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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과 '금수저', 대한민국 이대로는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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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헬조선'과 '금수저', 대한민국 이대로는 망한다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세습 자본주의, 대안은 있는가?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지령 100호를 맞는 본 글은 특정한 정책 사안이나 쟁점을 다루는 일반적인 방식을 따르기보다는 지금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하고 핵심적인 문제를 거시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즉, 부의 편중과 기회의 불공정이 구조화되고 고착화되어 가는 문제를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글항아리 펴냄)에서 주장한 '세습 자본주의'라는 관점에서 평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적 정책을 포괄적으로 제시한다.

지난 국정 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이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헬조선이란 말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들어본 적 없다"고 대답했다. '헬조선'이라는 신조어는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하고 핵심적인 문제, 즉 부의 편중과 기회의 불공정이 구조화되고 고착화되어 기득권을 누리지 못하는 대다수 국민들, 그중에도 특히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각종 매체를 통해 수없이 거론되면서 인구에 회자되는 이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는 경제부총리의 대답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불평등과 불공정의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절박한 시대적 과제를 외면하고, 시대착오적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들고 나와서 때 아닌 역사 전쟁, 이념 논쟁을 벌이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을 대하는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본고는 부의 편중과 기회의 불공정이 구조화되고 고착화되어가는 문제를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주장한 '세습 자본주의'라는 관점에서 평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적 정책을 포괄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필자)

'헬조선'을 아시나요?

5~6년 전부터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라고 자조했다. 그러다가 수년 전부터는 취업과 주택 마련까지 포기한 '5포 세대'를 얘기하더니 최근에는 인간관계와 희망까지 포기한 '7포 세대' 그리고 아예 포기하는 항목을 일일이 셀 수도 없다는 'n포 세대'라는 말까지 등장하였다.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청년층의 비관적인 인식은 급기야 '헬(Hell=지옥)조선'이라는 말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이 말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퍼졌지만 그에 대한 공감대는 치열한 경쟁과 빚에 짓눌리고 고용 불안과 주거 불안에 시달리는 중장년층이나 빈곤과 외로움에 한탄하는 노년층까지 퍼지고 있다.

'헬조선'이 단순한 유행어만은 아닌 것이, 실제로 '지옥'같은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엠브레인이 지난 2월 발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전국 19세~59세 성인 남녀 1000명 중 76.4%가 '이민을 생각해 본 적 있다'고 답했다. 20대(77%), 30대(84%), 40대(78%), 50대(65%) 등 전 연령대에 걸쳐 고루 분포돼 있었다. 구체적으로 이민을 고려한 이유로는 '갈수록 빈부 격차와 소득 불평등이 심해져서'(37.8%)를 가장 많이 꼽았다. (☞관련 기사 : )

젊은이들의 경우 이민이 생각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상 이민 관련 커뮤니티들에서 활발하게 정보를 주고받으며 해외이민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민 쇼핑‧이민 카톡방‧이민 적금‧이민 계'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 ) 특히 고학력 엘리트 젊은이들이 복지가 잘 갖추어진 북유럽으로 이민을 떠나는 흐름이 등장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 )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고려하면 이민을 통한 인구 유입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터인데 거꾸로 우리나라의 인적자원이 해외로 떠나가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민 갈 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대책 없이 노동 시장에서 탈출하는 소위 '니트족(Not in Employment, Education, Training)'이 되기도 하는데, 비경제 활동 인구 중 '일할 생각이 없거나 구직을 포기한 사람'이 2005년 14%에서 2013년 30.5%로 2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 )

ⓒ프레시안(손문상)

한국의 상황을 떠나고 싶은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중층적인 민생고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노동 시장의 열악한 현실이다. 고용 불안과 저임금, 열악한 노동 조건이 만연되어 있으며 번듯한 정규직 일자리는 매우 제한되어 있는 현실, 노동자의 인권 보호는 미흡하고 단결권과 파업권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는 현실 말이다. 젊은이들은 이러한 현실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사회를 비판하고 있는데, 일례로 익숙한 동화들을 '헬조선' 버전으로 각색한 이야기들을 두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인어공주 이야기다.

"마녀님, 저 정직원이 되고 싶어요.", "그러면 우리 회사로 이직해 와. 대신 너의 목소리를 받아가마." 인어공주는 정사원이 되었지만, 월급이 내려가고 야근 수당은 나오지 않았고 휴일도 사라졌습니다. 목소리를 잃어 노동청에 신고하지도 못하게 된 인어공주는 사회의 거품이 되어 사라졌습니다.

다음은 성냥팔이소녀 이야기다.

"성냥 사세요." 소녀는 성냥을 팔았습니다. 월급은 세후 130만 원, 월 200시간을 넘는 임금 없는 추가 근무, 영하를 넘나드는 가혹한 근무 환경. 소녀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성냥을 피우자 회사는 상품을 무단 사용한 소녀를 고소했습니다.

'헬조선'의 헬이 열악한 노동 시장 등 민생고를 지칭한 것이라면, '조선'은 무엇인가? 왜 '헬코리아'가 아닌 '헬조선'이란 말인가? 한국을 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늘의 현실이 태생에 의해서 지위가 결정되는 과거의 신분 사회를 닮아가고 있다는 인식을 담은 것이다.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고 공정한 경쟁에 의해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기본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이런 인식을 '수저론'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부모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등을 구분하고, 금·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면 영어 유치원과 사교육을 거쳐 명문대와 어학 연수까지 마치고 취업 시장에 나오게 되지만, 동·흙수저를 물고 태어나면 학자금 대출로 인한 빚만 안은 채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부모의 부나 지위를 이용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가는 특급 금수저들을 보면서 흙수저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 상승을 할 수 없다는 열패감에 빠진다.
▲ [그림 1] 연령별 및 소득 수준별 계층 사다리 인식.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계층 간 이동 혹은 사회적 이동성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부족하지만 지난 8월말 현대경제연구원이 실시한 설문 조사를 보면 이 문제에 관한 국민의 인식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드러난다. (☞관련 기사 : )

개개인이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계층 상승 가능성이 낮다는 부정적 응답률이 2013년 75.2%에서 2015년 81.0%로 5.8%포인트 상승하였다. 국민 5명 중 4명이 한국 사회에 대해 매우 비관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누구보다 희망과 기대에 차있어야 할 20대 청년층의 응답이 70.5%에서 80.9%로 10.4%포인트 악화되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를 청년 실업률의 증가(8.0%→10.0%)와 청년층 고용에서 비정규직 비중(29.7%→30.9%)이 상승한 결과로 해석했다. 월 소득 300만 원 미만 저소득층에서 부정적 응답이 75.8%에서 86.2%로 10.4%포인트 악화됐고, 순자산 규모가 1억 원 미만인 경우에 78.6%에서 84.8%로 상승해서 소득과 부가 작을수록 미래에 대해 비관적임을 알 수 있다.

피케티의 세습 자본주의와 한국

작년 이맘 때 한국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열풍에 휩싸인 바 있다. 하지만 피케티가 제기한 불평등 문제에 대한 논의는 이념적인 찬반 논쟁에 치우쳤고, 그의 이론과 실증적 연구가 한국의 현실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피케티의 방대한 책에는 수많은 통찰과 분석이 담겨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주장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세습 자본주의(patrimonial capitalism)'를 향해 가고 있으며 이미 이에 근접하였다는 것이다. 세습 자본주의란 한 사회의 최상층에게 있어서 상속 자본에서 얻는 소득이 일을 해서 얻는 소득보다 월등하게 많은 경우를 일컫는다.

19세기 '벨 에포크' 시대의 유럽은 상속 재산이 노동 소득보다 중요했던 전형적인 사례인데,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악당 보트랭이 출세욕에 불타는 법대생 라스티냐크에게 아무리 노력해서 성공하고 출세해도 부잣집 딸과 결혼하는 것만 못하다고 조언하는 것에 당시의 실상이 담겨 있다. (피케티가 계산한 바에 의하면 이 조언은 19세기 유럽의 현실을 매우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상속 재산 기준으로 상위 1%가 놀고먹으며 버는 자본 소득만 해도 상위 1% 임금의 2.5배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는 사람보다 상속자들이 더 많은 부와 특권을 누리는 사회다. 과연 한국의 현실에 이러한 분석이 적용될 수 있을까? 경제학계가 이 문제를 소홀히 하는 사이에 이 땅의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는 신조어와 '수저론'을 통해서 한국은 이미 노력보다 태생이 중요한 세습자본주의 사회가 되었다고 외치고 있다.

▲ [그림2] 한국의 자본/소득 비율 : 2000-2012년. 주상영의 ‘피케티 이론에 비추어 본 한국의 현실’(<피케티, 어떻게 읽을 것인가?>(유종일 엮음, 한울 펴냄, 2015년)에서 인용했다. ⓒ주상영

피케티에 의하면 세습 자본주의가 성립하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국민 소득 대비 상속 자본의 규모가 커야한다. 이는 다시 자본/소득 비율이 6~7 정도로 충분히 크고, 자본의 대부분이 상속 자본일 것을 요구한다. 둘째, 상속 자본의 분배가 극도로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 피케티는 미국과 유럽의 부국들이 첫 번째 조건은 이미 거의 충족하고 있으며 두 번째 조건은 아직은 충족되지 않지만 점점 충족되어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진단한다.

한국의 경우 자본/소득 비율은 이미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민간부를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의 자본/소득 비율은 2005년 5.89에서 2012년 7.02로 상승하였는데, 피케티가 분석한 주요 국가들 중에서 일본, 프랑스, 호주가 7을 상회할 뿐 미국, 독일, 영국, 캐나다는 5 내외의 수준을 보인다. (한국의 자본/소득 비율이 높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소득 대비 토지 가격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전체 민간 자본에서 상속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서는 선진국 중에서도 프랑스의 경우에만 이를 비교적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데, 한국의 경우 아직 이를 파악할 길이 없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프랑스 등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성장률이 높았기 때문에 상속 자본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인구가 실질적으로 정체 상태에 접어들었고 성장률이 저하되었으므로 이 비중이 점차 늘어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상속 자본의 집중도도 역시 파악하기 어려우나 자본 소득이 고도로 집중되어 있음에 비추어 자본의 소유, 특히 상속 자본의 소유는 매우 집중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
2014년 10월 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최재성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2012년 배당 소득·이자 소득 100분위 자료'에 의하면 배당 소득의 경우 최상위 1%와 10%가 각각 전체 배당 소득의 72.1%와 93.5%를 가져가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자 소득의 경우에도 최상위 1%와 10%의 몫이 각각 44.8%와 90.6%로서 높은 집중도를 나타냈다. 반면 노동 소득의 경우에는 각각 6.4%와 27.8%로서 집중도가 훨씬 덜하다. 사업 소득이 주를 이루는 종합 소득에는 자본 소득과 노동 소득이 혼재되어 있는데, 집중도도 양자의 중간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피케티의 조건에 맞추어 한국의 상황을 평가하기에는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지만, 고도 성장기가 끝나고 갈수록 부의 대물림이 두드러지면서 세습 자본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판단된다. 특히 최상층만을 보았을 때는 이미 세습 자본주의의 모습을 띠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최고 부자들은 자신의 손으로 부를 일군 경우가 별로 없고 대부분 선대의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재벌닷컴>이 작년 봄에 집계한 '대한민국 상장사 100대 주식 부자' 중에서 85명이 세습 재벌 가문이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재벌들은 재산만 상속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권까지 상속한다. 이들 2세, 3세 세습 경영자들이 지배하는 재벌들은 한국 경제를 압도하고 있다. [그림 3]은 10대 재벌의 자산과 매출액을 GDP(국내 총생산)에 대한 비율로 평가했을 때 2003년~2012년 사이에 50% 내외에서 84% 정도까지 급속도로 증가하였음을 보여준다.

▲ [그림 3] 10대 기업 집단의 GDP 대비 자산·매출 추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피케티는 세습 자본주의의 도래를 막기 위해 고소득자에 대한 한계 세율 80%의 소득세와 더불어 순자산 기준으로 부유층에 대한 한계 세율 1~2%의 자본세를 부과할 것을 제안한다. 국제적 자본 이동을 감안하여 국제적 금융 정보 공유에 입각한 투명성 제고를 주장하며, 이상적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자본세를 부과하자고 한다.

이러한 정책은 우리나라에도 매우 필요한 정책이다. 단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보다는 성장을 더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상속 자본의 비중과 집중도의 상승 속도가 선진국보다 느릴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세율은 조금 낮추어도 된다. 필자는 복지 재원 마련까지 고려하여 소득세 최고 세율을 45%, 법인세 최고 세율을 25%로 인상하고, 종부세를 개편하여 부유세를 도입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유종일, '불평등 축소: 다차원적 접근', 한국경제학회 발제 자료, 2014년) 나아가 허술한 상속 세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피케티가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교육 기회의 평등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 사회적 이동성을 제고하는 유효한 수단이었던 교육이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을 초래하는 입시 제도와 소득에 비해 과도한 대학 등록금 등으로 인하여 이제는 오히려 계층 간 격차를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례로 서울시 구별 아파트 매매가와 서울대 합격 확률 사이에 매우 높은 상관관계가 나타나고 있다. 교육 기회의 실질적인 평등을 확보하기 위한 포괄적인 교육 개혁이 요구된다.

그런데 피케티가 시장 경쟁에 들어가기 이전에 형성되는 불평등, 즉 재산 상속과 교육을 통한 부의 대물림에만 초점을 둔 것은 시장에서 벌어지는 기회의 불공정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후자의 문제도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시장에서 자본력·정보력·협상력 등 힘의 우위에 있는 자가 열위에 있는 자를 차별하고 약탈하는 문제가 만연해 있다. 먼저 성 차별, 소수자 차별, 비정규직 차별 등 사회적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차별금지법이 시행되어야 하며, 현대판 음서제로 불리는 부모의 영향력에 의한 자녀 취업도 차별 금지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 나아가 비정규직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특단의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에서 강자가 약자를 약탈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강자들은 독점과 담합에 의해 독점 지대를 창출하고, 대정부 로비에 의해 이권을 확보하며, 기업 집단에서 발생하는 사업 기회를 편취한다. 이런 경우 피해자는 불특정 다수의 국민이 된다. 강력한 경쟁 정책과 정부의 투명성 제고 및 일감 몰아주기 등 회사 기회 유용 금지가 필요하다. 독점적 초과 이윤이 존재하는 대기업이나 금융권 등에서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점차 낮아지고 주주나 CEO들의 몫은 커지는 것도 편취의 한 형태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제고하여야 하며, 이는 완전 고용을 지향하는 거시 경제 정책과 노동 3권의 강화를 필요로 한다.

한국 경제에서 약탈의 대표적인 양태는 소위 갑을 관계다. 원청 기업과 하도급 기업 사이에 또는 본부와 대리점이나 가맹점 사이에 성립하는 갑을 관계에서 부당한 방법에 의해 갑이 을을 약탈하는 불공정 거래 행위를 일컫는다. 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행위 규제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을의 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한 단결권 보장이다. 미래를 고려할 여유가 없는 경제적 약자를 유인하여 자기 파괴적 거래에 끌어들이는 약탈적 거래를 막기 위해서는 규제의 강화와 복지의 강화가 모두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특히 약탈적 대출의 규제가 중요하다.

'헬조선'이라는 신조어와 '수저론'이라는 사회 이론으로 불공정한 현실을 고발하고, 외국 이민이나 '니트족'이 되어 한국 노동 시장을 거부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변화의 희망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부의 대물림을 방지하기 위한 과세정책과 교육개혁, 그리고 강자에 의한 차별과 약탈을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규제와 약자의 협상력 제고 정책이 시대적 과제다. 이것이 결국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가 지향하는 바일 것이다.

(유종일 이사장은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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