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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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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고? 김민웅의 세상읽기 <270> 생각을 바꾸는 이야기 읽기 또는 만들기
* 알고 보니 파수꾼이 도둑이요,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었던 자가 마을을 속이고 그에 더해 유린하고 있다면 어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처음에는 약간의 조건만 들어주면 다른 것을 다 해줄 듯 했지만 사실은 야금야금 가진 것을 모조리 다 빼앗아가는 세력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의 민담에서는, 가렴주구로 백성들을 못살게 하던 탐관오리를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호랑이로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 호랑이는 다른 모습으로 등장해서, 또 다시 "떡 하나 더 주면 안 잡아먹지" 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스크린 쿼터, 오늘은 쇠고기, 그리고 내일은 또 무엇일까요? 말뚝이 엄마가 겪은 이야기 한편 들려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막 넘어가려는 찰라, 호랑이가 쓰~윽 하고 나타났습니다. 그야말로 집 채 만 한 크기였습니다. 말뚝이 엄마는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하지만 자기를 기다리는 씩씩한 아들 말뚝이랑 예쁜 딸 완두꽃 생각에 얼른 정신을 꼿꼿이 차렸습니다.
  
  머리에 인 바구니에는 다 팔지 못한 떡이 있었습니다. 호랑이가 느끼하게 눈을 뜨고는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이 말에 건너 마을에 떠도는 소문이 정말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지 않고 떡만 밝힌다는 이야기가 언젠가부터 돌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엄마는 약간 안심이 되면서 혼잣말을 했습니다. "음, 참 다행이다. 아깐 떡을 다 팔지 못해 속상했는데, 사람 일은 정말 알 수가 없구나. 맛이 없다고 괜히 시비나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 헌데, 호랑이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했던 말은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떡을 좋아하는 대신 사람을 먹어 치우지는 않는다고 들었는데, 떡을 주지 않으면 잡아먹기도 한다는 이야기니 무언가 앞뒤가 안 맞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떡 먹는 호랑이가 나타나서 말하기를........
  
  호랑이는 건네받은 떡을 냉큼 한 입에 털어 놓더니 히죽 웃고는 사라졌습니다. 엄마는 바구니 속의 떡을 세어보았습니다. 딱 세 개가 남았습니다. 이제 세 고개만 더 넘으면 되니까 너무나 잘 되었습니다. 호랑이가 또 다시 나타나 떡을 달란다고 해도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까 호랑이가 한 말이 믿고 싶어졌습니다.
  
  엄마는 다시 산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넉살 좋은 순덕이 엄마가 언젠가 장바닥에서 전을 지지면서 어디선가 주워들어 섬긴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아니 글씨, 잇 따 만한 호랭이가 우리 순덕이 대갈빡만헌 왕눈을 혀어갖고 불쑥 나타낭께 그 담 큰 양반인 포수 박씨가 그만 그 자리에서 바지에 똥을 허벌나게 퍼질렀다는 것 아녀"
  
  포수 박씨는 외지에서 이 마을로 흘러들어와 혼자 사는 사나이였는데, 워낙 기골이 장대한데다가 힘도 꽤나 쓰게 생겨 동네 여자들이 그를 보면 돌연 눈빛이 달라지곤 했습니다. 그런 판에, 똥 어쩌구 하는 소리가 나오자 다들 뭐가 그리도 우스운지 왁자하게 깔깔 거렸습니다.
  
  말뚝이 엄마처럼 혼자 사는 과부댁 팔복이 엄마가 옆에서 끼어들었습니다. "아, 그 양반 거시기도 파악허구 시들어버렸겠구먼. 워쩌, 아까워서~" 다들 또 한 번 와하고 웃었습니다. 순덕 엄마가 팔복이 엄마를 살짝 꼬집으면서 "아이구, 요년이 밝히기는, 남 거시기는 왜 거들먹거려? 나두 요상해지게 시리 말여. 근디 이 호랭이 허는 말이 난데웁시, 자네 떡 가진 것 있냐? 박씨 이 말 듣고 그 경황없는 중에도 워메 무슨 호랭이가 말도 하고 떡을 찾아?" 다들 그러게 말이야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신이 된 호랑이?
  
  "좌우당간, 이 호랭이가 또 이러드라는 것이여. 자기는 딴 거 바라는 것 암껏두 웁따, 나에 대한 오해가 많은 디 너는 가서 동네 사람들 헌티 나는 떡 좋아하는 호랭이라는 걸 알려다오. 그동안 사라진 소나 돼지, 또는 개나 사람은 나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걸 분명히 밝혀둔다나 어쨌다나. 그리고 또 한마디를 덧붙이는 디......"
  
  포수 박씨가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에게 한 이야기로는, 호랑이가 자신을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여긴다면 그간 마을의 골칫거리였던 늑대나 여우 그리고 살쾡이가 꼼짝하지 못하도록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이 날 이후로 늑대나 여우, 그리고 살쾡이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게 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소나 염소, 개와 닭이 자꾸 없어지고 이따금 아이들이나 여자들까지도 사라지곤 했던 것입니다. 사고가 일어난 근방에는 커다란 맹수의 발자국과 이상한 노린내가 나는 것으로 보아 마을 사람들은 이건 필시 호랑이의 짓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달리 증거를 찾을 도리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포수 박씨에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다그쳤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마을에서는 아무래도 호랑이가 수상하니 함께 힘을 합해 이놈을 잡자는 사람들과, 떡만 먹는 착한 호랑이를 의심하는 것은 마을의 수호신을 욕보이는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로 나뉘었습니다. 떡 먹는 호랑이를 믿는 사람들은 늑대와 여우, 살쾡이와 너구리가 없어진 것은 다 호랑이 덕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라진 아이들이나 여자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몰래 어디론가 도망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고개를 넘는데........
  
  한편,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말뚝이 엄마는 마지막 고개를 넘고 있었습니다. 잔뜩 긴장한데다가 먼 길을 걷다보니 이제는 기운도 많이 빠졌습니다. 그래도 이 고비만 잘 넘으면 사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월이 갑자기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남편은 무슨 연유인지 관군(官軍)에게 쫓겨 이 산 속까지 도망쳐왔다가 화전(火田)을 일구던 자기 집에 은신하던 중, 서로 눈이 맞아 정한수 떠다 놓고 결혼한 사이였습니다. 남편은 참으로 듬직한 사내였습니다. 남들에게 여간해서는 고개를 숙이는 법이 없는 포수 박씨가 자기 남편 말뚝이 아버지 앞에서는 깍듯했습니다. 무언가 느낌이, 서로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남편은 자기 옛날 일을 말뚝이 엄마에게도 잘 하지 않았습니다. 신중이 지나칠 정도로 과묵한 남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말뚝이 아버지는, 나무하러 산에 올라가다 사또가 노루를 겨냥해서 쏜 화살에 잘못 맞아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관가에서는 사또가 사냥하시는 부근에 감히 얼씬 거렸다는 호통과 함께, 이 일을 따지고 들면 도리어 경을 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말뚝이 아버지를 묻고 온 날, 박 씨는 마치 자기 형제가 죽은 것처럼 슬피 울었습니다.
  
  세 번째 고개를 넘는데 호랑이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요구대로 떡을 주었지만 이번에는 호랑이가 떠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움쩍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낌새가 이상했습니다. 그런 찰라, 호랑이가 입을 쩌억 벌리고 앞발을 휙 하고 들더니 말뚝이 엄마에게 달려드는 형세를 취했습니다. 떡을 좋아한다는 것은 역시 거짓말이었구나, 엄마는 아이들이 보고 싶었고 그 순간에도 마을 사람들이 더 이상 그런 소문에 속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도망갈 힘이 도대체가 나질 않았습니다.
  
  꼼짝 없이 죽었구나, 그런데 "팡!"하고 산을 뒤흔드는 총소리가 났습니다. "쿵~" 하고 무언가 무거운 것이 쓰러지는 소리가 이내 겹쳤습니다. 너무도 무서웠지만 간신이 눈을 떠보니 피를 토하고 엎어진 호랑이 뒤에 포수 박씨가 총을 들고 우뚝 서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아들 말뚝이와 딸 완두꽃이 서 있다가 엄마에게 와락 달려와 안겼습니다.
  
  말뚝이와 완두꽃, 포수 박씨와 점례
  
  포수 박씨가 완두꽃 엄마에게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많이 놀라셨지요? 제가 자칫 한발 늦을 뻔 했습니다." 무뚝뚝한 줄로만 알았던 포수 박씨의 목소리가 따뜻하고 든든하게 여겨졌습니다. 씩씩한 말뚝이 엄마이기도 한 예쁜 완두꽃 엄마는 방금 전에 당할 뻔 했던 일은 고스란히 잊고 완두꽃처럼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습니다. 박씨가 그 두터운 손으로, 쓰러져 있던 완두꽃 엄마를 천천히 일으켜 주었습니다.
  
  오빠 말뚝이가 씩씩하게 말했습니다. "나도 커서 아저씨처럼 될래요." 동생 완두꽃이 아저씨 손을 꼭 움켜잡았습니다. 포수 박씨와, 말뚝이 엄마이면서 완두꽃 엄마이기도 하면서 점례이기도 한 그녀가 서로 쳐다보면서 말없이 웃었습니다. 해가 기울어 날이 어두운지 오래라 서로의 표정은 보지 못했답니다. 하늘에서 별들이 꽃다발처럼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 [출판저널]에도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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