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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의 '트라우마 리와인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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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의 '트라우마 리와인딩' [고잔동에서 온 편지<16>] 참사 1년, 유가족들의 심리적·신체적 건강

"제초제를 뿌려서 벚나무를 다 뽑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에요."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소중한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의 아픔은 여전하다.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더욱 깊이 파이고 있다. 누군가에게 봄은 추위를 견디고 맞이한 반가운 계절이겠지만,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봄이란 그저 괴로운 계절일 뿐이다. 날이 따뜻해질수록, 꽃향기가 짙어질수록 지옥 같았던 '그날들'의 기억이 선연하게 떠오르는 탓이다.

김수진 안산온마음센터(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부센터장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이같은 상태를 전문 용어로 '트라우마 리와인딩(Trauma-Rewinding)'이라고 설명한다.

"냄새를 맡거나 노래를 듣는 말초적인 감각 활동에 의해서 '봄이 왔다'는 걸 자각하게 됩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이쯤 되면 다른 집 애들이 수학여행을 갈 시기'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고, 1년 전 일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거죠. 어떤 분들은 '봄 느낌만 들어도 토할 것 같다'고 합니다."

▲벚꽃이 핀 안산 단원고등학교 교정. ⓒ프레시안(최형락)

"봄 돌아오자 다시 '돌덩이'가 된 희생자 가족들"

김 부센터장은 지난해 사고 직후부터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심리 치료를 도왔다. 현재 정부 지원을 통해 운영되는 센터는 일정 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희생자 가족들의 상태를 점검하는 사례관리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사례관리자 한 명당 맡는 가구는 열 집 정도이며, 매주 혹은 격주로 직접 만나거나 전화 통화 등을 통해 희생자 가족들의 심리 상태를 점검한다. 그는 "초반에는 워낙 예민하던 시기라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고 회고했다.

"처음에는 정통 심리 상담만 했는데, '필요 없다'며 거절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고안한 게 심신이완요법, 안마였습니다. 전문적인 심리 치료를 하는 우리가 할 일이 맞나 고민이었지만, 결국 몸으로 먼저 다가가야지 마음이 열리더라고요.

진도 체육관에 간 이후로는 마음도 몸도 풀어본 적이 없는 분들이라, 몸이 돌덩이 같았어요. 그렇게 굳어진 몸을 풀어드리니, 그동안에는 마음을 열지 않던 분들도 울면서 이야기를 터놓으시더라고요. 살아있다는 감각을 일깨우는 거죠. '내가 계속 이렇게 살아지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해서 일상성, 정상성을 회복하도록 돕는 게 저희 목적이었습니다."

이처럼 안마를 하거나, 집회에 함께 다니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사례관리자들은 유가족들과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데 성공했다. 온마음센터에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중인 가구는 전체 유가족 가구 중 90%에 달한다.

▲서울 광화문에서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며 행진을 하던 도중 쓰러진 세월호 유가족. ⓒ프레시안(서어리)


그러나 봄이 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김 부센터장은 희생자 가족들이 최근 급격한 심리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봄이 오면서 갑자기 말문을 닫고 연락을 받지 않는 이들이 늘어난 것. 그런가 하면, 갑자기 센터 방문 횟수가 급격하게 늘어난 이들도 있었다. 그는 "결국 둘 다 가족들의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문제 발생 후 1개월 이내를 '급성기', 3개월 이내를 '아급성기', 3개월 이후를 '회복기', 1년 이후를 '안정기'로 분류한다. 온마음센터에서는 이같은 시기별 분류에 따라 치유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계획대로라면 1주기를 맞은 최근에는 '애도 치료'가 중심이 된 안정기 프로그램이 제공돼야 한다. 그러나 김 부센터장은 "유가족들의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더디기 때문에 1년이 지났어도 안정기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없다"고 했다.

희생자 가족들의 회복 속도가 더딘 가장 큰 이유는 '진상 규명'이라는 미완의 과제가 남아있는 탓이다.

"가족분들이 정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건 부모로서 해준 게 없다는 죗값을 스스로 씻기 위한 측면이 크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바깥에서 보는 것과 달리 특별법은 전혀 진척이 없는 상황이지요. 외부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있으니 유가족들이 자신 내부의 문제를 들여다볼 틈이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트라우마가 끝난 '포스트 트라우마(Post-Trauma)' 상태가 아닌, 트라우마 진행 중인 '인트라 트라우마(Intra-Trauma)' 상태라는 것이 김 부센터장의 진단이다.

악성 댓글, 주변의 따가운 시선 등 2차 트라우마 요인도 문제다.

"보상금 받으려고 시위한다는 악플,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침체 돼 장사가 안 된다는 주변 상인들 이야기가 하나하나 다 상처인 거죠. 처음에는 정부에 실망했다면, 이제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공격받고 배척당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디 가서 세월호 유가족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싫어서 병원에 가도 의료 지원금을 안 받는다고 할 정도로 예민해진 상태입니다."


▲안산온마음센터에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제공하는 치유 프로그램들. ⓒ안산온마음센터

"청력까지 잃었어도, 다윤이 찾을 때까진 수술 못 받아요"

유가족들이 지닌 마음의 병은 신체의 질병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 고(故) 김수정 학생의 아버지 김종근 씨의 이야기다.

"사고 이후로 정신이 없어요. 휘청휘청거려요. 시력도 갑자기 안 좋아져서 물건이 두 개로 보여서 운전할 때 특히 위험해요. 생활에 리듬이 깨졌다고 해야 하나. 잠도 오지 않고. 애 엄마는 가슴이 아프고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 하고, 또 하도 많이 울어서 목이 자주 잠기고. 애 엄마나 저나 갑자기 혈압이 올라서 혈압을 아침마다 재고 있어요."

실종자 양승진 교사의 아내 유백형 씨는 소화 불량과 탈진을 호소한다.

"팽목항이나 광화문을 자주 왔다 갔다 해야 하니까 힘은 내야 해서 밥을 먹긴 하는데, 물 마셔도 잘 안 넘어가요. 그러니까 밥 먹고 약 먹고, 먹고 또 약 먹고 살아요. 하도 힘이 없어서 링거를 맞는데, 한 번 맞으면 보름에서 20일 정도 버텨요. 가끔 온마음센터 가서 마사지를 받긴 하는데 그것도 건강해야 효과가 있지, 너무 몸이 자주 안 좋아지니까 아무리 안마를 받아도 소용이 없는 것 같아요."


▲지난 9일 고대안산병원에서 개최된 세월호 참사 1년 학술 심포지엄. ⓒ연합뉴스
▲안산온마음센터 내부 전경. ⓒ프레시안(서어리)

온마음센터는 지난 9일 안산 단원구 고대안산병원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년 학술 심포지엄에서 세월호 유가족 건강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센터가 지난 19일부터 열흘간 중복 응답 허용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설문에 응한 유가족 152명 가운데 64.5%가 소화기계질환 문제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그 다음은 근골격계질환 52.6%, 치과질환이 41.4%로 그 뒤를 이었고 만성두통은 40.1%, 피부질환 29.6%, 고혈압도 22.4%를 차지했다.

사고 이후 1년 동안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응답자 중 32.9%는 치료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치료를 받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을 잃은 상태에서 나의 건강이 별다른 의미가 없어서'가 46.5%였다. '희생된 가족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라는 이유도 22.5%에 달했다.

실종자 중 한 명인 허다윤 학생의 어머니 박은미 씨는 신경섬유종이라는 희소병을 앓고 있다. 지난해 수술 날짜를 앞두고 사고 소식을 접한 박 씨는 '다윤이를 찾을 때까지 수술을 받지 않겠다'며 지난 1년을 버텼다. 그사이 종양이 신경을 눌러 오른쪽 청력을 잃었음에도 박 씨는 여전히 수술을 미루고 있다. 성치 않은 몸으로 매번 각종 기자회견장에서 앞장서 발언한 뒤 결국 응급차에 실려 가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고(故) 유혜원 학생의 아버지 유영민 씨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 씨는 과거 다리 고관절 수술을 받은 탓에 오래 걸을 수 없다. 그러나 단원고 3반 유가족 대표를 맡아 국회, 광화문 등을 전전하면서 수술했던 부위가 덧나 다시 수술을 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유 씨는 "아프다고 수술받는 것도 미안하다"며 "아직은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이니까, 혜원이 생각하면서 좀만 더 참겠다"며 수술대에 오르기를 거부하고 있다. (☞관련 기사 : "아프다고 수술받는 것도 죽은 딸한테 미안해요")

김정렬 온마음센터 가족심리지원팀장은 "유가족들을 상담해보면, 몸을 지치고 힘들게 해야지 살아있는 게 죽은 가족한테 덜 미안할 것 같다고 말하는 분이 많다"며 "심리 치료와 아울러 신체적 질병에 대한 치료도 시급하다"고 했다.

▲딸 다윤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 박은미 씨. ⓒ프레시안(손문상)

희생자 가족, 내년부턴 의료비 자비 부담… "국가가 책임지고 돌봐야"

희생자 가족들의 정신적‧신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치료가 절실하지만, 정부는 한시적 지원만을 약속하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는 의료비 지원이 끊길 처지에 놓였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4.16 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안'을 입법예고 했다. 이 시행령 20조 2항에 따르면, 희생자 가족 등에 대한 의료 지원은 "법 시행일로부터 1년간", 즉 내년 3월까지로 한정돼있다. 심리상담 지원 역시 22조 4항에 따라 "법 시행일로부터 5년간" 즉 2020년 3월까지로 정해졌다.

전문가들은 의료 및 심리 지원 서비스 기간이 좀 더 오래 지속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건강세상네트워크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지난달 2일 의견서를 통해 "일정 기간 은폐 혹은 참아왔던 불건강이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피해자들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며 "기한을 명시하는 것은 사회적 관심의 기간을 한정하는 것이고, 이는 숨겨진 불건강을 악화시키는 원인"이라며 시행령안 수정을 촉구했다.

한창우 온마음센터장은 9일 심포지엄에서 "미국의 경우, 9.11 테러 이후 국가보훈처 산하 국립 PTSD 센터 운영을 통해 10년간 심리치료에만 3조 원 투입하고 있으며, 아직도 유가족에 대한 사례관리를 하는 중"이라며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지속적 지원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아쉽다"고 했다.

안산을 지역구로 하는 새누리당 김명연 의원 역시 지난 16일 대정부질문에서 이를 지적한 바 있다. 김 의원은 시행령에서 지원 기간을 한정한 데 대해 비판하며 "국가가 책임의식을 갖고 있다면 이들의 상처를 끝까지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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