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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실패의 요람'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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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 '실패의 요람' 돼야" 안철수 "실패자 보호해야, '기업가 정신' 산다"
온통 불안하다는 목소리뿐이다. 다니는 회사가 언제 무너질지 몰라서, 가게 임대료를 계속 낼 자신이 없어서, 유일한 노후 밑천인 부동산 가격이 주저앉을 것 같아서….

'불안'이 '혁신'을 질식시킨 사회, 창백한 시장

그래서인지 젊은이들도 움츠린 기색이 역력하다.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 기존 질서에 의해 기득권이 보호되는 영역으로 진출하려는 경향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런 이들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은 '안정'과 '전망'이다. 내일이 불안하니까 '안정'을 찾고, 자신이 선 자리가 불안하니까 '전망'이 좋은 곳을 따지기에 분주하다. 이런 계산이 창조적 열정을 질식시키면서, 경제의 표정은 점점 창백해지고 있다. 시장에서 창의와 혁신을 장려하는 기풍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경제가 오래 지탱할 수 있을 리는 없다.

사실, 흔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지적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불안한 도전에 자신을 내맡긴 적이 한 번도 없이, 늘 따뜻한 아랫목에만 머물렀던 사람이 "왜 다들 '안정'만 찾느냐"며 불평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사람은 거의 없다. 이렇게 보면, 안철수 KAIST 교수는 젊은이들에게 도전과 혁신을 독려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의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경영자, 대학 교수 등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기존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으려 했던 이력이 그의 이야기에 힘을 싣는 까닭이다. (☞안철수 교수 과거 인터뷰 보기: "'회색분자'가 왜 나쁜 말이죠?")

"기업가는 비즈니스맨과 다르다"

20일 서울 수송동에 있는 희망제작소 세미나실 희망모울에서 안철수 교수가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에 대해 강연했다. "위기의 한국경제, 진단과 새로운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마련된 희망제작소 창립 3주년 기념 특별강연 가운데 하나로 마련된 행사다.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안 교수는 용어의 정의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업가'를 한자로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企業家, 起業家, 機業家. 모두 우리말로는 '기업가'라고 읽는다. 언론에서는 '企業家'를 주로 쓴다.

하지만, 안 교수가 강조하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에서 기업가는 '企業家'가 아니라 '起業家'다. 안 교수는 "'기업가 정신'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면, 맞장구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대화를 마치고 나면, 서로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起業家'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듣는 쪽에서는 '企業家'로 받아들였다는 게다.

"'기업가 정신' 외치는 이들, 대개는…"

안 교수는 '企業家'는 영어로 'Business man'이며, '起業家'는 영어로 'Entrepreneur'라고 했다. '企業家'는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을 뜻하며, '起業家'는 새로운 가치나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람을 뜻한다는 것. 안 교수가 이야기하는 '起業家(entrepreneur)'는 꼭 창업자나 발명가만 뜻하는 게 아니다. 회사원이나 자영업자도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면 '起業家(entrepreneur)'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企業家(business man)'들, 특히 대기업에 있는 '企業家'들은 시장에서 이미 확보한 기득권에 안주하는 경향 탓에 '起業家(entrepreneur)'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그런데 대기업 사장들이 '기업가 정신'을 고취해야 한다고 나서면, 웃음이 날 수밖에.

안 교수는 "비즈니스 친화적인(business friendly) 것과 기업가 정신은 전혀 다르다. 이 두 가지를 헷갈려서는 안 된다"라고 거듭 이야기했다.

"실리콘 밸리는 '실패의 요람'이다"

하지만, '기업가 정신'만 강조하기에는 한국 경제 환경이 척박하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갖고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때 치를 대가가 너무 참혹하기 때문이다. 안 교수 역시 이런 지적을 했다. 그는 "'기업가 정신'을 이야기할 때, 흔히 미국 실리콘 밸리를 예로 든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실리콘 밸리의 성공사례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는 '성공의 요람'이 아니라 '실패의 요람'이다. 이 점을 외면하면, 우리는 실리콘 밸리에서 배울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그는 "성공한 기업을 더 키우기에는 실리콘 밸리 문화가 적절치 않다. 실리콘 밸리 문화의 강점은 실패한 기업가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갖고 도전하는 기업가가 많이 나오려면, 성공 사례를 선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장밋빛 미래만 꿈꾸다 더 비참한 처지로 떨어질 수 있다. 다양한 실패 사례에서 배우는 게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 실리콘 밸리 문화에 장점이 있다는 게 안 교수의 설명이었다.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문화, 실패 사례를 널리 알리고 여기서 교훈을 얻는 문화가 있다는 게다.

"'실패자 보호' 없이 '기업가 정신'도 없다"

그렇다면, 문화를 바꾸면 침체된 '기업가 정신'을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 그럴 리는 없다. 제도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실패자에게 회복할 여유를 주고, 재도전의 기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안전망이다. 이런 안전망이 한국에는 없다고 안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실패자가 떳떳하게 살 수 있는 '실패의 요람'이 돼야 한다"고 했다. 도덕적인 기업가가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한 경우에 대해서는 사회가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패 경험이 사회적 자산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가 정신'과 실패자에게 기회를 주는 '사회 안전망'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안 교수는 "20대 젊은이가 사업하다 실패하면, 평생 '금융사범'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대표이사 연대보증제'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런 상황을 바꾸지 않는 한 기업가 정신의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납품단가만이 문제가 아니다"

▲ 안철수 교수. ⓒ희망제작소
물론, 기업가 정신을 짓누르는 짐은 그밖에도 많다. 대표적인 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기 힘든 거래 관행이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은 값 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곳 정도로 취급당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중소기업이 연구개발에 투자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것. 대기업이 시장지배력을 통해 납품가격을 일방적으로 정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하지만, 그게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안 교수는 "(납품) 가격 문제만 들여다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그는 "납품 가격을 정하는 과정의 앞과 뒤에 있는 절차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이를테면, 중소기업과 거래하는 대기업은 납품 계약을 서류가 아닌 구두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대기업이 약속을 어겨도 중소기업이 따질 수 없다. 설령, 계약서류가 있다 해도,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을 가로막는 다른 장벽이 있다. 이런 점을 허무는 것이 공정한 납품 가격을 정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에 손해 떠넘기고, '나 몰라라'하는 대기업

"어느 대기업 임원이 사업 기획안을 마련했다. 결재를 받기 전에 그는 거래하는 중소기업 사장을 만나 미리 제품을 만들어두라고 했다. 결재가 나자마자 시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윗선에서 기획안에 결재하기를 거부했다. 이렇게 되면, 미리 제품을 생산한 중소기업은 막대한 손해를 입는다. 하지만, 대기업 임원은 나 몰라라 한다. 서류로 약속한 게 아니니 따질 수도 없다. 설령 서류가 있다 해도,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문제제기하기 어려운 구조가 있다.

결국 중소기업은 망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사람들이 창업할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다."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원한다면, 대기업 인사 평가 제도를 고쳐야"

안 교수가 소개한 불공정 거래 사례다. 그는 이런 이야기도 곁들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기업-중소기업 상생협약이라는 것을 맺도록 했다. 당시 이런 협약이 제대로 지켜질지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많았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협약 준수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런데 협약 체결 당시에 협약 준수 가능성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을까. 방법이 있다. 대기업의 인사 평가 기준이 바뀌었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대기업 구매 담당자들의 인사 고과가 1년 단위 수익으로 매겨지면,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영자가 설령 중소기업과 상생할 의지가 있다 해도, 실무자들은 중소기업을 쥐어짜게 돼 있다. 중소기업은 망하건 말건, 당장 원가를 낮춰야 승진에 유리한 구조에서 어느 실무자가 중소기업을 보호하려 하겠는가.

진정으로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을 꾀한다면, 대기업 인사 평가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서,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을 외치는 것은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벤처기업을 운영한 경험 때문에 그는 대기업이 벤처·중소기업을 쥐어짜는 사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사슴 다 잡아먹고 나면, 사자도 굶어죽는다"

▲ 안철수 교수. ⓒ희망제작소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에게 이윤을 최소한만 보장한다. 그런데 계약 체결 과정에서 대기업 실무자가 중소기업에 '집에서 쓸 프린터가 필요하다'는 식의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요구를 들어주고 나면, 그나마 남은 이윤도 사라진다. 중소기업이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구조다."


이런 구조에서는 대기업도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게 안 교수의 설명이다. "사슴들이 사는 곳에 사자들을 풀어 놓았다. 한동안 사자들은 포식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사슴이 멸종하고 나면, 사자끼리 서로 잡아먹는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사자 한 마리는 결국 굶어죽는다.

기업 생태계도 이와 비슷하다. 현재 구조에서 대기업은 당분간 성장할 수 있다. 중소기업에게 돌아갈 이익을 챙긴 대가로 몸집을 더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씨가 마른 뒤에도 대기업에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중소기업을 쥐어짜며 성장한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다 망하고 나면 결국 망하게 돼 있다. 대기업이 먼 미래에도 생존하고자 한다면, 중소기업과 상생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대기업에는 일자리 여력 없다…일자리 창출은 중소기업에서"

국가 경제 전체를 위해서라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더욱 절실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대기업이 고용하는 인원이 150만 명 이상이었다. 최대 200만 명으로 잡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지난 뒤에는 대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 수가 130만 개도 안 된다. 문제는, 대기업의 규모가 과거보다 훨씬 커졌음에도 일자리가 줄었다는 점이다. 공장의 해외 이전, 경영 혁신 등으로 인해 빚어진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정부가 대기업더러 아무리 투자하라고 종용해봤자 소용이 없다. 대기업 일자리는 더 늘어나지 않는다. 일자리를 늘리려면, 중소기업이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 신규 창업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를 찾아 고쳐야 한다.

"국가 경제 '포트폴리오' 위해 중소기업 살려야"

중소기업에 살길을 열어서 신규 창업을 활성화하는 게 절실한 이유는 꼭 일자리 때문만이 아니다. '국가 경제 포트폴리오' 때문에라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형이 필수적이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는 것은 경영학의 상식이다.

특정 경제주체에 지나치게 쏠려 있는 경제 구조는 특정 위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고도성장을 하다가도, 환경이 바뀌면 한순간에 몰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위험 분산을 위해서라도, 대기업 쏠림 현상은 막아야 한다. 대기업 중심 구조의 위험을 우리는 이미 겪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가 이런 경우였다.

"'구글'이 한국 대기업보다 착해서?…천만에!"

대기업이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계속 공급받기 위해서도 중소기업과의 상생이 필요하다. 미국 '구글'사가 좋은 사례다. 한국 상식에서라면, 미국에서 인터넷 벤처기업을 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시장을 장악한 거대기업 때문에, 신규 창업 기업이 버틸 수 있는 여유가 없다고 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새로운 인터넷 기업이 계속 탄생하고 있다. '구글'이 독창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지니고 시장에 새로 진입한 기업에 적절한 이익을 보장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이 특별히 착해서 그런 걸까. 그렇지 않다. 새로 창업한 벤처기업과 상생하는 게 길게 보면 이익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건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90%는 중소기업에서 나온다.

기존의 방식으로 이미 성공을 거둔 대기업에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들다. 신규 창업자가 시장에 진입할 공간을 열어두고, 서로 협력해야 대기업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꾸준히 공급받을 수 있다. 이런 구조가 없으면, 산업 자체가 망한다. 결국 대기업도 함께 망한다."

안 교수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런 주장이 새롭지 않다. 그는 이미 여러 인터뷰에서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도덕적으로 경영했지만 실패한 기업가'를 위한 안전망 마련 등을 주장했었다. IT(정보기술)벤처기업을 창업해 경영했던 그로서는 절실한 이야기다.

"누구나 한번은 창업을 한다…신규 창업자의 고민, '남의 일' 아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다른 보통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을까. 안 교수는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안 교수는 이날 "인생을 통틀어 한번은 창업을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체 인구의 절반 이하다. 시간이 갈수록 창업 경험자의 비율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규 창업자의 고민은 사회 구성원 대부분에게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직업 수명은 짧아지고, 생물학적 수명은 늘어나는 추세다. 인생을 통틀어 여러 개의 직업을 거치는 이들도 늘었다. 신규 창업자가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는 뜻이다.

피할 수 없는 창업이라면, 미리 준비하는 게 낫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창업을 두려워한다. '사업가 기질'이 있는 사람만 창업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안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내성적인 창업자가 성공하는 이유

"흔히 말하는 '사업가 기질'은 성공한 기업가의 조건과 거리가 멀다. 유명한 벤처기업가들을 보라. 대부분 내성적이다. 'NHN' 창업자 이해진, '다음' 창업자 이재웅, 'NC소프트' 창업자 김택진, '한글과컴퓨터' 창업자 이찬진. 만나보면 모두 내성적인 성격이다. 외향적인 성격이어야만 창업에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은 잘못된 편견이다.

오히려 자신의 장점과 단점,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을 잘 파악하고 있는 내성적인 사람들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안 교수가 소개한 '내성적인 창업자'들은 대부분 좋아하는 일을 해서 성공했다. 이날 강연의 시작과 마무리 역시 '좋아하는 일'로 성공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문제 풀이 위주 선행학습, 아이 미래를 망친다"

KAIST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해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 어울리는 교육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서는 문제 풀이 요령을 잘 익힌 학생을 키우는 게 학교교육의 과제였다면, 이제는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학생을 키우는 게 과제라는 것.

그래서 그는 교육과정을 남보다 앞질러가도록 부추기는 교육, 까다로운 문제를 빨리 푸는 데만 능할 뿐 개념과 현상의 근본을 이해하는 데는 무능한 아이들을 키워내는 교육에 몹시 비판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교육이 '영재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횡행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영재를 밀어내는 영재교육"

강연을 시작하며, 그는 말콤 글래드웰의 책 <아웃라이어>에 담긴 한 사례를 소개했다. 캐나다에서는 아이스하키 조기교육이 활발한데, 유명한 선수들의 생일을 조사해보니 1~3월에 태어난 경우가 많더라는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불과 몇 달만 일찍 태어나도 신체 발육 정도가 훨씬 앞선다. 그런데 1월생부터 12월생까지가 한데 모인 유치원에서 선수 후보를 선발하면, 1~3월에 태어난 아이들이 뽑힐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걸러진 아이들은 여러 기득권을 누리게 된다. 즉, 1~3월에 태어난 아이들이 유독 아이스하키에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4~12월에 태어난 더 많은 아이들은 재능을 계발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체육 영재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실시한 조기 선발 교육이 오히려 아이들의 재능 계발을 왜곡한 셈이다.

한번 기득권 잡으면, 영원히 기회 독점하는 사회…'기업가'는 죽는다

안 교수는 이런 사례가 꼭 체육 분야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어린 시절 기득권을 얻은 사람이 기회를 독점하는 현상이 사회 모든 영역에서 나타난다고 했다.

먼저 시장에서 기득권을 얻은 기업이 신규 창업 기업을 배재하면서 기회를 독점하는 것, 사교육을 통해 점수를 잘 받은 학생이 이후 인생에서도 배타적인 기득권을 누리는 것 등이 이런 경우다.

그리고, '기업하기 좋은 사회'를 내세워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이런 경향을 오히려 가속화하는 정책을 밀어붙인다. 일제고사 실시, 수능 점수 공개 등을 통해 아이들과 학교에 일찌감치 '낙인'을 찍는 일,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 시장 기득권을 더욱 강화하도록 돕는 일 등이 이런 사례다.

'기업가 출신'이라고 자부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기업가 출신' 안철수 교수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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