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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망언'보다 더 중요한 '4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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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망언'보다 더 중요한 '4대 문제' [홍성태의 '세상 읽기'] 고단한 2009년을 보내며
요즘 일본에서는 보수 우파가 극성을 부려서 한국인들이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보수 우파는 '천황'의 지휘 아래 조선을 침략하고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세력이다.

이러한 일본의 보수 우파를 대표하는 신문이 바로 <산케이신문>이다. 이 신문은 한국에 지국을 두고 있는데, 그 지국장은 구로다 가스히로라는 68세의 일본인 남자이다. 잘 알다시피 일본의 보수 우파는 여러 '망언'으로도 악명을 떨치고 있다. 전 총리 아소 다로와 같은 자민당의 정치인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지만 구로다 가스히로도 그에 못지않게 '망언'을 즐기는 일본의 보수 우파 언론인이다.

대단히 시끄럽고 괴로웠던 2009년이었다. 올해도 구로다 가스히로의 '활약'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지금 그는 마침내 '대박'을 터뜨렸다. 우리의 비빔밥을 저열하게 모독하는 기사를 발표한 것이다. 그는 '비빔밥은 괴롭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광고의 사진을 보고 비빔밥을 먹으러 간 미국인이 그 양두구육에 놀라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따위의 주장을 했다. 비비기 전에는 여러 재료들이 멋진 모습을 하고 있지만 비빈 뒤에는 엉망진창으로 뒤섞여서 기괴한 모습의 음식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이 변화를 '양두구육'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양두구육'은 '양 머리에 개 고기'라는 뜻으로서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것으로 사람을 속이는 것을 뜻한다.

비빔밥에 대한, 아니 음식에 대한 구로다 가스히로의 무지에 대해서는 아마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그가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식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로다 가스히로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을 '양두구육'의 음식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을 '양두구육'의 나라로 보이게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안 그래도 고단한 2009년이 구로다 가스히로와 같은 일본의 보수 우파 언론인 때문에 더욱 더 고단하게 저물고 있다. 이번에는 정말 그냥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산케이신문>조차 어쩔 수 없이 이 무식할 뿐더러 무도한 자를 회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양두구육'은 반인륜적인 일본의 보수 우파와 한국의 부일/친일 세력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사실 저무는 2009년을 보면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들은 이미 산적해 있다. 구로다 가스히로와 같은 '양두구육'의 언론인이 내뱉는 '망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과제들이 널려 있는 것이다. 물론 '양두구육'의 언론인은 사실을 왜곡하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커다란 문제의 원천이기도 하다. 구로다 가스히로와 같은 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사실 이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의 현실을 돌이켜 보자. 2009년에 우리는 정말 너무나 많은 문제들을 접하게 되었지만, 아마도 '용산 참사', '미디어 법 개악', '세종시 줄이기', '4대강 죽이기'는 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4대 문제'일 것이다.

2009년 1월 20일 아침에 발생한 '용산 참사'는 '용산 학살'이라고도 불린다. 경찰의 강제 진압 과정에서 5명의 시민이 불에 타 죽는 참사가 빚어졌다. 그들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병원의 시체실에 안치되어 있었다. '이건희 단독 사면'이 발표된 다음 날인 2009년 12월 30일 오전에 보상 협의가 타결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용산 참사'를 보노라면, 철거민은 주권자인 시민이 아닐 뿐더러 아예 사람도 아닌 모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용산 참사'는 이 나라의 기본에 뭔가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검찰의 수사 기록이 하루빨리 공개되어 진상이 제대로 밝혀져야 하며, 나아가 '용산 참사'의 구조적 원인인 투기형 난개발이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큰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강행한 '미디어 법'은 헌법재판소에서 사실상 위헌의 판정을 받았다. 따라서 '미디어 법'의 문제에 대해 국회에서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이 법치를 존중하고 국회의 권위를 지키는 올바른 길일 것이다. '미디어 법'은 이미 단순히 '미디어 법'에 그치지 않고 이 나라의 법질서와 국회의 가치에 대해 큰 의문을 제기하는 사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미디어는 현대 사회의 근간이다. 그 이용 방식이 일부 세력의 이익을 위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는 사회의 기반이 취약해지고, 사회의 능력 자체가 퇴보하고 만다. '미디어 법'을 둘러싼 온갖 추문들도 이런 사실을 아주 잘 보여준다. 부디 '미디어법'이 제 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 '용산 참사', '미디어 법 개악', '세종시 줄이기', '4대강 죽이기'는 가장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4대 문제'다. ⓒ프레시안

서울/수도권의 과밀은 이 나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서울/수도권에 몰려 살고 있고, 너무나 많은 자원이 서울/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이 때문에 서울/수도권은 과밀과 난개발에 시달리고 있고, 지방은 과소와 난개발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적으로 따져도 매년 수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과밀 비용과 과소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서울/수도권의 과밀과 그에 따른 지방의 과소는 국가적 차원에서 그야말로 재앙과 같은 것으로 여기고 적극 대처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세종시 줄이기'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세종시'는 원안대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서울/수도권의 과밀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하는 '4대강 죽이기'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극단적인 문제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4대강 살리기'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그 실체는 '4대강 죽이기'라고 해야 한다. 엄청난 파괴와 굴착을 하고, 어마어마한 콘크리트 호안을 설치하고, 무려 19개의 댐을 건설하는 단군 이래 최대의 토건 사업이 어떻게 '4대강 살리기'일 수 있는가? 그것은 강을 콘크리트 수로와 콘크리트 호수로 만드는 것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극구 '한반도 대운하'와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그 실체는 명백히 '한반도 대운하 1단계'라고 해야 한다. '한반도 대운하 1단계'를 무지막지하게 강행하고 있으면서 "임기 중에 운하를 건설하지 않겠다"는 것은 대체 무슨 소리인가? 진정으로 망국의 '한반도 대운하'를 건설할 것이 아니라면, 황당한 수심 6미터의 준설을 할 이유가 없고, 거대한 콘크리트 호안을 설치할 이유가 없고, 무려 19개의 댐을 대대적으로 건설할 이유는 더욱 더 없다. 진정한 강 살리기는 선진국에서 잘 볼 수 있듯이 기존의 콘크리트 호안을 제거하고, 댐을 가능한 한 해체해서 강변과 강바닥을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다. 강을 죽이는 '삽질'을 하지 말아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삽질'에 쓸 돈을 교육, 복지, 문화, 기술에 써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

판도라는 에피메테우스의 당부를 어기고 상자를 열어서 그로부터 온갖 해악이 튀어나와 사람들을 괴롭히게 되었다. 깜짝 놀란 판도라가 상자를 닫았으나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그러나 상자 안에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었다. 판도라는 다시 상자를 열었고, 희망이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은 온갖 해악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에게도 희망은 남아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이 새삼 부패 척결을 강조한 것에서 얼핏 희망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행정 부패, 정치 부패, 재벌 부패, 토건 부패, 사학 부패 등 부패는 더욱 더 악화되고 있는 것 같다. 더욱이 '이건희 단독 사면'은 '유전무죄 국가'의 수립을 선언하면서 아예 희망을 갖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 같다.

미국의 원로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 지적했듯이 민주주의는 단지 독재체제를 해체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사회'를 향해 계속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더욱 더 깊이 성찰해야 한다. 마침 2009년에는 민주화 20년을 대표하는 두 전직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한 사람은 놀랍게도 자살로 생을 마쳤고, 다른 한 사람은 그의 돌연한 죽음을 접하고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두 전직 대통령의 별세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더욱 극적으로 실감하게 했다. 그러나 진정 희망을 키우기 위해서는 두 전직 대통령이 대표하는 민주화 20년을 치열하고 세밀하게 연구하고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식민과 독재의 시대를 시인으로서 치열하게 살았던 이산은 세상을 떠나기 두 해 전인 1975년 여름에 '희망'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다. 그 끝 연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면서 고단한 2009년을 마감하고 싶다. 춥고 어두운 나날일지라도 아무쪼록 희망을 잃지 말자. 그리고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도달이 아니라 희망은
미달이지만
마지막까지
인생의 다함없는 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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