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국가 개조 프로젝트'였던 4대강 사업, 그리고 7년. 그동안 아픈 눈으로 강과 강 주변의 변화를 지켜보았고, 그 힘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으며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지율 스님과 예술가들이 '4대강 기록관'을 지으려 합니다. 기록관은 모래강 내성천의 개발을 막기 위해 내성천의 친구들이 한평사기로 마련한 내성천 하류, 낙동강과 인접한 회룡포 강변 대지 위에 세워지게 됩니다.
이 연재는 기록관 짓기에 함께할 여러분을 초대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
인터넷 공간에서 노르웨이 류칸이라는 작은 마을에 21명의 대학생이 2주간 만들었다는 작은 전시관을 보고 저는 가슴이 뛰었습니다. 호시탐탐! 개발의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는 내성천에, 한 평 사기로 구입한 회룡포 강변에, 한땀 한땀 수놓듯 우리 손으로 기록관을 만든다면!
골병 든 낙동강의 시름도 달래주고, 고운 물길을 막고 선 영주댐, 시멘트 장벽도 기록의 힘으로 밀어 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두 차례에 걸쳐 작가들과 내성천을 답사하고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처음 기획안은 '다음(Daum)'에 글을 쓰고 펀딩(모금)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측과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나름 열심히 준비했지만 첫 원고를 보내고 난 뒤 편향적이라는 이유로 실을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제 4대강 문제를 다루는 일은 미디어 매체에서 부담스러운 일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논의 끝에 <프레시안>에 연재를 하고 예술가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텀블벅 모금을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3000만 원이라는 금액이 너무 크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시장 조사 결과 3000만 원은 계획했던 건물의 최소 자재비였고, 내심으로는 10여 명의 작가들이 참여하여 50일 동안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그만한 욕심은 내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감 5일전까지 모금함은 50% 선에서 굳어진 듯 움직이지 않았고 저는 더 이상 마음을 내지 못했습니다. 애를 태운 사람들은 밖에서 지켜보던 분들이셨고, 절집 담장 밖을 어정거리는 중이 안쓰러웠는지 조계사, 운문사 그리고 출가 본사인 내원사에서도 힘을 보태 주셨습니다. 재능을 기부하고 맘 조렸을 작가님들께, 우정 어린 손길을 잡아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후 부족한 금액은 물품 판매 등을 진행하여 형편에 맞게, 설계와 규모를 최소하여 추진하려합니다. 위 사진의 구조와는 많이 다르겠지만,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참여해서, 손망치 두드리고 톱질하며 만들어가는 공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2월 한 달을 준비 기간으로 잡고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3월부터 작업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목수 딸이라 어릴 적부터 집 짓는 현장에서 자랐고, 건축물에 대해 아는 척을 몹시 하는데 사실은 '눈팅 전문가'입니다. 그래도 우리 손으로 기록관을 만든다는 사실에 가슴은 뜁니다. 집짓기에 노하우가 계신 분들의 조언과 4대강과 관련 된 소중한 자료를 가지고 계신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 인사로 연재의 창을 열어주신 <프레시안>에 드립니다. 연재를 하면서 '프레시앙‘이 되어 기사를 보는 즐거움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0만 명 프로젝트가 하루빨리 달성되어 <프레시안>의 모든 독자들이 로그인을 하지 않고, 광고 없는 기사를 볼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제가 만든 다큐 <내성천, 물 위의 편지> 엔딩 장면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머물렀던 이 강변이 '그리운 이름'으로 불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초록이 피어날 때, 회룡포 강변에서 다시 소식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내성천에서 지율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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