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 팀 역사상 두 번째로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유네스키 마야. 그러나 그때의 영광은 오래 가지 못했다. 노히터 이후 마야는 8경기에서 무려 50실점을 허용하며 승리 없이 4패만을 기록하고 있다. 6월 1일 현재까지 시즌 성적은 58.2이닝 56실점으로 잡아낸 탈삼진(55)보다도 많은 실점을 허용하는 중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퇴출된 한화 모건, kt 앤디 시스코에 이어 마야도 짐을 싸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야의 비교체험 극과 극
처음 3경기: 2승 1패 22이닝 13피안타 7볼넷 23탈삼진 ERA 2.45
최근 8경기: 0승 4패 36.2이닝 55피안타 17볼넷 32탈삼진 ERA 12.27
그러나 최근 두산의 김태형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마야를 더 믿어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외국인 선수 교체를 원하는 팬들의 여론과는 정반대다. ‘믿음의 야구가 과하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팬 여론이 항상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다. 김태형 감독은 올바른 선택을 했다. 연일 처참한 성적을 내고 있는 마야이지만, 실제로는 겉으로 보이는 것 만큼 최악의 피칭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저 엄청난 불운이 그와 함께 하고 있을 뿐이다.
마운드에서 던지는 투수가 통제할 수 있는 기록은 무엇일까? 아직 국내에서는 평균자책점을 투수의 실력을 재는 잣대로 널리 이용하고 있지만, 평균자책점은 투수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수비수의 도움도 필요하고 운도 따라야 한다. 미국 시카고 로펌에서 일하던 보로스 매크라켄이 ‘투수들에게 인플레이 된 타구가 안타가 되는 것을 통제하는 능력은 사실상 거의 차이가 없다’는 BABIP 이론을 내놓은 이후, 이제 메이저리그에서는 더 이상 평균자책점을 잣대로 투수를 영입하거나 내보내지 않는다. 그보다는 투수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기록인 탈삼진과 볼넷 허용이 투수 개인의 능력을 더 잘 보여준다. 이 부면에서 마야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
* 마야는 여전히 삼진을 잘 잡아내는 투수다.
마야는 올해 270번 타자를 상대하면서 55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즉 상대하는 타자의 20.4%를 삼진으로 잡아내고 있다. 현 KBO 리그에서 40이닝 이상 소화한 선발투수 중, 마야보다 높은 비율로 삼진을 잡아내고 있는 투수는 8명에 불과하다. 노히트노런 경기 이후만 놓고 보더라도 마야는 상대하는 타자 중 17.3%를 삼진으로 잡아내고 있는데, 이는 두산 팬들이 가장 신뢰하는 에이스인 더스틴 니퍼트(18.4%)와 비교하더라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다.
* 마야는 볼넷을 많이 내주지도 않는다.
다른 것에 영향 받지 않는 확실한 아웃카운트인 삼진을 아무리 많이 잡아내더라도, 역시 다른 것에 영향 받지 않는 확실한 출루인 볼넷을 많이 내준다면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마야는 270번 타자를 상대하면서 24개의 볼넷을 허용했다. 이는 8.9%로 팀 동료인 장원준(9.4%)보다 더 적은 볼넷을 허용하고 있다.
결국 투수가 외부 요인에 영향 받지 않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록인 삼진과 볼넷에서 마야는 나쁘지 않은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마야의 올 시즌 볼넷 대비 삼진 비율은 2.29로 에이스 니퍼트(2.29)와 동일하다. 물론 볼넷 대비 삼진 비율이 투수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볼넷 대비 삼진만 갖고 니퍼트와 마야가 같은 수준의 피칭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건 지나친 비약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둘의 차이가 5점에 가까운 평균자책점 차이만큼이나 크다고 보는 것 역시 비합리적이다.
* 그렇다면 왜?
그렇다면 마야와 니퍼트의 차이는 왜 이리 크게 느껴지는 것일까? 여기엔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1) BABIP의 차이
앞서 ‘투수들에겐 인플레이가 된 타구가 안타가 되는 것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의 차이는 사실상 거의 없다’는 이론을 소개했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페어 지역으로 인플레이 된 공이 안타가 되는 비율’인 BABIP가 탄생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구위가 좋은 투수의 공은 치더라도 범타가 될 확률이 높다고 착각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KBO 리그를 초토화시키고 미국무대로 향했던 류현진마저도 BABIP는 리그 평균에 수렴했다.
올 시즌 마야의 BABIP는 0.356으로 꽤나 높은 편이다. 같은 팀 내에서도 15이닝 이상을 소화한 투수 중 마야보다 불운한 선수는 없다. 마야가 유독 야수들과 사이가 나빠 야수들이 마야가 나오는 경기에서만 수비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시즌 끝까지 계속 이런 불운이 함께 할거라 볼 수는 없다. 범위를 리그 전체로 넓혀보더라도 마야는 불운한 편이다. 올해 KBO 리그에서 30이닝 이상 던진 62명의 투수 중, 마야의 BABIP는 55번째로 낮다.
2) 어처구니 없는 잔루율
내보낸 주자가 홈을 밟는 비율 면에 있어서, 올 시즌의 마야는 ‘역대급’으로 불운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마야는 올 시즌 득점권에 주자를 내보냈을 때의 성적이 매우 좋지 못하다. 이는 마야의 위기관리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운이 지지리도 없어서 그런 것이다. 위기관리능력이라고 불리는 그 애매모호한 것은 대부분 행운, 불운에서 기인한다. 만약 주자가 나갔을 때 시리얼을 먹은 호랑이처럼 기운이 펄펄 솟아나는 투수가 있다면, 이 투수는 주자가 없을 땐 똑바로 던지지 않는다고 욕을 먹어야 정상이지 위기관리능력이 있다고 칭찬받아서는 안 된다.
내보낸 주자가 얼마나 잔루로 남았는지에 대한 스탯이 있다. 이를 LOB%(Left On Base %)라고 한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투수들의 잔루율은 리그 평균에 수렴한다. 만약 위기관리능력이 투수의 고유능력이라면, LOB%가 리그 평균에 수렴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LOB%는 대부분 70%대에서 형성되기 마련인데 많은 병살유도로 위기관리능력이 뛰어나다는 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왔던 류현진도 다저스에서 2시즌동안 기록한 LOB%는 75.3%로 리그 평균과 별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마야의 잔루율은 어떤 수준일까? 마야의 잔루율은 46.3%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이게 얼마나 낮은 수준이냐 하면, 올 시즌 KBO 리그에서 20이닝 이상 던진 투수 중 50% 미만의 잔루율을 기록중인 선수는 마야가 유일하다. 지난 시즌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가장 잔루율이 낮았던 선수는 LG의 류제국인데 그 류제국의 잔루율도 58.9%였다. 설령 위기관리능력이 중요하다 치더라도, 마야의 위기관리능력이라는 것이 KBO 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정도로 떨어진다 볼 수는 없다.
과거 두산은 겉으로 보이는 평균자책점은 좋지 못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원인이 지독한 불운이었던 외국인 투수를 믿고 영입한 덕에 대박을 쳤던 사례가 있다. 바로 다니엘 리오스였다. 2005시즌 도중 KIA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 된 리오스는 사실 트레이드 되기 전이나 후나 세부 지표는 큰 차이가 없었던 투수였다. 단지 평균자책점이라는 불완전한 기록이 문제였던 것이었다.
물론 최근 마야의 경기를 보면 다리를 절뚝거리고, 패스트볼의 구속이 과거에 비해 떨어져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확실한 검사와 휴식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어차피 한창 정규시즌이 진행중인 시기에 수준급 외국인 투수를 영입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거기에 두산은 이미 외국인 타자를 교체하면서 또 다른 교체 외국인 선수에게 큰 돈을 투자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설령 괜찮아 보이는 선수를 데려오더라도 당장 경기에 투입할 수 없기에, 마야에게 휴식을 주나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나 어차피 외국인 투수가 잠시 전력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데려와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모르는 확률 낮은 복권을 긁는 것 보다는,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은 피칭을 하는 투수에게 불운이 계속되지 않을 확률이 확률적으로 더 높아 보인다.
부진의 원인이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정말 못 해서 부진함에도 밑도 끝도 없이 믿는 것은 믿음의 야구가 아니라 방관의 야구다. 그러나 그 원인이 지독하게 불운해서, 몸이 좀 좋지 않아서라면 믿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추스를 시간을 주고, 꾸준히 기회를 주다 보면 결국에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믿어라. 결국 마야는 더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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