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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평준화'에 속았다? 제 얼굴에 침뱉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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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가짜 평준화'에 속았다? 제 얼굴에 침뱉는 언론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성심여고의 힘
그렇지 않아도 10월 일제고사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들 마음이 뒤숭숭한데 2009년 수능 점수 성적 상위 100개교 명단이 언론에 발표되어 더욱 소란하다.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물밀 듯 터져나오는 교육 현안에 학부모들은 정신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이번 수능 성적순위표 공개는 한 언론사와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공동 작품이라는데 2009년 수능 3개 영역(언어·수리·외국어) 시험 성적 상위 100개 고등학교 명단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에 학부모들이 '역시나 특목고' 라며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왜 수능성적이 학교 서열의 기준이 되어야하는가? 수능 성적이야말로 부모가 잘 사는 집 학생이, 부모 학력이 높은 집 학생이, 수도권 학생이, 사교육과 반복 학습을 많이 받은 학생이 수십 점씩 높은 성적을 받는다는 것은 연구 결과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만약 학생의 질적인 성장을 중심으로 학교를 평가한다면 서열은 아예 달라질 것이다.

학교 효과와 선발 효과

전국 2200개 고등학교 중 수능 성적 상위 전국 1등에서 30등까지 거의 특목고(외고)가 차지했다. 특목고 학생들 수능 성적이 월등히 좋을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으나 같은 특목고 간에도 전국 1위를 한 고등학교와 전국 30위권 학교 사이에는 30~40점씩 차이가 나고 상위 100개 학교와 하위 100개 학교 사이에 과목별 평균 점수도 40여 점씩 차이가 났다고 한다. 왜 그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특목고는 학비가 한 해에 500만 원이 넘고 교육부 특별 교부금도 수십 배씩 지원되고 지자체 교육 경비에도 차이가 난다. 그런 특목고 간 차이의 원인은 무엇일까?

아쉽게도 이번 발표에 '왜'에 대한 설명은 없다. 수능 자료 자체가 대학입시 자료라서 서열화 말고는 아무것도 밝혀낼 수가 없는 것이다. 진보 쪽에서 특별한 반론을 펴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특목고의 '학교 효과'를 검증할 길은 없고 부모가 부유한, 똑똑한 학생들이 입학해서 높은 수능점수가 나왔다는 '선발효과'만 분명한데도 일방적인 해석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교과부 안병만 장관이 줄세우기 말고는 연구가 불가능한 수능 성적을 국회의원의 독촉에 의해 너무 쉽게 무릎을 꿇은 것도 문제려니와 그 자료를 받은 의원역시 '연구'는 생략하고 탐욕과 오해 속에 전국 2200개 고등학교를 줄세운 것은 비교육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일부 교육운동 단체들은 그 국회의원을 고발할 예정이다.

▲ 2010 대입 수학능력평가를 70일 남겨두고 모의고사를 치르는 고등학생들. ⓒ뉴시스

평준화의 모델- 성심여고의 힘

그런데 그 난리 법석 중에서도 의미있는 교육력을 보여주는 학교가 있다. 고교평준화 지역인 서울 성심여고이다. 조안리가 졸업하여 유명한 서울 용산에 자리잡은 이 학교가 서울 강남 지역의 고등학교들과 나란히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 학교 옆에는 입시 학원도 거의 없으며 강제 야간 자율학습도 시키지 않고 서울 지역 공동학군 중 하나라 특별히 부자 학생들이 진학하는 학교도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좀 더 자세한 것은 전문가들이 연구분석을 해봐야 밝혀지겠으나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성심여고는 성심수녀회가 설립, 운영하는 학교이다. 학교를 방문해 보면 민주적인 학교분위기 속에 자율적인 품격이 배어 나온다. 대학 캠퍼스 같은 학교 전경과 내부 시설, 건강하고 온화한 교육 철학과 리더십을 지닌 교장 수녀님(그 분은 엄청 작은 교장실에서 내방객에게 스스로 차를 내온다), 핸드폰을 교무실 책상이 놓아두고 수업에 임하는 교사들(그들은 넥타이 정장 대신 자율복을 입고 근무하는 데 교무실은 도서관 분위기를 낸다), 평화로운 표정의 학생들과 다과가 준비된 학부모 면담실과 합리적인 교복 공동 구매…. 내가 기억하는 3~4년 전 성심여고 인상이다.

인권이 중시되고 소통이 중시되는 학교, 강당에서 연극 <버자이너 모롤로그>를 공연하여 학생들에게 '여성'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십대의 정신적, 육체적 성장을 돕는다. 특히 이 학교는 학생의 학력 수준에 맞춘 수준별 수업을 실시한 학교로 이름이 나있다. 시험 성적이 뒤쳐진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에 알맞다고 생각되는 수준별 학습을 선택하고 3개월 후 다음 시험에서 성적이 오르면 그때 다시 학생 스스로 수준별 반을 선택할 수 있다. 대부분 학교가 수준별 수업을 하며 학급당 인원수를 그대로 유지하는데 이 학교는 때로는 두 반을 세 반으로 나누어 학급당 인원 수를 최소화시켜 개별 지도에 노력하기도 한다.

일반 학교에서 공부 못하는 학생들을 쓰레기 취급하고 노골적으로 무시하는데 반해 이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이 다 소중하다. 그러니 시험 성적이 올라도 학생들은 다른 반으로 가지 않고 공부하던 곳에서 머무는 경우도 생긴다. 이 모두 평준화 고교 내 한정된 예산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서울시교육청의 일부 교육관료들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가 전국적으로 일반화되지 못한 이유는 교장선생님의 리더십도 리더십이거니와 이 모든 것이 제한된 예산과 제도 속에서 교사들의 헌신성에 의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탐욕과 죽음의 경쟁 시대에 과연 오늘날 학교는 어때야하는지 성심여고는 모든 교육과정 정상화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평준화 지역의 올바른 교육의 힘을 보여 주여주고 있다. 고교 평준화가 나아갈 방향이 있다면 바로 성심여고와 같은 사례일것이다.

그러나 이 학교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대학 입학 문제였다. 고교 3년간 내신도 뛰어난 이 학교 학생들이 E여대에 가서 번번히 낙방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내신 성적이 중시된다는 수시 전형에서 말이다. 그보다 더 좋은 명문대도 가서 합격을 하는데 특정 대학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시는 것은 무엇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어느해인가 성심여고 교사들이 그 대학에 항의 방문도 해보았지만 별무 소득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좋은 고등학교가 왜 이번에 자율형사립학교로 지정되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재단전입금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원하는 자립형고등학교의 '자립' 속에는 뜻의 자립은 소용없고 돈의 자립만 중요했던 까닭이다. 우리네 교육현장은 그렇게 천박하다. 성심여고는 비록 돈많은 집 자녀가 아니어도,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아도, 강제 보충수업을 시키지 않아도, 대입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내기 어려웠어도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사랑받는 고등학교로 성장했다.

십대로서 몸과 마음이 충분히 성숙하여 좋은 대학도 가고 만에 하나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또 어떤가? 성적 상위 5%에서 행복상위 100%,인 인생, 공부제대로한 사람, 일지감치 철이 든 사람으로서 인생을 행복하게 살 여유와 당당한 태도를 갖게될 것이다. 교육의 목적 중 하나가 그런 것이 아닐까? 고교평준화가 내실화되어 그런 학교를 전국적으로 만들면 공교육 내실화는 저절로 되는 것이다. 평준화 고교의 모델이 이 정도 되면 학부모들은 안심이다. 학교만 믿으면 되니까 말이다.

진짜 평준화, 가짜 평준화

그동안 한나라당은 고교 평준화를 학력 저하의 주범이라고 끝없이 공격해 왔다. 해당 신문에서는 며칠째 '지난 35년간 가짜 평준화에 속았다'며 선정적인 기사를 내쏟고 있다. 그들은 가짜 평준화 대신 진짜 평준화를 만들자는 것일까? 바라던 바이다.

교육운동 단체들, 진짜 평준화를 원했다. 그러나 그 길은 멀고도 험했다. 말로만 평준화, 차이 나는 학교시설… 공교육 외 사교육이 대입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 부모 경제력과 정보력에 따라 드러나는 학력 차이를 학교가 줄여주지는 못할 망정 더 넓혀놓는 현실 속에서 진짜 평준화를 하자는 주장은 맥을 못추었다.

만약 한나라당 요구가 '고교 평준화 내실화가 아닌 전국의 모든 학교를 특목고처럼 만들자'는 것이라면 이 주장은 전국의 부모를 다 억대 연봉자로 만들자라는 말 만큼이나 공허하다. 억대 연봉자 다음엔 수십억 원대 연봉자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한경쟁의 실체이다.

솔직히 가짜 평준화에 속아 진짜 억울한 사람은 바로 학생들이고 진짜 평준화를 가로막은 이들은 다름아닌 보수 언론과 교육부이며 가짜 평준화를 넘어서자는 말 대신 평준화를 끝없이 흔들어댄 자신들에게 침을 뱉는 격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결자해지, 교육 격차 제대로 해결하라

최근 여야를 막론하고 외고 폐지 움직임이 거세다. 외고가 입시 목적고, 명문대를 가는 통로 인식되어 조기 사교육, 과열 경쟁, 사교육비 증가의 주범이라는데 인식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고가 폐지되어도 자율형사립고, 자립형사립고가 존재하는 한 학교 서열화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이 솔직히 '고교 평준화를 깨자'라고 주장한다면 앞으로 학교 유형별 우열 싸움은 극대화되어 초등학생들은 입시 지옥에 빠져 창의성이고 뭐고 주입식 학력으로 퇴행하는 결과가 올 것이 뻔하다. 점수는 올라도 석차는 그대로인 무한경쟁이 심해지는 것이다. 교육운동단체들은 학교 정보 공개 및 서열화에 반대했었다.

이번 사태의 휴유증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이제라도 돌이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학교 서열 정보가 공개됐으니 더 이상 막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제대로 밝혀보자.

이제 공은 그들에게 넘어갔다. 정부 여당은 학교들의 성적 격차를 어떻게 좁힐 것인지 연구해서 그 대안을 발표하길 바란다. 수능 성적을 포함한 학업성취도 표집 검사 자료 등을 이용하여 종단적인 연구를 통해 학력 격차의 원인을 분석하고 교육 불평등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내놓는 국가적인 연구에 들어서는 계기를 만들어야한다.

혼자 뒷감당이 어려우면 차제에 진보, 보수를 아울러서 전문학자로 특별연구팀을 구성해야한다. 이번엔 변죽만 울리지 말고 만천하에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 났던 학교 차이, 학력 격차를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입법기관으로서 체면 불구하고 전국 고교를 성적으로 줄세운 국회의원의 체면 치레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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