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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남편과 아직도 삼성반도체 안에 있는 사람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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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죽은 남편과 아직도 삼성반도체 안에 있는 사람을 위해" [기고] 전문지식도 없이 삼성에 맞서 싸우다
삼성반도체의 집단 백혈병 발병과 관련해 정확한 원인이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백혈병 피해 현황도 정확하게 나온 바가 없고, 역학 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이 가운데 유족들과 피해자들이 "백혈병 발병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그 공장 안에서 오늘도 수 많은 사람들이 반도체 생산을 위해 일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국정 감사에서 이 문제가 다시 한 번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이날 국정 감사에는 남편과 함께 삼성반도체에서 일을 하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정애정 씨가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정 씨가 국정 감사 출석 후기를 보내 왔다.

이 글에는 정 씨가 하루 아침에 남편을 잃어야 했던 기막힌 슬픔을 저 멀리 기억 저편으로 묻지 않고 매일 매일 되새기는 이유가 담겨 있다. <편집자>

나는 3년 전에 남편을 잃었다. 남편은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에서 현장 설비 엔지니어로 7년 여간 근무하다 백혈병을 얻어 결국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떠난 지 2년이 지나서야 나는 남편의 죽음의 진상을 파헤쳐 보겠다 결심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라는 의미의 '반올림' 덕분이다. 그리고 삼성반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 백혈병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울부짖은 것이 벌써 8개월이 됐다.

상대가 삼성이라는 점도 우리의 싸움의 큰 난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반도체 현장의 유해한 환경에 대해 전문 지식 하나 없는 피해자 가족들이 입증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고통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했다. 기회가 되는대로 기자회견과 집회, 토론회 등을 통해 사람들과 만났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에 의해 노동자가 얼마나 탄압받고, 착취 당하는지, 이름 조차 모르는 많은 종류의 화학 약품을 쓰면서도 삼성은 정작 노동자들에게는 알리길 꺼려 한다는 것을. 또 그 화학 약품들로 인해 반도체 노동자들은 독한 냄새와 진동, 소음에 그대로 노출된 채 일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높은 기압으로 이뤄진 특수한 라인 환경은 또 얼마나 위험스러운지에 대해 나는 말하고 또 말했다.
▲ "나는 삼성의 가식적인 따뜻한 이미지를 벗기고, 최첨단 클린산업 '반도체'의 현장은 지금껏 보이지 않는 공포-가스냄새, 소음, 방사선, 높은기압-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려고 애썼다." ⓒ프레시안

바깥 사람들은 '클린사업장'으로만 여기는 반도체 사업장의 노동현실에 대해 세상과 소통하려 애썼다. 삼성의 가식적인 따뜻한 이미지를 벗기고, 최첨단 클린산업 '반도체'의 현장은 지금껏 보이지 않는 공포-가스냄새, 소음, 방사선, 높은기압-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려고 애썼다.

그러던 중에 좋은 기회가 왔다. 아시아 노동재해 피해자 권리를 위한 네트워크(ANROAV) 연례회의에 '대책위'가 초청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필리핀 마닐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9월 27일부터 3일 간의 경험은 나의 의식 밖에 있던 세상이었다.

전자산업의 선두주자인 미국을 비롯해 영국, 대만 등 전자산업 피해자들은 이미 심각성을 깨닫고 국제 연대를 해오고 있었다. 늦게라도 한국도 국제 연대에 동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에 많은 희망을 얻었다.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단체나 웹 사이트의 관계자와 만나면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라는 나의 막막함과 답답함은 어느 정도 해소되는 듯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독성물질 방지연합(SVTC)'에서 일하는 테드 스미스 씨와 단독으로 인터뷰하고 해결책을 논의해 보는 시간도 얼마나 귀중한 시간이었는지 지금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 본회의에서 '한국의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의 발병과 피해사례'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과정에서 ANROAV에 참석한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몸소 느꼈다. 내가 왜 이 싸움을 해야 하는지 뚜렷한 목적의식까지 다시 되새겨 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10월 7일, ANROAV에서 돌아오자마자 감사하게도 18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가 다루어졌다. 참고인으로 출두해 달라는 요청에 삼성 백혈병 집단 발병의 문제를 다시 한 번 더 노출시킬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삼성의 파렴치함을 권력만 앞세우는 자들에게 그들의 방식으로 똑똑히 말해주고 싶었다.

야당의 적극적인 질의에 반해 여당의 소극적인 질의는 적잖은 실망감을 주었지만, 나에게 온 발언 시간을 통해 삼성반도체의 노동현실을 최대한 폭로하고자 노력했다.

당시 과천 노동부 국정감사장의 상황을 더듬어 기억해보았다.

○ 의원 질의 :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현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습니까?
- 삼성전자 안재근 전무 답 : 발병자 13명, 사망자 5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의원 질의 : 산업안전공단에서 보고된 바 발병자 18명, 사망자 9명 입니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납니까?
- 삼성전자 안재근 전무 답 : 퇴사자는 관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 의원 질의 : (통계수치를 거론하면서) 이 정도 발병률이면 충분히 직업병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 삼성전자 안재근 전무 답 : 제가 통계학은 잘 몰라서….


○ 의원 질의 : 한달에 8시간의 산업안전교육은 의무인데 잘 지켜지고 있습니까?
- 삼성전자 안재근 전무 답 : 신입사원때부터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 이상 없이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 참고인 정애정 답 : 대부분 속칭 '가라 싸인'으로 대체하면서 실시하지 않고 있으며, 교육을 한다 해도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종류와 독성 여부, 그리고 그 독성 물질들이 인체에 어떻게 유해한지 등의 교육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 의원 질의 : 불산, 황산, 질산을 사용합니까?
- 삼성전자 안재근 전무 답 : 예

○ 의원 질의 : 여기에서 황산은 직접적 발암물질로 알고 있습니다. 산화에틸렌을 사용합니까?
- 삼성전자 안재근 전무 답 : 잘 모르겠습니다.

○ 의원 질의 : 벤젠을 사용합니까?
-삼성전자 안재근 전무 답 : 아니요.

○ 의원 질의 : 방사선을 사용합니까?
- 삼성전자 안재근 전무 답 : 일부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삼성전자 현 기흥사업장 김태진 대리 답 : 사용 안합니다.


같은 사측인데 안재근 전무는 "사용 한다"고 말하고 있고, 김태진 대리는 "사용 안한다"며 전혀 다른 답을 한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지켜보면서 김태진 대리가 회사에서 시킨 답만을 머리 속에 되뇌이다 안재근 전무의 증언은 듣지도 않고 준비한 말만 되뇌이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 의원 질의 : 故 황유미씨와 이숙영씨가 함께 일하던 현장을 변경한 적이 있습니까?
- 삼성전자 현 기흥사업장 김태진 대리 답 : 변경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변경하게 되면 생산을 진행함에 있어 공정의 변화가 오므로 변경할 수 없습니다.
- 참고인 정애정의 답 : 문제가 되는 메뉴얼 설비는 변경한다 해도, 공정 진행의 직접적인 설비가 아니었고 부수적인 일을 처리하는 설비였기 때문에 공정의 변화 같은 것은 오지 않습니다.


이 질문 또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김태진 대리는 7라인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3라인 설비 변경 문제에 대한 질문에 "변경할 수 없다"고 답하고 있었다.

○ 의원 질의 : IPA라는 물질로 클린 작업을 하고 있습니까?
- 삼성전자 현 기흥사업장 김태진 대리 답 : 없습니다.

○ 의원 답 : 클린 작업하는데 사용한다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


피해자 측에겐 질문하지 않아 답변하진 못했지만 내가 일한 5라인에선 클린의 날을 정해 한 달에 한 번 퇴근 후에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여성 노동자들이 와이퍼에(먼지 안 나는 보통 클린할 때 쓰는 걸레 같은 용도) 100% 원액 IPA를 사용해서 벽면과 p/c등에 있는 볼펜 자국 등을 지우는 클린 작업을 했었다. 설비 엔지니어들의 설비 클린시에도 사용되며 신설된 라인과 작업환경의 클린 작업시 도맡아 사용하는 것이 IPA였다. 단, 삼성반도체에서 백혈병 문제가 대두되자 사측은 IPA를 전면 사용 금지시켰다.

여기에 산업안전공단 박두용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에게 실태조사가 '형식적'인데다가 조사 시간이 너무 오래 지체가 됐고, 이는 사용자 측에게 대처할 시간을 주는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는 등의 몇가지 일침을 가하는 질문이 더 있었다.

추미애 환노위 위원장은 "투명한 조사로 정확한 사인을 밝혀낼 것"을 촉구하며 "문제가 되는 故 황유미씨와 이숙영씨가 일했던 3라인 작업현장을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그대로 보존할 것"을 삼성 측에 요구하고 확답을 듣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삼성전자 측 증인 안재근 전무는 나와는 상반된 증언을 계속 하면서 시종일관 위기를 모면하기에 급급했다. 야당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의에 얼버무리는 그의 주눅 든 모습은 떳떳치 못한 그의 발언과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꼴이 되어 버렸다.

피해자 가족들의 억울한 마음을 호소하기에는 터무니 없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국정감사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큰 위안을 삼으면서 참고인 자리를 내려와야만 했다. 앞으로 얼마나 마음과 몸을 다치면서 험난한 싸움을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는 일은 물론이고, 삼성의 무노조경영으로 인해 노예처럼 일하고 있는 현장 노동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다 보면 삼성을 바꿀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야무진 꿈도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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