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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에 '살충제 먹이는 회사'엔 투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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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동에 '살충제 먹이는 회사'엔 투자할 수 없다" [인터뷰] 노르웨이 정부연기금 윤리위원 안드레아스 폴레스달
"뭐하는 데냐고 물었더니, '안마시술소' 비슷한 곳이라는 거야. 그래서 '안 된다'고 했지."

주식 투자로 부자가 된 어느 빌딩 주인에게서 최근 들은 이야기다. 갖고 있는 빌딩에 빈 사무실이 많아서 걱정이 컸는데, 임대 문의가 들어왔다고 했다. 하지만, 성매매 업소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접었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손해 보더라도,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역시 '믿는 사람'인 이명박 대통령을 떠올리게 된다. 지난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이 갖고 있는 빌딩 지하에 있는 업소에서 한때 성매매 알선이 이뤄졌다는 의혹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사회책임투자', 낯선 개념 아니다

물론, 성매매 업소에 건물을 안 빌려주는 건물주가 있다고 해서 성매매가 사라질 리는 없다. 하지만, 이런 건물주를 폄하할 필요도 없다.

이런 작은 결단들이 쌓여 사회를 조금씩 낫게 만들어 왔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노예 해방의 역사에서도 이런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노예무역에는 투자하지 않겠다는 자산가들이, 미국 독립 이전부터 있었다. 이런 움직임들이 세월 속에서 쌓이면서, 노예 해방 운동의 작은 거름이 됐다. 물론, 노예무역에 투자하기를 거부했던 자산가는 미국에서 노예제가 사라지는 날이 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게다.

성매매 업소에 건물을 빌려주지 않은 건물주, 노예무역에 투자 하지 않았던 자산가들…. 이런 이들의 실천을 조금 확대해서 해석하면, 소박한 형태의 '사회책임투자(Social Responsible Investing, SRI)'라고 할 수 있다.

"해로운 기업, 시장에서 도태시켜야"

재무적 성과뿐 아니라 인권, 환경 등까지 고려해서 투자하는 게 '사회책임투자'다. 사회와 생태계에 해악을 끼치는 기업이 자산을 구하지 못해 시장에서 자연스레 도태되게끔 하는 게 목적이다. 얼핏 들으면 이런 식으로 투자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의외로 규모가 크다. 미국 전체 펀드 시장의 약 10%를 차지하는 게 사회책임투자 펀드다.

최근 한국에서도 '사회책임투자'라는 말이 널리 퍼지고 있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주식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르면서부터다. 이들 기금이 단지 효율만 쫓는 것을 넘어 윤리적 기준에 따라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일 '사회책임투자'에 관한 국제회의가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국가인권위원회, 머니투데이 등이 함께 마련한 행사다.

세계 2위 규모 노르웨이 정부연기금…"힘이 있는 곳에 윤리적 통제 따라야"

이날 행사에 참석한 안드레아스 폴레스달(Andreas Follesdal) 노르웨이 정부연기금(Statens pensjonsfond-Utland, NGPF) 윤리위원은 "구속 없는 이윤 추구가 더 이상 방치돼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윤만 있다면, 어디에든 투자하는 행태에 대해 윤리적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얼핏 들으면 '좋은 말인데, 별 실효성은 없는 시도'처럼 여겨질 수 있다. 성매매 업소에 건물을 빌려주지 않았던 건물주의 소박한 '사회책임투자'처럼, 자기만족에 그칠 뿐 사회적 영향력은 미미한 실천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

하지만, 노르웨이 정부연기금의 규모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주로 석유를 통해 조성된 노르웨이 정부연기금은 약 3320억 달러(약 491조 원, 4일 오전 환율 기준)로 세계 2위 규모다. 이처럼 거대한 자금이 투자 배제 결정을 하면, 영향력도 상당하다.

어떤 종류의 힘이건, 힘이 있는 곳에는 '윤리적 통제'가 필수적이라는 게 노르웨이 정부의 생각이다. 그래서 현 집권세력인 좌파 연정은 지난 2004년 11월, 기금을 관리하는 노르웨이 은행 투자 관리(NBIM) 내 자문기구로 '윤리위원회'를 만들었다.

윤리위원회는 투자 기업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비윤리적인 기업에 대해 투자 철회를 권고한다. 이런 권고를 노르웨이 재무부가 받아들이면, 중앙은행은 부속 기구인 노르웨이 은행 투자 관리(NBIM)를 통해 해당 기업 주식을 2개월 안에 팔아야 한다. 윤리위원회의 권고가 이행됐는지 여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국 기업 중에는 한화, 풍산 등이 노르웨이 정부연기금 윤리위원회로부터 투자 철회 권고를 받았다. 비인도적인 무기인 '집속탄'을 생산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집속탄은 하나의 폭탄 속에 여러 개의 소형폭탄이 들어 있는 폭탄이다. 표적이 좁은 무기와 달리, 민간인을 대량 살상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국제 인권단체들의 비판을 받아 왔다.

"투자 철회 권고로 反인권 기업을 바꾼다"

▲ 안드레아스 폴레스달 노르웨이 정부연기금 윤리위원. ⓒ프레시안
윤리위원회 활동이 활성화된 노르웨이 정부연기금은 '사회책임투자'가 잘 이뤄지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비윤리적인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 결정을 통해 인권 침해 사례를 개선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책임투자'의 긍정적인 역할을 보여주는 사례인 셈.

지난 3일 한국방송통신대학 내 한 회의실에서 노르웨이 정부연기금 안드레아스 폴레스달 윤리위원을 다시 만났다. 오슬로 대학 부설 노르웨이 인권센터 소속 정치철학과 교수를 겸하고 있는 폴레스달 위원은 지난 2006년 '몬산토'사에 대해 투자 철회 결정을 내렸던 사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회책임투자'를 통해 기업의 인권 침해를 개선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날 폴레스달 위원과 나눈 이야기를 간추렸다. 이 자리에는 곽노현 국제민주연대 공동대표(방통대 법학과 교수), 강주현 글로벌 경쟁력 강화 포럼 대표, 정상영 국가인권위원회 사무관, 이강준 에너지정치센터 기획실장 등도 함께했다.

살충제 묻은 손으로 음식 집어먹는 아이들

- 윤리위원회는 다국적 농업 회사인 '몬산토'에 대해 지난 2006년 투자 철회를 권고했고, 2년 뒤 입장을 바꿨다. 배경이 궁금하다.

'몬산토'는 인도 타밀 나두 구자라트, 카나타카 주 등에서 하이브리드(유전자 변형) 면화 씨앗을 생산하는 업자들에게 지배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들 지역에서 면화 씨앗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광범위한 인권 유린이 벌어져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몬산토와 계약을 맺은 업자들은 8~15살 아이들을 주로 고용했다. 이 아이들은 학업의 기회도 빼앗긴 채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이들은 마스크와 장갑도 없이 살충제를 뿌려야 했다. 살충제 중독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셈이다. 게다가 인도에는 손으로 음식을 먹는 관습이 있다. 아이들은 살충제를 뿌리던 손으로 음식을 집어야 했다. 식사 전에 손을 씻을 물이나 비누조차 아이들에게 제공되지 않았다. 손에 묻은 살충제가 그대로 입에 들어갔다.

윤리위원회가 2006년 11월 조사단을 파견한 것은 그래서였다. 현지 전문가가 포함된 조사단은 극비리에 하이브리드 면화 씨앗 농장에 잠입했다. 그리고 아동 착취와 인권 유린의 현장을 직접 확인했다.

윤리위원회는 몬산토에 대한 투자 철회 권고를 냈고, 노르웨이 재무부는 권고를 받아들였다.

평판에 민감한 글로벌 기업에게 투자 철회는 효율적 압력

그리고 2년이 지났다. 2008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몬산토가 영향력을 미치는 지역에서 인권 침해 및 아동 착취 사례가 현저히 줄었다. 이 회사가 생산 현장에 대한 '제3자 감시체계'를 도입한 게 특히 주효했다. 그래서 노르웨이 재무부가 이 회사에 투자를 재개해도 된다는 권고를 내렸다.

몬산토사가 노르웨이 정부연기금 윤리위원회의 권고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평판' 때문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기금으로부터 투자가 철회됐다는 게 알려지면서 기업의 평판이 훼손됐다. 글로벌 기업으로서는 큰 피해다. 이런 피해를 감수하느니,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게 낫다는 게 이 회사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윤리를 강조하는 '사회책임투자'가 여러 한계를 갖는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인권 개선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도 분명하다.

월마트, 예방 가능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일어나서 투자 철회

- 윤리위원회가 지난 2005년 유통기업인 월마트에 대해 내린 투자 철회 권고가 큰 파장을 낳았었다. 이 권고에 따라 노르웨이 정부 연기금이 투자금 4억 달러를 회수하자, 주노르웨이 미국 대사관이 반발하기도 했다. 미국 기업에 대해 투자 철회 권고가 내려진 사례가 많은데, 여기에는 '반미 성향'이 개입돼 있다는 반발이다.

▲ 안드레아스 폴레스달 노르웨이 정부연기금 윤리위원. ⓒ프레시안
월마트는 아주 복잡하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사례였다. 유통기업인 월마트에 상품을 공급하는 업체들은 극도로 열악한 작업환경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월마트는 이들 업체가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임금을 올리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월마트는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향력을 악용해서 공급업체가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도록 부추겼다.

월마트의 공급망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보고서가 나와 있다. 아동 노동, 법정 노동 시간을 크게 넘어서는 장시간 노동, 지역 최소 임금 기준보다 낮은 임금, 노동조합 결성 방해, 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징계 등 숱한 문제가 지적돼 왔다.

물론, 월마트보다 더 심각하고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는 기업도 있다. 윤리위원회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투자 철회를 권고한 게 아니다. 예방이 불가능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 간헐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경우, 과거 문제가 있었으나 개선될 전망이 있는 경우 등에 대해서는 투자 철회를 권고하지 않는다.

월마트 사례는 충분히 예방이 가능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경우였다. 또 문제가 구조화돼 있어서, 다른 조치가 없으면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상황이었다. 그래서 투자 철회를 권고했다. (미국 대사관의 주장과 달리) 정치적인 고려 따위는 없었으며, 객관적 판단에 따라 내려진 결정이었다.

규칙 판매자가 된 정부, 규칙 구매자가 된 기업

-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엇갈린 두 개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가지는 최근 빚어진 위기가 금융 자본을 무분별하게 풀어줘서 생긴 것인 만큼, 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흐름은 대체로 이런 쪽에 가깝다.

하지만, 국내적으로는 다른 목소리도 있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판에, 무슨 규제냐는 것이다. 윤리적 고려 따위는 사치일 뿐이며, 자본에 대한 통제를 더욱 느슨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쪽에 가깝다.


어려운 문제다. 과거에는 정부가 규칙 제조자(룰 메이커, Rule Maker)였다. 하지만 지금은 규칙 소매상(룰 페들러, Rule Peddler)이 됐다. 규칙이 적용되는 기업들이 변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과거 규칙을 따르는 자(룰 테이커, Rule Taker)였으나, 이제는 규칙을 구매하는 자(룰 쇼퍼, Rule Shopper)가 됐다. 글로벌 기업들이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국가를 골라서 투자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기업들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드느라 안간힘을 쓴다. 그래야 투자를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부와 기업 사이의 관계가 달라진 상황에서, 기업과 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금융 위기, '사회책임투자'에 관심 높이는 계기 됐으면

하지만, 최근 빚어진 금융 위기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최소한의 윤리적 규제도 받지 않는 자본이 얼마나 큰 위험을 낳을 수 있는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최근 사태를 통해 자본에 대한 윤리적 규제의 필요성이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이런 기대와 달리, 일각에서는 오히려 규제를 풀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흔히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자연의 섭리'라고 말한다. 무식한 소리다. 자연계를 잘 살펴본 이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자연계에는 경쟁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서로 챙겨주고 협동하는 현상이 더 흔하다. 경쟁만 인간의 본성이라고 보는 태도는 위험하다.

그렇다면, 이런 위험한 태도를 고집하는 이들이 계속 나올까. 어두운 전망이지만, 그럴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될 뿐 아니라 전반적인 인권 상황은 대폭 악화된다. 우울한 미래가 열리는 셈이다.

노르웨이 정부연기금의 한계…"대안 투자 기금, 많이 나와야"

- 노르웨이 정부연기금은 '사회책임투자'의 모범 사례로 종종 꼽힌다. 하지만,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높다. 너무 '소극적인 모범' 사례라는 지적이다. 월마트처럼 인권 침해가 명백하고 심각한 경우에만 투자 철회를 권고할 뿐이라는 것이다.

환경 친화적인 사업을 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비율을 늘리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기대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세계 2위 규모의 기금이 환경·인권 등 긍정적인 가치와 가까운 사업에 투자한다면, '적극적인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유엔글로벌콤팩트 기준에 비춰 봐도, 이런 방향을 취하는 게 바람직하다.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노르웨이 정부연기금은 의회의 통제를 받게 돼 있다. 의회 내에서 광범위한 동의가 이뤄지지 않는 한, 현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노르웨이 정부 연기금을 관리하는 NBIM이 선정한 투자 기업 목록에서 투자 부적격 기업을 골라내는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대안적인 가치와 가까운 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역할은 다른 기금의 몫이다. '도미니 사회책임투자'가 대표적이다. 이런 기금이 많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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