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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한민국…저들의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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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 대한민국…저들의 공화국" [나도원의 '대중음악을 보다'] 참사에서 떠올린 여섯 노래
'오늘'에 이야기를 걸어오는 여섯 노래의 가사를 한 자씩 옮겨 적는다. 물론 모두 음악적으로도 의미 있는 곡들이며, 그것이 가사를 따로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어야 한다. 어떤 목적 없이 음악인의 내면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와 일반대중에게 수용된 '대중음악'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해둬야 할지 모르겠다. 당연한 것을 굳이 강조해야 하는 세상이다.

<휘파람>
작사·곡: 이기용, 노래: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

눈부신 아침에 그대는 어디에
내 곁을 떠나서 영원으로 가는가.

안개 속을 헤치고 휘파람 바람 불며
혼자 출렁이듯 가는데
굽어진 두 어깨 아리듯 높고 높아
영원으로 가는가.

혼자인 이 시간 그대는 어디에
눈부신 아침에 너에게로 가볼까

언제쯤 멀리서 휘파람 들려올까
내 맘 아득해져 오는데
차가운 바람도 잦아든 눈의 나라
안녕한지 그대는

바람도 잦아든 북쪽의 눈의 나라
안녕한지 그대는


※ 경계 때문에 나뉘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암시하며 인사를 건네는 곡이다. 하지만 다른 세계로 떠난 이들을 위한 송가로도 들린다. 그들을 잊으려거든 세상에 인적이 모두 사라진 후에 잊어야 한다. '허클베리 핀'의 네 번째 앨범 [환상… 나의 환멸](2007)에 실렸다.

<해빙기>
작사·곡: 이지상, 노래: 이지상

낯선 비둘기 한 마리 먹이를 쫓다
비행기 나는 곳으로 떠나고
굳게 잠긴 철문 안의 작은 방에선
또 어떤 아이들이 성냥불 장난할까
돌계단 틈으로 바람이 불어오면
어느새 묵었던 잔설이 녹고
무너진 예배당 십자가 위엔
또 다른 햇살이 비칠 테지

이렇듯 날은 저물고 어둠이 내리고
피곤에 지친 사람들 돌아오고
가장 높은 곳에 사는 가장 낮은 이들
그 가난한 마음에도 봄꽃은 피어날까


※ 포크 싱어-송라이터 이지상은 "지금은 마천루가 되어버린, 사라진 난곡의 기억"을 버릴 수 없었다고 한다. 그의 네 번째 독집앨범 [기억과 상상](2006)을 채우고 있는 푸르고 누른 종이에 그렇게 썼다. 뿌리 뽑힌 채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연기>
작사·곡: 장성건, 노래: 폐허

긴- 연기 그리며 치솟는 재앙
기쁨이 사라진다, 기억이 사라진다, 삶이 사라진다.

멀리, 머얼리
집 잃은 우리네 곡소리
뒷산으로 퍼지고

밤에는 횃불이, 낮에는 나랏님
살자하면 죽고 죽자 해도 죽는다.

아무것도 모른다.
연기야 올라라
우리 집 다 타네.
산에 가서 죽자
굶어 죽지 말자
모두 산에 가서 죽자


※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사람들. 《태백산맥》의 배경과 관련이 있다. 멋 부리길 좋아한 고대 그리스의 노인은 《시학》에 연민과 공포의 차이를 적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이 불행을 당할 때에 연민을, 자신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 그러할 때에 공포를 느낀다고. '연기'는 다시 피어오르고, 우린 공포를 본다. [길닦음](2004)을 발표할 때 '폐허'는 고등학생이었다.

<Missing Grace>
작사·곡: 김성환, 노래: 스트라이커스(The Strikers)

싸늘히 식어가는 너의 눈을 바라다보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손을 더럽혔던가.
내일의 꿈들은 흘러가는 핏물 속에 묻히고
역사의 흐름 속에 우리는 떠내려가네.
아직도 너의 눈을 기억해

여전히 난 너의 곁에서
깊은 숨을 쉬고는 있지만
따스한 너의 손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지
"친구여 어서 발을 들어 이곳을 벗어나줘
제발, 그것이 나의 염원이야"

싸늘히 식어가는 너의 눈을 바라다보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손을 더럽혔던가.
내일의 꿈들은 흘러가는 핏물 속에 묻히고
역사의 흐름 속에 우리는 떠내려가네.
아직도 너의 눈을 기억해


※ 멜로펑크 밴드 '스트라이커스'는 형제가 적이 되어 서로를 죽여야 했던 한국전쟁을 노래했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면 두 가지 경우 중 하나이다. 아무것도 모르거나, 아는 것이 없거나. 정규앨범에 있던 곡을 [Nothing & Everything](2007)에서 쓸쓸히 불렀다.

<까마귀떼>
작사·곡 : 박종윤, 노래: 회기동단편선

검붉은 깃털이 날린다. 푸드덕
낮에도 보이지 않도록 까맣게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검은 새
공장 불빛으로 모인다. 푸드덕

빨간색 날개를 달래 공장의 불이 꺼지면
노란 가방을 살 거야. 공장의 문이 잠기면 날아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자른다.
누군가 잘리는 소리가 푸드덕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검은 새
공장 불빛으로 모인다. 오늘도

빨간색 날개를 달래 공장의 불이 꺼지면
노란 가방을 살 거야. 공장의 문이 잠기면 날아가
이 도시를 넘어 바람처럼 폭풍처럼 바람처럼 일어나
난 불온한 꿈을 꾸었어. 우리가 차고 있는 족쇄를 봤어.
까맣게 기름투성인 날 봤어.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붉은 피를 흘리는 까마귀떼


※ 한 대학생이 자가제작하여 원하는 이들에게 선물한 [스무 살 도시의 밤](2007)은 데모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소수만이 듣기에 아까운 곡들을 여럿 껴안고 있다. 불길한 풍경을 응시하는 가사는 서늘하지만 노래하는 스무 살 청년의 목소리는 여리기만 하다.

<아, 대한민국>
작사·곡: 정태춘, 노래: 정태춘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사랑과 순결이 넘쳐흐르는 이 땅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 농약을 마시는
참담한 농촌의 총각들은 말고
특급호텔 로비에 득시글거리는
매춘관광의 호사한 창녀들과 함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기름진 음식과 술이 넘치는 이 땅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은 말고
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
우린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만족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저들의 염려와 살뜰한 보살핌 아래
벌건 대낮에도 강도들에게
잔인하게 유린당하는 여자들은 말고
닭장차에 방패와 쇠몽둥이를 싣고 신출귀몰하는
우리의 백골단과 함께
우린 모두 안전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양심과 정의가 넘쳐흐르는 이 땅
식민독재와 맞서 싸우다
감옥에 갔거나 어디론가 사라져간 사람들은 말고
하루아침에 위대한 배신의 칼을 휘두르는
저 민주인사와 함께
우린 너무 착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바보같이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거짓 민주자유의 구호가 넘쳐흐르는 이 땅
고단한 민중의 역사
허리 잘려 찢겨진 상처로 아직도 우는데
군림하는 자들의 배부른 노래와 피의 채찍 아래
마른 무릎을 꺾고
우린 너무도 질기게 참고 살아왔지
우린 너무 오래 참고 살아왔어
아, 대한민국, 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 정태춘이 이 노래를 세상에 내놓은 지 19년이 흘렀다. 이 곡이 실린 [아, 대한민국](1990)이 발표된 지 19년이 흘렀다. 그동안 이 노래와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사 연표 에서 중요한 지점에 놓여졌다. 다시 한 번, 이 노래가 불려진 후 19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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