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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을 민초들의 미래 향한 '반전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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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은평을 민초들의 미래 향한 '반전드라마' [우리 미래에 표를 던지자 ②] 대운하 찬ㆍ반 시험대
<프레시안>과 '진보와개혁을위한의제27(의제27, 공동대표: 정해구, 홍종학, 김호기)'은 오는 4월 9일 총선을 맞이해 공동기획 '우리 미래에 표를 던지자'를 준비했습니다. 그 두 번째로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과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가 맞서는 서울 은평을 선거구에 대한 이태수 교수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선거의 묘미는 예상을 뒤엎는 반전(反轉)의 드라마가 펼쳐질 때 극대화된다. 은평을(乙) 선거구는 그동안 그런 예상 밖의 반전을 심심찮게 일으켜 온 진원지였다. 1996년 민중당에서 신한국당으로, 골수 좌파에서 하루아침에 집권당으로 말을 갈아탄 이재오를 선택한 것도 반전이었다.

2004년 거세게 몰아친 탄핵주역에 대한 선거탄핵 속에서도 강북에서 유일하게 한나라당 후보인 이재오를 선택함으로써 은평을은 또 한 번 반전의 무대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재오는 3선의 화려한 중진의원이 되었고 마침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일약 대통령으로 만들어냄으로써 보수세력의 정권교체를 이루어내는 장본인이 되었다.
▲ ⓒ뉴시스

역사에 가정(假定)이란 부질없는 노릇이지만 이재오가 4년 전 당시 송미화 열린우리당 후보에게 끝내 반전의 드라마 없이 고배를 마셨다면 오늘날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였을까? 짜릿한 상상의 묘미가 있는 부분이다.

이런 은평을 선거구가 '보수의 교지(狡智)' 역할을 맡았다고 할 이재오를 이번에는 버릴 참이다. '자전거', '목욕탕', '북한산 등산'으로 상징되는 스킨십, '구파발 뉴타운사업'으로 대변되는 지역발전 역군, 드디어 새정부의 자칭, 타칭 실세로서의 강력한 이미지로 중무장한 이재오. 누란의 위기에서도 그렇게 알뜰히 지켜준 은평을 지역주민의 이재오 사랑이 적어도 지금으로선 '차디찬 맹서'가 될 전망이다. 이미 현재 시점에서만도 이 반전의 묘미는 18대 총선판을 달구기에 충분하고 은평을에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되기에 충분하다.

이재오의 대척점에 선 이는 다름 아닌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 지난 17대 대통령선거에서 '사람중심 진짜경제'를 내세워 시대정신에 대한 논쟁을 유도했던 그는 이번 총선을 '대운하 저지'로 선언함으로써 또 다시 이슈를 선도하는 놀라운 예지력을 보여준 장본인이다. 그렇지만 대선에서 6% 남짓한 지지율을 받았던 그이기에, 현재 은평을 지역의 각종 여론조사에 나타나고 있는 30 내지 50% 대의 지지율, 그리고 이재오에 대해 최대 20%포인트까지 지지율 격차를 보이는 것은 자못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왜 문국현일까?

국회의원 선거가 지역발전을 위한 일꾼을 뽑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 집권세력의 정책기조에 대한 지지나 반대의 성격을 지닌 것인지 우리나라 선거에서는 그 일관성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단순히 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재오의 무참한 지지하락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간 야당 국회의원의 굴레에 묶여 있다가 이제사 여당의 실세로서 '은평의 자랑'이요 '은평 발전의 기대주'가 되었건만 지역주민은 아이러니하게 지금 시점에서 '팽'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국회의원이 행할 수 있는 지역발전이란 것이 허상이기는 하다. 만일 어떤 지역만이 그 의원에 의해 갑자기 발전의 특수를 누리게 되었다면 그것은 대개 정부 정책결정과정에서 유무형의 압력 또는 집요한 로비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국민 누구나 지탄해온 바대로 예산책정 과정에서 자기 지역구 특혜를 위해 '막판 끼워 넣기'의 예술을 발휘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특수란 것이 대개 토목사업을 동반한 것이고 따라서 개발이익도 토목업자나 부동산부자에게 돌아가고 주민들은 또 다른 희생의 볼모가 되는 것에 불과했더랬다.

그런 점에서 지역발전을 기치로 내세운 선거 전략이 통한다는 것은 그만큼 후진적인 선거의식이 남아있다는 것의 다름 아니다. 오히려 지역발전을 위해서라면 지방자치단체장과 의회의원 선거에 올인하는 것이 상식이다.
▲ ⓒ뉴시스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아도 결국 특정 자기지역구만의 발전이 아니라 그 지역의 특성치가 일반적으로 국가 예산책정과 입법과정에 반영되고 중앙정부의 정책 집행에서 소홀히 취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실로 지역구 선거에서 선출된 국회의원의 직분이라면, 결국 국회의원 선거는 정책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문국현에 쏠림현상을 보이고 있는 은평을 지역주민의 선택이 보여주는 의미는 선진적이라 볼 수 있다.

물론 현재의 선택이 25개 서울의 자치구 가운데 재정자립도나 지역GDP가 거의 바닥에 떨어진 채 개선되지 않는 현실이나, 뉴타운사업 유치 역시 오히려 관내 편중발전에 따른 위화감 조성과 갈등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재오의 3선에 대한 실망과 불신의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대선 때의 압도적 이명박 지지가 3개월 만에 오만과 독선, 실망으로 돌아오고 있는 현실에서 그 오만과 독선의 이미지가 그대로 묻어나는 이재오에게 가중되어 '쳐다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재오에 대한 반감으로부터 문제를 보자면 풀리지 않는다. 왜 그렇다면 문국현인가에 대한 답이 없다. 4년 전 자기 손으로 도장을 찍었던 '은평의 딸' 송미화도 있고, 이회창과 찍은 사진과 박근혜와 찍은 사진을 버젓이 걸어 놓아 영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장재완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은평구민은 대선과정에서 선택한 이명박의 가치에 대한 자기부정일 수도 있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문국현의 '미래 가치'에 호기심을 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지역 주민의 자기모순이라 볼 수는 없다.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서 승리당을 교차시켜온 민초들의 지혜를 보자면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

대선과정에서 때론 몽상적이라 할 만큼, 때론 정치인이라고 도저히 믿기 어려울 만큼 비타협과 원칙만을 주장해온 문국현. 그가 대선 과정에서 반복해온 가치, 즉 사람이 중시되는 사회, 중소기업이 살아나는 사회,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 복지와 교육을 통해 세계 초일류의 경쟁력을 갖추는 사회에 대한 묘한 매력이 오히려 이명박으로 인해 현실이 되고 있는 경제 올인의 사회에 묘한 대비를 일으키며 신선한 매력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7대 대선에 대한 역설적 대안

청계천 복원 정도야 도시의 낭만이요 예스러움과 향수의 복원으로 관대히 받아들일 수 있고 심지어 업적과 추진력의 상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서울에서 부산까지 반도의 등줄기를 모두 파헤쳐 산을 깎고 뚫어 인공으로 물줄기를 만들어내고 인공수조를 만들어 수천 톤의 배를 수백 미터씩 들어 올리고 내리는 이 기막힌 허구의 진실을 이미 직감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민초들의 감각, 그 감각을 이미 '배를 산으로 가게 한다'는 단 한마디의 말로 명쾌히 정리한 문국현의 관심법(觀心法)에 은평주민이 화답한 것은 아닐까?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가 가고, 세계화와 양극화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새로운 시대정신과 추구할 가치를 찾지 못해 혼돈의 시대가 지속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비록 반도덕적일지라도 과거회귀의 방식으로라도 경제만 살릴 수 있다는 주장에 찬동하긴 했지만, 여전히 가시지 않는 불안함과 후회스러움이 남아있는 민초들. 그렇기에 그 대척 지점을 보여준 문국현의 사람 중심의 가치, 이제까지 우리사회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놀라운 상상력으로 제시한 그의 미래 가치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의와 수용의 표시가 아닐런가?

그런 점에서 은평을의 선택은 현재지만 이미 과거일 수밖에 없었던 가치를 선택했던 지난 17대 대선에 대한 역설적인 대안으로서,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미래의 가치이자 미래의 세력이길 희구하는 문국현의 가치에 대한 지혜로운 국민의 선택을 대신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은평을이 앞으로 남은 2주 동안 어떤 또 다른 반전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지금의 반전만으로 이재오 그 자신과 그가 자전거를 타며 설파한 한반도 대운하프로젝트가 떨고 있고, 그 끝에는 이명박과 그가 추구하는 보수적 실용주가 결국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 반전이 현실이 된다면, 예상 외로 진보의 가치가 빛을 발할 틈새는 좀 더 일찍 열릴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론 몽상가라 치부되던 문국현의 정치인으로서의 진정한 출발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전의 진원지, 은평을 주민의 반전 드라마에 선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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