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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잃은 엄마아빠들, 밥은 먹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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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잃은 엄마아빠들, 밥은 먹게요" [고잔동에서 온 편지<19>] 안산의 내일을 묻다

경기도 안산. 수도권 대표적인 공업 도시이자, 외국인이 도시 인구의 약 6.5%에 달하는 '외국인의 도시'. 사람들이 아는 안산의 이미지란 그런 것들이었다. 적어도 '그날' 전까지는.

2014년 4월 16일 이후 안산은 '슬픔의 도시'가 되었다. 안산시 통계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은 총 254가구, 가족 구성원으로 따지면 1029명이다. 희생자의 같은 반 친구, 회사 선후배, 같은 연립주택 주민 등등을 포함하면 세월호 참사의 간접 피해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주민 모두가 슬픔을 공유하는 공간, 노란 현수막이 1년 365일 펄럭이는 거리에서 누군가는 말한다. "사고 이후 우리 동네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져서 불편하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말한다. "그래도 우리들이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곳"이라고. 그리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변해야 한다"고. 참사는 이들이 선택한 일은 아니지만, 결국 극복하는 건 그들의 몫이기에.

그날 이후 안산은 달라지고 있다. 아주 느릿느릿하지만 변화의 기운은 차차 퍼져나가고 있다. 무엇을 바꿀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안산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고잔동 거리에 펄럭이는 노란 현수막. ⓒ프레시안(최형락)

"한 달 넘게 까만 양복만… 유가족 된 심정"

"고잔동에서만 110집이에요. 2만3000명 사는 이 조그만 마을에서 한 집 건너 한 집이 상을 치렀어요. 장례식장 다니느라 한 달 넘게 까만 양복만 입고 다녔어요. 길가에 돌아다니던 애들이 다 없어졌잖아요. 우리 동네는 사고 이후 한마디로 직격탄을 맞은 거나 다름없어요. 동네 분위기가 예전 같겠어요?"

고잔동에서만 20년 이상 거주한 김남선 고잔1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은 사고 직후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뭐라도 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개인이 나서서 해결할 수준의 사고가 아니었고, 안산 가까이서 벌어진 일도 아니었다.

"뭘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너무 컸어요. 암담했죠. 그나마 통장들이랑 머리를 맞대서 나온 게 안산 집에 남아 있는 아이나 노인 등 가족을 돌보는 일이었어요. 통장들을 통해서 반찬을 나눠주고, 안부 묻고. 유가족들이 (시신 수습 후) 안산 돌아오면 돌보고."

주민자치위원회는 사고 초기, 통장 중심의 기존 네트워크를 통해 유가족과 주민들의 상황을 파악했다. 주민센터에서든 교회에서든, 유가족들을 마주칠 때마다 부둥켜안기 바빴던 애도의 시간이 지나자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다.

"사고 직후엔 그저 다 같이 슬퍼하느라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치는 분들도 생겼죠. 이해는 돼요. 저도 유가족처럼 매일 잠도 안 오고 우울했으니까 '그만 하자'는 소리 나올 수 있죠. 어떻게 해야 하나 저는 골치가 아픈데, 언론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상인들이 '장사 안 된다'고 푸념하는 얘기만 자꾸 보도하고. 그런 얘기 한다고 우리한테 도움 되는 게 아니잖아요."


▲단원고등학교에서 내려다 본 고잔동 전경. ⓒ프레시안(최형락)

유가족과 주민 사이 갈등? "안에서 보면 달라요"

김 위원장은 그러나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만큼 주민 사이의 갈등이 크지 않다고 했다.

"당장은 본인이 힘들고 지겹지만, 결국 남의 일 같지 않거든요. 어떻게든 유가족들을 돕고 싶어하는 마음은 여전합니다. 주민들 만나서 얘기해보면 알아요. 또 어떤 분들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방법을 몰라서 유가족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기도 하고요."

지역 주민들이 유가족과 한마음이라는 것은 지난 2월 7일 안산 올림픽기념체육관에서 열린 '4.16 희망찾기 안산시민 1000인 원탁토론회'에서도 확인됐다. 시민원탁토론은 지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미국에서 피해지역 주민들이 재난 극복과 지역 사회 갈등 해소를 위해 차용한 방식으로, 우리나라에서 이 방법을 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산시민으로서 세월호 사건 이후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 자리에 모인 안산 시민 중 40%가 '미흡한 진상규명'이라고 답했다. '국가와 정치권 및 언론에 대한 불신'은 31%로 나타났다. 또, '안산시민으로서 무엇을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하나'라는 질문에는 39%가 '진상규명 촉구 활동'이라고 답했다. 시민들 간의 소통 강화는 14%로 그 뒤를 이었다. 비슷한 의견인 '도시공동체 기능 강화'도 13%였다.

▲천인토론회에 참여한 안산 시민 중 39%가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 활동'을 우선 해결 과제로 꼽았다. ⓒOBS 화면 갈무리

결국 안산 시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유가족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진상 규명'이었다. 고잔동 주민 윤희웅 씨는 "주민들이 제1순위 문제를 경제 문제로 꼽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던 게 사실"이라며 "겉으로만 갈등이 커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덴 몰라도 고잔동은 80%가 연립주택이에요. 도시 아파트촌보단 정이 있는 마을이지요. 토론회 결과를 보고, 저도 '내가 우리를 덜 믿었구나' 하고 반성했어요. 아마 다들 저랑 비슷한 생각일 것 같아요. 서로 마음을 확인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성과인 것 같아요."

▲고잔동 소식지의 코너 '세월호 이야기'. ⓒ프레시안(서어리)
▲고잔동 소식지 편집회의에 참가한 편집위원들. ⓒ프레시안(서어리)

"불행을 통해 소통을 배우고 있어요"


'진상 규명'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확인하기까지, 윤 씨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는 '고잔동 소식지'가 한몫했다. 매월 가가호호 우편함에 꽂히는 이 소식지에 참사 이후부턴 '세월호 이야기'라는 꼭지를 새로 마련한 것. 편집위원들은 이 코너를 통해 유가족들과 안산 지역 주민들의 진상 규명 활동 등을 소개하고 참여와 지원을 독려했다. 편집위원들은 비록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진 못해도 꾸준히 세월호 소식을 물어다 날랐다. 대중과 언론의 관심이 끊겼을 즈음엔 소식지가 유가족과 마을 주민들을 연결해주는 끈이 되었다.

유가족의 마음을 돌보는 '온마음센터' 역시 주민들과 유가족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지역사회팀'을 따로 꾸려 주민 교육을 진행한다. 김수진 온마음센터 부센터장은 "시간이 갈수록 세월호 피해자들은 나와는 동떨어진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심지어 자녀들이 유가족인 친구와 어울리지 않을지 걱정하는 분들도 있다"며 "유가족의 상처에 공감하도록 하는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센터는 또한, 유가족들을 도와주고 싶어도 무엇을 할지 모르는 주민들을 위해 '시민치유자'들을 양성해 유가족과 교류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결국 공동체를 회복하는 방법은 '소통'에 달려있다고 했다.

"사실 세월호 사건 이전부터 '마을 공동체'가 무엇인가 의구심이 많았습니다. 특히나 도시에서 공동체가 있을 수 있을까 했는데, 오히려 세월호 사건이라는 불행을 통해서 약간은 얻어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마을이 상처투성이가 되는 걸 봤지만, 아이러니하게 계속 주민들끼리 위로하고 또 만나기도 하면서 식상한 얘기지만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유가족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아직 잘 모릅니다. 그래도 사고 이후 그래 왔던 것처럼, 그리고 천인토론회에서도 다시 확인한 것처럼, 계속 이야기해 나가다 보면 뭔가 서로 접점을 찾고 오해도 풀고 정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공동체가 뭔진 몰라도, 일단 주민들끼리 이야기가 통해야죠."

▲고잔역 전경. ⓒ프레시안(최형락)

"자본의 생리가 우리 공동체를 파괴했어요"

공동체의 회복, 복원을 넘어서 완전히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자는 움직임도 있다. '416 기억저장소'에서는 매주 화요일마다 주민들과 유가족들이 참여하는 공동체 기획 회의가 열린다. 주제는 소박하다. 마을 텃밭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 밥을 어떻게 함께 지어 먹을 것인가. 소소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 이들의 꿈은 원대하다.

"세월호 사건이란 결국 자본의 생리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그 일로 인해 우리 마을 주민들이 다 같이 아픔을 겪고 있는 거고요. 그렇다면 세월호 사건을 촉발한 원인에 대해 반성하는 세상을 만드는 작업을 우리 공동체에서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혜란 공동체 프로그램 운영팀장의 말이다. 오 팀장은 안산 주민이자, 9000여 명의 회원이 있는 '엄마의 노란 손수건(엄마손)' 대표이기도 하다.

수많은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세월호 참사가 '엄마들'의 각성을 불러일으켰듯, 오 대표 또한 사고 이후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20년 전에 6년간 살다가 둘째가 단원고 들어가면서 다시 안산에 정착하게 됐어요. 딸이 작년 2월에 졸업했거든요. 사고 나고선 딸애는 아는 친구 동생들, 선생님들 장례식장에서 살았어요. 딸도 그렇지만 남편이나 저도 다른 일이 손에 안 잡혔어요.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꽉 차더라고요."

▲안산 주민들과 함께 노란 리본을 만들고 있는 오혜란 세월호 기억저장소 공동체 프로그램 운영팀장(가운데). ⓒ프레시안(서어리)

"아이 잃은 부모들에게 밥 나눠줄 정도는 돼야죠"

당장 실천은 소박하다. 남편 몰래 선글라스를 끼고 집회에서 노란 풍선을 흔들고 리본을 나눠주던 '엄마손'들처럼, 공동체 기획단에 참여하는 주민들은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실천하고 있다. 자본의 법칙에 따라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상품들을 대신해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는 것들은 'DIY(do-it-yourself)'한다. 수세미를 만들고, 뜨개질을 하고, 식물성 화장품을 만들고, 텃밭을 가꾼다. 밥 짓기 역시 작지만 뜻깊은 실천이다.

"애 잃은 부모들은 집에서 밥을 안 해먹어요. 원래 애들 먹이려고 하는 거지, 자기 혼자 먹으려고 밥 안 짓거든요. 이웃이라고, 같은 공동체 사람들이라고 하려면, 적어도 밥 못 해먹는 집 부모들한테 밥 나눠줄 정도는 돼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동체 기획 회의가 열리는 화요일마다 기억저장소에서는 밥 냄새가 풍긴다. 어떤 날은 전을 부치고, 샐러드를 만들고, 수육 보쌈을 삶아 한 상을 차렸다. 유가족인 수빈이, 주희 엄마는 오랜만에 웃으며 "집에서 이런 거 해먹어 본 적이 언젠지 기억도 안 난다"고 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대부분 집에서 밥을 해먹지 못한다고 했다. 식탁은 제 기능을 잃고 선반이 된 지 오래다. ⓒ프레시안(서어리)

'밥상 공동체', '교육 공동체' 등 오 팀장 머릿속에 그려 넣은 구상은 많지만 발걸음이 더디다. 유가족들은 유가족들대로 서울 광화문, 청운동 등 각종 투쟁 현장에 가느라 바쁘고, 적극적으로 합류하겠다는 주민들도 크게 늘지 않는 형편이다. 현재 기획단 참가 인원은 40~50 정도다. 회의 때마다 참가자가 10여 명씩은 되지만 그마저도 매주 구성원이 바뀐다. 오 팀장은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유가족들이 바라는 '안전한 사회 건설' 투쟁이 오래 갈 싸움인 것처럼, 공동체 만들기 또한 오래 봐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쉽지 않겠죠. 단순히 마을 만들기, 침울한 동네 바꾸기가 아니니까요. 4.16에 대한 반성을 기반으로 주민 모두 변화하고 실천해 나가고, 그래서 우리 동네뿐 아니라 이 나라도 업그레이드 시켜 나가야 하는 게 우리의 과제니까요."


▲공동체 기획 회의가 끝난 뒤 '세월호 기억저장소'에서 함께 밥을 먹는 고잔동 주민들과 세월호 유가족. ⓒ프레시안(서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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