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막바지 휴가철 풍경
8월 말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역은 휴가 끝자락에 기차를 타려는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기후변화 때문인지 보통의 독일 늦여름 날씨답지 않게 후덥지근했다. 몇 년 만에 방문한 곳이지만 에어컨 안 나오는 것은 여전했다. 업무로 인해 출장 형식으로 오랜만에 다시 온 독일은 그래도 친숙하게 느껴졌다. 모르는 사람들인데도 왜인지 반갑기까지 했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 고속열차(ICE) 표를 구매하여 기차를 기다리는데 여지없이 안내방송이 나온다. 10분 정도 기차가 연착하니 양해해달라는 내용이다. '그래, 10분 정도야 뭐 기다릴 수 있지. 종종 있던 일이니까.' 플랫폼 벤치에 앉아 기다렸다. 드디어 타야 할 기차가 도착하고, 무거운 짐들을 내리고 올리는 승객들과 함께 열차의 빈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다행히 테이블이 있는 좌석이 비어있어 앉았다. 기차는 다음 역에 도착할 때마다 연착 시간이 늘어갔다. 승객들이 많아지다 보니 출발시간이 지연되는 것이었다. 1시간을 달려 쾰른에 도착했을 때는 예정 시각보다 무려 30여 분이 늦어진 상태였다. 축구 경기가 있었는지 유난히 사람들이 열차에 많이 들어왔다. 필자가 앉은 옆과 앞 빈자리에 경기의 열기를 아직 식히지 못한 세 명의 남성 축구 팬들이 착석했다. 세 명 모두 미처 표를 사지 못했는지 스마트폰으로(독일을 떠난 사이 열차 안에 와이파이가 연결되는 큰 변화가 있었다!) 좌석표를 구매하면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한국에서 듣던 대로 '9유로 티켓'은 화제였다. 출장을 나오기 전 지인으로부터 듣게 된 이 티켓의 존재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시외교통은 말할 것도 없고(참고로, 필자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역에서 직접 구매한 2시간 거리 편도 기차표 가격은 101유로(한화 약 13만 원)였다) 시내 교통비도 비싼 독일에서 한 달에 9유로만 지불하면, 장거리를 연결하는 고속열차를 제외하고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는 소식은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도대체 독일은 왜 이런 정책을 실행한 것일까?어서 와, 9유로 티켓은 처음이지?
올해 6월부터 8월까지 총 3개월 동안 독일은 매달 유효한 교통 티켓을 판매하는 특별 정책을 시행했다. 가격은 9유로, 한화로 약 1만2000원이다. 독일 전역에서 운행되는 시내 및 근거리 버스와 기차에 적용되는 티켓이다. 한국의 코레일에 해당하는 도이체반(Deutsche Bahn AG)의 장거리 고속열차(ICE, IC, EC 기차) 및 장거리 버스는 제외되었다. 보통 시내에서 버스, 지하철, 트램 등 교통수단을 이용할 경우, 세 정거장 정도의 거리에 해당하는 교통비는 대략 2유로 내외(지역, 도시마다 상이함)다. 말하자면 한 정거장이라도 이동하게 되면 한화로 2500원 정도는 지불하는 것이다. 한국의 시내 교통비와 이동거리를 생각하면 매우 비싼 가격이다. 그래서 보통 학생, 노인, 장애인을 제외(학생증 등 해당 증명서로 할인가격으로 제공)한 독일 성인들은 정기권을 구매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이마저도 가격이 매달 최소 약 8만 원(구간별로 가격 상이함) 정도로 만만치 않다. 이런 이유로 인해 자전거로 출퇴근 또는 등하교를 하거나 심지어 걷는 것이 익숙해진 곳이 바로 독일이다.9유로 티켓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렇다면 지난 6월부터 3개월 동안 시행된 9유로 티켓의 결과는 어떠할까? 독일운송회사협회(Verband Deutscher Verkehrsunternehmen: VDV)는 9유로 티켓이 현재까지(9월 1일 기준) 5200만 회 판매되었다고 발표했다. (필자도 8월분 티켓을 구매하였기에 이 결과에 기여한 셈이다.) 또한, 3개월분 티켓을 한 번에 구매한 고객도 약 1000만 명에 달했다. 독일운송회사협회(VDV)는 티켓 이용에 대한 시장조사(6월~8월까지 14세 이상 매주 6000명 온라인 인터뷰, 총 7만8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를 수행하여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무모한 도전? 무한도전!
독일은 지난 여름 용감한 실험에 도전했다. 독일의 6월부터 8월은 휴가철로, 교통이동이 가장 많은 기간이다. 이 시기에 도로에 수많은 자동차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 뻔했다. 독일 정부는 이로 인해 환경에 미칠 영향을 미리 상정하고 이 같은 정책을 실행했을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으로 인한 유가상승에 대한 부담 역시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이 실험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가치 있는 도전이었다. 무엇보다 기후변화에 늘 민감하게, 선제적으로 반응하는 독일에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북극의 사라지는 빙하, 유럽의 가뭄, 아시아의 대홍수, 미주대륙의 폭염이 더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님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도전적인 정책 실험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기후변화로 파급되는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 국민의 삶을 돌아볼 민생안정의 방안을 제시해야 할 때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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