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은 발암물질로 지나친 음주는 간암, 위암 등을 일으킵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지나친 음주는 암 발생의 원인이 됩니다. 청소년 음주는 성장과 뇌 발달을 저해하며, 임신 중 음주는 태아의 기형 발생이나 유산의 위험을 높입니다."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술은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알코올이 몸에 해로움을 나타내는 위의 과음 경고 문구 셋 중 하나를 붙여야 판매할 수 있으며, 위반 시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술의 위험성을 명료하게 정리한 이 문구들은 이따금 술에 부착된 라벨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낯이 익을 것이다. 하지만 통계는 이런 경고 문구 때문에 마시려던 술을 내려놓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영양조사를 통해 매년 '월간 폭음률'을 집계하고 있다. '월간 폭음률'은 '만 19세 이상 인구 중 최근 1년 동안 월 1회 이상 한 번의 술자리에서 남성 7잔, 여성 5잔 이상 음주한 사람의 비율'로 정의된다(알코올 농도에 따라 술잔의 크기가 달라지므로 술의 종류와 관계없이 5잔, 7잔을 기준함). 2019년 한국인의 평균 월간 폭음률은 38.7%인데, 성별로는 남성 52.6%, 여성 24.7%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사회건강조사에 따르면 폭음을 주 2회 이상 하는 사람의 비율도 15%나 된다. 그 결과 한국 남성 전체 사망의 6.7%, 여성 전체 사망의 2.2%, 그리고 질병별로는 식도암의 33%, 간암의 15%, 유방암의 17%, 만성간질환의 41%, 자해로 인한 사망의 20%가 음주로 인해 발생한다. 2013년 기준 알코올 사용 장애로 병원을 찾는 사람은 2002년 대비 50%가 늘었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음주 운전율을 기록하는 등 음주는 한국 사람의 건강에 확실히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OECD는 2020년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를 다룬 보고서에서 위와 같은 통계와 연구자료를 근거로 알코올 남용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한국에서 술을 접하기가 너무 쉽지는 않은지 고려해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특정한 주류판매점이 아니어도 마트, 편의점, 식당 등 많은 곳에서 술을 판매하고, 주로 소비하는 맥주와 소주의 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저렴하며, 관련 규제가 느슨하여 음주로 인한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 도입이 시급하다. 술을 접하기 어렵기 만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격에 직접 관여하는 정책의 효과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국제학술지 <란셋 공중보건>에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에서 술 가격에 알코올 단위당 최저가격제(Minimum Unit Price, MUP)를 적용한 이후로 알코올 음료 구매량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분석한 논문이 발표되었는데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바로 가기 : ) 스코틀랜드는 2018년 EU 국가 중 처음으로 8그램의 알코올 당 50펜스(한화 800원 상당)의 최저가격을 도입했으며, 웨일즈는 2020년 3월에 같은 정책을 도입했다. 360밀리리터가 들어 있는 소주 한 병에는 도수에 따라 48~57그램의 알코올이 들어있으니, 한국의 소줏값으로 환산하면 병당 4800원 ~ 5700원인 셈이다. 당초 잉글랜드도 이같은 최저가격제를 도입하려 했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도입을 철회하는 바람에 연구자들은 잉글랜드의 자료를 대조군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연구자들은 층화추출된 영국 3만여 가구의 가계 지출자료 중 스코틀랜드 가구의 자료를 지리적으로 가까운 잉글랜드 북부 가구와 비교하고, 웨일즈 가구의 자료를 잉글랜드 서부 가구와 비교했다. 데이터를 이용할 수 없는 2019년을 제외하고, 2015년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판매된 알코올 음료의 주종, 브랜드, 가격, 알코올 도수 정보와 가계 정보를 이용하여 최저가격제 시행 전·후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에서 단위당 최저가격제의 효과는 정책 시행 즉시 나타났고, 두 지역 모두 일관된 효과가 나타났다. 스코틀랜드에서 판매되는 주류의 알코올 그램 당 가격은 0.741펜스(한화 600원 상당) 올랐고, 성인 1명에게 하루에 판매되는 평균 알코올 양은 7그램 줄었다. 비율로 따지면 가격은 종전보다 7.6% 오르고, 알코올 소비량은 7.7% 감소한 것이다. 웨일즈에서는 2020년 3월 정책 시행 이후 알코올 그램 당 가격이 8.2% 상승하고, 알코올 소비량은 8.6% 감소했다. 또한, 알코올 소비 감소 효과는 특히 1인당 평균 14그램 이상의 알코올을 구입하는, 가장 술을 많이 구입하던 집단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단위당 최저가격제에 따라 모든 종류의 술 가격이 바뀌고 소비량 또한 바뀌었는데, 그중 가격 인상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술은 사과 발효주인 사이더(cider)였으며 알코올 소비량도 가장 많이 감소했다. 정책 시행 이후 BBC의 관련 보도에 따르면, 이전에 4파운드(한화 6400원 상당)로 3리터를 살 수 있었던 알코올 도수 7.5도 사이더는 정책 시행 이후 11.25파운드(한화 1만8000원) 아래로 판매할 수 없게 되어 소매점에서 취급하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단위별 최저가격제가 알코올 소비량이 많은 인구 집단을 겨냥하는 강력하고 집중적인 가격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가격에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와 출고량·알코올 도수별로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는 모두 생산자와 유통업자가 증가한 세금만큼의 가격을 인하하여 가격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으로 접근성을 낮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최저가격제는 술의 최저가를 정하기 때문에 특히 가격이 저렴한 술을 많이 소비하는 건강 위험 인구 집단의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코틀랜드나 웨일즈보다 먼저 단위당 최저가격제를 도입한 캐나다의 경우 술값을 평균 10% 올리는 최저가격제의 도입 이후 알코올에 기인한 급성·만성 입원이 각각 9%씩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주류 규제안이 발표될 때마다 '서민의 애환을 달래는' 술값을 올린다는 수사로 규제 반대가 정당화되었다. 마찬가지로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에서도 단위당 최저가격제를 2013년부터 도입하고자 했으나, 업계의 반발로 몇 년 지나서야 도입되었다.논문 본문에서 다루지는 않지만, 연구자들이 제시한 데이터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가장 술을 많이 소비하는 사람 중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알코올 소비량은 오히려 높아지며 술에 쓰는 돈도 많아지는 현상이 관찰된다. 이것은 아마 최저가격제 시행으로 가격이 낮은 술이 시장에서 사라지면서 도수가 높고 더 비싼 술로 구매행태가 변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런 현상은 술값 규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근거로 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서민의 애환'을 낮은 술값으로 달래야 한다는 주장은 서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지도 않으면서 그 어떤 건강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부조리하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술로 잊고자 하는 삶의 문제는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 일의 순서가 아닌가.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해결할 수 없는 애환을 방치하는 동시에 술로 몸을 망가뜨리는 일을 '달랜다'는 표현으로 가려버림으로써, 이 책임을 회피하고 이익을 보는 집단은 누구인가 물어야 할 것이다. *서지정보- Anderson, P., O'Donnell, A., Kaner, E., Llopis, E. J., Manthey, J., & Rehm, J. (2021). Impact of minimum unit pricing on alcohol purchases in Scotland and Wales: controlled interrupted time series analyses. .
- OECD. (2020). OECD Reviews of Public Health: Korea. - "Scottish alcohol sales drop as minimum price kicks in", 19 June 2019, BBC, //www.bbc.com/news/uk-scotland-48675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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