음을 받고, 하나님의 교회 명예는 땅에 떨어지고, 많은 영혼들은 하나님을 잃어버리거나 만날 기회의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독인으로서 이번 사태가 가슴 아프고 안타깝다. 이제 이런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기업, 정치, 학교 등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 기독교를 붙여 마치 기독교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삼가야 할 것이다. 기독인의 모든 삶은 성경적 가치를 구현하고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죄성이 많은 인간으로 언제나 실수할 수 있고, 잘못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로인해 받을 하나님과 교회의 상처를 고려해 단체명을 붙일 때도 겸손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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