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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사태, 한국 자동차산업 치부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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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쌍용차 사태, 한국 자동차산업 치부 드러냈다 전문가 "금융위기 후 美 '빅3'보다 먼저 무너진 한국"
지난해 12월 19일, 미국 행정부는 최대 자동차제조업체 GM에 134억 달러(약 17조 원)에 달하는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했다. 금융회사가 아닌 제조업체로는 전례를 찾기 힘든 규모였다. 미국 자동차업계에 지진이 났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자동차산업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일부 공장이 가동을 멈춘 폭스바겐은 GM에 구제결정이 내려진 바로 다음 날 곧바로 연방정부에 140억 달러의 지원금을 요청했다. 4분기 1950억 엔의 순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되는 도요타는 당분간 국내 생산대수를 전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국내 비정규직 4500명 전원을 해고하기로 했다.

태풍은 한국에서 불고 있다. 쌍용차 경영진인 상하이차는 지난 9일 돌연 기자회견을 열고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경영진은 곧바로 자국으로 돌아가버리는 '황당한' 결정을 내렸다. 가동이 멈춘 쌍용차는 노조원만 남은 회사로 변했다. 다음 달 안에 쌍용차는 구원의 손길을 받지 못한다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최악의 경우 협력업체를 포함해 20여만 명의 노동자가 졸지에 길바닥에 나앉을 지경이다.

수직적 하청관계, 위기에 더 취약

금융위기 발생 후 가장 먼저 무너진 곳이 GM이나 크라이슬러가 아니라 한국의 쌍용차라는 점이 문제다. 쌍용차가 무너지면서 오랜 기간 쌓여온 국내 자동차업계의 구조적 문제가 모조리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위기에 유독 취약할 수밖에 없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한국 자동차산업 특유의 병폐 중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수직적 하청구조다. 최근 쌍용차 문제가 협력업체 문제로 번진 원인인 어음결제 관행이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통상 부품업체는 대기업의 자금순환 사이클을 일방적으로 따라야 한다. 따라서 부품업체는 좀처럼 현금결제를 받기 어렵다.

이제까지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는 현금대신 결제받은 어음을 은행에 할인받아 그 돈으로 회사를 운영해 왔다. 쌍용차 사태에서 보듯 완성차업체가 법정관리 등 특정 상황에 들어가게 되면 그 순간 모든 채권은 동결된다. 당연히 어음할인 길도 막힌다. 완성차 업체가 흔들리면 위기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부품업체에는 지진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상대적으로 해외 업계 사정은 이와 다르다. 독일의 보쉬나 미국의 델파이, 일본의 덴소 등은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업체로 성장했다. 이들은 독자 기술 경쟁력을 갖고 있어 완성차업체와의 협상에서도 대등한 횡적 관계를 맺고 있다.

납품단가 인상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경기가 살아나도 대부분 부품업체가 자금 압박에 시달린다.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쥐고 있는데다 추가 투자여력도 부족한 부품업체는 당연히 연구개발(R&D) 등 기업의 미래투자에도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연구인력만 2만여 명을 보유한 보쉬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한국 최대 부품업체인 현대모비스가 보유한 연구인력이 200여 명 수준이다. 부품업체가 대형화하기 불가능한 구조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쌍용차가 흔들리면서 자동차 부품업계 전체의 생존이 위협받는 이유는 재벌 중심으로 자동차산업이 성장한 한국의 구조적 문제가 원인"이라며 "자동차 생산량으로 세계 5위인 한국에 100대 부품사가 현대모비스와 만도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고 지적했다.

▲쌍용차 노조원은 졸지에 경영자가 자리를 비운 회사의 회생책임을 떠안게 됐다. 지난해 12월 30일 경기도 평택시 쌍용차 공장에서 열린 구조조정 반대 집회에 참가한 노조원이 쌍용차의 대표적 메이커 체어맨 사진 앞을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제품 매력 자체가 낮아

국내 완성차 업체의 경쟁력이 과연 얼마나 뛰어난지도 의문이다. 제품 경쟁력은 물론 경영 능력의 경쟁력도 여전히 경쟁사에 비해 뒤쳐진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쌍용차의 경우 제품 자체 매력이 낮아 위기대응 능력이 떨어졌다. 쌍용차가 경영진 교체 후 지난 4년 간 출시한 액티언, 로디우스 등은 시장의 주목을 받는 데 실패했다. 유가부담이 커지면서 소형차 선호 현상이 높아졌다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 철지난 프레임타입 차량을 생산, 차량 성능이 경쟁차종에 비해 뒤쳐졌다는 점과 디자인이 매력적이지 못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강철구조가 들어가는 프레임타입은 이미 5~6년 전부터 퇴조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차량 전체가 통째로 연결된 모노코크 바디 타입이 우위다. 차량 무게가 가벼워져 연비향상에 큰 도움이 되고 생산비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상하이차의 기술유출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신차 C200이 쌍용차가 처음 준비한 모노코크 바디 타입 차량이다.

김 교수는 "현대기아차의 기술 수준은 아직 일본 메이커에 비해 3~4년 정도 떨어진다. 쌍용차의 기술력은 현대기아차보다 3~4년가량 떨어진다. 생산성은 1/3 수준"이라며 "근본적으로 쌍용차가 소비자가 좋아하는 차를 만들어내지 못해 판매부진이 이어졌다는 게 큰 문제"라고 했다.

생산성 논란에 대해 이창근 쌍용차 노조 기획부장은 "생산성이 낮다는 지적이 많지만 판매량이 급감한 지금 쌍용차와 여전히 정상 사업을 하는 현대차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그는 또 "경쟁사에 비해 쌍용차의 생산 라인과 설비, 노동자의 동선 등이 모두 뒤쳐진다. 상하이차는 개선을 약속했지만 투자는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영진 욕심도 어려움 키워

국내 완성차업체 경영진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도 지적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국내 최대 완성차업체 현대차의 경우 오래 전부터 국내에서 낸 이익을 해외공장에서 다 까먹는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경영진이 지나치게 해외 현지생산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빚어진 결과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데 드는 노동비용은 전체의 7%선에 불과하다. 노동자의 생산성을 문제삼기 이전에 적자만 내는 해외공장 신규 증설 전략, 무리한 판촉전략 등 경영진의 부실 경영을 문제삼아야 한다"며 "현대차가 '글로벌 톱5'를 말하지만 경영능력을 감안한 내실로 보면 톱10에도 못 들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송상훈 교보증권 기업분석팀장은 "보통 공장 생산능력의 70~75% 정도는 생산해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 현대차 미국 공장의 경우 연간 30만대 생산능력을 갖고 있어 매년 21만대 이상을 생산해야 손익분기점을 넘는다. 지난해 4분기 미국 생산량은 월 4만5000대로 추정되고 5만대로 잡아도 20만대를 생산한 것이니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송 팀장에 따르면 다른 나라 공장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 공장은 매년 35만대 이상을 생산해야 수익을 낼 수 있는데 올해 실적은 31만대로 추정된다. 현지화가 가장 잘 된 곳 중 하나로 평가받는 체코 공장 역시 최근 생산량은 월 6000대에 불과하다. 이곳은 12만대 이상을 생산해내야 수익을 낼 수 있다.

▲현대차는 글로벌 경영 전략에 따라 미국, 중국, 동유럽 등 세계 각지에 해외 생산기지를 세웠다. 사진은 지난 2005년 정몽구 회장이 미국 앨라배마 공장을 방문한 모습. ⓒ뉴시스(현대기아차 사진 제공)
이에 반해 여전히 현대차 국내 생산기지는 수익을 내고 있다. 180만대 생산능력을 갖춰 지난해 145만대 이상을 만들었다. 최근 환율상승을 감안하면 이익률은 평상시보다 더 높다.

송 팀장은 "엄밀히 말해 환율이 1200원 이상에서 머물고 있다면 해외공장 가동을 더 줄이고 한국에서 생산량을 늘려 수출하는 것이 맞다. 신공장 건설이 단기적 차원의 전략은 물론 아니지만 현재 수익성이나 효율성을 감안하면 국내에 증설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

김기찬 자동차산업학회 학회장은 "지금은 글로벌화보다 국내 생산량을 늘려야 할 때다. 그것이 회사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며 "독일 폭스바겐처럼 국내 공장의 경쟁력을 높여 마치 전 세계 공장의 '허브'처럼 기능하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무지가 재앙 근본 원인

무엇보다 국가 기간산업인 자동차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정부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당장 쌍용차 사례처럼 기술수준이 떨어지는 잠재 경쟁국에 자국 기간산업을 파는 일은 다른 나라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데 비난의 초점이 모아졌다. 자동차산업은 전후방 효과가 큰 데다 국방산업 등 기타 산업으로도 기술을 연계할 수 있어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미국 등 다른 자동차 제조국가에서는 회사 매각시 정부 관계자와 산업 전문가가 의사결정에 참여해 자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다. 매입희망측에서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자국 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면 매각 허가를 내지 않는다"며 "쌍용차의 경우 지난 정부가 시급히 매각하는 데만 급급해 자동차 산업의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아 문제를 키웠다"고 비판했다.

한 전직 정부 고위 관료 출신 인사는 "애초에 쌍용차와 르노삼성을 무리하게 회생시킨 정부 책임이 크다. 피해만 더 늘려버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쌍용차 문제의 답을 찾기가 곤란하다고 말한다. 지난 13일 오전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협력업체 간담회에서 쌍용차 관계자와 정부측 관계자,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해 지경위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그렇다면 정부의 서툰 매각 때문에 한치 앞을 보기 힘든 지경에 놓인 쌍용차는 어떤 길을 걸어갈까? 전문가들은 "답이 없다"며 난감해 했다. 현재 쌍용차의 미래는 회생, 매각, 청산 등 세 가지 답밖에 없는데 세 가지 다 쉬운 해결책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회생은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하지만 대규모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 문제다. 송 팀장은 "쌍용차는 정상가동 기준으로 최소 매달 1만대 이상을 팔아야 하는데 지난 1년간 생산량이 월 5000대 수준에 그쳤다. 다시 말해 설비와 인력을 지금의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월 5000대 생산해서 버는 돈으로는 신차개발비를 도저히 뽑지 못한다"며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데 무게를 뒀다.

노조가 고분고분 대규모 구조조정에 따를 리도 만무하다. 김 교수는 "지금 쌍용차는 경영진이 본국으로 도망가버리고 노조만 덩그러니 남아 회사 회생의 책임을 떠안게 됐다. 그 동안 경영진이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던 사람들이 이제와서 '책임지라'고 하면 따를 리가 없다"고 말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회사를 새 주인에게 매각하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삼성이 인수해야 한다"는 '소설'까지 나오게 만든 배경이다.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시나리오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 역시 어렵다. 세계경기침체가 이렇게 심한 와중에 대규모 돈을 투자할 회사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쌍용차의 낮은 매력도도 매각에 걸림돌이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파산. 최악의 답안이다. 만약 쌍용차가 파산한다면 그 충격파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최대 20만 명에 달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졸지에 길바닥에 나앉을 수 있다. 정부로서 이는 큰 부담이다.

국내 차산업의 구조적 문제는 위험을 키웠고 무능한 경영진과 노조는 한치 양보도 없이 다툼을 벌이고 있다. 무지한 정부는 도저히 답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생산량 세계 5위를 자랑하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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