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률 55%. KBO리그에서 다른 구단이 재계약하지 않은 외국인 투수를 영입했을 때 성공을 거둔 비율이다. 일반적으로 외국인 투수의 성공확률이 50%를 밑도는 수준임을 감안하면 성공률이 나쁘지 않다. 올 시즌에도 옥스프링, 소사, 탈보트 등이 새로운 유니폼을 입고 준수한 활약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래서일까. kt 위즈가 옥스프링에 이어 또 한 명의 ‘재활용’ 외국인 투수를 영입했다. 주인공은 2011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한 저스틴 저마노(Justin Germano)다. kt는 8일 퇴출한 필 어윈의 대체 외국인 투수로 저마노와 연봉 18만 달러에 계약을 마쳤다고 발표했다.
2011년 당시 저마노는 8경기에 등판해 45.1이닝 동안 5승 1패 평균자책 2.78로 WAR(대체선수대비기여승수) 1.2를 기록하는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지만, 이듬해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하면서 한국 무대를 떠난 바 있다.
이후 저마노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LA 다저스, 텍사스 레인저스로 유니폼을 갈아 입었고 올 시즌에는 시애틀 매리너스 트리플 A 소속으로 활약했다. 올해 18경기(11선발)에 등판해서는 7승 3패 평균자책 2.83을 기록하며 2012년 이후 가장 좋은 투구내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6월 28일 마지막 선발 등판에서는 무4사구 완봉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전까지의 사례를 보면, 다른 구단에서 뛴 경험이 있는 외국인 투수들은 대체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전 넥센 투수 브랜든 나이트. 2009년과 2010년 삼성에서 ‘평범’한 투수였던 나이트는 넥센에서 2012시즌 16승 4패 평균자책 2.20(WAR 4.1)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 투수로 거듭났다. 롯데도 2006년까지 SK에서 활약한 카브레라를 영입해 2007시즌 22세이브를 기록하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재활용’ 외국인 투수로 가장 큰 재미를 본 팀은 두산 베어스다. 두산은 2000년 SK에서 평균자책 6.14에 그친 빅터 콜을 영입했다. 콜은 두산 소속으로 2001년 6승 9패 평균자책 5.04를, 2002년에는 12승 6패 평균자책 4.01을 기록하는 반전을 선보였다. 2001년과 2002년 콜의 WAR은 2년 연속 2.6승에 달했다.
두산은 2002년에도 2001년 KIA에서 활약한 레스를 영입했는데, 레스는 그해 16승 8패 평균자책 3.87(WAR 3.7승)을 기록하며 에이스로 활약했다. 레스는 2004년에는 한 단계 더 진화해 17승 8패 평균자책 2.60(WAR 4.4승)을 올려, 두산 역사상 최고의 좌완 선발투수로 이름을 남겼다.
그 외 마크 키퍼(2002년 KIA소속 WAR 2.8 -> 2003년 두산 소속 WAR 2.6)와 다니엘 리오스(KIA에서 3년간 WAR 9.2 -> 두산에서 3년간 WAR 14.5)도 두산 특유의 재활용 전략이 대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재활용 외국인 투수들의 활약은 올 시즌도 이어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kt의 에이스로 활약 중인 크리스 옥스프링. 2007년과 2008년 LG에서 좋은 피칭을 선보였던 옥스프링은 2012년까지 호주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다 2013시즌 롯데 소속으로 한국 무대에 복귀했다. 2013년 13승 7패 ERA 3.29, 2014년 10승 8패 ERA 4.20을 기록했고 2년간 기록한 WAR은 3.25로 수준급이었다. 올해는 kt로 팀을 옮겨 17경기에서 6승 7패 평균자책 4.13으로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 주고 있다. 특히 6월 이후에는 6경기에서 두 차례 완투승을 거두는 등 4승 무패를 기록하고 있다.
그 외 올해 LG로 팀을 옮긴 소사도 7승 8패 평균자책 4.11(1완봉승)으로 지난해보다 좋은 투구를 이어가는 중이고, 전 삼성 외인투수 미치 탈보트도 한화 선발진에서 에이스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재활용 투수들이 모두 성공만 거둔 것은 아니다. 삼성에서 좋은 활약을 했던 브라운과 하리칼라는 LG로 이적한 뒤 처참한 기록만 남기고 한국 무대를 떠났다. LG에서 쌍방울로 이적한 앤더슨, KIA에서 히어로즈로 옮겼던 스코비, 두산에서 넥센으로 건너간 니코스키도 재활용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사례다.
새로운 팀에서 성공을 거두는 외국인 투수들은 대부분 공통점이 있다. 구위는 나쁘지 않은데 팀의 수비력이 약해 수비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팀과 한국 야구 적응에 실패한 경우, 부상 때문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례다. 이런 경우 수비가 좋은 팀으로 이적하거나, 한국 무대에서 경험이 쌓이거나, 부상에서 회복하면 좋은 투수로 다시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국에서 다년간 활약하며 한국 타자들의 성향에 익숙한 투수들은, 수 년 뒤 다시 복귀해서도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 없이 좋은 모습을 보여준 사례가 많다.
일례로 리오스의 경우 2005년 KIA에서 고전했지만, 시즌 중 넓은 잠실구장을 사용하고 수비력이 뛰어난 두산으로 이적한 뒤 성적이 큰 폭으로 좋아졌다. 나이트도 삼성 시절에는 무릎 부상으로 제 몫을 못하다 넥센 이적 후 부상이 호전되면서 에이스가 된 사례다. 올해 LG 소사도 목동구장을 벗어나 잠실로 옮기면서 피홈런이 줄어 성적 향상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반면 이적 이후 이전 팀에서보다 구위가 하락하거나, 이미 타자들의 눈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새로운 무기를 추가하지 못한 투수들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수비 지원에 의존하는 유형의 투수가 수비가 막강한 팀에서 수비력이 약한 팀으로 이적한 경우도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다(하리칼라, 브라운).
2011년 당시 저마노는 140km/h대 빠른 볼과 싱커, 투심, 커터 등 변형 패스트볼을 구사하는 능력이 뛰어난 투수였다. 여기에 변화구로 커브와 체인지업을 비슷한 비율로 구사하며 좌우타자를 가리지 않고 좋은 투구를 펼쳤다. 45.1이닝 동안 볼넷은 단 6개만 허용할 정도로 제구력도 뛰어났다. 만약 저마노의 구위가 2011년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라면, 2011년에 그랬던 것처럼 국내 타자들을 요리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 시즌 트리플 A에서 보여준 좋은 성적은 국내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활약을 기대하게 한다.
Fangraphs.com에 따르면 2014시즌 메이저리그에서 저마노의 빠른 볼과 싱커는 평균시속 85.5마일을 기록했다.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137~8km/h 정도로 2011년에 비해 크게 떨어진 수준이다. 최근 KBO리그가 2011년에 비해 홈런 비율이 크게 늘고 타고투저 경향을 띄는 점을 감안하면 130 후반대의 싱커가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을지 우려가 되는 면도 있다.
4년 만에 KBO리그로 돌아오는 저스틴 저마노. 과연 저마노는 2011년의 위력을 다시 보여줄 수 있을까. 저마노가 ‘재활용’ 외국인 투수 성공 사례를 이어갈 수 있을지, 그의 복귀 첫 등판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저마노는 KBO 선수 등록을 위한 행정 처리 이후 kt 선수단에 합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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