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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정치인가, 살림의 정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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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정치인가, 살림의 정치인가 [反MB를 넘어서 ①] 진보-개혁 연합의 가치와 비전
6.2 지방선거가 4개월 뒤로 다가왔다. 이번 지방선거는 이제까지의 선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먼저 여당의 경우 세종시를 둘러싼 논란이 선거를 압도하고 있다면, 야당들의 경우에는 연합정치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여러 언론사들이 여론조사 결과들을 속속 발표하고 있지만, 적어도 국민적 시선에서 보면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이 아직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압축사회'답게 이번 지방선거 역시 바로 눈앞에 두고서 압축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자의 시선에서 보면 이런 현상이 소망스러운 것은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자신의 정치적 의사결정권을 위임하는 더없이 중요한 절차다. 투표를 통한 후보의 결정은 자신이 속한 조직과 국가의 미래를 선택하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투표에 담긴 의미가 이러한데도 선거 쟁점들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다면, 이는 정치사회의 일종의 직무유기다.

일반적으로 선거에는 구도, 인물, 전략, 그리고 비전 및 정책이 전체 흐름을 결정한다. 여기서 나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런 흐름들을 돌아보고자 하며, 특히 비전과 정책의 측면에서 이번 선거의 쟁점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먼저 밝히고 싶은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진보개혁의 관점에서 이번 지방선거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살펴보는 데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진보개혁적 관점이란 진보적 관점과 중도개혁적 관점을 모두 포괄한다.

▲ '2010 희망을 위한 시민사회 원로-야 5당 대표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지방선거의 구도, 인물, 전략

첫째, 이번 지방선거의 구도는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듯하다. 2006년 지방선거가 그러했듯이 이번 지방선거 역시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적 성격을 갖는다. 지방선거에서 지방자치 이슈들이 부각되지 못하고 정부와 집권 여당의 국정운영에 대한 회고투표적 성격이 두드러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선거와 총선거가 정기적으로 교차되는 않는 우리 사회의 정치 현실은 지방선거로 하여금 정치적 심판의 또 다른 의미를 갖게 해 왔다.

둘째, 인물의 경우도 상당 부분 가시화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당은 여당대로 유력 후보들이 출마를 선언한 상태이며, 야당들은 야당들대로 예상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다. 선거가 갖는 돌발성을 고려할 때 물론 예기찮은 후보의 등장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정치사회의 점진적인 제도화 과정을 염두에 둘 때 이런 불예측성 역시 불출마를 선언한 일부 후보들의 전격적인 출마 결정 정도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전략의 측면에서 주목할 것은 야당들과 진보적 시민사회의 대응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야권에서 중대 이슈로 부상돼 온 것은 연합정치이며, 이런 흐름은 최근 '5+4 연합'(민주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 희망과대안, 2010연대, 민주통합시민행동, 시민주권)으로 구체화돼 왔다.

5+4 연합의 미래에 대해서는 현재 전망이 엇갈린다. 연합에 참여하는 정당 및 시민사회 세력은 연합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는 반면, 일각에서는 개별 정당 내의 복잡한 상황을 고려할 때 그 실제적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내가 보기에 연합의 성과를 결정짓는 주요 요인은 주체적 의지와 상황적 조건이다. 연합하지 않으면 패배가 분명한 일종의 벼랑 끝에 계속 놓여있게 될 경우 연합의 당위성은 커질 수밖에 없으며, 여기에 주체적 의지를 적극 결합시킬 수 있다면 연합정치는 이번 지방선거의 핵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반MB 연합을 넘어서

연합정치와 연관해 주목하고 싶은 것은 네 번째 비전과 정책이다. 정치 연합은 전략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가치 및 정책 연합이 동시에 이뤄질 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진보개혁 세력은 어떤 가치와 정책으로 연합을 모색하고 추구할 것인가. 언제부턴가 진보개혁 세력은 이른바 '반(反)MB 연합'을 강조해 왔다. 여기서 반MB 연합이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 온 '신자유주의적 권위주의'에 대한 반대를 뜻한다.

그동안 신자유주의적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흐름에는 두 가지 구도가 공존해 왔다. '민주 대 반(反)민주 구도'와 '신자유주의 대 반(反)신자유주의 구도'가 그것이다. 문제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서는 최대다수 정치 연합이 가능했지만,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 구도에서는 정책적 교집합이 사실상 부재했다는 데 있다. 지난 해 미디어 관련법에 대한 대응이 전자의 대표적 사례였다면, 쌍용차 사태에 대한 대응은 후자의 대표적 사례였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이런 반MB 연합으로 진보개혁 세력이 과연 얼마나 유권자 다수를, 무엇보다 진보개혁적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는가에 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의 시각에서 볼 때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는 최소조건이지 충분조건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반MB 연합을 넘어서 진보개혁 성향의 유권자들을 정치적으로 결집시킬 수 있는 '새로운 진보', '새로운 개혁'의 구체적인 콘텐츠를 갖추는 것이야말로 진보개혁 세력의 연합정치에 부여된 최대 과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욕망의 정치에 맞서는 살림의 정치

이른바 '욕망의 정치'가 주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욕망의 정치란 지난 2008년 4월 총선에서 나타난 뉴타운 개발, 특목고 유치와 같은 사실상 실현될 수 없으나 유권자 마음 속에 잠자고 있는 욕망을 겨냥한 보수 세력의 정치다. 욕망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물론 없다. 문제는 욕망의 정치가 가져오는 결과다. 자가(自家) 소유 또는 주택 가격 상승 같은 소박한 꿈이 이뤄질 수 있는 것 같은 뉴타운 정책에 표를 던졌지만 정작 돌아오는 것은 이제까지 정들어 살아온 곳을 떠나야 하는 비극적 현실이 욕망의 정치에 담긴 아이러니다.

이런 역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보수 세력은 욕망으로 대변되는 성장·개발·토건을 정책의 중심에 놓은 지방자치 패러다임을 새로운 선거 비전으로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더 큰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에서 볼 수 있듯이 크기와 규모에 대한 무한욕망, 우리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사적 이익에 대한 절대욕망을 부추김으로써 유권자들을 설득력하려고 할 것이다. 무한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개발이익을 부추기는 발전지상주의와 '친서민 중도실용'의 지방자치적 콘텐츠를 결합시킨 '신자유주의적 발전주의'의 포퓰리즘 버전으로 유권자들에게 다가서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욕망의 정치에 맞설 수 있는 진보개혁적 대안은 다름 아닌 '살림의 정치'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살림의 의미는 다층적이다. 그것은 죽음에 맞서는 살아 있음(living)을 뜻하기도 하고, 가계를 꾸려가는 살림살이(housekeeping) 또는 살림 도구(household goods)를 뜻하기도 한다. 요컨대 살림의 정치란 살아 있는 모든 존재의 위엄을 존중하고 옹호하고자 하는 '가치의 정치'이자, 중산층이든, 서민이든, 노동자든, 농민이든 사회적 약자들의 경제·사회적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민생의 정치'다.

국민 다수의 눈높이에서 볼 때 현재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문제는 불안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한 개인의 생애 주기를 보면, 거의 모든 삶의 지점들에서 불안이 빠르게 증가해 왔다. 갈수록 낮아져온 출산율 문제부터 시작해 높은 사교육비를 지불하고 대학에 들어가도 청년실업이 기다리고 있고, 취업경쟁을 뚫고 운 좋게 자리를 잡아도 어느 시점부터인가 퇴출의 공포를 안고 살아가야 하며, 자녀를 결혼시키고 난 다음엔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쓸쓸한 노후를 맞이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진정성의 회복과 신뢰의 복원

일자리·교육·주거·노후 그리고 건강 영역에서 빠르게 확산돼 온 이러한 불안에 대해 진보개혁 세력은 과연 어떤 정책으로 지방선거를 치룰 것인가. 살림의 정치, 가치의 정치, 민생의 정치의 시각에서 초등학생의 급식 문제부터 시작해 노후 세대의 일자리 창출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진보와 새로운 개혁의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할 때에만 연합정치의 설득력이 배가될 것이다. 국민 절반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MB 연합만을 강조할 경우 그것은 단지 '소극적 반대'를 위한 정치적 연대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소극적 반대를 넘어서 '적극적 대안'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MB 연합을 넘어선 플러스 연합, 다시 말해 '반MB, 살림 연합'이 요청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반MB, 살림 연합의 관점에서 일자리·교육·주거·노후·건강의 5대 불안에 대한 주요 의제들을 새롭게 설정하고, 이 의제를 정책 대안들로 구체화하며, 이 대안으로 중산층, 서민, 노동자, 농민에게 가깝게 다가설 때에만 의미 있는 선거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나타난 정치사회의 흐름을 볼 때 이번 지방선거는 세종시 문제, 남북정상회담 등의 쟁점들과 밀접히 연동돼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진보개혁 세력의 연합정치가 더해져 복잡다단한 구도 속에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는 상황적, 전략적 조건일 따름이다. 주체적 의지의 측면에서 보면 현재 진보개혁 세력에게 부여된 최대의 과제는 진정성의 회복과 신뢰의 복원이다. 욕망의 정치에서 맞서서 살림의 정치를 설득력있게 구체화하는 것이야말로 회복과 복원으로 가는 출발점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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