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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개혁 세력의 네 가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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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개혁 세력의 네 가지 과제 [의제27 '시선'] 이명박 정부의 진화, 진보개혁 세력은?
최근 우리 정치사회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세 가지 시각에서 그것을 독해하고 싶다. 첫째, 보수 세력은 새로운 기회를 잡아가고 있다. 친(親)서민과 중도실용을 내건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은 그 증거다.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와 보수 세력에 대한 지지가 별개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중도실용이 적지 않은 국민들에게 호소력을 갖고 있으며, 그만큼 보수적 헤게모니가 확장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1.5 정부'로 진화한 이명박 정부

여기에는 이명박 정부 노선의 부분적 변화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것을 '신자유주의적 권위주의'에서 '신자유주의적 포퓰리즘'의 변화로 읽고 싶다. 등록금 후불제를 포함한 몇몇 정책들은 그 정책의 실효성과는 별개로 정치적 효과를 갖고 있으며, 무엇보다 담론 영역에서 친서민을 선점한 것이 상당한 헤게모니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2.0 정부'로의 전환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1.0 정부'에서 '1.5 정부'로의 이명박 정부의 진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둘째, 진보개혁 세력은 이러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지 못하다. 이명박 정부에 대응하는 진보개혁 세력 내에는 두 개의 정치 구도가 공존하고 있다. '민주 대 반(反)민주' 구도, '신자유주의 대 반(反)신자유주의' 구도가 그것이다. 문제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서는 최대다수 정치연합이 이뤄지지만,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 구도에서는 정책적 교집합이 사실상 부재하다는 데 있다. 미디어 관련법에 대한 대응이 전자의 대표적 사례라면, 쌍용차 사태에 대한 대응은 후자의 대표적 사례다.

중도개혁 세력과 진보 세력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과 연대의 공존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중도개혁 세력의 모호한 태도가 그 일차적 원인을 이루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거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구조조정, 유연화, 민영화 등에 대해 중도개혁 세력은 보다 분명한 태도를 표명해야 한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 시선과 대응일 것이다. 지난해 9월 미국발 금용위기로 촉발된 지구적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에 내재된 위기에 대한 새로운 계몽의 출발을 제공한 동시에 경제의 선차성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아 왔다. 적지 않은 국민들에게는 어떻게 경제를 살리느냐도 중요했지만, 경제부터 무조건 살려야한다는 무의식적 공감대 또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

진보와 보수의 새로운 경쟁 구도

경제위기 속에서의 상시적 구조조정, 청년실업,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더하여 사교육비 증가, 주택 및 전세가격 상승, 그리고 무엇보다 점증하는 사회 양극화가 다시 한 번 사회적 균열을 강화시켜 온 것이 지난 1년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민주주의의 후퇴'를 저지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경제위기가 강제하는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로 부상해 왔다. 체제적 관점에서 보면 지난 1년 동안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87년 체제의 과제와 사회 양극화 해소라는 97년 체제의 과제가 다시 한 번 전면화하고 충돌해 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상컨대, 앞으로 정치사회는 보수 세력 대 진보 세력 사이에 일진일퇴가 진행되는 일종의 진자(pendulum) 양상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친서민, 중도실용, 정운찬 총리 내정 등의 정치적 이니셔티브를 통해 보수 세력의 헤게모니가 확장되고 있지만, 점증하는 사회 양극화는 이러한 확장에 기본적인 한계를 부여할 것이다. 더욱이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처방한 과다한 재정 지출에 따른 적절한 출구 전략을 모색하는 데 작지 않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진보적 헤게모니가 팽창할 가능성도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진보개혁 세력의 헤게모니가 확장하기 위해서는 권위주의에 맞서는 민주주의,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비(非)신자유주의의 담론·정책·전략을 극대화해야 하는데 이 세 영역에서 적어도 내가 보기에 진보개혁 세력은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새로움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최근 전략적 측면에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가 '민들레연합'을 제시한 것이 그나마 주목할 대안일 것이다.

새로운 비전과 정책 발굴해야

이러한 정치적 국면을 고려할 때 진보개혁 세력은 다음의 네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첫째, 담론의 영역에서 새로운 비전의 제시가 절실하다. 보수 세력의 경우 민주화에 맞서서 선진화를 제시하고, 창조적 실용주의, 친서민·중도실용 등을 포함해 새로운 비전을 나름대로 개발해 온 반면, 진보개혁 세력은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지난 촛불집회 이후 이명박 정부의 권위주의적 법치가 강화되면서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된 것이 그 배경의 하나를 이룬다. 또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집권 세력이 아니라는 점이 새로운 비전 제시를 어렵게 하는 원인의 하나가 되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비전과 언어가 중요한 것은 비전과 언어를 통해 시민 다수의 정치적 열망이 대변되고 집약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진전 속에서 인간적 세계화를 모색하고 인간적 세계화의 모색 속에서 민주화를 진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의 제시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둘째, 새로운 정책의 발굴 역시 절실하다. 시선을 잠시 외국의 사례로 돌려보면 미국 오바마 정부는 의료 개혁에, 일본 민주당 정부는 고용 정책에 주력하고 있다. 물론 그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적어도 진보를 표방한 정치세력이라면 사회 및 복지정책에서 우위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한 걸음 물러서 생각하면 우리 사회가 압축 성장해 온 만큼 진보개혁 세력 역시 성장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을 받아 왔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성장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진보개혁 세력이라면 먼저 사회 및 복지 정책을 분명히 그리고 풍부히 하는 게 요구된다는 점이다. 이점에서 진보개혁 세력은 5대 불안(고용, 교육, 주거, 노후, 건강)에 대해 보수 세력과의 차별성을 담보한, 진정한 친서민 정책을 구체화해야 한다. 영국의 사회민주주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지적했듯이, 정책의 혁신만이 진보의 가치를 수호할 수 있다는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리더십을 복원하고 시민주체성 실현해야

셋째, 정치적 리더십을 복원해야 한다. 비전과 리더십은 동전의 양면이다. 비전은 리더십을 통해 드러나고 리더십은 비전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겠지만, 김대중과 노무현 리더십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변화하는 현실에 대해 새로운 비전과 시대정신을 제시한 데 있었다.

과연 어떤 리더십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한 순환을 마감하는 현재 새로운 진보를 이끌 수 있는가. 혁신과 통합의 리더십, 개방과 복지의 리더십, 진정성과 포용성의 리더십 등을 포함한 시대정신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물론 새로운 인적 자원의 적극적인 충원을 통해 중도개혁과 진보세력을 포괄하는 '복합적 경쟁 리더십'을 구축해야 한다.

넷째,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보수 세력에 비해 진보개혁 세력의 강점은 다각적인 소통을 통해 시민사회에 견고히 뿌리를 내려왔다는 데 있다. 하지만 최근 이 강점은 상당히 고갈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보수 세력은 지난 2004년 '뉴라이트'의 등장과 함께 시민사회 내에서 '시민사회 대(對) 시민사회'의 구도를 만들어 왔으며,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 정당-공론장-사회단체로 이어지는 보수 대 진보의 경쟁이 본격화되어 왔다.

시민사회와의 소통이 중요한 것은 정보사회의 진전에 따라 시민사회 내에서 헤게모니 경쟁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진보개혁 세력은 지난해 촛불집회로부터 여전히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촛불집회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정치와 민주주의에서의 '시민주체성'에 대한 열망이다. 새로운 '시민정치'의 실현을 위한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거버넌스를 모색하고 이를 적극 추진해야 하는 것은 진보개혁 세력에게 너무도 당연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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