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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사회주의, 한국에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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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자유주의+사회주의, 한국에 희망은 있다"

[화제의 책] 박동천의 <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

<프레시안>의 애독자라면 누구나 '박동천의 집중 탐구'를 접해봤을 것이다. 2009년 반년 가까운 기간 동안 줄곧 호평을 받으며 연재된 글이다. 거기서 박동천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공유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고정관념 네 가지"를 통렬하게 고발하고 비판했다. 비록 72회 모두를 연속적으로 읽지는 못했지만 읽을 때마다 거의 예외 없이 공감하거나 자극을 받곤 했다.

<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박동천 지음, 모티브북 펴냄)이 출간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을 것처럼 나 역시 기뻤다. 시간에 쫓겨 읽지 못한 것들이 많았는데 이제 한 권의 책으로 묶여져 나오니 어찌 기쁘지 아니했겠는가. 더구나 <한겨레>(2010년 1월 28일자)에서 "자유주의, 사회주의와 손잡을 여지 많아"라는 제목으로 한 면을 할애해 이 책을 소개한 글을 읽었을 때는 그 기쁨이 배가됐다. <프레시안> 연재 시에는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이념 논의, 특히 사회적 자유주의에 관한 내용이 보강된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책을 손에 넣고 목차를 보니 과연 거기에는 '진보와 보수' 그리고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장들이 제1부에 들어가 있었고, 마지막인 제6부의 제목은 '절차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로 잡혀있었다. 가벼운 흥분마저 느꼈다. 사회적 자유주의 혹은 진보적 자유주의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특히 한국 정당정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이념이라고 여겨오던 차였는데, 이제 그 이념의 한국적 적용을 고민한 글을 접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 <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박동천 지음, 모티브북 펴냄). ⓒ프레시안
마음이 급해져 머리말을 읽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진보 세력이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어떻게든 이념적으로 중도에 해당하는 유권자들에게 뭔가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10쪽)는 구절이었다. 맞다. 그럴 필요가 있다. 절로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박동천은 선언했다. 진보 진영의 사람들이 벗어나야할 네 가지 프레임을 제2부에서 제5부까지 하나씩 논의한 다음, 거기서 벗어난 "새로운 방식의 사고와 제도적 지향"을 제시하겠다고. 네 가지 프레임에 대한 논의는 <프레시안>을 통해 거의 알고 있었으므로 나의 관심은 당연히 그가 제시하겠다는 '새로운 제도적 지향,' 즉 제6부의 절차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에 쏠렸다.

거의 60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을 통독한 결과는 솔직히 말해 실망이었다. 물론 나의 실망은 자초한 것일 수도 있다. 애초부터 박동천이 주력한 부분이 제2부와 제5부에 걸쳐 다루고 있는 네 가지 프레임에 대한 분석과 비판 그 자체였다면 내가 실망한 건 순전히 나의 성급함 때문이다. 그 경우 이 책은 <프레시안> 연재 시에 그러했듯이 충분히 높게 평가받을 만한 책이다.

제2부의 마녀 사냥 프레임, 제3부의 권력 숭배 프레임, 제4부의 선견지명 프레임, 제5부의 집단 생존 프레임 등은 모두 박동천의 지적대로 우리 사회의 진보를 바라는 사람들의 "정치의식을 편협하고 폐쇄적이고 피상적으로 만드는 원인"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사유 형식은 반드시 깨트려야한다. 그래야 사회 진보를 이룰 수 있다. 그러한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 것만으로도 이 책의 사회적 가치는 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네 가지 프레임에서 벗어난 '새로운 제도적 지향'의 제시까지도 (박동천이 머리말에서 약속했듯이) 이 책의 목적으로 삼았다면 나의 실망은 정당하다. 제6부를 보라. 제목을 보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절차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대한 설명은 너무 미흡하다. 제6부의 따라서 이 책 전체의 마지막 문장은 "요컨대 절차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의 결합이야말로 현실적으로 책임감 있는 한도 안에서 추구할 수 있는 진보적 이상의 최대치"라고 돼있다.

그런데 왜 "요컨대"라는 표현을 썼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간다. 절차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에 대한 필요성과 당위성, 그리고 그 제도 대안의 한국적 맥락에서의 현실성 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앞에 없는데 어떻게 "요컨대" 그렇다는 것인가?

마음을 추슬렀다. 뭔가 내가 덜 이해한 부분이 있으리라 여기고 책 전체의 맥을 되짚어봤다. 다시 잘 들여다보니 이 책에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를 대안적 제도로 여기는 박동천의 생각이 곳곳에 펼쳐져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친절한 형태로 서술돼있지 않아서 독자들로 하여금 각자 재구성해서 읽어야하는 수고를 끼친다는 점이다. 이 책의 재구성 과정을 통해 사회적 자유주의에 대하여 얻을 수 있는 배움은 특히 다음과 같은 것들이 중요하다.

첫째, 사회적 자유주의의 진가는 다양한 이념들을 순서척도(ordinal scale)에 의해 구분할 수 있을 때 충분히 음미할 수 있다. 필자가 제1부 제3장에서 자세히 설명한 대로 진보와 보수는 명목척도(nominal scale)에 의해 칼로 무를 베듯 명확히 구분될 수 있는 성질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좌파나 우파의 구분 역시 마찬가지다. 자유와 평등은 상호모순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으므로 (진정한) 자유주의와 (진정한) 사회주의 역시 명목척도가 아닌 순서척도에 의해 구분될 뿐이다. 즉 시의성에 따라 어느 쪽이 좀 더 자유 혹은 평등을 강조하느냐의 정도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 혹은 자유주의를 보수주의와 대동소이한 뜻으로 사용하고 이해하는 작금의 한국적 현실은 크게 왜곡된 것이다. 자유주의 좌파는 사회주의 우파보다 더 진보적일 수도 있다.

이쯤에서 사회적 자유주의자의 이념 지도상의 위치를 생각해보자. 존 스튜어트 밀, 토머스 힐 그린, 레너드 홉하우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 존 롤스, 아마르티아 쿠마르 센 등과 같은 사회적 자유주의자는 시장의 자유를 지상의 가치로 여기는 경제적 자유주의자 혹은 신자유주의자들과 달리 사회적 시민의 자유를 중시한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일지라도 시민으로서의 자유는 권리로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할 자유에는 빈곤과 소외, 그리고 공포로부터의 자유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국가는 사유재산제도와 시장경쟁제도 등에 일정한 제한을 가할 수 있다. 어느 사회적 자유주의자가 주장하는 사유재산권에 대한 제약 폭이 넓고 그 정도가 심할수록 그는 사회주의자의 위치에 가까워진다.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명목척도에 의한 위치 구분은 이렇듯 어려운 일인 것이다.

특히 사회적 자유주의자를 사회민주주의자와 구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주지하듯 전후 서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와 시장 경쟁을 인정함으로써 점진적 개혁을 통한 자본주의 폐기와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사회민주주의 본래의 목표를 사실상 포기했다.

그들은 단지 조세 및 복지 정책 등에 의한 재분배를 통해 사회경제적 약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함으로써 사회적 정의와 연대를 지켜가고자 할 뿐이다. 말하자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제 자본주의를 타도가 아닌 교정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자본주의 체제내의 '충성된 반대자'(loyal opposition)로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우파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유주의 좌파에 가까운 이들로 봐야 한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무엇으로 그들을 사회적 자유주의자들로부터 구분해낼 수 있겠는가.

사회적 자유주의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 그리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등을 순서척도라는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그들 간의 관계를 "단선적 모순이라기보다는 복합적 균형의 문제"로 보고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두 번째 중요한 배움인 중도 좌파의 가치와 연결된다.

두 번째인 중도 좌파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박동천은 "정치의 진보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기득권 수호에서 사회적 약자 보호 쪽으로 이동하는 진행만이 아니라, 배타성에서 개방성으로 이동하는 진행도 진보의 중요한 의미에 포함해서 추구해야 한다"(522쪽)고 강조한다. 편협하고 폐쇄적이어서는 의미상으로도 진정한 진보라 할 수 없으며, 현실에서의 진보 정치 구현도 어렵다는 것이다.

박동천은 사회적 약자 보호를 중시한다는 측면에서는 같은 정도의 좌파일지라도 배타성, 경직성, 인간성에 대한 불신 등이 높을수록 극좌파에 가까우며 반대로 개방성, 관인과 아량, 그리고 불확실성의 수용 정도 등이 높을수록 중도 좌파에 가깝다고 규정한다. 즉 중도 좌파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중시함은 물론 (강자나 라이벌 세력 등에 대한) 태도도 개방적이고 유연하며 너그러운 진보인 것이다.

박동천은 한국의 진보정치는 이들 중도 좌파에 의해 발전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523쪽). 우선 그들의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은 진보 내부의 고질적인 분열증상을 극복"하는 데 유용하다. 그들은 예컨대 평면적인 "노선 차이가 있을 때 즉각적으로 돌진해서 장렬히 산화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물러나 차이 속의 공존 가능성을" 찾아내려는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연합을 가능하게 한다.

또 "이런 습성은 진보 진영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보수 세력을 상대하거나 나아가 다른 민족들을 상대할 때에도 훌륭한 소통의 능력으로 연결"된다. 사회경제적 약자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사회의 진보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국내외 기득권층의 특권을 양보 받음으로써 가능한 일이므로 보수 세력과의 협상과 타협은 불가피한 일이다. 이때 보수 진영을 불신과 증오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들을 관인과 아량의 개방적 태도로 대할 수 있는 중도좌파의 역할이 중요함은 당연한 일이다.

사회적 자유주의는 이 중도 좌파의 덕목을 충분히 갖출 수 있는 이념 틀이다. 상기했듯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 그리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등을 명목척도가 아니라 순서척도에 의해 구분한다. 주요 지향점들을 배타적이거나 대립적인 항목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스펙트럼 안에 포함된 요소들로 이해하므로 그들 간의 조화나 균형을 과감하게 도모하곤 한다.

개인의 자유를 가장 존중해야 할 가치로 보면서도 (아니 그러한 까닭에) 사회적 공동체와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의 인식론적 개방성, 관인과 아량, 그리고 불확실성의 수용 정도 등이 높다는 사실과 연관돼 있다.

셋째, 사회적 자유주의 등과 같은 진보 이념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발전시켜감으로써 구현할 수 있다. 사실 시장 혹은 경제의 민주화를 주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실질적 민주주의'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발전 정도에 비례하여 발전한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되었으나 실질적 민주주의는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국민의 대다수가 사회경제적 약자인 나라에서 시장경제는 극소수 강자의 이익에만 복무하는 방식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진정한) 다수결의 원칙을 보장해야 할 그 나라의 민주주의 절차에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 대다수의 이익이 구조적으로 침해받는 상황이 지속되겠는가.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도시빈민 등 사회경제적 약자이기 마련인 여러 이익집단들로 구성되는 대다수 국민 개개인의 사회적 시민으로서의 자유를 보호하고자 하는 사회적 자유주의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그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부단히 개선하고 개혁해갈 때 비로소 이 땅에서 실현된다.

자고로 진보는 구조와 제도에서 사회경제적 문제의 해법을 찾는다. 사회적 자유주의를 대안 이념으로 제시하고자 한다면, 그 이념 구현에 기여할 수 있는 제도 해법을 같이 내놓아야 한다. 막연히 절차적 민주주의의 발전이 필요하다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이 점에서 나는 <프레시안> '박동천의 집중 탐구' 제6부 제4장에 있었던 '의회 개혁의 방향'이 이 책에서는 '사법 제도 개혁의 방향'으로 대체된 것이 못내 아쉽다.

거기서 박동천은 대통령제, 정당제, 선거 제도 등 정치 제도의 개혁 필요성을 설파했다. 물론 사법 제도의 개혁도 절차적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의 중요도는 정치 제도의 개혁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왜 더 중요한 것을 덜 중요한 것으로 바꾼 것일까? 만약 이 책에서 그가 <프레시안>에서의 정치 개혁 논의를 더욱 진전시켜주었더라면 (나같이 사회적 자유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이 책을 읽게 된 사람들이 볼 때) 이 책의 완성도는 크게 높아졌을 것이다.

나라면 이 책의 제6부 제4장에서 '합의제 민주주의(consensus democracy)'로의 개혁 방향을 제시했을 것이다. 전형적으로 비례대표제, 정책과 이념 중심의 온건 다당제, 책임내각제 등의 정치제도로 운영되는 합의제 민주주의는 '다수제 민주주의(majoritarian democracy)' 혹은 승자독식 민주주의에 비해 사회경제적 약자의 보호와 배려에 더 뛰어나다. 전체로서 다수를 구성하는 여러 약자 집단들의 정치적 참여가 더 철저히 보장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 제도의 개혁을 통해 한국의 절차적 민주주의 발전을 이 합의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유도해간다면 사회적 자유주의의 진전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넷째, 한국에서의 사회적 자유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한국인들의 "사유 형식" 변화도 필요하다. 박동천의 주장대로 한국인들의 대다수가 마녀 사냥, 권력 숭배, 선견지명, 집단 생존의 프레임에 매몰되어 폐쇄적이고 경직적이며 가식적인 사고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면 사회적 자유주의는 발전하기 어렵다. (여기서 그의 주장 자체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그 주장은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이념 구분을 순서척도가 아닌 명목척도로 할 가능성이 크고, 중도 좌파의 중요성에 공감하기 어려우며, 양보와 절충 그리고 타협을 중시하는 합의제 민주주의와의 친화성도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러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면 여기서 사회적 자유주의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곤란하다.

박동천은 "현재 한국 정치 체제가 시스템의 차원에서 드러내고 있는 문제들은 사회의 전반적인 사유 형식과 생활 방식이 달라져야 해결될 수 있다"고 잘라 말하며(576쪽), 이는 "의식과 문화의 변화의 문제이므로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문제인 것이라고 규정한다(581쪽). 그렇다면 대체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한국인들 대다수의 사유 형식과 생활 방식을 바꿀 수 있겠는가? 절망까지는 아닐지라도 매우 비관적인 규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과연 그렇게 비관적일 수밖에 없는가?

낙관과 희망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나 같은 사람은 박동천의 이 규정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의 문화론적 주장을 배격하거나 문화 변수의 중요성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문화 변수의 영향력이 상당함을 인정하되 그 변수는 교육 등의 인위적 노력을 통해 충분히 조절 가능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을 택할 경우 문화 변수의 중요성을 아예 무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그 변수의 중요성을 실제로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제도 변수가 문화 변수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게다. 정치, 경제, 사회복지 제도 등이 개선되면 그렇지 않던 사람들도 보다 너그럽고 유연하며 개방적이 된다는 사실은 무수한 사례를 들어 증명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적 처방에 더 하여 교육의 강화와 같은 두 번째 방법까지 동원된다면 한국인의 사유 형식과 생활 방식은 충분히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실 박동천이 속상해하는 네 가지 부정적 프레임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비해 한국인들의 삶이 이나마 개선될 수 있었던 까닭은 '근거 없는 낙관'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이 다른 한 쪽에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더구나 사회적 자유주의의 발전과 관련해서는 근거 있는 희망도 제시할 수 있다. 이 정도면 한번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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