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프로야구도 지방은 식민지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프로야구도 지방은 식민지다 [베이스볼 Lab.] 우수 신인도 수도권에 쏠려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지방의 식민지화’는 야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야구의 지역별 선수자원 격차가 최근 10년 새 그 이전보다 크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고교 유망주의 서울 쏠림 현상도 더 심화됐다. 반면 신생구단 NC와 kt가 창단한 경남, 경기 지역은 최근 들어 우수 선수자원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베이스볼 Lab.>이 한국프로야구 KBO 리그의 원년부터 2014년까지 출전 선수의 출신고교와 해당 고교의 지역을 분석한 결과다. 재일동포와 외국인 선수는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으며, 연도별로 WAR(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 1승 이상의 주전급 성적을 한 번 이상 기록한 선수들만을 대상으로 삼았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이 선수들을 ‘주전급 선수’로 통칭할 것이다. 각 지역별로 얼마나 우수한 선수를 많이 배출했는지를 알아보는 조사의 의도에 따라, 팀 승리에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한 시즌 WAR 1승 미만 선수들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역대 KBO리그 선수들의 WAR은 에서 볼 수 있다.



먼저 프로야구 원년부터 2014년까지 33년간 지역별로 한 시즌 WAR 1승 이상을 최소 1번이라도 올린 주전급 선수를 몇 명이나 배출했는지 분석한 결과, 예상대로 서울 출신 고교에서 가장 많은 206명이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65명)와 광주, 부산(각 64명), 인천(39명)과 전북(35명), 경남(31명)이 뒤를 이었다. 서울은 분석 대상인 총 613명의 선수 중 33.6%를 차지하며, 대구(10.6%), 광주, 부산(10.4%)의 3배를 훌쩍 넘는 비율을 보였다. 또 서울 지역 고교 출신으로 주전급 선수들이 만들어낸 WAR 합계는 1944.6승으로 대구(853.3승), 광주(813.2승) 등 다른 대도시의 두 배가 넘는다.

반면 야구단을 소유한 지역임에도 인천지역은 총 39명(6.4%), 대전은 총 13명(2.1%)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가장 주전급 선수가 적었던 지역은 5명(이재주, 안경현, 조경택, 안병원, 양훈)이 나온 강원도(0.8%)였으며, 전남 지역도 11명으로 1.8%에 머물렀다. 신생 NC의 연고지인 창원이 포함된 경남지역은 31명의 주전급 선수가 나오면서 5.1%를, kt의 연고지 수원이 속한 경기권은 16명으로 2.6%에 그쳤다.


투수와 타자를 따로 나눠봐도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컸다. 역대 시즌 주전급 투수 숫자를 보면 서울권 고교 출신은 총 80명으로 전체의 30.4%를 차지했고 WAR의 합계도 564.7승에 달했다. 그 뒤로는 33명을 배출한 부산이 12.5%로 뒤를 이었고, 28명이 나온 광주가 10.6%를 차지했다. 반면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투수력이 약했던 삼성의 연고지 대구는 24명(9.1%)으로 4위였고 19명의 전북(7.2%)과 18명이 나온 인천(6.8%)이 뒤를 따랐다.


또 역대 주전급 타자 숫자도 서울은 총 126명으로 전체 350명 가운데 무려 36%가 이 지역 고교 출신이었다. 2위는 41명이 나온 대구(11.7%) 지역 고교였고 36명이 나온 광주(10.3%)가 세 번째였다. 반면 한화의 연고지인 대전(7명)과 충북(9명), 충남(18명)은 세 권역을 다 합쳐도 350명 중 35명으로 10%가 채 되지 않았다(9.7%). 21명이 나온 인천 역시 경기(8명), 강원(3명)까지 바짝 끌어모아도 9.2%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지역 간 격차는 기본적으로 지역 간 고교 야구부 숫자의 차이가 원인이다. 서울 지역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14고교가 야구부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 대구와 인천은 야구부가 각각 3개 팀에 불과하고, 한화의 연고지인 대전은 대전고 1개 학교만이 야구부를 운영한다. 광역권으로 범위를 넓혀도 대구-경북은 4개 학교, 대전은 5개 학교가 전부다. 학교 수가 많으면 선수 수도 많고, 그만큼 많은 선수가 배출되는 게 당연한 이치다. 오랜 기간 지역 연고팀의 1차 지명 제도를 유지해온 KBO리그는 몇몇 지역 구단에 ‘기울어진 운동장’과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우수 선수의 지역 편중 현상은 과거에 비해 최근 들어 더욱 심각해진 것으로 나타난다. <베이스볼 Lab.>의 앞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최근 10년간(2005~2014년)과 그 이전 기간(1982~2004년)을 따로 나눠 살펴본 결과, 최근 10년간 우수 선수가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 지역으로 더욱 집중되는 경향이 드러났다.

가령 투수의 경우, 2004년까지 주전급 활약을 보여준 투수는 총 148명. 이 중 28.4%에 해당하는 42명이 서울 연고 고교 출신이었다. 그러나 최근 10년 동안에는 115명 중 38명이 서울 지역 고교 출신이었으며, 비율은 4.6% 뛰어오른 33%에 달했다. 2004년까지 15명의 주전급 투수를 배출했던 부산 지역도 2005년 이후에만 18명을 배출하며,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 이상 뛰어올랐다(10.1%->15.7%).

반면 호남권과 경북 권역 출신 중에는 주전급으로 활약하는 투수의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원년부터 2004년까지 19명을 쏟아낸(12.8%) 광주는 2005년 이후 9명(7.8%)을 내놓는 데 그쳤고, 대구는 사정이 더 심각해서 2004년 이전 18명(12.2%)에서 최근 10년간 6명(5.2%)으로 급감했다. 범위를 도 단위로 넓혀도 상황은 마찬가지. 2004년까지 전북(13명), 전남(5명)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던 우수 투수가 2005년부터는 전북 6명, 전남 2명에 그치며 합계 6.9%에 머물렀다. 2004년까지만 해도 전북, 전남에서 나온 주전급 비율은 12.2%과 광주(12.8%)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더 심각한 건 경북 지역으로, 2004년까지 5명(3.4%)가 나온 이 지역 우수 투수는 2005년 이후 딱 1명(권혁)에 불과했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6%로 강원도(0.4%)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다.

타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2004년까지 서울권 출신으로 주전급으로 활약한 타자는 총 67명(33.8%). 그런데 최근 10년간은 총 59명의 서울 고교 출신 타자가 시즌 1WAR 이상을 기록하며, 전체 152명 중 38.8%의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다. 서울 다음으로는 광주가 총 23명(2004년 이전 13명)을 배출해 15.1%로 뒤따랐다. 최정이 맹활약 중인 경기 지역(7명, 4.6%)과 이대호, 손아섭 등이 등장한 부산(14명, 9.2%)도 근소한 증가폭을 보였다.

반면 다른 지역들은 대부분 제자리걸음 아니면 뒷걸음질 쳤다. 가장 충격적인 건 최근 10년간 주전급 활약을 펼친 타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대전지역. 여기다 과거 장종훈 등 강타자를 여럿 만들어낸 충북권마저 1명(추승우) 배출에 그치며, 가뜩이나 힘겨운 한화의 선수단 구성을 더 고통스럽게 했다. 그나마 북일고가 속한 충남에서 9명(5.9%)이 나왔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거리다.

삼성의 연고지인 대구와 경북 지역도 상황이 심각했다. 2004년까지 대구는 무려 31명의 주전급 이상 타자를 쏟아낸 강타자의 산실이었다(15.7%). 특히 프로야구 초창기 10년(1982~1991)간은 대구 출신 타자 중 1WAR 이상 타자가 30명(22.1%)이나 배출되어, 42명이 나온 서울(30.8%)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호시절을 보냈다. 해당 기간 대구 출신 타자들이 만들어낸 WAR 합계는 298.2승으로 서울지역 합계(281승)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국가대표급 강타자가 즐비했던 당시 대구 지역 야구의 수준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2005년 이후로 각도를 좁히면, 대구 고교 출신은 단 10명(6.6%)만이 주전급 활약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 프로 초창기의 영광과 비교하면 ‘대구 야구의 몰락’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수준이다. 이는 해당 지역 연고지팀인 삼성 라이온즈가 2000년대 이후에만 7차례 우승하며 승승장구하는 상황과도 대조를 이룬다. 경북 역시 최근 10년 이내에는 강민호 포함 3명을 내놓은 게 전부다(2.0%). 마산고, 용마고 등이 속한 경남권역도 최근 10년간 6명(3.9%)으로, 2004년 이전의 14명(7.1%)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투수와 타자를 합해 프로 초창기 10년간과 최근 10년간을 비교해 보면, 프로야구 탄생 이후 33년간 전개된 서울 쏠림-지방 공동화 현상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1982년부터 1991년 사이 서울 지역 고교가 배출한 주전급 이상 선수는 63명으로 전체의 29%를 차지했다. 그러나 최근 10년간은 비율이 급등해, 첫 10년간에 비해 7.3%가 늘어난 36.3%를 점유했다. 그 외에는 광주(+2.8%)와 부산(+2.3%)도 초기 10년보다 소폭 증가했다. 3.6%가 늘어난 경기권은 2000년대 등장한 윤석민, 최정, 김광현 등 일부 선수들이 만들어낸 결과로 풀이된다.



반면 초기 10년간 주전급 선수의 19.8%를 길러낸 야구도시였던 대구 지역은 최근 10년간은 6% 배출에 그쳤는데, 이는 6.4%가 나온 인천보다도 떨어지는 수준이다. 또 한화의 연고지인 대전과 충북, 충남도 프로 초창기 10년에 비해 우수 선수 비율이 줄어들었다. 신생팀인 NC의 연고권인 경남지역, 그리고 NC가 1차 지명권을 행사하는 고교들이 포진한 전북 지역도 프로 초창기에 비해 우수 선수가 줄어든 것으로 드러난다.

이 같은 주전급 선수의 서울-대도시 쏠림 현상에 대해 아마추어 야구 현장에서는 지방 고교 야구부의 잇따른 해체와 쇠퇴, 그리고 지방 야구 유망주들의 조기 야구 유학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바람의 아들의 아들’, 이종범의 아들인 이정후 선수가 서울의 휘문고로 진학한 것은 상징적인 장면이다. 광주지역의 한 고교 감독은 “최근 어린 선수들이 일찌감치 서울이나 수도권 지역의 학교로 야구 유학을 가는 경우가 많다”며 “지방 고교들은 갈수록 선수 수급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광주 같은 대도시는 다른 지방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다. 호남 지역의 한 고교 감독은 “우리 고교 바로 인근의 중학교 선수들이 있지만, 대부분 우리 학교 대신 광주 지역이나 대도시 학교로 진학을 택한다”고 밝혔다. 이 학교는 대도시 학교에 가기 힘든 수준의 선수들, 다른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전학한 선수들로 선수단을 구성한다. 물론 지도자의 능력과 선수의 노력이 만나 몇 년에 한 번씩 프로에 진출하는 선수가 나오기도 하지만, 마른 수건을 짜서 목을 축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런 지역간 불균형이 결국은 프로야구의 구단간 불균형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이는 KBO리그가 원년부터 계속 시행했고, 한동안 폐지했다가 일부 구단들의 강력한 요구로 부활시킨 1차 지명 제도 때문이다. 매년 열리는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가장 재능이 뛰어나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이 1차 지명에서 부름을 받는다. 실제로 <베이스볼 Lab.>의 조사 결과 1차 지명자, 상위 지명자일수록 하위 라운드에 비해 프로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이 조사 결과는 추후 다른 글을 통해 소개할 예정이다).

▲2014년 프로야구 신인 지명 선수들. ⓒ연합뉴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지역 간 고교의 숫자, 우수 선수의 숫자 차이가 워낙 크다 보니 1차 지명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치르는 대결이나 마찬가지다. ‘전력평준화’라는 신인 드래프트의 근본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우수 선수가 넘쳐나는 서울, 광주, 부산 등 몇몇 지역 구단들은 선택의 폭이 넓지만, 삼성과 한화 등 연고지 선수 자원이 빈약한 구단들은 선택지가 넓지 않다. 특히 신생팀인 NC와 kt의 연고권에서는 프로야구 역대는 물론 최근 10년을 돌아봐도 뛰어난 선수 찾기가 ‘착한 갑’ 찾기보다 힘들 정도였다. NC에는 군산상고와 전주고를, kt에는 소래고를 지명 대상 학교로 떼어주긴 했지만 전주고는 해체했다 최근 재창단한 학교이고 소래고는 근래에 창단한 신생 고교다. 1차 지명 제도 부활을 기존 구단들의 ‘신생팀 죽이기’ 전략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KBO와 대한야구협회가 고교야구부 창단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결과, 전국적인 고교 야구부 숫자는 60개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신규 창단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방 야구부의 활성화와 우수 선수들의 서울-대도시 쏠림 현상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대책이 필요하다. 또 프로 원년부터 지금까지 불공정 경쟁이 펼쳐진 신인 드래프트 제도를 어떻게 ‘전력평준화’라는 본래 취지에 맞게 운영할 것인지도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