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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사태' 원인, '경제 위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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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쌍용차 사태' 원인, '경제 위기' 아니다" 상하이차, 5년간 투자 ·신차 개발 ·영업 '모르쇠'
법정관리를 신청한 쌍용차 사태의 근본 원인은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아니라 대주주였던 상하이차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경영이라는 주장이 15일 제기됐다.

지난 5년간 상하이차는 인수 당시 약속했던 1조2000억 원 중 한푼도 투자하지 않았고, 신차 개발에도 아무 관심이 없었으며, 판매에 필수적인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영업망 및 A/S 정비망도 확충은커녕 오히려 축소해 왔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이날 전국금속노조가 주최한 긴급 토론회 '쌍용차,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주제 발표를 통해 이같이 주장하며 "결국 최근 쌍용차 사태는 대주주에 의해 유발된 위기"라고 분석했다.

"쌍용차, 지난 5년 간 똑같은 차만 만들었다"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한 지난 2004년부터 2008년 3분기까지를 비교해 보면 현대차와 기아차는 끊임없이 신차를 투입했다. 기아차는 비록 소형이긴 하지만 쌍용차의 주력인 SUV에까지 진출했다.

그런데 쌍용차는? "5년 간 똑같은 차만 만들었다." 비록 카이런, 액티언, 체어맨W가 새로 투입됐지만 이는 모두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하기 이전에 독자적으로 개발을 완성했거나 개발을 추진했던 것들이다. 즉, 상하이차 인수 이후 신차 개발은 전혀 없었던 셈이다.

이종탁 부소장은 "자동차 산업은 3~4년 마다 신차가 투입돼야 한다"며 "그 점에서 지난 5년 동안 쌍용차의 경영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쟁업체들의 신차 출시가 이어지는 가운데 쌍용차의 SUV 부문 시장 점유율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계속 20%대를 유지해 왔다"며 "2008년 3분기 점유율이 15.3%로 급락한 것은 신차 투입 시기를 놓친 탓이 크다"고 말했다.

정종남 투기자본감시센터 기획국장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자동차 산업은 노동 집약적이면서 동시에 자본 집약적인 산업으로 지속적으로 대규모 기술 개발과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정종남 기획국장은 "자동차 업체를 투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는 것은 그대로 망하게 두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상하이차에 팔린 뒤 5년 동안 쌍용차의 재정 상태가 악화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상하이차가 '모르쇠'로 일관한 것은 신차 개발만이 아니다. 판매망과 A/S 분야 역시 다른 완성차에 비해 턱없이 취약한 상태다. 아니, 지난 5년 간 더 취약해졌다. ⓒ연합뉴스

"자동차 회사가 판매와 A/S망 구축에는 무관심했던 까닭은?"

상하이차가 '모르쇠'로 일관한 것은 신차 개발만이 아니다. 판매망과 A/S 분야 역시 다른 완성차에 비해 턱없이 취약한 상태다. 아니, 지난 5년간 더 취약해졌다.

이 부소장은 "현대차와 기아차가 직영과 영업점 체제로 나눠져 있고 GM대우는 판매 전문 회사와 계약을 맺고 있다면 쌍용차는 아무 것도 없다"며 "특히 A/S의 경우 직영은 전국에 4곳만 남겨두고 다 팔아버렸다"고 설명했다. 즉, "생산하는 회사가 판매 시스템 구축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쌍용차를 사는 사람은 뭘까? 둘 중 하나다. 아주 적극적인 영업맨이 있거나 쌍용차를 꼭 사고 싶어 직접 영업점에 찾아가는 경우다."

당초 중국 자본인 상하이차에게 쌍용차를 매각하면서 기대했던 중국 시장 개척 역시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이 같은 분석에 노조 관계자들도 동의했다. 최기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도 "노조 집행부가 바뀔 때마다 '투자 및 고용 보장' 등 인수 당시 체결한 특별 협약 이행을 요구하는 합의서를 매년 다시 써 왔지만 매년 지켜지지 않았다"며 "투자나 A/S망 확충은 고사하고 예정돼 있던 개발 프로젝트마저 매번 뒤로 밀리곤 했다"고 털어놨다.

종합해 보면 상하이차는 대주주긴 했으나, 쌍용차의 미래와 발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부 "상하이차, '먹튀' 아니다"

▲ 정부는 이날 "상하이차를 '먹튀'로 단정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자제를 촉구했다. 정부가 상하이차에게 직접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상하이차 치하의 쌍용차의 경영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최근 제기되고 있는 '먹(고)튀(다)'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채권단도 아닌 채무자 입장에서 상하이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을 두고 '먹튀 논란'이 번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이날 "상하이차를 '먹튀'로 단정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자제를 촉구했다. 지식경제부 고위관계자는 일부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기술유출이 아직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것도 아니고 상하이 측이 약속했던 투자를 하지 않은 것도 쌍용차가 수익을 내지 못해서였다"며 상하이차를 두둔했다.

정부가 상하이차에게 직접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토론회 참석자들이 '쌍용차 사태'에 대해 상하이차의 무책임한 경영만큼이나 정부 책임을 강조한 까닭을 짐작케 한다.

정종남 국장은 "일반적으로 먹튀는 사모펀드가 해 왔던 것이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상하이차도 론스타 등과 전혀 다르지 않다"며 "다만 사모펀드가 기존 기업이 쌓아 놓은 자본을 빼먹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상하이차는 쌍용차가 보유한 완성차 제조 기술을 목적으로 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라고 주장했다.

정 국장은 "심지어 인수 금액 5800억 가운데 일부를 쌍용차의 돈으로 갚았다는 의혹마저 끊임없이 제기되는 상황"이라며 "자기 돈은 거의 안 들이거나 아예 안 들여 기술만 빼나간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종탁 부소장도 "기술 이전이란 기본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보유한 상태에서 과거 기술을 넘겨주는 것"이라며 "새로운 기술은 전혀 없는데 가진 기술을 넘겨준 것은 그에 합당한 돈을 지불 받았는지 여부를 떠나 기술 유출"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이 같은 우려는 상하이차로의 매각 당시부터 예측됐던 것"이라며 "결국 쌍용차 사태는 '해외 매각' 정책의 실패로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누가 더 많이 잘못했든, 쌍용차는 바로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다. 그리고 이 기업에 1만3000여 명의 정규-비정규 및 협력업체 노동자의 삶이 달려 있다. 지역 경제가 벌써부터 가라앉고 있고 우리 자동차 산업의 내일에도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해결 방안에 대한 모색은 과거의 책임에 대한 철저한 분석만큼이나 중요하다.

일단 법정관리 신청에 따른 향후 전망과 관련해 "법원이 쌍용차의 청산을 선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었다.

이 부소장은 "쌍용차만 놓고 보면 경제적으로 청산이 나쁘진 않지만, 자동차 산업 기반과 부품 산업을 고려한다면 청산을 선택하기가 난감하다"고 내다봤다. 쌍용차에 전속된 44개 부품 업체와 1차 협력 업체 213개, 2~3차 협력업체까지 포함해 500~600개의 연쇄 부도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도 쉬운 선택이 아니다. 쌍용차 정규직 7000여 명이 일시에 거리로 내몰릴 뿐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총 1만3000명의 고용이 불안해진다.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쌍용차가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가면 과거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구조조정 수순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오히려 닥친 문제다. 상하이차가 법정관리 신청 직전까지 2000~3000명의 구조조정을 얘기했던 만큼 비슷한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쌍용차는 2006년 554명 희망퇴직을 실시한 것을 비롯해 매각 이후 지속적으로 인력을 줄여 왔고, 특히 비정규직은 2005년 1700명이 대거 투입됐다가 매년 큰 폭으로 잘려 현재는 300여 명만 남았다"는 반발은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구조조정이 쌍용차를 살리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과제인가에 대한 논란은 존재한다.

'공적 자금 투입 이후 쌍용차'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날 토론회에서는 "기껏 국민의 돈을 들여 살려놓고 왜 이를 다시 해외 자본이나 국내 재벌에게 팔아넘겨야만 하느냐"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국유화 혹은 사회화하자"는 것이다.

단순히 기업의 소유 형태 뿐 아니라 쌍용차와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전략에 대한 고민이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부소장은 "도요타와 혼다는 이미 2시간 내로 부품을 공급하는 '적기공급 생산체제'의 변경을 검토하는 등 새로운 시스템을 유연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우리도 완성차와 부품업체의 공동 생산 시스템으로의 전환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당장의 불끄기에만 급급해서는 언제든 똑같은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너무 당연한 목소리가 '쌍용차 사태'를 통해 다시 한 번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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