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이런 친구 한명씩은 있었을 겁니다. 허세를 부리던 친구인데요. 상대의 강한 기에 눌려 발은 뒷걸음질 치면서도 입으로는 공갈포를 쏘아대곤 했죠. ‘이번 한번만 봐준다’고요.
통상 ‘이번 한번만 봐준다’는 문장은 또 하나의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 한 번 그러면 국물도 없다’는 뜻이죠. 나아가 ‘그러니까 잘해’라는 제3의 뜻을 내포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내포를 현실화시키는 힘은 강한 압박입니다. 한 발 앞으로 나아가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상대의 기를 제압해야 무언의 메시지는 강력한 경고가 됩니다.
하지만 어릴 적 어떤 친구의 말엔 이런 강력한 압박이 없습니다. 목소리는 떨리고 발은 뒷걸음질 치는데 어찌 ‘또 한 번 그러면 국물도 없다’는 메시지가 전달되겠습니까? 오히려 ‘그러니까 없던 일로 하자’ 또는 ‘이쯤에서 퉁치자’는 타협의 메시지만 전달되죠.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정독하면서 든 느낌이 비슷했습니다. 허세 부리던 어릴 적 친구의 ‘이번 한번만 봐준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그러나”라고 했습니다. 지뢰 도발을 한 북한을 향해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만약 북한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민생향상과 경제발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베를 향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했습니다. 아베가 발표한 전후 70주년 담화가 “우리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일본이 이웃국가로서 열린 마음으로 동북아 평화를 나눌 수 있는 대열에 나오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습니다.
대책없는 말입니다. 지뢰 도발을 한 북한이 어찌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단 말입니까? 과거사 도발을 한 아베가 어찌 동북아 평화를 나눌 수 있단 말입니까?
박 대통령이 구사한 ‘그러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은 잇는 말이 아니라 끊는 말입니다. 그 말이 두터운 철책 구실을 하면서 앞뒤 문장을 갈라놓습니다. 성토 문장과 촉구 문장 사이에 접속사를 넣어 어떻게든 이어보려고 하지만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잇는 말 역할을 하게 하려면 채워야 합니다. 성토 문장과 촉구 문장 사이에 계획 문장을 넣어야 합니다. 북한이 지뢰 도발을 했으나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오도록 우리가 뭘 하겠다고, 아베가 과거사 도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평화를 나누도록 우리가 뭘 하겠다고 밝혀야 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집권 후 지금까지 북한을 봉쇄했지만 바뀌지 않은 터에 더 쓸 카드가 없습니다. 집권 후 지금까지 아베에게 냉랭하게 대했지만 바뀌지 않은 터에 더 쓸 카드가 없습니다. 강한 압박 카드가 없을뿐더러 있어도 쓰기 어렵습니다. 동북아 정세가 우리만 ‘오리알’이 되는 양상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강한 카드는 옥쇄 카드입니다.
때문에 박 대통령의 말은 앞으로 나아가는 압박의 말이 아니라 뒷걸음질 치는 타협의 말입니다. ‘또 한 번 그러면 국물도 없다’는 경고의 말이 아니라 ‘이쯤에서 퉁치자’는 타협의 말입니다.
아무튼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박 대통령을 대표하는 화법은 유체이탈 화법이었는데 다른 걸 추가로 발견했습니다. 바로 허장성세 화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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