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직원들이 청소노동자들에게 보낸 문자 연대
지지와 응원은 안에서부터 시작됐다. 농성 초반 대자보에 적혀 있던 LG트윈타워분회 박소영 분회장의 전화번호를 보고 LG트윈타워에서 일하는 LG직원(정규직 노동자)들이 보낸 문자다. 다 소개할 수 없지만, 문자를 보내준 직원은 더 많다. 사측이 식사 반입을 막은 일이 터진 후 호박죽을 들고 온 직원도 있었다. 몰래 쌍화탕이나 비타민 음료를 슬쩍 두고 간 직원도 여럿 있었다. 물론 청소노동자의 파업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지지하고 응원했던 직원들의 마음도 바뀌었을 수 있다. 사측은 조합원들의 로비 농성을 핑계로 직원들이 로비를 통해 동관과 서관으로 출근하는 걸 막고 있다. 최근 LG전자에 새로운 사무직 노조가 생겨 2000여 명이 가입했는데 새 사무직 노조와 청소노동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까 봐 그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직원들은 불편을 겪고 있다. 사측이 조합원과 시민의 만남을 차단하기 위해 출입문을 틀어막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어쨌든 투쟁이 길어지면서 직원들이 느끼는 불편함도 커졌을 것이다. '조합원들의 요구가 과도하다'며 등을 돌리는 직원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조합원들이 느끼는 고마움은 줄어들지 않는다. LG의 자회사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은 집단해고의 이유를 서비스 질 저하 때문이라고 했다. 작년 LG트윈타워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에 코로나 감염자가 발생했을 때 청소노동자들은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9층과 6층에 들어가서 청소했다. 이렇게 일했던 노동자들에게, 노조를 만들기 전에는 호텔보다 낫게 청소한다는 말을 들었던 노동자들에게, 10년 동안 최저임금도 못 받아가며 허리가 부러져라 일한 노동자들에게 서비스 질을 저하했다고 했다. 직원들의 문자는 사측에 대한 가장 정확한 반박 중 하나다. 서비스 질을 저하한, 다시 말하면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은 노동자들이 저런 문자를 받을 수 있을까?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
지지와 응원은 트윈타워 바깥으로 퍼졌다. 작년 12월 16일 트위터에 한 끼 밥 연대를 호소하는 글이 뜨자 하루 만에 4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동참해 600만 원을 모았다. 닷새가 지나자 1400여 명이 참가해 1800만 원의 금액을 모았다. 1월 1일 사측이 전기와 난방을 끊고 식사 반입까지 막은 일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시민과 청년·학생의 발길이 이어졌다. 후원 물품이 쏟아졌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이런 연대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겉으로는 착한 기업을 내세우며 속으로는 일감 몰아주기로 10년 동안 200억 원이 넘는 배당금을 챙겨간 구광모 회장 일가에 대한 배신감, 전기와 난방을 차단하고 식사 반입까지 막는 비인간적인 태도에 대한 분노 등 여러 이유가 있다. 어제는 노동자들이 구광모 회장을 만나기 위해 텐트 농성을 시작하자 텐트에 물을 뿌렸다. 노조 혐오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비인간적인 탄압이었다. 무엇보다 파리 목숨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깊은 공감이 노동자 시민의 마음을 움직였다. LG가 해고한 것도 아닌데 왜 LG에게 책임을 묻냐는 비판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는 얘기다. LG와 LG자회사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은 자신들이 책임이 없다고 했지만, 지수아이엔씨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일자 직접 구훤미, 구미정씨의 지분 전량 매각을 발표했다. 청소노동자들에게 LG마포빌딩에 가라는 제안도 했다. 스스로 진짜 사장임을 실토한 셈이다. 재벌들은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나 일감 몰아주기를 위해 용역·하청을 활용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무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노동자의 저항을 어렵게 만들며 노동조합을 손쉽게 탄압하기 위해 간접고용을 늘린다.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공약한 '용역업체 변경시 고용승계 의무화' 약속도 지키지 않으면서 자본은 비정규직 제도를 맘껏 활용하고 있다. 노동자의 고통만 산처럼 쌓여 간다. 비정규직 제도에 대한 분노가 LG투쟁에 대한 연대로 이어졌다. 조합원들은 연대를 보며 큰 힘을 받았다. 한 조합원은 자신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마포빌딩으로 가라는 제안은 합리적이지 않다
농성 초반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LG 청소노동자 투쟁 기사에는 투쟁을 비난하는 댓글이 달린다. 초반에는 정년 70세 요구에 대한 댓글이 달렸다. 정년 70세 요구는 진정한 쟁점이 아니었다. 청소업은 65세가 넘는 노동자들도 일하는 대표적 고령친화적 업종이다. 사측 스스로 정년은 없고 건강하면 65세 이후에도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사측 관리자들은 갑자기 말을 바꾸고 청소노동자들에게 '그 나이 들어 노후 대책도 못 세워놨냐?'고 조롱한다. 노인 가난이 개인 탓인가? 정년 연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한데, 정년 연장이 전체 노동자를 위한 바람직한 요구가 아니라는 지적은 충분히 일리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복지도, 최소한의 노후 대안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가난한 최저임금 노동자의 정년 연장 요구는 그야말로 생존권 요구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제는 LG마포빌딩에 가서 일하라는데 왜 거부하냐는 댓글도 달린다. 노동자들이 수차례 지적했듯 사측 제안은 모순적이고 기만적이다. LG트윈타워의 연 면적은 4만 7745평으로 LG마포빌딩의 연 면적 1만 842평의 네 배가 훌쩍 넘는다. 상주 인원은 비교할 수도 없다. 그런데 마포빌딩 청소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이야기하며 마포빌딩으로 가라고 한다. 사측 제안대로라면 마포빌딩은 지금 일하고 있는 인원 포함 50여 명이 일하게 되고, LG트윈타워는 지금 일하고 있는 인원 포함 120여 명이 일하게 된다. 이게 합리적인가? 연 면적대로만 계산해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수가 LG마포빌딩 청소노동자 수의 네 배는 넘어야 할텐데 말이다. 법원조차도 쟁의행위에 대한 LG의 책임을 인정했는데, 그 책임을 인정하고 원래 일터에서 일하게 하는 대신 교통, 노동조건, 인간관계가 모두 달라지는 낯선 곳을 제시해 조합원들이 떨어져 나가게 하려 한다. 원래 일하던 곳에서 고용이 승계되는 전통을 없애 다른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을 막으려 한다. LG는 아직도 노조를 인정할 생각이 없다.대기업의 '밑바닥' 청소노동자들이 쏘아올린 희망
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든 사례는 많이 있지만, 대형빌딩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든 사례는 거의 없다. 사실상 LG트윈타워가 유일하다. 새로운 길이고, 그만큼 노동자들의 어깨가 무겁다. 홍이정 조합원은 이렇게 말한다. 청소노동자는 바닥을 향한 경주를 강요하는 사회의 '밑바닥'을 상징한다. 바닥에 있는 노동자들의 비명을 듣고 다른 노동자들은 놀라고 겁에 질리고 위축된다. 내가 바닥으로 추락하지 않을까? 그래서 경쟁에 올인하며 부당한 억압과 대우를 참는다. 임금 삭감, 복지 축소, 고용불안이 이어지고 바닥에 있지 않던 노동자들은 바닥으로, 바닥 아래로 내려간다. 가장 밑바닥에 있던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비명을 멈추고 희망을 쏘아 올렸다. 수많은 노동자 시민이 함께했다. 지난 22일 조합원들과 노동시민사회단체는 구광모 회장을 만나기 위해 텐트 40개를 설치했고, 농성 100일이 되는 25일에는 100개를 설치한다. 갈수록 경쟁의 지옥이 되어 가는 우리 사회에서, 코로나19로 불평등과 가난이 확대되는 우리 사회에서 이 연대의 시간은 바닥 향한 경주를 막기 위한 소중한 출발점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