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무가 의무인 한국에서는 예비역 병장 출신의 선수를 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의무복무제가 아닌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서 군 출신 운동선수를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이나 한국전쟁 등에는 테드 윌리엄스나 밥 펠러, 조 디마지오, 윌리 메이스 등의 기라성같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참전하기도 했었지만, 이는 이미 먼 과거의 일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 시간으로 4월 25일, 밀워키 밀러파크에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에서 미치 해리스가 마운드에 오르면서, 1921년 이후 거의 100년만에, ‘해군사관학교’ 출신 메이저리거가 탄생했다. 해리스는 2008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3라운드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지명됐지만,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의무복무기간을 채워야 하기에 바로 프로 선수가 되지 못했다. 대신 그는 페르시아 걸프만, 남미 등의 지역의 해상을 누비면서 장교로 4년 8개월 8일동안을 미 해군에서 복무했다. 군 복무 기간 도중 해리스는 두 번이나 해군에 특별 청원을 넣어봤지만 모두 기각되면서 해리스는 5년의 의무 복무 기간을 채워야만 했다.
2013년 마침내 제대한 해리스는 늦은 나이에 프로 선수로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했고, 작년에는 싱글A에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트리플A에서 시즌을 마치면서 메이저리그에 한 걸음 다가섰다. 제대 후 처음 카디널스 팀에 합류했을 땐 구속이 80마일 중반대에 그쳤지만, 제대로 야구에 전념하기 시작하자 해리스의 구속은 90마일 후반대로 크게 뛰어올랐다.
드래프트 된 지 거의 7년이 지난 미치 해리스가 처음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오르는 ‘경사’는 팀 동료 피터 보저스의 또 다른 ‘경사’ 때문이었다. 외야수 피터 보저스는 첫 아이의 출산으로 인해 출산 휴가를 얻었고, 그로 인해 생긴 로스터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콜업되었다.
미치 해리스가 처음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르는 ‘경사’는 팀 동료 애덤 웨인라이트의 ‘불운’ 때문이었다. 카디널스의 에이스인 웨인라이트는 타격 도중 왼쪽 아킬레스건 부상을 입었고, 아마도 이번 시즌 다시 웨인라이트의 모습을 보기 힘들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게 웨인라이트의 뒤에 이어 마운드에 오르게 된 해리스는 초구부터 시원한 95마일짜리 패스트볼을 뿌리더니 첫 상대타자인 애덤 린드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고, 1.1이닝을 무실점으로 마무리하면서 성공적인 메이저리그 데뷔를 신고했다.
미치 해리스가 처음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르는 ‘경사’는 팀 동료 애덤 웨인라이트의 ‘불운’ 때문이었다. 카디널스의 에이스인 웨인라이트는 타격 도중 왼쪽 아킬레스건 부상을 입었고, 아마도 이번 시즌 다시 웨인라이트의 모습을 보기 힘들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게 웨인라이트의 뒤에 이어 마운드에 오르게 된 해리스는 초구부터 시원한 95마일짜리 패스트볼을 뿌리더니 첫 상대타자인 애덤 린드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고, 1.1이닝을 무실점으로 마무리하면서 성공적인 메이저리그 데뷔를 신고했다.
미치 해리스가 메이저리그 첫 삼진을 잡는 영상(//www.youtube.com/watch?v=waZAmBGyLHc)
해리스는 다음 날(한국시간으로 오늘)에도 밀워키를 상대로 8회에 등판해 한 이닝을 던지면서 삼진 한 개를 잡으면서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늦게 데뷔한 덕에 이미 29살짜리 신인이 된 해리스가 메이저리그에서 얼마나 뛰게 될 지, 연봉 대박을 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해리스 개인에게 있어선 해군에 복무한 기간동안 야구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이 큰 손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리스가 세계의 평화를 수호해 준 덕에, 안전하게 메이저리그가 펼쳐질 수 있었기에, 어쩌면 해리스는 이미 야구계에 큰 공헌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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