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언급 꺼리는 정치인들…민주당선 박지현만 반기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와 여성혐오 사이에 거리를 만들려는 움직임은 여야 모두에서 포착된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법원은 첫 번째 고소에서 가해자가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 역장을 기각했고 경찰은 두번째 고소 때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검찰이 징역 9년형을 구형하면서도 왜 구속 수사를 하지 않았는지 유가족들은 묻고 있다"며 법원과 검경의 문제를 지적했지만 여성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국민의힘은 한술 더 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여당 간사인 정경희 의원은 이날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에서 2020년 서울교통공사가 역무원에게 가스총 대신 전자 호루라기를 지급한 일을 꺼내 들며 "고인이 되신 역무원께서 가스총을 소지하고 계셨더라면 범인이 그렇게 쉽게 덤벼들었겠는가. 그 역무원께서 가스총을 소지했더라면 범인을 제압할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라고 주장했다.민주당 지도부 가운데서는 그나마 고민정 최고위원이 전날 원내책회의에서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여성들은 집단적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된다. 보호해달라고 더 크게 소리치고 싶어도 역차별이라는 말을 들을까 봐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며 여성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남녀를 갈라서는 안 된다.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봐서는 더더욱 안 된다"면서도 "하지만 동시에 스토킹에 의한 대다수 피해자가 여성임은 인정하고 직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구조적 성차별과 여성혐오의 문제를 지적하는 정치인도 있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전날 한국방송(KBS) 인터뷰에서 "이 사건(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 일어나게 된 기저에는 사실 '좋아하면 쫓아다닐 수 잇지'라는 굉장히 그릇된 남성 문화, 또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위치해 있지 않다는 차별 의식, 또 혐오와 성차별을 무기로 권력을 잡겠다는 정치인들도 있고, 또 성범죄를 저질러도 자기 편이라는 온정주의도 배경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관련기사 : "신당역 살인, 혐오·성차별로 권력 잡겠다는 정치인도 배경")
정의당 장혜영 의원도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부정하는 정치가 결국 이런 비극으로 이어졌다. 정치 전체가 각성하고 반성해야 한다"며 "이런 근본적 반성 없이 그저 모든 것을 교통공사 탓, 기술적 입법 미비 탓만 해서는 사태를 본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고 썼다.(☞관련기사 : 박지현 "尹, 신당역 사건 책임 느낀다면 혐오·차별정책 포기해야")
김현숙 "서울교통공사가 불법촬영 혐의 통보 안 해 답답하다"고 했지만
한편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날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스토킹 피해자 지원 관련 긴급 현안보고'에 출석해 "이번 사건에서 답답하다고 느끼는 것은 여성부 장관이 피해자 보호에 상당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서울교통공사로부터 가해자의 불법촬영 혐의를 통보받지 못한 점"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김한규 의원이 '사건을 통보받았으면 막을 수 있었겠느냐'고 묻자 김 장관은 "현장점검을 통해 예방교육은 제대로 했는지, 매뉴얼은 있는지 피드백할 수 있다"며 "서울교통공사의 예방교육이나 스토킹 등 직장 내 괴롭힘 문제 그런 부분에 대해 광범위하게 대안을 줬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공공기관의 장이 해당 기관에서 성폭력 사건 발생시 피해자의 명시적 반대가 없으면 그 사실을 여성부에 통보해야 한다'는 성폭력방지법 조항에 근거해 나온 발언이다. 하지만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는 김 장관의 입장에서 보면, 옳고 그름이나 효과와는 별개로 이 사건과 관련해 여성부가 나서야 하는 이유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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