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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李대통령 각하의 분부를 받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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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李대통령 각하의 분부를 받들어…" [길에서 책읽기] 전태일과 한국노총
11월이 다가오면 늘 한 사람이 생각난다. 전태일이다.

그가 자신의 몸을 던져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절규했던 11월 13일은 늘 한국 노동운동의 현실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드는 성찰의 시간을 던져준다. 더구나 비정규 노동자의 처절한 외침이 늦가을 빛바랜 나뭇잎처럼 여기저기 온 누리에 우수수 떨어지고 있는 오늘날 더 그렇다.

명백히 한국 노동운동의 생일은 11월 13일이다. 메이데이라고 알려진 5월 1일도 아니고 1990년대 초반까지 있었던 3월 10일 근로자의 날도 아니다. 한국 노동운동은 전태일이 자신의 몸을 소신공양으로 바쳤던 1970년 11월 13일 바로 그날 비로소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1970년 이전까지 한국 노동운동은 4·19혁명 시기의 짧은 소생을 제외하면 긴긴 죽음의 잠에서 깨어날 수가 없었다. 반공 정신병동 사회였던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 아래서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노동의 착취와 억압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노동자는 인간이 아니었다. 오직 주면 주는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노예의 근로자일 뿐이었다.

노동자들은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가 없었다. 사소한 노동자들의 모임조차 빨갱이들의 집회로 여겨져 금지되었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려고 하면 곧바로 좌경용공 행위로 몰려 경찰과 중정으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혀야 했다. 노동자, 인민, 동무, 계급과 같은 말들조차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잘 쓰는 용어라는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사용조차 할 수 없었다.

노동자를 노예의 근로자로 가두어 놓는 감옥의 형리 가운데 하나가 다름아닌 한국노총이었다. 한국노총은 노동조합이 아니라 노동운동을 감시하고 물어뜯는 독재정권의 충실한 하수인이었다.

1961년 대한노총을 해산하고 한국노총이라는 어용 노총을 직접 조직한 것은 다름아닌 중앙정보부였다. 한국노총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만든 노동조합이 아니었다. 한국노총은 중정이 만든, 중정의 산하단체 또는 위성조직이었다. 한국노총의 출생 증명서는 이처럼 노동자가 아니라 권력이라는 점을 확실히 인식해야만 왜 전태일 이후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이 줄기차게 한국노총의 타도를 외치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가 2007년 발간했던 종합보고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은 한국노총의 추악한 출생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4·19혁명 시기의 노동운동을 해체하고 다시는 이같은 노동운동의 싹이 자라나지 않도록 하는 강력한 덮개를 만들어 놓고자 했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중앙정보부로 하여금 직접 9명의 노동조합 대표를 선정, 한 달 가량 박정희에 대한 충성심을 세뇌교육시켰다. 그런 다음 노동조합 상층부를 통해 노동조합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하겠다는 의도 아래 산업별 체제로 재조직해 한국노총을 출범시켰다. 9인위원회는 중정의 지시 그대로 결성 발표일로부터 채 한 달도 안되는 초단기간에 전세계 노동조합운동 역사상 전무후무한, 그야말로 일사천리의 속전속결로 한국노총을 만들었다. 이는 쿠데타 정권의 억압과 공포 분위기와 중정이 지휘한 일사분란한 군사작전식 조직결성 공작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던 일이었다.

물론 이런 출생 내력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었다.

물론 한국노총의 이런 관제 어용조직 성격은 해방 후 대한노총이 출범한 초기부터 그러했다. 자유당과 이승만이 대한노총 간부를 임명하던 것에서 중정으로만 그 주무기관이 바뀌었을 뿐이지 한국노총이 어용 황색노동조합이라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한국노총의 뿌리인 대한노총은 해방 후 좌익 계열의 전평에 대항하기 위해 사실상 우익 정치깡패들이 급조해서 만든 정치단체에 지나지 않았다. 초기 대한노총 간부들이란 노동자들이 아니라 전평 조직을 공격하고 와해시키기 위해 끌어모은 우익 폭력배들이었다. 심지어 며칠이긴 했지만 이들은 이승만을 대한노총 위원장으로 추대하는 어이없는 짓까지 벌였을 정도였다.

이런 사실은 한국노총이 스스로 발간한 <한국노동조합운동사>에도 솔직하게 기술되어 있다.

대한노총은 자본으로부터 독립되어 임금노동자들이 밑으로부터 자주적으로 조직하여 올라온 것은 아니었고 자본의 엄호 하에서 임금노동자가 아닌 정치인들이 위로부터 하향적 지령을 통해 조직한 것이었고, 또한 그 제 1차적 목표를 노동생활의 제조건의 개선이 아니라 반공투쟁에 두었으며, 일상적이며 항상적인 단체로서 의도되었다기보다도 특정한 목적의 달성을 위해 단기간에 급조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그 기능의 관점에서 보아도 미군정 하에서 대한노총은 노동조합으로서의 정상적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 없다 (…) 우익 정치인과 자본가, 미군정의 지원을 바탕으로 반공투쟁을 통하여 기존의 노동조합운동을 분쇄하는 정치적 기능을 행사하는 노동단체적 형식을 취한 반공단체였다. (<한국노동조합운동사>, 한국노총, 1979)

1994년까지 한국노총이 해마다 기념식을 열었던 3월 10일 근로자의 날이 어떻게 정해졌는지를 알면 한국노총이 어떤 조직이었는지 잘 드러난다.

존경하옵는 이 대통령 각하 (…) 지난해 각하께서 5월 1일의 노동절 행사가 국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공산주의의 선전과 군국주의의 과시수단으로 왜곡되고 있음을 지적하시고 그 일자 개정을 분부하신 뜻을 받들어 대한노총은 지난해 제11차 연차대의원대회 결의에 의하여 대한노총의 창설일인 3월 10일을 한국의 노동절로 제정하였습니다 (…) 단기 4292년 3월 10일 제1회 노동절 기념대회.(<한국노동조합운동사>, 한국노총, 1979)

그런 한국노총이 2005년 11월 13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전태일 추도식에 참석한 것은 한국 노동운동 역사상 하나의 사건이었다. 당시 한국노총 위원장은 금융노조 위원장으로서 2번의 구속까지 당한 이용득이었다. 그는 한국노총의 개혁을 부르짖으면서 노총 위원장에 당선되었고, 그리고 그 상징으로서 전태일 추도식에 공식 참석했다.

전태일의 어머니이자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은 민주노조운동을 펼치겠다는 한국노총 위원장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지난날 청계노조를 비롯한 1970년대 민주노조 탄압에 앞장섰던 그 한국노총을 말이다. 스스로 거듭나겠다는 선언을 하고 민주노동운동의 한길로 나서겠다는 한국노총을 받아들이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그 뒤로 한국노총은 전태일기념사업회의 각종 회의에도 공식 참여하였고, 전태일거리다리 조성 사업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 지난 2007년 12월 10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 정책연대협약 체결식을 갖기 위해 들어오고 있다. ⓒ뉴시스

그런데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노총은 이명박 대통령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선언하였다. 번잡한 빈말과 헛된 구호를 양파껍질처럼 다 내버리면 그 속내는 결국 노동자들을 팔아 소수 노동귀족들의 배를 채우겠다는 말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모든 번잡한 이론을 타파"하고 피와 땀을 아깝게 여기지 않으며 "노자 간 친선을" 도모할 것을 다짐하고 있는 대한노총 출범 선언문 정신으로 돌아간 꼴이다.

0.01% 고소영 강부자 정권과 정책연대라니 지금 이 순간에도 이메가 정부가 취하는 각종의 노동자 탄압 아래 신음하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노동자들을 뻔히 눈 앞에 목격하면서 어떻게 연대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지 참으로 의아스럽기만 하다. 이런 조직을 민주노동운동을 하는 노동조합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참으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한국노총의 이런 배신은 역사가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이 대통령 각하에게 보내는 메시지. (…) 특히 명년 정부통령 선거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조직의 정비와 강화를 더욱 공고히 하고 우리 노동자 농민의 정당인 자유당에서 추대한 정부통령 후보자의 당선을 위해서 총역량을 주입하고 평소에 존경하옵든 각하를 지지하는 열의를 다시금 가다듬는 바입니다 (…) 단기 4292년 10월 7일 대한노총 제12차 연차정기대의원대회.(한국노총, 1979)

한국노총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 것일까.

기륭전자 노동자들을 비롯한 900만 비정규노동자들의 비참한 신음소리가 듣는 이의 심장까지 도려낼 정도로 거대한 해일로 밀려들고 있다. 그리고 38년 전 전태일의 결단이 있던 그날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노동자들의 절절한 외침이 또다시 들려오는 11월이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미래란 암담하기 짝이 없다. 지금은 무소불위로 오로지 더많은 이윤과 탐욕을 향해 질주하는 자본과 권력을 향해 싸워야 할 때이다. 그래서 한국사회의 방향을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선의 사회로 바꾸어야 할 때이다.

한국노총이 진심으로 과거와 대화하고 미래를 성찰하지 못한다면 한국노총은 전태일 묘소에 와서 전태일 정신을 운운할 자격조차 없다. 어찌 가면을 쓰고 전태일 앞에 태연히 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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