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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집과 꿈을 뺏는, 사람을 죽인 그들을 고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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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집과 꿈을 뺏는, 사람을 죽인 그들을 고발하라" [울부짖는 용산·끝] 나는 고발한다
지난 29일은 경찰의 강경 진압 과정에서 6명이 숨졌던 용산 참사가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당시 사고 소식은 한국 사회를 경악케 했다. 철거 과정에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대형 참사였다. 경찰의 진압 과정부터 재개발 정책에 이르기까지 온갖 문제를 놓고 비판이 이어졌다.

검찰은 농성을 벌인 철거민만 기소하고 경찰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후 정부는 용산 참사에 대해 일언반구하지 않았다.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철거민 유가족은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사회 역시 참사를 잊었다. 지금도 매일 사고 현장에서는 촛불 집회가 열리지만 발길은 뜸해졌다. 그 와중에 현장 주위에서 철거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다시 굴러갈 수 있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프레시안>과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 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용산 참사 100일을 맞아 용산 참사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돌아보는 글을 공동으로 연재한다.

▲ "나는 고발한다.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나는 고발한다.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몸 뉠 집 한 채가 소망인 사람들을, 집짓는 사람들을 쥐어짜 지어올린 집을 판 돈으로 배불리는 건설자본이, 죽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을 부수며 삶을 빼앗은 자리에 곰팡이처럼 피어오르는 고층 아파트들이, 오늘도 우리의 소망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이 죽었고, 사람을 죽이는 세상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집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매일같이 잠을 자고 밥을 먹고 길을 나섰다가 다시 돌아오는, 어찌 보면 특별한 것도 없고 흥미로운 것도 없는 곳이 집이다. 동네도 마찬가지다. 깜빡거리던 가로등이 하루는 나갔다가 다음날이면 돌아오고, 봄에 꽃처럼 환하게 뛰놀던 아이들이 겨울이면 볼이 빨간 채로 손을 호호 불어대는, 시간이 흘러도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동네다. 지겨운 듯 살가운 곳, 그래서 집 없이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일 뿐이다.

그런 동네에 새벽녘 갑자기 타오른 화염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망루에 올라갔던 용산 철거민들이야말로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 이상 밀려날 곳도 없어 짓기 시작한 망루가 다 지어지기도 전에 경찰이 들이닥칠 줄이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는 짐작했더라도 컨테이너에 특공대를 실어 망루를 쇠파이프로 두들겨 무너뜨리려고 할 줄이야, 위험한 줄 알면서도 대책 없이 진압을 하고 불길이 치솟는데도 구조할 생각 없이 몰아붙이기만 할 줄이야, 그 누구라고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아니, 망루에 오르게 될 줄이나 알았을까. 용산4구역의 철거민들은, 이미 사라진 수많은 동네의 철거민들은, 자신이 망루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어느 한 순간 상상이나 해보았겠는가. 전국이 개발로 들썩이며 몸살을 앓는 지금도, 자신이 언젠가 망루에 오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용산 4구역의 세입자들이 그랬듯이. 용산역과 국제빌딩 일대가 개발된다는 소문이야 몇 년 전부터 돌았을 것이다. 언젠가 개발을 한다며 도장을 받으러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을 테고 2년마다 돌아오는 임대차계약 갱신일에 '나가라고 할 때 나가겠다'는 내용이 한 줄 추가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때 되면 이사를 가야 하나, 불안함 반 체념 반인 마음으로 도장을 찍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개발'은 손에 잡히지 않는 먼 얘기, 겪어보기 전에는 모를 일이었다.

어느 순간 개발이 선명하게 삶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개발은 늘 다니던 길로 집에 가지 못하고 용역깡패들을 피해 에돌아 들어가야 하는 것이고, 어느 날 아침 문 밖을 나서니 죽은 새의 시체가 널려 있는 것이었다. 냄새 나지 않게 꽁꽁 묶어서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가, 심지어 온 동네의 음식물 쓰레기가 모두 풀어헤쳐져 집 앞에 버려지는 것이 개발이었고, 먼저 이사 간 아랫집이 반쯤 부서지고 부서진 벽 사이로 앙상하게 드러난 수도관이 터져 홍수가 난 것처럼 물이 흘러내리는 것, 비어버린 집마다 붉은 스프레이가 해골의 웃음으로 동네를 장식하는 것이 개발이었다.

이미 철거를 경험한 적이 있다는 '선배'들로부터 들은 말들이 하나같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이제 '개발'을 알고 나니 손에 남은 건 두 달 안에 이사하라는 통지서 달랑 한 장이엇다.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이야기나 들어보자고 찾아간 조합 사무실은 용역깡패들이 지키고 서있었다. 때리고 욕하고 발길질하는 것은 용역깡패들인데, 어찌된 일인지 경찰은 우리를 나무랐다. 용역이 경찰인지, 경찰이 용역인지 분간도 안될 정도로 완전히 점령된 동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이렇게 버텨야 하는 거라면 그냥 이사를 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이 전학가지 않아도 되는 거리로 집을 구하러 다녀봤다. 건너편 집은 어디로 이사 가려는지 슬쩍 물어봤다. 지나는 길에 잠깐 떠본 건데 요즘 전월세가 얼마나 올랐는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뒤에서 차가 오는지도 모르고 길에서 30분이 훌쩍 지났다. 그래도 발품을 팔다 보면 집을 못 구하기야 하겠냐는 생각으로 또 길을 나섰다. 저녁 늦게 아이들이 잠들고 나니 불 꺼진 방에 이유 없는 짜증이 차올랐다. 임대아파트 들어간다며 어디서 돈을 빌려 집을 옮기는 이들이 부럽기만 했다. 조금 멀어도 차라리 지금 이사 갈 수만 있다면 그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 일하는 동안 혼자 논 것도 아니고 몇 년 전 대출받은 돈을 갚기 싫어 안 갚은 것도 아니엇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도대체 살던 집에서 왜 나가야 하는지는 여전히 몰랐다. 선택할 것도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왜 자꾸 내몰리는 것인지, 누가 내모는 것인지, 눈물이 흘렀다.
▲ "남들 일하는 동안 혼자 논 것도 아니고 몇 년 전 대출받은 돈을 갚기 싫어 안 갚은 것도 아니엇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도대체 살던 집에서 왜 나가야 하는지는 여전히 몰랐다." ⓒ프레시안

그러나 우리가 망루는 커녕 용역깡패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그 훨씬 전부터 건설자본은, 그리고 그들과 손 잡은 조합과 용역업체과 구청은, 개발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개발은 돈을 낳는 황금의 손이었고, 지우개로 깨끗하게 지운 종이 위에 길쭉한 네모 그림을 그려 넣는 간단한 일이었다. 무엇인지 몰라도 상관없다. 그들에게는,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뽑아내고 싶은 이익에 맞춰 조합원 보상가액을 정하면 그만이고 세입자대책에 들어가는 돈도 사람 수 맞춰 적당히 나누면 그만이다.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뭐라고 항의해봤자 그냥 귀 막고 버티다 보면 먼저 지치기 마련이고, 그래도 물러나지 않는 사람들은 용역업체나 경찰이 적당히 손을 봐주니, 걱정할 일이 없다.

지금도 이 땅 곳곳에서 진행되거나 추진되거나 준비 중인 '개발'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아는 자들은 있다. 도심개발로 부족한 이윤은, 대운하를 만들어 뽑아내면 되고 혹시라도 부도 위기에 몰리면 '공적자금'이 있다. 돈이 드는 일도 아니다. 은행은 언제나 건설사에게 대출할 준비가 되어 있고, 부르는 게 값인 분양대금을 걷어 갚으면 될 일이다. 그 중의 일부는 정치자금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의원과 정부 관료들에게 흘러들어갈 것이다. 세금으로 공적자금 만들어 밑 빠진 독에 물 부어주면 그게 자신들에게로 흘러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모르고 있는 사람들, 바로 우리들. 개발이 무엇인지, 우리의 권리를 어떻게 짓밟고 있는지,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잠깐인 것이다. 광주대단지에서부터 상계동과 사당동과 행당동, 용산, 그리고 한없이 펼쳐진 땅을 따라 숱하게 내쫓겨온 사람들이, 여전히 내쫓기고 있다는 것을, 바로 우리들이 내쫓기고 있다는 것을, 차마 모르고 만다. '개발'이 투자와 자산 증식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다가왔고 내 집 마련의 꿈과 먼저 만나버렸기 때문이다. 그 꿈을 따라 치솟는 집값이 결국 내 집 마련의 꿈을 짓밟고 있어도, 집이 없어 더욱 절박한 꿈을 깰 수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우리가 사는 동네가 개발되는 것을 직접 겪어 보기 전에는 모르는 척, 눈치를 챘더라도 못 본 척, 묻어두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집 없는 설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하다. 집을 소유했든 그렇지 않든 살고 싶을 때까지 마음 놓고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주거권은 그렇게 묻혀 버리고 만다.

그래서 나는 고발한다. 인권을 죽였기 때문이다. 살아보려고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이 다섯 분이나 돌아가신 지 백일이 지나도록, 건설자본과 이명박 정권은 귀 막고 입 닫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을 권리, 살만한 집에 살 권리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거듭 주문을 걸기 때문이다. 고발은 알리고 밝히는 것, 잘못을 드러내어 알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발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잘못을 이렇게나 오래 동안 알려야 하는 사회를, 모두를 겨눈 화살을 눈 감으면 피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를 고발한다. 그리고 나는 고발한다. 이렇게나 당연한 진실을 두고서도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싸우지 못하는 나를 고발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무관심에 빚을 지우려는 나를 고발한다. 한 시인이 "나는 내일의 빵으로는 살 수 없다"고 말했다. 나도, 당신도, 내일의 집으로는 살 수 없다. 오늘 살만한 집에 살 권리를 위해, 다만 당신에게도 고발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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