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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원과 바꾼 '잃어버린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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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원과 바꾼 '잃어버린 5년'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아이 살리기, 투표로 하자
서울 시민들은 공정택 씨의 서울시교육감 자격 상실로 28억5000만 원을 돌려받게 됐다. 유권자가 808만 명이니 그 돈이면 유권자 일인당 352원씩 돌려받게 된 것이다. 왜 우리는 혈세를 공정택 씨의 선거 비용으로 보전하고 이제 다시 돌려받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돈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난 10월 29일,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공정택 씨는 교육감 자격이 박탈됐다. 죄목은 지난해 7월 치러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제자로부터 1억900여만 원을 무이자로 빌리고 부인이 관리하던 차명예금을 재산 신고에서 누락한 혐의인데 불구속 기소된 후 세 번의 재판을 거쳐 나온 대법원 판결이다. 공정택 씨는 서울시교육감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보전받은 선거 비용 28억5000만여 원도 반환해야 한다. 그 돈만 물어내면 끝인가? 서울 시민들은 그 돈만 돌려받고 끝낼 것인가?

우연이겠지만 대법원 판결이 나오던 지난달 29일 오후, 나는 전철에서 한 소년을 만났다. 지하철 안에서 게임기에 열중한 소년에게 "너 국제중 다니니?"라고 물으니 아니나다를까 국제중학교 학생이라고 한다.

"학교는 재미있니?"
"재미 없어요."


한국 학생들 학력은 국제적으로 최고 수준이나 학습 흥미도는 한참 뒤처진다더니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그 소년의 심드렁한 표정과 지하철 원거리 통학은 다름 아닌 서울시교육감이었던 공정택 씨의 작품이다. 지난해 7월 30일, 공정택씨는 교육감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국제중 설립을 추진했다. 국제중이 국정 감사 이슈가 되자, 그는 과로를 핑계로 국정 감사에도 출석하지 않고 병상에서 국제중 설립을 진두지휘를 해가며 해치웠다.

▲ 지난 29일 대법원의 확정 판결 직후 퇴임식에 참석한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 ⓒ뉴시스
교육감 선거에서 잘못된 후보가 당선되어 놓으니 국제중 설립 말고도 그 피해가 적지 않았다. 그 모두 공정택 씨의 탓이라고 돌릴수는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교육 정책도 그에게 적지않은 힘을 보탰을 것이다. 2004년, 2008년 교육감 선거에 성공한 공정택 씨는 이명박 대통령의 교육의 전도사를 자처했다. '리틀 MB'라고도 불리던 그는 지난 5년 동안 경쟁과 학력 신장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서울시 교육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는 '학력 신장, 경쟁 교육 강화'라는 명분으로 국제중을 신설하고, 일제고사 강행과 성적 공개, 자율형 사립학교 지정, 무리한 역사 교과서 교체, 학교 선택제 시행 등 서울 교육에 변화를 가져왔다.

공정택 씨는 지난해 선거에서 전체 유권자 수 808만 명과 투표율(15%), 지지율(40.09%)을 고려했을 때 고작 50여만 명의 지지를 받았다. 전체 서울시민의 6.2%에 불과한 수치였지만 자신의 소신을 밀어붙였다. 그는 학원 영업시간을 24시간 무제한 운영하고자 수차례 서울시의회 한나라당 시의원들과 짬짜미를 한 채 평지풍파를 일으켜 학생들을 심야 학원 수업에 시달리게 했다.

마침 그의 교육감 자격이 박탈된 날, 헌법재판소에서 학원 영업 시간 제한은 필요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학원 심야 교습 금지 조례는 학생들의 수면 시간 및 휴식 시간을 확보하고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며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고 밝혔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을 지키기 위해 교육운동단체들은 서울시의회가 열리면 몇 년 동안 분주했었다. DJ DOC의 노래 가사, '젓가락질 잘한다고 밥 잘먹나요' 처럼, 그가 교육 경력이 화려하다고 해서 교육자적 자질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참고로 교육감과 교육위원 후보 자격은 교육 경력이 5년 이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가 교육감에 사퇴하게 됨에 따라 그가 강행한 교육 정책들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선출직에 유고가 생기면 다시 선거를 하는 것이 원칙이나 공직선거법 제201조 1항 '재·보궐 선거일로부터 임기 만료일까지 남은 기간이 1년 미만이면 선거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별도의 교육감 선거를 계획하지 않고 내년 6월 신임 교육감이 선출될 때까지 부교육감이 남은 임기를 책임지게 된다. 전국 16개 시·도 부교육감은 교육과학기술부가 파견한다. 부교육감의 경우 임면권자인 교과부 뜻을 거스릴 수 없어 교과부의 경쟁 교육 논리를 강화하고 교과부의 정책 방향과 보조를 맞추는 쪽으로 선회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확정 판결은 공정택 씨 개인의 직위 문제만은 아니다. 즉, 공정택 씨가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펼친 정책에 근거가 없어졌음을 의미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교육단체들은 오는 12월 초 시행 예정인 2010년 고등학교 선택제를 유보하고 백번 양보해서 2010년까지 만이라도 공정택 씨의 정책을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로운 교육정책을 책임질 사람이 없는데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패가 예정된 교육 실험을 하는 것은 어른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바라건대 선거보전금을 돌려받음과 동시에 그동안 모든 일이 일장춘몽 꿈이었으면 좋으련만. 학력 신장, 경쟁 강화를 외치는 교육감 밑에서 신음하던 어린 학생들이 10월 29일자로 해방되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전후 사정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후회해봐야 엎질러진 물이고 이미 공정택 씨는 법원의 호된 판결도 받은 터이다. 애들이 밤늦도록 학원가에서 절어 아무리 애처로워도 지금 다시 교육감 선거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부교육감의 교육관을 바꿀 칼자루도 개혁 진영은 쥐지 못했다. 누구 탓을 하겠는가? 공정택 씨의 탓도 있겠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다른 애들을 팽개쳐두고 내 아이만은 윗대가리가 될 줄 알고 '나만은 예외'라며 '우리 모두에게 좋은 교육'에 무관심했던 탓이고 교육감선거에 무관심했던 유권자 탓이다. 지난해 7월 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있던날, 정작 투표장을 나간 사람은 서울 전체 유권자 808만 명 중 15%에 불과한 120만 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학맥과 인맥을 통해 조직이 동원한 표가 많으니 후보자 검증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서울시민들은 같은 일을 되풀이 할것인가?

다행히 2010년 6월, 지방선거와 함게 전국의 유권자들은 다시 새 교육감을 선출하게 된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진정 교육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내 아이를 생각한다면, 아니 내 아이가 이미 장성하여 학교를 다 졸업했을 지라도 나와 상관없다 생각하지 말고 남의 아이도 내 아이같이 소중하게 생각해서 제발 교육감 선거에 관심을 갖자. 잘못된 교육만 욕하지 말고, 사교육비에 헛돈쓰지 말고, 돌아온 혈세 28억5000만 원에 만족하지 말고 소중한 한표를 누구에게 던질 것인지 관심을 갖자. 이번에 국고로 귀속된 유권자 일인당 352원은 돈으로서가 아니라 우리를 깨우치는 의미가 크다. 아이를 살리는 길은 그리 멀리 있지 않으며, 투표로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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