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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재키 로빈슨 데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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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재키 로빈슨 데이 이야기 [베이스볼 Lab.] 재키 로빈슨 데이에 42번 유니폼을 입는 이유
재키 로빈슨은 20세기 최초의 메이저리그 흑인 선수다. 메이저리그는 그가 데뷔한 날짜인 1947년 4월 15일은 매년 ‘재키 로빈슨 데이’로 기념하고 있다. 흑백 분리의 시대에 메이저리그의 유일한 흑인 선수로 뛰게 된 로빈슨에겐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위대한 선수이자 인간이었던 로빈슨은 그 시련을 이겨냈고 결국 메이저리그에서의 흑백 분리를 깨게 된다.

로빈슨은 ‘야구 선수’ 이상의 선수였고 인권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베이브 루스는 야구를 바꿨고, 재키 로빈슨은 미국을 바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의 등번호 42번은 전 구단 영구결번이 되어 현재 아무도 쓸 수 없는 번호가 되었지만 매년 4월 15일 만큼은 메이저리그의 모든 선수들이 42번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 재키 로빈슨의 업적을 기린다.
여기까지는 메이저리그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다면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러나 모든 선수, 코칭스태프, 심판 등이 재키 로빈슨 데이에 42번 유니폼을 입기 시작한 지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어떻게 해서 재키 로빈슨 데이에는 모두가 42번을 입게 되었을까?

1997년 4월 15일,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재키 로빈슨의 42번을 리그 차원에서의 영구결번으로 지정하면서 미국 4대 스포츠(NFL, MLB, NBA, NHL) 중 최초로 특정 번호를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이후 2000년 NHL, 북미 아이스하키 리그에서 웨인 그레츠키의 99번을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하면서 현재 미국 4대 스포츠에서 전 구단 영구결번된 선수는 두 명이 됐다). 그리고 2004년엔 4월 15일을 재키 로빈슨 데이로 지정했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오늘날처럼 모두가 42번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마리아노 리베라 같은 선수처럼 42번 번호가 영구결번되기 전부터 이미 42번을 가지고 있던 선수들만이 42번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2007년 정규시즌이 한창 진행되던 도중, 일요일 밤에 당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였던 버드 셀릭의 전화벨이 울렸다. ‘메이저리그의 얼굴’ 중 하나였던 켄 그리피 주니어의 전화였다. 그리피는 커미셔너에게 재키 로빈슨 데이에 영구결번된 42번 유니폼을 입어도 되느냐 물어봤고, 버드 셀릭은 “기꺼이 그 날에 일시적으로 42번의 영구결번을 해제하겠다.”라는 말과 함께 다른 선수들에게도 42번 유니폼을 입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좋은 뜻이었지만 처음부터 모두가 이 운동에 동참한 것은 아니었다. 재키 로빈슨을 존경하지 않는다거나,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몇몇 선수들은, 심지어는 흑인 선수들조차 이미 영구결번된 42번 유니폼을 입는 것은 재키 로빈슨을 기리는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거나, 자신은 42번 유니폼에 어울릴 만큼 훌륭한 선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42번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4월 15일에 재키 로빈슨의 42번 유니폼을 착용하고 경기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늘어갔고 마침내 2009년에는 모든 선수, 감독, 코치, 심판 등 그라운드 위에 등번호와 함께 서는 사람들이 모두 재키 로빈슨의 42번 등번호와 함께 그라운드에 서면서 이제는 우리에게 친숙해진 선수단 전원이 42번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이 완성됐다.
재키 로빈슨 데이에 42번 유니폼을 입는 전통을 처음 시작한 켄 그리피 주니어는 2007년 인터뷰를 통해 “재키 로빈슨이 없었더라면, 내가 오늘 입고 있는 유니폼을 입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역사에 만약은 없는 법이지만, 로빈슨이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20세기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 선수가 탄생했을 것이며 언젠가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흑백 분리가 철폐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가 늦춰졌더라면 재키 로빈슨이 데뷔하기 이전 태어났던 켄 그리피 시니어가 야구선수를 꿈꾸지 않았거나, 메이저리거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야구선수를 꿈꿨던 켄 그리피 주니어도 지금의 켄 그리피 주니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니어가 없었더라면, 일 년에 단 하루 그라운드의 모든 사람들이 42번 유니폼을 입으면서 재키 로빈슨을 기리는 모습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모두가 42번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은 결국 켄 그리피 주니어의 전화로부터 시작된 걸까? 아니다. 이는 시계바늘을 더 돌려 한참 전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재키 로빈슨이 선수생활을 하던 시절, 재키 로빈슨의 우편함은 경기에 나오면 총으로 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편지로 가득했다. 이에 당시 팀 동료였던 진 허마스키는 “우리 모두가 42번을 달고 경기에 나가면 어떨까?”라는 농담을 했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허마스키의 농담이었을지도 모른다.
재키 로빈슨 데이를 맞아, 로빈슨뿐 아니라 그가 인종차별의 벽을 깰 수 있도록 도와준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기억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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