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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딘 창'과 '견고한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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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무딘 창'과 '견고한 방패' [우리 미래에 표를 던지자 ④] 손학규 대 박진
<프레시안>과 <진보와개혁을위한의제27>('의제27', 공동대표: 정해구, 홍종학, 김호기)은 오는 4월 9일 총선을 맞이해 공동기획 '우리 미래에 표를 던지자'를 준비했습니다. 이 기획은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을 결합하는 '아카저널리즘'의 시각에서 이번 총선을 다양한 각도에서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그 네 번째로 한나라당 박진 후보와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맞서는 서울 종로 지역구에 대한 고원 박사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18대 총선의 윤곽이 희미하게나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좀처럼 드러나지 않던 유권자들의 표심이 서서히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애초에 이번 총선은 압도적인 한나라당 일당 우위의 구도가 적용되리라 여겨졌다. 그 같은 전망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한나라당의 정당결집력이 약화되었다고 해도 전반적인 총선판세는 여전히 구조적 지각변동 장세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전략적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는 '안정론 대 견제론'의 대립은 총선 판도 전체의 논쟁적 담론으로 부상하고 있지 못하다. 전체적으로는 안정론의 우위 구도이다.

그런데 정당 간 구도에 의해 단선적이고 일방적으로 진행될 것 같던 총선 판세에 모종의 변형과 균열의 지점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제법 흥미로운 현상들이 만들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수도권의 각 선거구들에서 이루어진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상당수의 비한나라당계 인사들이 기대 이상의 선전을 보여주고 있다. 동작(갑) 전병헌, 성동(을) 임종석, 도봉(갑) 김근태, 인천 계양(갑) 신학용, 수원 영통 김진표, 마포(갑) 노웅래, 구로(갑) 이인영, 도봉(을) 유인태, 광진(을) 추미애, 중랑(을) 김덕규 등 통합민주당 후보들이 선전하고 있고, 진보신당의 노회찬과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가 노원(병)과 은평(을)에서 각각 선전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들은 분명히 종전과는 다른 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중범위적 수준에서 균열의 가능성은 충분히 무르익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정치현상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유권자들의 표심 구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수도권에서 민주당 현역 의원들의 선전은 '견제론' 보다는 '안정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하다. 유권자들은 최근 이명박 정부의 잇단 아마추어리즘을 보면서 부쩍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의 신진 후보군들은 그들의 출마를 자당의 전략적 구호인 안정론에 제대로 접목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설익은 행태들에 낯선 한나라당 신진 후보군들의 유아적인 이미지들이 착종되면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안정을 원하지만 현재의 정치권을 '안정세력 대 불안세력'의 명쾌한 양분 구도로 만들기가 쉽지 않게 되었음을 직감하고 있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학습효과에 강하게 반응한다. 신진후보들이 전국적 정치판도 내지 대선 열풍을 타고 국회에 떼거리로 진입하는 풍경은 17대 총선에서 이미 학습되었기 때문에 그 같은 역사는 다시 반복되기 힘들 것 같다.

그렇다고 유권자들은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해체시킨 과거의 양당구도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 같다. 이제 유권자들은 투자자들이 갖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자산시장의 틈새를 살피면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듯이 현재의 조건을 고려한 최선의 정치적 조합을 고민하고 있다.

손학규 고전, 왜?

요즘의 정치현상을 보고 이번 총선을 인물전이라고 규정하는 일부 언론의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면적 인식에 불과하다. 통합민주당은 대선 주자 및 당 대표가 투입된 동작(을)과 종로에서 여전히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위 지역구들과 미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가 출마한 종로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개성과 특색이 없고, 단조롭고 무표정한 느낌을 준다.
▲ ⓒ손학규 홈페이지

기성정치의 상징성 내지 대표성을 갖고 있는 간판급인 손학규 후보는 동작(을)의 정동영 후보와 마찬가지로 구조적 변동 장세에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수도권의 일부 후보들처럼 제대로 선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손학규 후보 측은 지역주민들과의 접촉 부재 때문이라며 초반 열세는 꾸준한 접촉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손 후보가 이미 전국적 인지도가 충분한 마당에 지역을 열심히 갈고 다닌다고 해서 지지율 구조가 쉽게 역전될 것 같지는 않다.

경쟁상대가 전혀 생뚱맞은 신인이 아닌, 참신성과 실력자 이미지를 갖추고 3선의 고지를 노리는 박진 의원이라는 점도 손학규 후보가 프리미엄을 가동시키기에 적합지 않다. 게다가 그는 종로에서 나고 자란 골수 토박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박진 후보는 한나라당의 일부 신진 후보군들이 겪고 있는 설익고 불안한 이미지를 표출하지 않고 있어 손 후보가 반사적 이득을 노려볼 만한 여지가 많지 않다. 거기에다가 은평(을)의 문국현 후보처럼 이재오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안티(anti)여론을 활용해 볼 만한 여지도 별로 없다.

박진 후보는 정당과 인물의 프리미엄을 모두 확보하면서 거물급 야당 대표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있다.

손학규 후보가 박진 후보를 누르기 위해서 지역 쟁점을 점화시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의 무기는 역시 공중전이다. 손학규 후보는 대선 후 야당의 위기관리자로서 비교적 무난한 성적표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지난 17대 탄핵 폭풍 속에서 한나라당을 지켜낸 박근혜 대표의 리더십에 필적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는 야당 대표의 지위를 자신의 정치적 무게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데에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 자신을 정치적 쟁점의 한가운데에 우뚝 세워내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먹을 것 없는' 잔치

종로는 전통적으로 전국의 정치 흐름에 민감하고 역대 총선에서 자주 격전지였다. 그래서 한국정치 1번지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그런 만큼 지역 유권자들의 표심도 그런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 지역 유권자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선거 정보에 비교적 빠르다.

두 후보의 주요 선거 전략을 살펴보면, 박진 후보가 지역구 현역 의원이란 이점과 지역 연고를 강조하며 지역구민을 맨투맨으로 파고드는 지상전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손학규 후보는 야당 살리기를 위한 자기희생, 민주주의의 견제기능 등을 강조하는 선거전을 전개하고 있다고 한다. 네거티브 선거전의 측면에서 박 후보 측이 손 대표의 한나라당 탈당 전력, 지역연고 부족 등을 제기할 태세라면, 손 후보 측은 박 의원의 지역구 활동 실적 부족과 특권층 이미지를 강조하려 한다고 한다.
▲ ⓒ박진 홈페이지

만약 이런 선거전략 구도가 사실이라면 이번 종로의 선거전은 의외로 뜨뜻미지근하게 끝날 가능성이 크다. 손학규 후보가 현재의 지지율 구도에 변형을 가하기 위해서는 이상의 조건들을 잘 분석하여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공중전에서 이미지를 만들되, 현재의 관리자의 단조로운(dull) 이미지를 탈피해야 할 것 같다. 현재 그가 주도하고 있는 '견제론'이라는 카드는 정국을 주도하기에는 상당히 취약한 담론이다.

이번 종로 지역구의 선거전에 진폭을 키울 수 있는 이니셔티브는 손학규 후보의 몫이다. 박진 후보는 일반적인 지역구 선거전의 기준으로 볼 때 무난함을 자랑할 만하다. 그는 쿨한 이미지를 주는 새로운 보수의 가능성 때문에 종종 주목을 받아 왔다. 그리고 지난 시기 의정활동을 통해서 정책전문가로서의 이미지를 잘 구축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정치에 어떤 변화를 가하고 이를 주도하기에는, 특권층의 이미지는 아니지만 온실 속에서 잘 길러진 분재의 이미지에 머물러 있다.

종로 선거에서 손학규 후보가 성공하려면 박진 후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워 보이는 수준으로 판의 무게와 넓이를 키워야 할 것 같다. 작은 안정감보다는 더 큰 안정감으로 승부를 걸 만한 고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아마 대통령을 활용해 봄직하다. 대통령은 정국변동의 진원지이다. 왠지 이명박 정부의 실력이 한참 딸리는 것 같아 부쩍 불안해진 유권자들의 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 전략적 담론들을 발굴해야 할 것이다. 야당의 위치에서 정국을 비판적으로 안정시킬 정치적 파트너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할 전략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종로는 청와대가 위치해 있고, 정부의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손학규 후보는 종로가 나라의 균형과 안정을 만드는 무게중심이라는 이미지를 자신의 존재와 접목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러 가지 구상을 펼치기에는 시간은 흐르고 또 흘러간다. 박진 후보는 자신의 탯줄이 묻힌 종로를 발판으로 한국의 정치구도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유형의 정치인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그는 많은 시련을 통해 자신을 더 강하게 단련할 시간과 계기가 필요해 보인다. 거물급 야당대표와의 이번 일전이 그에게는 얼마나 유익한 기회가 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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