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민선 지방자치제가 20주년을 맞는다. 지난 95년 6월 27일 첫 지방선거를 통해 단체장들이 선출됐다. 이들 단체장들의 임기가 시작된 1995년 7월 1일을 온전한 지방자치의 출발일로 삼는다면 올해가 꼭 20주년째가 된다. 하지만 6월 전후로 터진 메르스 사태로 지방 곳곳이 비상이 걸린 상태다. 메르스 사태는 박근혜 정부와 중앙정치가 붕괴된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중앙에서 리더십을 가진 정치인을 찾기 어려워진 요즘, 지방자치단체장들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메르스에 서울이 뚫리자 '준전시상황'을 선언하면서 결연한 리더십을 보여주며 단숨에 대권후보 지지율 1위로 뛰어오른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표적이다. 광역자치단체장만 조명을 받는 것이 아니다. 기초자치단체장 중에서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벌써부터 '대권주자'로 직행해야 한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만큼 국민들은 지자체의 급을 따지기 전에, '참신한 리더십'에 목말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민심을 대변해 지방자치 20주년을 맞아 그야말로 민생을 돌보기 위해 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자치단체장들을 연쇄 인터뷰로 다룰 계획이다. 첫번째 만난 이는 양기대 광명시장이다.
중앙정치에 실망한 국민, 지자체장의 리더십에 주목
양기대 광명시장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광명시장에 당선된 재선 시장이다. 그는 당선 이후 수도권 유일의 동굴이라는 '광명동굴'을 전국에서 관광객이 찾아오는 동굴테마파크로 탈바꿈시켜 화제를 모았다.
광명동굴 사업 초기, 일각에서 '보여주기식 개발사업'으로 무리하게 동굴을 테마파크로 만드는 일에 손을 댔다는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3년 간 무료 개방한 뒤 지난 4월부터 유료로 전환한 이후 오히려 더 많은 관광객들이 몰릴 만큼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직접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는 심정으로 광명동굴 현장을 가보았다. 다음은 광명동굴 현장에서 가진 양 시장과의 일문일답이다.
프레시안: 양기대 시장하면, '존버 정신(존나게 버티라는 이외수 작가의 조어)'이 떠오른다. 지난 2004년 총선 당시 광명을에 한나라당의 전재희 의원을 상대로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와 큰 표 차이로 패배하고, 다시 2008년 총선에서 다시 패배하지 않았나. 주변에서 양 시장이 총선에서 두 번 연속 패배한 충격으로 결국 '정치 낭인'이 되거나, 정치 꿈을 접을 것이라는 보는 시선이 많았다. 그런데 2010년 지방선거에서 광명시장 선거에 나와 낙승을 거뒀고,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60%가 넘는 득표율로 압승을 거두며 재선에 성공했다. 마음만 먹으면 3연임도 떼논 당상이라고 할 정도로 탄탄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민선으로 뽑힌 시장이자 정치인으로 이렇게 확고한 입지를 갖추기까지 버틴 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양기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두 번 연속 떨어지고 나서 사실 매우 힘들었다. 왜 정치판에 뛰어들었는가에 대한 초심을 잃었다면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초심은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나아가 통일에 기여하는 데 밑거름이 되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시대적 과제인 통일에 기여하겠다는 정신이 없었다면 중도에 포기했었을 것이다. 곧바로 중앙정치로 나가지 못하더라도 지자체장으로서 지역 주민에게 봉사하는 기회를 갖고 더 큰 정치를 펼 수 있는 역량을 쌓는 길을 택하는 것도 좋다는 주변의 격려도 힘이 되었다.
프레시안: 벌써 5년째 시정을 이끌어 왔다. 시장으로 전임 시장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 광명시의 탈바꿈을 진두지휘했다. 이제는 원래 목표였던 중앙정치에 도전할 때가 된 거 아닌가?
양기대: 국회의원과 달리 시장은 시민의 삶과 직접 부딪치는 일상을 소화하는 자리다. 따라서 어떤 마인드로 시정을 이끄느냐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난다. 아직은 재선 시장으로서 마무리할 일이 남아있다. 특히 KTX 광명역세권 개발사업이 더욱 확고한 기반을 갖추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광명시민의 숙원이 바로 58만 평에 달하는 허허벌판 역세권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 사업은 개발에 따른 부작용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해도 주민 전체의 공감대가 형성됐던 과제였다. 시장에 취임하자마자 역세권 개발사업을 최우선적인 임무로 생각한 것도 이때문이다.
KTX 광명역이라는 좋은 입지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대형유통업체들을 유치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마침 다국적 가구업체로 유명한 이케아가 한국에 진출하려고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스웨덴 본사도 찾아가 설득을 거듭해 광명시에 이케아를 유치할 수 있었다.
'개발과 상생', '성장과 분배'의 균형잡기
프레시안: 새누리당 출신도 아니고,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 지자체장이라면 서민을 위한 정치를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 화려한 개발사업으로 알려진 시장이다보니 새누리당 소속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받는다. 그러면서 복지나 환경 등에도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양 시장이 그동안 한 일을 보면, 마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하는 거 같다.
양기대: 광명시의 경우는 좋은 입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서울 외곽의 낙후된 도시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개발을 앞세우는 새누리당 소속이건, 서민을 위한 정치를 강조하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건 광명시장으로서 무엇이 급선무인지 고민했다. 그 답은 광명시의 주민 전체가 지역의 성장으로 일단 파이를 키우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다만, 개발의 과실을 자본이나 대기업이 다 가져가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였다.
'개발과 상생', 그리고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잘 잡아가는 것이 광명시장으로서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자리 창출과 교육, 복지 사업 등도 개발이나 성장 못지 않은 주요 과제로 삼아 실질직인 성과를 올려왔다.
프레시안: 대형유통업체를 유치하려면 입지가 좋지 않다고 업체 측에서 거부하거나, 거꾸로 업체 측에서 들어올려고 하면 지역 상인들의 반발이 거세 진통을 겪는 사례는 지금도 많다. 그래서 대형유통업체를 유치하고도 상생의 정신을 살려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광명시에 이케아라는 '가구 유통 공룡'을 유치할 때 지역 가구업계에서 반발하지 않았나?
양기대: 시장으로서 다국적 가구업체를 유치할 때 지역 가구업체들과의 상생까지 고려했다. 이케아 측과 지역 가구업계, 그리고 광명시와 상생협약을 맺었다. 이케아 건물 지하 1층에 지역 가구업체들이 입점할 매장을 5년간 무상임대하고, 지역 가구업체들이 들어서있는 광명가구단지 주변이 땅값이 상당히 비싼 번화가에 위치해 있어 주차장이 부족했는데, 시에서 주차장 부지를 매입해 제공하는 등 지원도 했다. 주민건강센터도 건립할 예정이다. 이런 지원사업에 들어가는 비용도 이케아로부터 상당한 금액을 충당했다.
앞서 2012년에 유치한 코스트코의 경우에도 지역 중소상인들과의 상생을 위해 협약을 맺었다. 예를 들어 코스트코는 다른 지역과 달리 광명시에서는 저녁 9시까지로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대표적인 필수농산물인 무와 상추, 배추 등 몇 가지는 코스트코에서 팔지 않게 했다. 지역 중소상인들을 위해 공동물류센터도 지어줬다.
광명시의 전통시장들을 활성화하기 위해 대형주차타워를 건설해주기 위해 이미 부지를 확보해 내년에 완공될 예정이기도 하다. 이 사업에 110억 원이 들어가는데, 60%는 국비에서 지원을 받는다. 국가에서 지원할 만한 사업이라는 점을 설득해서 모자라는 시 예산으로도 이런 사업을 벌인 것이다.
대형유통업체들과 지역상인들과 맺은 상생협약은 지금까지 90% 정도 이행된 단계다. 그러다보니 광명시에서는 대형유통업체들을 유치하면 지역상인들이 거세게 반발할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와 달리, 현재는 지역상인들도 시의 개발사업에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는 것 같다.
폐자원 활용사업으로 보여준 리더십
프레시안: 잡음이 많을 수 있는 대형유통업체들을 별다른 갈등 없이 잇따라 유치한 것도 인상적이지만, 버려진 자원 같은 것을 재활용해서 시민의 공간으로 되돌리거나 친환경적인 사업으로 변모시키는 사업도 양기대 시장이 취임한 이후 광명시의 특징인 것 같다. 이런 발상을 어떻게 하게됐나?
양기대: 동굴테마파크도 사실 폐광산에 불과한 곳이었다. 취임 이후 광산동굴에 가봤다. 사람이 구부리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낮은 동굴 입구를 거쳐 안에 가보니 새우젓 저장고로 쓰이던 동굴이었다. 자원이 없는 우리 나라에서 자원을 재활용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자는 발상은 이 땅의 정치인이라면 우선적으로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순간적으로 이 광산을 시민의 공간으로 재개발하는 것이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곧바로 이 폐광의 광산권을 가진 개인으로부터 43억 원의 시비를 들여 광산을 매입했다. 이 광산을 어떻게 활용한 것인가 고민하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민이 언제나 찾을 수 있는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어 가자는 목표를 세웠다. 광산에는 지하까지 파들어간 동굴까지 합치면 10킬로미터에 육박한다. 전체적으로 개발하려면 엄청난 대규모 사업이다. 일단은 처음부터 350석 규모의 '예술의 전당'이라는 공연장을 만들었다. 그 다음에는 연간 영상 12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는 동굴의 특성을 활용해 '와인 동굴'을 만드는 등 단계별로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다.
인터뷰에 앞서 직접 돌아본 광명산동굴은 초등학교 이하 어린이들이 있는 가정에서 가족 나들이 장소로 최적화된 테마파크라는 느낌이었다. 현재 개발된 동굴의 길이는 2킬로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이렇게 얼마 되지 않은 동굴 공간이 1, 2층으로 나뉘어 있고, 공간 곳곳에는 '예술의 전당'은 물론이고 '동굴아쿠아월드' 등 동굴 속에 소도시의 문화공간이 압축돼 들어서 있는 것 같은 아기자기함이 인상적이었다. 공무원들의 손길이 아니라, 대기업이 비싼 입장료를 받기 위해 만든 '소규모 테마파크'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였다. 앞으로는 천장이 높은 2층 공간에 영화관도 들어선다고 하니 추가 개발이 제대로 된다면 '거대한 동굴테마파크'로 확대될 날도 기대된다.
동굴이 무너지거나 동굴 천장에서 암석들이 떨어져 내려 안전사고가 날 위험도 걱정이 됐다. 사실 이 문제는 개발에 반대하는 측의 주요 사유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동굴은 화강암보다 단단한 규석이 주성분인 암석 동굴인데다, 천장이 높은 곳마다 그물과 암석 고정쇠들을 박아넣는 작업으로 안전 문제를 불식시켰다고 한다.
프레시안: 폐자원을 활용한 복합문화예술공간도 광명시가 전국 최초로 건립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것도 국비까지 지원받아 했다니 어떻게 가능했나?
양기대: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라는 것인데, 지난 12일 문을 열었다. 폐자원을 활용하겠다는 관심이 있으면 길이 열리는 것 같다. 마침 지난해 4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 공모'가 있었다. 여기에 시가 응모해서 선정이 된 것이다. 시비는 10억 원 들이고, 나머지는 국·도비 13억 원을 지원받아 건립했다.
폐자원을 문화예술작품으로 바꾸는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는 폐광을 테마관광동굴로 변모시킨 사업과 공통점이 있다.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가 들어선 공간도 광명시자원회수시설(생활쓰레기소각장)이다. 광명동굴 부근에서 눈에 띄이는 높은 기둥이 솟아있는 알록달록한 건축물이 있다. 건축물 자체가 레저시설인가 해서 가보니 쓰레기소각장이라고 한다. 이것도 회색콘크리트 덩어리 같던 곳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양 시장이 취임한 이후 광명시는 한정된 시 예산만으로는 하기 어려운 이런 폐자원 활용사업을 광역단체와 중앙정부의 지원까지 받아내서 실행에 옮겼다.
프레시안: 동굴테마파크 등 남들이 엄두도 못내던 사업을 벌이고, 게다가 반대까지 심했다는데 어떻게 시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나?
양기대: 광명시의회에서 예산안이 통과되기까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다. 처음에 새누리당이 무조건 반대를 해서 사실 예산 확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한 번에 해결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서 일부 예산을 받아내고, 새누리당 소속인 김문수 경기도 지사까지 여러 번 찾아가 도비 지원을 호소했다. 한 번에 몇 억원 씩이라도 받아서 경기도비 100억 원까지 지원을 받아냈다. 국비까지 지원받았다. 이제는 새누리당 소속 시의원들도 동굴테마파크에 대해 더 이상 제동을 걸려고 하지 않는다.
'탁상행정' 공무원도 있지만...
프레시안: 양기대 시장은 수도권에서 주목받는 지자체장 중 한 명이다. 참신한 정치인이라는 평이 많더라. 마음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해도 쉽지 않았을 사업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데에는 남다른 노력도 있었을 것 같다.
양기대: 동굴테마파크를 성공시키는 데 직원들이 노고가 컸다. 2012년에 동굴테마파크 사업을 하기 위해 신설된 테마개발과의 과장 같은 경우 1년 365일 중 적어도 350일을 출근할 정도였다. 동굴테마파크를 디테일까지 손색없는 수준으로 만들려면, 그것도 공무원이 갑자기 이런 일을 해내려고 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시장도 1년 내내 주말도 평일처럼 근무해왔다. 명절 때나 한 번 쉴까 할 정도였다. '탁상행정'이니, '복지부동'이니 하면서 욕을 듣는 공무원들도 많지만, 어떤 공무원들은 이렇게 일을 하기도 한다.
프레시안: 지역 주민의 삶만 책임지는 선출직 공직자에서 언젠가 국민 전체의 삶을 위해 중앙정치에도 뛰어들 것으로 기대되는 정치인으로서 현재 국민적인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는 정당들의 문제를 무엇이라고 보나?
양기대: 국민을 위한 정치보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패권주의가 앞서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국회의원들이 보여주는 패권주의, 중앙정부 관료들이 구축한 패권주의가 그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처럼 당 내에 특정세력이 패권을 휘둘러 중앙정당이 제역할을 못하게 되는 패권주의도 있다. 이런 세 종류의 패권주의가 중앙정치를 왜곡시켜 지역정치는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정치에서 아무리 지자체장들이 유능하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중앙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지역정치의 발전도 어렵다. 또 지역정치에서 빛을 발하는 인재들이 중앙정치로 가고, 또 중앙정치에서 다시 지역정치에서 봉사하는 선순환의 고리도 형성되기 어렵다. 앞으로 지역정치를 위해서라도 중앙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소신에 대해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내려고 한다.
프레시안: 지자체장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중앙정치에서도 큰 활약을 할 정치인으로 성장할 것을 '기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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