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의 실효성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08년 8월의 5.6% 이후, 13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5.8%를 기록했다. 상황의 시급함 때문에 지난달 30일 정부는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 첫 민생대책인 이번 10대 프로젝트의 원칙은 '시장 친화적 물가관리'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기존 방식의 물가 관리에서 벗어나 생산자가 원가를 절감할 수 있도록 세금을 깎아주고 시장의 가격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먹거리와 산업원자재 중심으로 14대 품목에 할당관세가 적용되었다. 정부는 관세를 최대 25%까지 부과하던 수입 돼지고기 5만 톤에 대해 0% 할당관세를 연말까지 적용했다. 그러나 이미 전체 돼지고기 수입량 가운데 90%는 관세 없이 국내로 들어오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들여오는 돼지고기는 이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율이 0%이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 외에 관세를 무는 캐나다(6.6%), 멕시코(1.9%), 브라질(1%)산을 모두 합쳐도 전체 수입 물량의 10%가 되지 않는다. 즉, 처음부터 관세를 없애봐야 소비자가 부담하는 돼지고기 값이 낮아지기 어려운 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대두유와 해바라기씨유 등 식용유 재료와 밀과 밀가루 등에도 관세율을 0%로 인하하고, 사료용 뿌리채소류는 할당 물량을 30만 톤 추가하여 수입을 늘리고 계란 가공품은 할당관세 적용 기한을 연말까지로 늘리는 대책도 발표되었다. 하지만 원산지에서 이미 가격이 상승한 상태에서 수입되는 만큼 관세율 인하의 효력은 한정적이다. 일부 품목은 자국의 필요로 한 소비 수량도 못 채우는 상황이 오자 원산지 정부가 수출 금지를 선언하는 지경이다. 관세 인하만으로 이들 품목과 연관 품목의 가격을 통제하기 불가능하고, 수입 물량 확보도 어려운 상황인데도 대책으로 발표된 것이다. 김치, 된장, 고추장, 간장, 젓갈류 등 밥상에 자주 오르는 단순가공식료품에 대해서는 부가가치세(10%)를 내년까지 면제하는 방안이 발표되었다. 지난 4월 기준으로 김치 가격이 전년 대비 10.6% 오르고, 된장은 16.3% 오르는 등 발효식품 가격이 인상되면서 장바구니 물가에 큰 타격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더하여 농산물을 비롯한 주요 생필품 책임자를 지정해 관리하게 하는 물가 부처 책임제도 발표되었다. 물가 부처 책임제는 배추 국장, 고추 국장으로 담장 책임자를 부르던 이명박 정부에서 도입했던 '물가 관리 책임 실명제'를 연상시킨다. '각자 알아서 책임져라'는 정책은 이미 실패하여 폐기된 지 오래된 정책이다. 기호품이 아니라 생필품으로 자리 잡은 커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커피와 코코아 원두에 붙는 부가가치세(10%)도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면제하기로 했다. 원두 수입 단계에서 부가가치세를 면제함으로써 원재료비가 9% 수준 절감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미 한발 늦어 버렸다. 프랜차이즈점과 편의점 등은 원두 가격 인상을 이유로 이미 한 차례 가격을 인상했기 때문에, 한 번 올라간 가격이 부가가치세 면제로 다시 낮아지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지난 12일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ℓ)당 2068.07원으로 전날보다 3.48원 올랐다. 휘발유 가격은 지난 11일 2064.59원을 기록하며 기존 최고가(2012년 4월 18일 2062.55원)를 10년여 만에 넘어섰는데 하루 만에 다시 최고가를 뛰어넘은 것이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ℓ당 2067.4원으로 전날보다 3.87원 올랐다. 경유 가격은 지난달 12일 14년 만에 역대 최고가를 기록한 후 연일 최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그 와중에 안전 운임제 일몰제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에 앞으로 운임이 더 낮아질 것이 확실해진다. 지금도 수입이 너무 적어 생존이 어려운데, 앞으로 더 악화될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화물연대가 파업을 할 수 밖에 없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것이다. 주동자를 몇 명 구속하고, 파업참가자들에게 화물 운송 자격을 박탈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경제정책의 문제가 아닌 근본적인 철학의 한계
윤석열 정부가 다급히 내놓은 물가 안정책은 전반적으로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공급자 위주의 세금 인하가 소비자 가격에 반영될 지 미지수인 데다가, 발표하는 정부 당국자마저도 고작 효과가 0.1%p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즉 세부담 인하분이 제품가격에 반영이 된다고 하더라도 물가 안정에 미치는 효과가 처음부터 낮았다는 것이다. '시장 친화'를 강조하느라 정작 고물가 시대에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에 대한 직접 지원책이 거의 담기지 않은 점도 문제다. 실제로 생활물가가 올라도 고소득층은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가계소비에서 식료품 등 생필품의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에 추가적인 지출의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각종 공과금이나 식료품, 교통비와 통신비 등 각계 지출에서 생활비의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이나 서민층은 직접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최근 지급된 재난지원금이 자영업자나 중소기업들의 "폐업 지원금"이 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한겨레, 6/13). 각종 인건비 체납이나, 인테리어 복구비, 월세 밀린 금액이 없어 폐업조차 못하고 있던 이들이, 재난지원금으로 폐업 정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들이 폐업을 하면, 고용보험 지급금이 더 늘어나는 것뿐 아니라, 수입이 갑자기 사라지므로 각종 복지비도 늘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소비를 급속하게 축소시킬 것이므로 내수 경제도 어려워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가게 된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나 기본소득 정책이 필요한 상황을 윤석열 정부가 스스로 만들고 있고, 시장 친화적 정책의 한계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물가 상승과 경제적 어려움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고, 코로나 19 방역 과정에서 찍어낸 달러화의 가치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금리 인상을 할 수밖에 없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의 구조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주요 곡물 수출의 감소와 전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동반 상승도 물가 인상의 심각한 이유 중의 하나다.유능한 정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새로 출범한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국민도 있겠지만, 정부의 실패는 곧 국가의 실패이고 국민들에게는 고통으로 다가가게 된다. 적은 표의 차이로 정권을 잡았지만, 겸손한 제세로 임한다면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은 윤석열 정부의 성공에 대해 국민들이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준 것이다. 장관과 대통령실 비서 인선에서 시작된 민심 이반은 물가 상승과 연이은 파업을 통해 집권 초기부터 국정의 안정을 흔들고 있다.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정부를 표방했지만, 기업가와 사업주들을 위한 공정, 고가의 부동산 소유자들을 위한 상식임이 확인되고 있다. 이대로는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맥을 이은 정당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전 보수 정부와 인재풀을 공유하고 있고, 국정 철학을 계승하고 있다. 이들 정부가 모두 실패했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살이다. 실패는 교훈으로 삼아야지 계승할 필요는 없다.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도 시간이 더 가기 전에 근본적인 점검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소득 주도 성장이나, 기본소득 정책은 정권의 이념을 넘어, 대한민국이 요구하는 시대정신이고 시급하게 요구되는 실질적인 경제정책이다. 실용적인 정부, 효율적인 정부를 표방한다면, 인재와 정책을 넘어, 사상과 이념까지도 필요한 모든 것을 차용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연달아 표를 모아준 국민들은, 윤석열 정부의 진정한 실력을 보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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