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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리더 vs 신산업화의 첨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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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민주화의 리더 vs 신산업화의 첨병 [우리 미래에 표를 던지자 ⑧] 김근태 대 신지호
<프레시안>과 <진보와개혁을위한의제27>('의제27', 공동대표: 정해구, 홍종학, 김호기)은 오는 4월 9일 총선을 맞이해 공동기획 '우리 미래에 표를 던지자'를 준비했습니다. 이 기획은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을 결합하는 '아카저널리즘'의 시각에서 이번 총선을 다양한 각도에서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그 여덟 번째로 한나라당 신지호 후보와 통합민주당 김근태 후보가 맞서는 서울 도봉갑 지역구에 대한 서보혁 박사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서울 도봉갑은 여러 의미에서 주목을 받는 선거구다. 현재 이 선거구에서는 민주당 김근태 후보와 한나라당 신지호 후보가 1%포인트 이내의 박빙(薄氷) 대결을 펼치고 있다. 3월 하순 여론조사에서 김근태 후보가 15%대의 차이로 우세를 보이던 것이 4월 초에는 신지호 후보의 추격으로 예측불허의 양상을 띠고 있다. 두 후보가 보이고 있는 팽팽한 경합을 과연 어떻게 볼 수 있는 것일까.

도봉갑 선거구는 개혁적 성향이 짙은 이른바 '강북벨트'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 아성이 이번 총선에서 큰 도전을 받고 있다. '강북벨트'란 서울 강북 갑·을, 도봉 갑·을, 노원 갑·을·병 7개 선거구를 말하는데, 이들 선거구는 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전통적으로 개혁성향 정당의 후보가 당선된 곳이다.

지난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현 17대 선거까지 세 차례의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이들 선거구에서 당선된 경우는 단 한 차례에 불과하다. 세 번의 총선에서 당선된 19명 중 18명은 민주당, 열린우리당, 국민회의 등 개혁성향의 정당 후보들이었다.

전통적으로 '강북벨트'는 한나라당이 강세를 유지해온 강남·서초·송파 지역의 '강남벨트'와 뚜렷한 대조를 보여 왔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는 강남벨트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들이 모두 우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강북벨트에서는 전통적인 야당 성향이 크게 흔들리고 팽팽한 경합세를 드러내고 있다. 강북벨트에서는 강북갑 선거구에서만 민주당 오영식 후보의 우세가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 ⓒ김근태후보 홈페이지

김근태 후보와 신지호 후보의 경쟁이 높은 관심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두 후보의 대조적인 이미지와 함께 이들이 여당과 야당의 선거 대결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근태 후보는 노무현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고 열린우리당 의장을 맡은 경험이 있는 정치인으로서 도봉갑에서 내리 3선을 기록한 현역 국회의원이다. 그는 정치인이면서도 오랜 민주화운동 경력과 청렴한 이미지로 지역구 주민들은 물론 전 국민들로부터 호감을 받아 왔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도 그의 공천은 당 내에서도, 지역구에서도 큰 문제없이 이루어졌고, 초기 여론조사에서도 우세를 보였다.

그러나 한나라당 신지호 후보가 추격을 해오면서 여론조사 결과 발표가 공개되는 마지막 시점에 와서는 살얼음보다 더 얇은 치열한 경합을 보이고 있다.

김근태 후보의 우세에서 박빙세로 바뀐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주목할 수 있는 것은 김근태 후보에 대한 이미지다. 김근태는 좋은 사람인데, 정치권에 들어와서 뚜렷하게 잘한 게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인상'이다. 이런 이미지는 일반 국민들에게는 추진력이 부족하다는 모습으로 다가오는 듯하고, 지역 유권자들에게는 지역경제 살리기, 교육 등 생활환경 향상이 기대만큼 실현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으로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그 동안 그를 믿고 세 번이나 뽑아준 것은 그의 개혁 신념에 거는 기대와 '개혁' 성향의 정부가 집권한 기간이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그 두 변수의 조합이 깨진 것이다.
▲ ⓒ신지호후보 홈페이지

신지호 후보는 선거 처음 낮은 인지도 때문에 고전했지만 당의 적극적인 지원과 김근태 후보와의 대결이라는 언론의 집중조명 등으로 인지도가 높아져 왔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집권과정에서 중도 성향 혹은 부동층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낸 실용이념을 확산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유주의연대'라는 보수성향의 시민단체 대표를 맡아온 그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아 일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남북관계에 관해 민간연구소와 학교에서 연구와 강의를 해오면서 이른바 '뉴라이트' 운동을 전개해 왔다.

신지호 후보는 출사표에서 이념적 성향을 분명히 하고, "김근태 의원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위대한 강북우파의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민주화는 이제 달성됐으니 김근태 후보가 중심이 된 '구좌파', 즉 민주화운동 세력의 역사적 임무가 종식됐으며, 새로운 시대적 과제인 '선진화'를 이끌 세력은 자신과 같이 능력 있고 젊은 '신보수'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4선을 노리는 '개혁정치'인의 상징인 김근태 후보와 대결하는 명분이 여기에 있다.

한국 정치 정체성을 둘러싼 박빙의 경쟁

'신보수' 이념을 들고 김근태 후보의 정치성향을 겨냥해 대립 구도를 잡은 신지호 후보의 선거 전략은 일단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박빙의 지지도를 넘어 당선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무엇보다 도봉갑 선거구에서의 신지호 후보의 조직적 기반이 취약하고, '경제살리기'를 기치로 등장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점차 하락해 왔다. 집권 세력의 독주에 대한 견제 심리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과 결합하여 그것이 선거 결과로 나타날 경우, 신지호 후보는 결국 스쳐가는 봄바람에 그칠 수도 있다.

현재 두 후보에 대한 지지층은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세대별 지지도에서 김근태 후보는 30대 이하 연령층, 신지호 후보는 50대 이상 연령층에서 각각 20%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계층별 지지도에서는 김 후보가 사무직 종사자와 학생, 신 후보는 생산직 노동자와 주부층에서 각각 상대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김근태 후보가 개혁과 도덕성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면, 신지호 후보는 안정과 경제살리기 면에서 우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근태 후보와 신지호 후보의 대결이 관심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선거 결과가 양당 내 정치세력의 재편에 미칠 영향과 한국정치에 주는 상징적 의미가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근태 후보가 당선되면 민주당에서 그의 지도자로서의 위상 유지는 물론 그를 중심으로 한 전통 '개혁'세력이 민주당을 주도할 수 있다. 이는 전체 선거 결과와 맞물려 당 주도권을 둘러싸고 손학규 지도체제와의 경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김 후보의 낙선을 비롯해 '강북벨트'가 무너진다면 당내에서 초선 의원 등 신진세력 중심의 정풍운동이 일어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 민주당은 작지 않은 내부 갈등을 겪을 수도 있다.

반면 신지호 후보가 당선된다면 그는 이른바 '뉴라이트' 이념으로 무장한 소장 정치인들과 함께 당내 독자적인 세력화를 모색하거나, 아니면 다른 개혁 성향 의원들과 연대해 당내 개혁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유사 성향의 후보들과 함께 낙선한다면 '뉴라이트' 운동의 정치세력화는 크게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김근태와 신지호의 대결은 한국정치의 이념적 좌표, 미래 비전이 무엇이냐를 둘러싼 일종의 '정체성 경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두 사람 모두 경제살리기에 찬성하지만 그 저변에서 성장과 분배의 상대적 우위를 둘러싸고 큰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 두 사람 모두 남북관계 전문가이지만 김근태 후보는 화해협력, 평화번영 정책 기조를 지지하는 반면, 신지호 후보는 '좌파정권'의 '북한 퍼주기'라는 비판과 상호주의를 앞세우고 있다. 여러 측면에서 두 후보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을 대변하고 있다.

전통 민주화 세력의 리더와 신(新)산업화 세력의 첨병이 벌이는 도봉갑 선거에서 과연 유권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지역의 선택은 우리 정치 미래의 예고편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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