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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보수주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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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유승민 보수주의'를 기대한다 [주간 프레시안 뷰] 유승민 연설 vs. 문재인 연설
지난 8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국회연설을 들으셨습니까? 좋은 연설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지금 다루어야 할 문제들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가져야 할 관점을 솔직하게 담고 있는 연설이었습니다. 혹시 못 들으셨다면 전문이라도 찾아 읽어보셨음 합니다. '의제선점을 위한 진보 흉내내기'라는 식으로 무시하고 지나쳐버릴 연설이 아니었습니다.

유 원내대표는 자신의 연설에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라 이름지었습니다. 필자도 대한민국 정치가 가야할 길이 그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기 위해 공정하게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것, 이를 내세우기에 인기가 없는 정책일 수 있으나 그래도 필요하면 꼭 실행해야 한다는 것, 바로 그것을 위해 합의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 모두 공감하고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유 원내대표가 정치의 본령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세월호 참사 문제를 제일 먼저 다룬 것도 좋았습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을 가장 우선으로 삼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종자 가족들이 '피붙이의 시신이라도 찾아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이라고 절규하고 있음을 전하며, "세상에 이런 슬픈 소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라고 한 대목에서는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의 고통이 얼마나 깊고 큰지 잘 알지 못하면 나올 수 없는 말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를 옹호하거나 야당을 공격하지 않고 구체적인 사안들을 들어 협력해 달라 요청하는 태도를 취한 것도 좋았습니다. 새누리당의 과오와 한계를 인정한 부분도 좋았습니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호인정과 긍정 속에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제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할 일인 것입니다.

'보수가 서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정 지켜낼 것이 무엇인지를 감별하고, 그것을 잘 지켜내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주공화제의 가치와 규범이 바로 진정 지켜내야 할 것입니다. 부와 권력을 내세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지배와 피지배로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을 통해 공생과 공화의 관계를 맺게 하는 것 말입니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공통점은 바로 그런 '좋은 보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듯이 부와 권력을 지닌 집단과 개인들의 사회적 책무 수행이 잘 이루어진 나라라는 것입니다. 혁명과 같은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부와 권력의 완전한 상실과 박탈이 두려워 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그러합니다.

대한민국이, 특히 정치가 엉망이라면 그것은 좋은 보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보수를 제대로 견제하며 추동해내는 좋은 진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좋은 진보는 어디까지나 외부의 존재일 따름입니다. 따라서 직접적 이유는 진보의 존재 혹은 강약과 상관없이 부와 권력으로부터 소외되고 배제된 다수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과 복리를 위해, 무엇보다도 행복추구에 있어서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시의적절한 정책을 구사하는 좋은 보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반공주의라는 이름으로 타자를 억압하고 배제하는 보수, 무슨 일만 있으면 적과 희생양을 만들어 그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보수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 참! 진보를 가장한 채-혹은 그것조차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채- 사익추구만 하는 이도 사실은 나쁜 보수의 한 얼굴입니다. 그들은 사익의 보존을 진보적 권리라고 여기며 자신의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탐욕스러운 보수에 다름아닙니다.

유 원내대표의 연설을 보며 대한민국에서 이제 나쁜 보수가 아닌, 좋은 보수의 출현을 기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쩌면 그 좋은 보수의 이름이 '유승민 보수주의'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유 원내대표가 자신의 길로 굳건히 갈 수 있을지는 불확실합니다. 당장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은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라며, 말에 대한 책임도 원내대표 스스로 져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가 거론한 문제들, 특히 '공정한 고통분담'의 문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지금부터 바로 시작해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입니다. 당연히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도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할 사안입니다. 그 사안들의 해법을 갖고 자웅을 겨뤄야 하는게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입니다. 더 나아가 공정한 고통분담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선거결과에 상관없이 '초당파적 기구'도 만들어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 필요하면 정부운영도 함께 책임지며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도 나서서 정치권에 힘을 실어줘야 할 사안들입니다. 유 원내대표가 이를 잘 포착하고 고통분담 문제를 해결하려는 각고의 노력을 지속한다면 나쁜 보수와 작별하고 좋은 보수를 생성-결집시킬 수도 있습니다. 진영을 넘어 미래로 나아가다 보면 새로운 지지층이 인입되기도 하고, 형성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연합뉴스

9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국회연설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거론해보고자 합니다.

문 대표의 연설은 대부분 당 대표 취임을 계기로 쏟아낸 말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유능한 경제정당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한 것입니다. 또 경제를 살리겠다 약속한 것입니다. 그런 중 경제라는 말을 99번이나 언급했다해 화제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을 살려내기 위해 100번 해도 모자를 이야기가 경제 이야기일 것인지라, 경제를 강조한 것에 공감가는 바 큽니다(한 번 더해 100번 채워도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영을 넘어 합의의 정치를 이루자'는 유 원내대표와 같은 정치의 역할과 행동의 방식, 특히 제1야당의 그것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주로 정부가 잘 못했고, 잘 해야 한다는 식의 언사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공무원연금개혁 등 현안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입장으로 오고 있다며, 자기 당의 우위를 뽐내기도 했습니다. 제1야당 대표인지라 정부를 비판하는 것과 당의 프라이드를 강조하는 것이 역할이기도 하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감동이 없었습니다. 설렘을 주지도 못했습니다. 새롭지 않은 경제이야기를 새롭게 조명해주는 연설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가령 사람중심의 경제는 어제 오늘 표방해왔던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간 왜 안 되었는지, 그래서 이제는 어찌 하겠다는 것인지 등에 대한 전향적 방침을 제시했어야 합니다. 행동의 규범과 언어로 말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개념적 규범과 언어로 말하고 말았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미국의 루즈벨트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다수 국민들이 아는 사람도,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는 폴 크루그만의 말도 인용했습니다. 글쎄요, 지금 대한국민 국민들이, 특히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제1야당 대표에게 누군가의 명언을 상기시켜주고, 알려주길 바라고 있을까요?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길을 제시해주길 바라고 있지 않을까요? '문재인 노선'의 표방 같은 것 말입니다. 4.29 재보선을 앞두고 호남의 지지가 필요하고, 수도권 고학력 중산층의 지지도 필요한 상황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1야당 대표, 그것도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대표는 더 넓고 큰 이야기를 해주었어야 합니다. 아주 시급한 문제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실현해내겠다는 악바리 근성을 보여주기도 해야 합니다. 실제 그 의지를 구현하도록 만드는 '신의 한 수'를 내놓기도 해야 합니다. 욕심이 과한 것인가요? 기대가 크고 그 기대에 부응해야만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의 길로 정부와 여당을 유인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끝으로 기대를 낮추어 한 마디 하고 마치겠습니다. 아니 기대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에 대해 질문 몇 개 던지고 마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그저 정부 비판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지요? 여러 현안 중 하나로 배치해 다루면 되는 것이었는지요? 물론 "세월호의 슬픔을 대한민국을 바꾸는 계기로 삼읍시다. 사람이 먼저인 나라로 대한민국의 가치와 철학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국정기조를 대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리 말하려면 뭔가 방안을 제시했어야 하는 것 아니었는지요? 아닌가요? 아니라면, 왜 그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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